제19화. 악령은 죽지 않았다.
신성한 매실 758
최림과 수애는 애틋한 표정으로 대화를 계속 이어갔다.
“그 칼에 네가 당했지.”
“응, 그래서 우리 아빠인 천신이 크게 노했지.”
“천신께서 너와 나 그리고 주신을 인간 세상으로 보낸다고 했고.”
“응, 그런데 주신은 자기 잘못을 부인하면서 천계를 어지럽혔지.”
여기까지 말이 나오자, 둘은 서로가 같은 꿈을 꾼 걸 알았다.
“세상에, 이런 일이.”
수애가 놀라워하자 최림은 이렇게 말했다.
“우린 천계에서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어.”
“그랬나 봐. 그래서 어릴 때 널 처음 봤을 때 전혀 낯설지 않았어.”
“그랬구나. 난 그때만 하더라도 네가 몹시 어려웠는데.”
“왜?”
“넌 그때 부잣집 딸이었고 난 부모도 없는 가난한 고아였으니까.”
그러자 수애가 웃었다.
최림은 울던 그녀가 웃으니 마음이 놓였다.
“그깟 게 무슨 이유라고.”
“어어, 내 참. 난 그때 심각했다니까. 널 좋아하면서도 말도 못했어.”
“난 그때, 네가 그런 처지였어도 널 좋아했어.”
의외였다.
“어떻게?”
“왜냐하면 그때부터 넌 다른 아이들과 달랐으니까.”
“어떤 점이?”
“너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었잖아.”
“그건 그랬지.”
“그러니까. 넌 너보다 약한 아이들도 보호하고 뭐, 그런 점이 난 좋았어.”
이쯤에서 최림은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수애야.”
“응, 말해.”
확실히 수애는 아까보다 기분이 나아지고 있었다.
목소리에 꿀이 뚝뚝 떨어지는 듯했다.
“전두태가 천계에서 주신인 걸 이제 알았지?”
“응.”
“부모님 살아계실 때 널 추근댔지?”
그 질문에 수애는 잠시 침묵했다.
“내겐 솔직하게 말해 줘.”
그러자 수애는 그간의 말 못 할 사정을 털어놓았다.
전두태는 현실에서 사업가이자 이단 종교의 수장이었다.
그런 놈을 수애 어머니는 완전히 추앙하였다.
놈은 집회가 끝난 뒤, 젊은 여자들을 취하는 걸 수애 어머니도 알고 있었다.
그런 걸 뻔히 알던 그녀는 한날, 수애를 그 방에 집어넣었다.
어머니는 놈을 신으로 알고, 신으로부터 총애를 받는 줄 알았다.
수애는 한사코 거절하였지만, 완강한 어머니의 요구를 물리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당한 수애는 자살을 꾀하였다.
그제야 딸의 항변을 받아들인 그녀의 부모님은 그 교를 탈퇴하였다.
수애는 최림에게 이 사실을 고백한 후 또 울었다.
‘나쁜 새끼!’
“날 용서해줄 수 있지?”
그런 수애에게 최림은 자신의 사랑을 확신하게 해주었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그건 전적으로 미친 그놈의 잘못이야.”
흑흑.
“기다려 수애야. 내가 반드시 놈을 잡고야 만다.”
흑흑
“그래서 놈을 네 앞에 끌고 와서 천신의 이름으로 처단할게.”
최림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 * *
그로부터 두 달이 흘렀다.
최림은 병원에서 퇴원했다.
그리곤 바람대로 자기 고향인 지리산이 있는, 경찰서로 발령이 났다.
물론, 악령의 수괴 전두태를 잡기 위해서였다.
그곳 경찰서는 서장은 물론 모든 부서 경찰들이 최림을 알고 있었다.
하긴, 그때 그 사건이 TV로 생중계되었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최림은 그 경찰서 형사팀에 배치되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최림이 전두태를 잡기 위해 온 거라곤 생각지 않았다.
그냥, 그 사건 이후로 다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잠시 왔다고 여겼다.
소속 형사팀장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최림을 대하였다.
최림은 이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행여 소란으로 전두태가 종적을 감추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최림은 은밀하게 그의 행방을 쫓고 있었다.
숙소는 그 옛날 스승이던 무림 거사가 거처하던 집이었다.
경찰서까지 차량으로 40분이나 걸리는 먼 거리였다.
그래도 이 집에서 최림은 스승의 유훈을 기릴 수 있어 좋았다.
그날은 ‘정월 대보름 달집태우기’였다.
바람은 잔잔했고 날씨 또한 좋았다.
앞으로는 도도히 흐르는 경호강이 있었다.
뒤로는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智異山)이 있었다.
신안면 소재지인 원지 둔치에는 낮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어스름 해가 질 무렵엔 달집 주위로 꽉 차버렸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체육회 회원들의 열성 어린 준비에 감탄했다.
그리곤 곧 이어질 축제를 기대하고 있었다.
행사에 앞서 면장과 군의원의 인사말이 끝났다.
드디어 이 행사의 주최자인 체육회장이 횃불을 들었다.
‘점화!’
“와아!”
사람들의 함성이 터지자 불길은 치솟기 시작했다.
‘훨훨!’
모두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빌기 시작했다.
대다수가 농민이었으므로 그저 올 한해도 농사가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때였다.
무리 중에서 어떤 젊은이 둘이 한 사내의 양팔을 끼고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은 까만 양복에 둘 다 검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사내는 머리와 어깨를 축 늘인 채 질질 끌려오고 있었다.
“비켜봐요!”
젊은이 중 한 명이 사람들을 밀치며 큰 소리로 말했다.
“뭐야? 뭐야?”
비켜나는 사람들은 당황했다.
놀랍게도 끌려 나오는 사내의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양발도 묶여 있었다.
그러므로 사내는 젊은이들의 완력으로 끌려오는 게 맞았다.
훨훨 타오르는 달집 앞에 젊은이 둘 그리고 사내가 섰다.
하지만 사람들은 불을 구경하느라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불구경을 하던 어린아이가 소리쳤다.
“저것 봐요! 사람을 태워요.”
어린아이의 말은 맞았다.
젊은이 둘이 사내를 화염 속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아악!”
사내의 비명이 원지 둔치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제야 놀란 사람들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고함을 질렀다.
“사람이 탄다.”
“불을 꺼!”
하지만 사람들은 고함만 지를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모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사내를 밀어 넣은 젊은이들은 그 자리에서 여러 장의 인쇄물을 뿌렸다.
그리곤 태연히 주차장 쪽으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사람들은 불에 타는 사내를 보느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저건 뭐야? 어이, 소방! 얼른 물 뿌려! 경찰! 경찰 없어?”
당황한 면장과 군의원들은 다급하게 소방관과 경찰을 찾았다.
하지만 이 위급한 상황에서 소방관은 물론 경찰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까부터 근처엔 소방차와 119구급차 그리고 지구대 경찰이 대기해 있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 시각에 현장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없었다.
이제 사내는 곧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사내의 목숨이 경각에 이르자 몇몇 사람들이 그를 구출하려 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아이고! 저러다 사람 죽겠네. 와 이리 아무도 안 보이시!”
아낙들과 노인들이 발을 굴렀다.
사태는 점점 악화하여갔다.
하지만 다행이었다.
저만치서 지구대 소속 경찰과 119구급대원이 달려오고 있었다.
“뭐 하다가 지금 오는 거야?”
면장이 달려오는 경찰에게 항의했다.
그런데 경찰의 입에서는 더 놀랄만한 말이 터져 나왔다.
“면사무소에 빨리 가 봐요. 거기도 불이 났어요. 그래서 지금 오는 거요.”
경찰의 말에 사색이 된 면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그제야 경찰과 119 대원들이 힘을 합세하여 가까스로 사내를 꺼냈다.
사내는 온몸에 열꽃이 피어나고 벌겋게 익었다.
그는 낮은 신음을 내고 있었다.
그가 경찰에게 겨우 말을 꺼냈다.
“펜션에, 여자가 있소. 구해주시오. 단성면 P 펜션 201호…….”
그리고는 사내는 의식을 잃어버렸다.
지구대 경찰은 얼른 본청에 무전기로 지원을 요청했다.
마침 그 근처에 순찰 중인 산음 경찰서 형사팀들이 있었다.
그중에 최림도 있었다.
그러는 사이 사내는 구급차를 이용해 병원으로 가고 있었다.
잠시 뒤, 연락받고 온 산음 경찰서 소속 형사들에 의해 상황은 정리되었다.
젊은이들이 뿌린 인쇄물은 대부분 수거되었다.
그런데 일부가 마을 사람들에 읽혔다.
‘이 자는 거짓 종교로
다수 선량한 시민을 부당하게
어지럽혔으므로
판결자 전원 일치로 극형인 화형에 처함.
천년왕국, 666’
“이게 뭐야? 천년왕국은 무엇이고 666은 또 뭐야?”
거기다 가까스로 수습한 사내의 사체도 이상했다.
그의 이마에 짐승의 숫자 ‘666’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뭐야? 이마에도 이 숫자가 있네. 도대체 무슨 표시지?”
경찰과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지원 나온 형사들과 지구대 소속 경찰이 현장을 수습했다.
‘참! 펜션에 여자가 있다고 했지?’
최림은 사내가 일러 준 p 펜션으로 급히 달렸다.
p 펜션으로 가는 도중 인쇄물을 읽은 최림은 등골이 오싹했다.
‘이건 분명히 놈의 소행이야. 놈이 나타났다.’
예상한 대로 전두태가 지리산에 나타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