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점 9
짧은 사랑 후 떠나간 해군과의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잭 메이어(Zack Mayo: 리차드 기어 분)는 엄마가 자살을 하자 필리핀 해군기지에 있는 아버지를 찾아간다. 어린 시절을 거친 해군기지에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메이어는 대학을 졸업하자 해군항공 사관학교에 입학한다. 그곳에서 남을 늘 감싸고 배려하는 동료 시드 월리(Sid Worley: 데이빗 키스 분) 등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나, 교관 폴리(Sergeant Emil Foley: 루이스 고셋 주니어 분)는 매우 혹독하고 잔인한 훈련으로 모두들 좌절의 눈물을 맛본다.
훈련 4주째, 생도들을 위한 파티에서 제지공장에 다니는 여공 폴라(Paula Pokrifki: 데브라 윙거 분)와 리넷(Lynette Pomeroy: 리사 브라운트 분)을 만난 잭과 시드는 큰 부담없이 사랑을 즐긴다. 어린 시절의 불우한 환경 탓에 마음이 닫혀져 오직 자기 밖에 모르던 잭은 교관 폴리의 가르침과 월리의 우정, 그리고 폴라의 사랑 덕분에 서서히 마음이 열린다. 폴라는 시간이 갈 수록 자신이 진심으로 잭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잭은 그에 부담을 느껴 이별을 고한다. 월리 역시 리넷과 헤어지려 하나 리넷이 임신을 했다고 말하는데.
[스포일러] 평생을 죽은 형에 대한 죄책감과 가족 윤리에 얽매여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살아보지 못한 월리는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기 위해 소위 임관 2주를 남겨놓고 자퇴를 한다. 월리는 반지를 사서 리넷에게 뛰어가 청혼을 하나 월리가 자퇴를 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임신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그의 청혼을 거절한다. 리넷의 목적은 해군 조종사와 결혼하는 것이지 사랑하는 남자와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 해외에 나가 근사하게 살고 싶다는 가난한 여공의 집념에 짓밟혀버린 월리의 사랑은 그를 자살로 몰고 가는데.
영화 <사관과 신사>의 원제는 an Officer and a Gentleman이다.
Officer는 사관을, Gentleman은 신사를 뜻하는 단어지만
영국에서는 an officer and a gentleman이라는 표현은
장교로서 가져야 할 신사적이고 훌륭한 자질을 의미한다고 한다.
신예였던 테일러 핵포트 감독이 제작한 1982년의 로맨스 영화로
주연배우인 리처드 기어의 유명세 덕분에 이름은 몇 번 들어보았던 영화.
주제가인 듀엣러브넘버 <Up where we belong> 을 좋아하고 있었던 나로서는
언젠가 한번 꼭 봐야지, 하고 벼르고 있던 영화였다.
'보고싶다' 는 느낌보다는 '봐야한다' 는 이상한 의무감을 느끼고 있던 영화랄까?
주인공 잭 메이요 (Zack Mayo/리처드 기어) 는
어머니가 자살한 뒤 전형적인 '마초' 해군의 아버지 슬하에서,
아니 정확히 말하면 창녀들와 아버지의 틈바구니에서 자라났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학 졸업 직후
'제트기를 타고 싶다'며 해군 항공 사관학교에 지원을 하는 메이요.
훈련은 매우 고되고 거칠었다.
흑인 교관 폴리(Foley) 하사는
학창 시절 매년 가야만 했던 수련회의 교관이 하는 전형적인 대사
(내가 근무하면서 너희처럼 못난 놈들은 처음이다.. 등등)
를 구사하며 사관 생도들을 못살게 군다.
초반의 메이요는 그저 사관 생도가 되어 제트기를 타고 싶은,
어린 시절의 상처를 신분 상승의 욕구로 지우고자 하는
외모는 번듯하나 속은 형편없는 캐릭터였다.
아니, 속이 없다고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캐릭터의 입체성이나 내면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 얄팍한 존재.
그러나 폴리 하사가 부여하는 고된 훈련 속에서,
그리고 내면의 아픔을 안고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메이요는 조금씩 변해간다.
메이요의 새로운 주변 환경 중에서도
메이요에게 가장 큰 변화를 준 것은 '주말 애인'인 폴라(Paula/데브라 윙거).
폴라는 종이 공장에서 일하는 예쁘장한 아가씨로,
친구인 리네트(Lynette)와 함께 주말마다 예쁘게 치장하고는
사관 생도, 다시 말하면 미래에 사관이 될 남자들과
사랑을 나누고, 더 나아가서는 '신분 상승'의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처녀들이다.
폴라도, 리네트도, 입으로는 '가볍게 즐기고 싶다'고 말하지만
속마음은 그럴 리가 없다.
폴리가 말하던 사관생도의 경계 대상 제 1 호.
다행히 메이요도, 또 그의 친구인 시드(Sid)도
폴라와 리네트를 가벼운 주말 데이트 메이트 정도로 생각하는 듯 했다.
(이하 스포일러 주의)
그리고 사관생도가 아니라 사관이 될 날이 가까워지자
메이요는 폴라와의 만남을 자제한다.
친구 시드도 마찬가지. 리네트가 생리를 하지 않음을 걱정하지만,
메이요에게 고향에 있는 약혼녀의 칭찬을 하면서
리네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리네트는 그런 시드의 변화를 눈치채면서
폴라에게 자신이 이른바 '물귀신 작전'을 펼치겠다고,
같이 즐겼는데 남자는 승승장구하며 살고
자신은 시궁창 인생을 사는 것은 억울하지 않냐고 한다.
폴라도 멀어져가는 메이요를 잡기 위해 전화도 해보고 찾아갈 생각도 해 본다.
그러나 '그렇게 잡는다고 떠나간 사람의 마음이 돌아오겠느냐'며,
메이요를 진정 사랑한다면 그를 괴롭게 하지 말라는
어머니의 충고를 들으며 이내 주저앉아 눈물을 흘린다.
그녀 어머니 그 자신이 한때 사관생도를 사랑해서,
그와의 사이에서 사생아 폴라를 낳았던 아픔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폴라는 아무렇지 않은 척 얼굴에 웃음을 띈 채
메이요 앞에서 자신의 사랑을, 눈물을 숨기고
더 아름다워진 모습으로 다른 남자와 데이트를 하며
주크박스를 듣는 모습을 보여준다.
메이요는 그런 폴라를 보며 흔들린다.
이 마음 속의 동요가 어떤 것인지는 자신도, 관객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폴라를 향한 자신의 사랑이
자신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그랬던 것처럼
무책임하고 일시적인 '욕망'은 아닌지 두려워하던 메이요는
자기가 없어도 아무렇지 않게 지내는 듯한 폴라를 보며 화가 난다.
질투심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메이요는 더이상 지난날의 메이요가 아니다.
폴라를 한 순간 불장난 상대로 생각하는 무책임한 남자도,
사관이 되어 신분상승을 꿈꾸는 자기중심적인 남자도 아니다.
사관생도 체력훈련 기록에서 자신의 신기록 수립보다는
동료 여학생 시거가 무사히 체력훈련을 마칠 수 있게
그녀가 지금까지의 훈련에서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장벽넘기 등반을 도와준다.
고공비행 시뮬레이션 훈련의 극한 상황에서
정신적 이상 반응을 보이는 친구인 시드를 구하는 메이요의 모습은
단순한 Officer가 아니라 Officer이자 Gentleman으로서의 모습 그대로이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메이요도 그렇지만
해군 항공 사관 학교의 사관생도들은 모두 아픔을 가지고 있다.
- 사실 살면서 아픔을 겪지 않고 자라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이 글을 읽고 있을 누군가도 그런 아픔을 가지고 있겠지.
사관생도 중 유일하게 여자인 시거는 '성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녀가 아들로 태어나기를 바랬고
그 바람이 좌절되자 그녀를 압박했던 아버지에게서 받은 상처이다.
자신의 탄생, 존재 자체에 대한 강렬한 부정 속에서 자라난 시거.
그러나 그녀는 그런 콤플렉스와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아버지의 꿈에 만족하는 존재가 되어 아버지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고자 한다.
그녀는 그렇게 해서 자기 인생의 가장 큰 시련을 극복하고
장교의 멋진 흰색 제복을 입고 아버지의 품으로 달려간다.
삐딱한 불량아였던 주인공 메이요의 절친한 친구인 시드.
시드는 훌륭한 가문에서 자랐으며 유순한 성격으로 동료들의 인기와 신뢰를 받는 생도이다.
그러나 그는 사관생도였던 죽은 형에 대한 컴플렉스와
그의 죽음으로 인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부모님 역시 시드를 통해 시드 자신이 아니라 그의 형을 느끼고 싶어한다.
시드의 약혼녀는 심지어 그의 형의 약혼녀였던 아가씨이니 말이다.
워낙 유순하고 좋은 성품을 가진 시드는 그런 족쇄 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위기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트라우마는 숨길 수 없는 시드의 아킬레스건이다.
고된 훈련의 고비들에서도, 그리고 여자친구 리네트와의 관계에서도 위기는 찾아온다.
그러나 마지막 위기의 순간만큼은, 시드는 형의 삶이 아니라 자신만의 삶을 살고자 한다.
리네트가 오랫동안 생리를 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녀가 임신을 했다고 생각한 시드는
사관이 되기 2주를 앞두고, 한참을 고민한 끝에 DOR (Drop On Request : 자진 퇴소 요청)을 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돈을 다 털어서 구입한 반지를 들고 리네트의 집을 찾아간다.
리네트가 형의 대리자가 아니라 시드 그 자체로서 자신을 사랑해주던 유일한 존재라고 믿었던 시드.
그러나 리네트는 사관이 아닌 시드와는 함께 할 수 없다며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은 생리가 오지 않았을 뿐이지 임신했다고 한 적은 없다는 무책임한 말과 함께.
무정하게 돌아서는 리네트의 모습에,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있는 그대로의 자기 인생은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시드는
리네트와 처음 사랑을 나누었던 모텔 방에서 목을 매 자살한다.
이번에는 우리의 주인공 메이요가 고통을 극복할 차례이다.
불우한 어린시절, 그에게 있어 가장 큰 상처는 진실한 사랑에 대한 의문이었을 것이다.
사랑이 아니라 무책임한 남자의 욕정에 의해 자신이 태어났다는 생각은
메이요를 무책임하고 비뚤어진 청년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시드와의 우정, 폴리의 고된 훈련,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 한발짝 물러서는 폴리의 헌신적인 사랑 앞에
메이요는 훌륭한 장교로 다시 태어났을 뿐 아니라
한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멋진 신사로 거듭난 것이다.
제지공장에 멋진 제복을 입고 폴라를 찾아가
예쁘게 치장한 모습이 아닌, 여공으로서의 폴라에게 프로포즈를 하는 메이요.
그의 그런 모습이 너무도 멋있게 보이는 것은
그가 Officer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외관에 의해 진정한 사랑을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Gentleman이기 때문이 아닐런지.
누구나 삶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 상처를 어떻게 아물게 하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은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어떤 이는 그 상처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포용하고,
어떤 이는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을 겪기도 하며,
또 어떤 이는 그 상처를 딛고 새로운 삶을 살기도 한다.
<사관과 신사>에서 내가 느꼈던 전율은
신데렐라가 되어 제지공장을 빠져나가는 폴라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상처를 딛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메이요의 듬직한, 그리고 내가 닮고 싶은 뒷모습이기 때문이리라.
나도, 하루빨리 내 삶의 상처를,
그리고 내가 거쳐야할 관문을 모두 통과하여
갖추어야 할 자질을 갖춘 존재로 거듭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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