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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17(월) ◈ 눅 12: 13-34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함을 알고 주님만 의존합니다.
12: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2: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2: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2: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2: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2: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12: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12:23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12:24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12:25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12:26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
12:27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12:28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12: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12: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12: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12: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12: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12: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 주 해
1. 모든 믿는 자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으므로, 제자들을 향한 말씀은 곧 믿는 자를 향한 말씀이다.
1)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의 외식, 영적 한센병을 주의하라고 하셨다.
2)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름으로 인하여, 제자들도 병자를 고치고 복음을 전함으로 인하여 교만해져서 외식할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3)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던 순수한 마음이었는데, 교만이라는 누룩이 제자들을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4) 그러므로 외식을 버리고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하나님 앞에서 ‘담대하게 신앙을 고백’하라고 가르치셨다.
2. 제자들에 대한 두 번째 가르침은 “소유”에 관한 것이다.
1)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예수님께 형이 차지한 아버지의 유산을 자기에게도 나누게 하여 달라고 말한다.
2) 동생은 소유에 대한 욕심, 배려가 없는 형에 대한 억울함을 예수님께 해결해 달라고 했다.
3) 우리도 소유의 문제, 억울함의 문제의 재판관으로 하나님을 세우려 할 때가 많다.
4) 예수님은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라고 대답하신다.
5) 인간사에 공정한 재판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도 공정한 재판을 명령하셨다.
3. 그런데 세상의 공정과 공의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다. 이미 탐심과 교만이라는 터 위에서 공정을 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1) 형과 동생, 모두가 탐심으로 가득한 상태에서 공정하게 물건을 나누는 것만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의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지 못한다.
- 하나님이 형과 동생의 재물을 공정하게 나누게 해 주셔도, 형과 동생은 원수가 되고, 서로를 탓하며 비방할 것이다.
2)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유는 우리 삶의 기초를 바꾸려 하심이다.
3) 동생이 억울한 건 사실이다. 그런데 동생이 소유의 문제로 억울해 하고, 소유욕으로 힘들어 하는 근본적 문제를 고치러 오셨다.
4. 그러므로 예수님의 처방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는 것이다.
눅 12: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자, 모든 탐심을 물리친 자는 이 땅의 소유 문제, 그리고 그 소유 문제로 인한 억울한 마음에 얽매이지 않는다.
2) 정당한 것을 요구하고, 정의를 실현하되 소유와 억울함에 마음이 얽매여서 억울해하며 분노하지 않는다.
3) 사람의 생명(조에) 즉 ‘참되고 영속적인 삶’은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다.
- 참되고 영속적인 삶은 예수님이 주시는 하나님의 생명(조에)에 있다.
4) 탐심이 내 안에서 약동한다면, 하나님의 생명이 약동하지 않는 것이다.
- 정당한 재물을 얻지 못함, 억울함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생명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5. 예수님은 비유로 소출을 쌓아 둘 곳이 없는 부자가 더 큰 곳간을 짓고 곡식과 물건들을 거기에 쌓아 두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1)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면 어떻게든 그것을 안정적으로 보관하고 늘리려 한다.
2) 그리고 나서 부자는 자기 영혼에게 스스로 말한다.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쓰기에 넉넉한 좋은 물건들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안심하고 마시고 즐기라”
3) 이 부자는 오늘날 한국 사람들이 꿈꾸는 상태다. 이 세대는 재산과 물건을 충분히 쌓아두고 이생의 풍요를 누리면서 안주하며 즐기는 것을 꿈꾸라고 한다.
6.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에 개입하신다.
1) 이 땅에서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행복하고 자신감 있는 부자에게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바로 오늘 밤에 그의 영혼을 도로 찾으실 것이라고 하신다.
- 또 “그렇게 되면 그가 준비한 것은 누구의 것이 되겠는가?”라고 물으신다.
2) 어리석은 자는 그 속에 탐심이 있는 자요, 풍부한 재물로 인생을 즐기려는 자이다.
3) 이 비유는 부자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소유”를 의지하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
눅 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7. 비유의 요지는 재물의 부자와 가난함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라”는 것이다.
1) 부자이던, 가난하던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복이 있고 행복한 자라는 것이다.
2) 예수님은 목수, 육체노동자셨고, 공생애 동안도 머리둘 곳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예수님은 우리가 본받고 사모해야 할 가장 복된 삶을 사셨다.
8. 그러면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는 누구인가?
1) 이것에 대한 대답으로 22-32절의 말씀을 하신다.
2)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의 결론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자”이다.
눅 12: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9.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자의 대표적인 예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자”다.
눅 12: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1)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는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행하는 구제, 섬김, 헌금을 하늘에 쌓아두는 보물로 여긴다. 하늘 주머니에 보물을 쌓은 것으로 여긴다.
2) 우리는 저축할 때 마음이 뿌듯하다. 어린아이가 저금통에 돈을 넣을 때, 어른도 통장의 잔액이 늘어나면 뿌듯하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부요한 자는 하늘 통장에 보물이 쌓이는 것을 뿌듯하게 여긴다.
10. 부자는 넉넉한 소유로 즐기던지, 넉넉한 소유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소유를 어떻게 얻을지를 염려한다.
1) 그러나 하나님께 부요한 자, 하늘에 보물을 쌓는 자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다.
2) 예수님은 까마귀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신다.
- 하나님이 까마귀도 기르시는데,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귀하냐고 하셨다.
- 목숨을 한 시간이라도 연장할 수 없으면서 어찌 다른 일을 염려하느냐고 하신다.
3) 또한 예수님은 백합화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신다.
- 하나님이 들풀도 이렇게 입히시는데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하셨다.
11. 돈과 소유에 대하여 염려하지 않는 믿음은 엄청난 사고력과 통찰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보고 아는 “단순한 믿음”만 있으면 된다.
1) 하나님이 새들과 들풀도 기르시고 입히시는데, 하나님의 자녀인 나는 더욱 입히시고 기르신다는 믿음이 있으면 더 이상 “입을 것과 먹을 것”을 염려하지 않는다.
2) 우리가 돈 걱정, 미래 걱정, 먹을 걱정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새와 들풀을 입히시는 것과 나를 새와 들풀보다 귀하게 여긴다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3) 우리는 새들과 들풀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자녀인 나를 기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의 돌보심과 공급”을 믿어야 한다.
4) 이 믿음이 있는 자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구하거나 근심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게 된다.
5) 물론, 이 말씀을 일터에 무관심하거나 저축을 않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일반은총의 기초 위에서 특별은총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12. 겸손해야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돈에 대해 염려하지 않고,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게 된다.
1) 우리의 염려로 키(생명)을 조금도 늘릴 수 없다. 예수님은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는 자”임을 분명히 알라고 하신다. 가장 작은 일도 못하면서 다른 일을 염려하냐고 하신다.
12:25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12:26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
2) 문명과 과학의 유익은 많다. 그런데 과학과 문명이 준 착각은 인간이 매우 큰 일도 할 수 있다는 착각을 준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리고 나는 실상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한다.
3) 믿음의 유익도 많지만 믿음이 준 착각도 있다. 그 믿음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것이다. 아니다. 믿음은 내가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는 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임을 철저하게 아는 데서 시작된다.
13.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는 자, 즉 어린 아이임을 아는 자, 즉 겸손하게 된 자는 창조주 하나님, 아들을 통하여 생명을 주신 하늘 아버지를 의지하게 된다.
1) 그는 백합화를 보면서 하나님의 돌보심을 보고 찬양하며, 아들의 피값으로 대속한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믿고 감사한다.
2) 나의 머리털을 세시는 하나님이 나의 모든 필요를 나보다 더 잘 아심을 알고, 아들을 내어 주신 하나님이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심도 안다.
12: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12: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14. 예수님은 기쁜 소식을 말씀해 주신다.
눅 12: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1)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신 후에는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셨다.
- 하나님이 주시기를 기뻐하는 그 나라를 구하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가?
2) 성령을 구하면 성령을 주시겠다고 하셨고,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구해야 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해야 한다.
3) 성령이 임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하나님은 자동적으로 우리 영혼의 필요, 우리 몸의 필요를 다 아시고 채워주신다.
15. 하나님은 돈에 관심이 없고, 우리의 마음에 관심이 있다.
1) 예수님이 돈과 보물에 관하여 말씀하신 이유는 우리의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2) 그래서 우리의 돈을 어디에 두고, 어디에 사용하는지에 관심이 많으시다.
3) 돈은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 주기 때문이다.
눅 12: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 나의 묵상
가난함을 알면서 자랐기에 나는 적어도 중산층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살았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면서 인생의 목적을 바꾸었고, 20대 중반부터 40까지는 오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었다. 첫 사역지는 사례비가 없었고, 두 번째도 풀타임을 가지 않고 준전임을 자처하였다.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신실하게 까마귀처럼 들풀처럼 먹이시고 입히심을 경험하였다. 그로 인한 부작용도 있다. 40까지 저축, 투자, 보험, 연금, 부동산 등 경제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무지하였다. 연금 정도는 들어도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음세대가 이 말씀을 무소유로 살라는 말씀으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무소유로 살고자 하는 마음과 믿음은 귀하지만 무소유는 일반 은총을 거스러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소유냐 무소유냐가 핵심이 아니라 “탐심”과 “겸손”이 핵심이다. 무소유로 살면서 탐심이 있고 무소유로 산다는 이유로 교만하다면 한심한 일이다. 그 무소유로 겸손하다면 그의 믿음은 귀하다.
40대 이후, 건강이 좋아지지 않으면서 소유에 대한 고민이 새롭게 생겼다. 은퇴자 유튜브를 보면서 일반은총에 무지했음을 반성한다. 동시에 불안했던 어린시절에서 믿었던 시기에 이어서 50이 되면서 다시 불안해지는 현상을 본다. 전에는 노숙자로 살아도 주님과 함께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몸이 약해지니 최소한의 생활 여건은 있어야 할 것 같다. 나는 믿음이 없어진 줄 알았는데, 도리어 이제야 믿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전에는 내가 왠만한 일을 해 낼 것이라고 여겼다. 맨땅에 헤딩도 감행했다. 무소유도, 개척도 두렵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겁이 난다.
그로 인하여 내가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는 자임을 알게 된다. 성령의 능력과 복음의 능력, 목회와 사역을 알아가면서 무언가 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실상은 언제나 나는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는 자였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가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는 자임을 자각하기를 원하시고 기다리셨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필요한 사람은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는 자임을 아는 겸손한 자다. 사역으로 부르실 때, “너무나 약하여 너무나 부족하여 너무나 눈물많아” 부르셨다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어리석게도 더 강하고 더 준비되고, 더 능력있는 목회자가 되려고 하였다. 하나님은 가장 작은 일도 못하는 겸손한 자로 부르셨는데, 나는 왠만한 일은 척척 해내는 교만한 자가 되어 왔다. 나는 창고를 지은 어리석은 부자가 되어 왔던 것이다.
창고가 허물어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 그렇다고 다시 농사를 지어 창고를 채울 자신감도 없는 상태, 그저 어린아이처럼 하나님만 바라보는 상태,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함을 알고, 오직 하나님만이 전부가 되어야 한다는 갈망, 그 겸손을 주님은 원하셨던 것이다. 나의 억울함의 재판관이 되기 보다는 교만과 탐심을 제거하기를 기다리신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늘 아버지는 나의 억울함을 푸는 것보다, 소유의 넉넉함 보다 탐심, 교만, 하나님 노릇에서 내려와 들풀처럼, 까마귀처럼, 가장 작은 일도 할 수 없는 자, 겸손한 자리에 있으라고 하신다.
앤드류 머레이의 말대로 사람의 힘으로 겸손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겸손의 은혜를 주님이 나누어 줌을 굳게 믿으라고 하였다. 그래서 가장 작은 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겸손을 갈망하고 기도하며 주님이 주실 것을 믿는다. 이미 겸손한 생명인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주가 되신다. 부활의 주님이 겸손으로 통치하시고,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그분의 나라를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성령을 구하고, 하나님 나라를 구하고, 겸손을 구하면 주신다고 하신다. 내가 스스로 얻기에 불가능한 것을 주시는 하늘 아버지의 자비와 긍휼을 기대어 기도한다. 탕자처럼 나의 필요을 위해 돌아와도 반겨 맞으시고 아들의 권세를 주시고 잔치를 베풀며 기뻐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기쁨과 사랑을 용납한다. 그 은혜에 기대어, 그 은혜의 왕노릇으로 생명을 얻는다.
◈ 묵상 기도
주님은 전능하셔서 부족하고 연약함으로 인하여 겸손한 자를 부르셨는데, 저는 세상의 원리를 따라 강하고 준비되고 능력있는 사역자가 되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교만의 독이 제 영혼에 퍼지는 것도 모르고, 주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산다고 했습니다. 주님, 허드슨 테일러가 만난 포도나무 주님, 앤드류 머레이가 만난 겸손의 주님을 저도 만나게 하여 주십시오.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는 자임을 처절히 깨닫고, 내가 무엇을 하려하지 않고 전적으로 주님을 의존하고, 주님이 만유임을 알고, 주님의 전능을 믿고, 까마귀보다 들풀보다 더욱 사랑으로 돌보시는 그 은혜를 믿고 맛보아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 어려서부터 가득했던 불안이 치유되고 아버지 품속에서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리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주의 몸된 교회와 성도된 지체들을 주님의 은혜와 긍휼에 맡깁니다. 장재석 집사님이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는 상태로 병원에 있습니다. 까마귀를 돌보시는 하늘 아버지, 들풀도 입히시는 하늘 아버지,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는 그 곳에서 겸손하게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그 사랑안에서 참 안식을 얻게 하시고, 치유하시고 온전하게 하시며 입히시고 먹이시는 하나님을 믿게 하소서.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는 저희들, 믿음이 없는 저희들이지만 주님의 사랑과 겸손과 능력을 믿음으로 기도합니다. 장 집사님을 불가항력적인 돌보심으로 새롭게 하시고 온전케 하사, 함께 몸된 교회를 세우며,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 장례를 치르는 김부성 성도와 유가족들에게 하늘 아버지의 위로와 사랑과 구원으로 임하여 주십시오. 오늘도 신실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경배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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