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의 '서장'통한 선공부] <1> 서장 (書狀)
증시랑에 대한 답서(6)
생각 놓는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중생 세계의 일은 애써 배우지 않아도 아득한 옛날부터 익혀와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이리 저리 되는대로 행하여도 늘 그 근원에서 벗어나지 않으므로 옆으로 밀쳐 두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출세간(出世間)의 반야심(般若心)을 배우는 일은 아득한 옛부터 익혀온 일과는 서로 위배되어서, 선지식의 말을 조금 듣는다고 하여 쉽게 이해되지는 않습니다.
모름지기 결정적인 뜻을 세워서 굳게 지켜나아가 중생사(衆生事)와 반야심 (般若心)이 결코 양립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반야심에 깊이 들어간다면 중생사를 애써 물리치지 않아도 온갖 사마(邪魔)와 외도(外道)가 저절로 달아나고 항복할 것입 니다."
선문(禪門)에 들어오는 첫째 조건은 발심(發心)이다. 발심이란 우리의 세속적 욕망을 만족시켜 주는 세속의 여러 가지 일에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고, 영원한 진리를 얻겠다 고 결심하는 것이다. 만약 세속에서의 여러 가지 일이 원하는대로 잘 되기를 발심한다면, 이것은 선 공부의 발심은 아니다. 선 공부는 세속이라는 한계를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므로, 선 공부를 하려면 어떠한 세속적인 일도 가치있게 보아서는 안된다. 오로지 영원한 진리를 깨달아서 세속의 구속으로부터 해탈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사실 우리는 이미 온갖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일에 익숙할 대로 익숙해져 있다. 그러므로 세속의 일에는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거의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쪽으로 눈길을 주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 공부에서 목표로 하는 반야(般若)는 아직 한번도 그 맛을 본 적이 없으므로 생소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세속과 반야는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더욱 반야에 접근하기가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세속에서의 일은 무슨 일이든 모두 우리가 관심을 기울일 대상이 있다.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을 수 있는 대상이든 아니면 생각 속에 있는 대상이든 아니면 정서적으로 느끼는 대상이든 아니면 의욕을 가지고 바라는 대상이든, 세속적 일은 모두 우리가 관심을 기울일 상대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비하여 반야에는 관심을 기울일 대상이 없다. 반야는 곧 해탈인데, 만약 관심을 기울일 대상이 있다면 상대적으로 우리는 그 대상에 구속되어 버리므로 그것은 해탈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유하자면 파리가 곳곳에 앉을 수 있지만 오직 불꽃 위에는 앉을 수 없는 것처럼, 중생도 그러하여 곳곳에 관계할 수 있지만 오직 반야에는 관계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또 '생각을 놓는다'고는 말할 수 있어도, '반야를 잡는다'는 말은 방편어로서도 어색한 말이다. 반야는 관계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잡는다'라는 말이 해당되지 못한다. 이처럼 반야가 관계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반야를 공(空)이라고도 표현한다.
마지막 한 생각 내려놓는 것을 '백척이나 되는 장대 끝에 서서 앞으로 한 발 내딛는다.'고 하는 말도 같은 뜻이다. 생각과 같은 세간의 일에는 발 디딜 곳이 있지만, 반야는 허공과 같이 발 디딜 곳이 없다. {금강경}에서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공부인은 생각 놓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범부는 반드시 자기자신[自我]이라는 생각과 관념에 머물러 여기에 의지하고 살아가면서,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온갖 종류의 사량분별을 통하여 자신의 관념을 유지하려고 애써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이라는 관념을 지키고 있는 것이 바로 스스로 헛된 환상을 진실이라고 여기는 거꾸로 된 어리석음이며, 모든 번뇌가 이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머무르지 않으면 추락해버리는 중력 속의 물체가 아니라, 본래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공(空)이라는 진실을 알아야 한다. 육체는 백척이나 되는 높은 장대 끝에서 한 발 내디디면 추락하여 죽고 말겠지만, 마음은 한 발 내 딛어 허공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본래 공(空)인 자기자신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공부인은 자기자신 버리기를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
김태완/ 부산대 강사.철학
[출처 : 부다피아]
☞'서장통한 선공부' 목차 바로가기☜
첫댓글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