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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 잠에서 깨어나보니 비행기의 조명은 모두 꺼져 있었고 창문 가리개도 아까처럼 모두 닫혀져 있었다.
샤를드골 공항까지는 아직도 4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현지 시각은
지금 내가 지나고 있는 곳은 이라크 위에 있는 상공인 거 같다. 흑해로 진입하는 중이다. 아마 구 소련 어딘가가 아닐까.
나는 한 번 비행기 내를 돌아보았다. 여기저기 빈 자리가 생겨서 그런지 사람들이 자리에 걸쳐진 팔걸이를 위로 올리고
좌석을 걸친 채로 잠자고 있었다. 보잉 747 점보기는 3-4-3 배열이기 때문에 가운데 앉은 사람은
4개 자리까지 점령한 채 잘 수 있다. 빈 자리를 점유하고 있는 사람 모두 담요를 덮은 채로
3개에서 4개 자리를 독점한 채로 잠자고 있었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왔다가 내 자리로 돌아왔다. 이놈의 캠코더는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충전해야 했다.
하지만 미처 충전을 하지 못했으니 여간 답답한 게 아니다. 마침 스튜어디스가 지나가길래 물어봤다.
“Excuse me, Can I recharge this machine?”(실례지만 이 기계 충전할 수 있어요?)
“No.”
역시나. 비행기에서는 충전할 수 없는가 보다. 어쩔 수 없이 남은 시간 동안 잠을 청해야 했다. 계속해서 비행기가
날아갔는데 나는 바깥 기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섭씨 영하 47도라니! 하지만 이건 사실이다.
어차피 37000피트 상공이라면 어느 정도로 높이 올라왔겠는가? 미터로 쳐도 1만 1천 미터 이상의 고도를 유지한다.
이건 에베레스트 산보다도 더 높이 올라온 것이니 당연히 추울 수밖에. 그렇게 계속해서 비행하고 있을 때
나는 한 리모컨 버튼을 눌렀다. 땡, 땡, 차임 벨이 울렸다. 그런데 스튜어디스가 오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서 나는 스튜어디스가 뭐라고 말 걸기 전에 손을 흔들며 “No, no.”를 연발했다.
방금 눌렀던 버튼이 승무원 호출용이었다는 것과 차임 벨 소리가 승무원 호출 소리란 걸 알았다.
잠시 후 기장의 안내방송과 함께 안전벨트를 하라는 표시등이 들어왔다. 바로 기류 불안정 때문이란다.
모두 안전벨트를 하였고 나도 재빨리 자리로 들어가서 안전벨트를 했다. 비행기가 갑자기 기우뚱거리면서 흔들렸다.
그러더니 마치 높은 파도를 타는 배처럼 비행기가 매우 요동치기 시작했다.
안전벨트 표시등이 꺼지지 않고 계속 켜져 있었고 이후에도 비행기는 계속해서 기우뚱거리고 요동치기 시작했다.
원래 고도가 높아도 특정 지역에서는 기류 불안정으로 비행기가 요동치기 십상이다. 밖은 날씨가 매우 춥다.
영하 47도. 그러나 비행기 기체는 얼마나 단열 처리가 잘 되었는지 기내에서 에어컨이 작동되어도 조금도
추운 느낌이 없었다. 그리고 실내와 실외 기온 차가 아무리 심해도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다.
이렇게 계속해서 날아가고 있었고 어느 새 독일 영공을 지나기 시작했다. 아마 라이프니츠(Leipnitz)가 아닐까 생각했다.
좀 더 있더니 기내에 꺼졌던 조명이 모두 들어왔다. 스튜어디스들이 지나다니면서 사람들을 하나 둘 깨운다.
기내식이 또 나오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기내식이 나왔는데 이번에도 아마 오믈렛 비슷한 요리였을 것 같았다.
이 음식을 아침 식사로 하고 나온다.
기내식을 다 먹은 다음 모니터를 주시했다. 보니까 비행기가 어느새 프랑스 영공을 날아가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래서 창문을 열고 살짝 내다 봤는데 구름 너머로 산이 보이고 곳곳에 불이 들어온 모습이 보였다.
이 동네를 보니 마을과 밭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비행기는 서서히 고도를 낮추어 내려갔다.
(샤를 드골 공항 착륙 장면)
“Ladies and gentlemen, this craft will arrive at Charles de Gaulle International Airport after a while.
Please make sure to not forget your belongings and any luggage.
Thanks for having a journey with our Malaysia Airlines today.
It is reported on which the local time is
(손님 여러분. 이 비행기는 잠시 후 샤를 드골 국제 공항에 도착합니다. 내리실 때 물건을 잊지 않도록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저희 말레이시아 항공편을 이용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현재 시간은
비행기가 어느새 샤를드골 공항 2청사에 마련된 도착장으로 들어갔고 공항 직원이 탑승구를 움직이러 부산하게 움직인다.
잠시 후 탑승구가 비행기 승강구와 연결되었고 문이 열리면서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나도 사람들을 따라 내렸다.
그런데 입국 심사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샤를드골 공항 경찰이 2인 1조로 사람들의 항공권과 여권을 검사하고 있었다.
한참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내 차례가 되었다. 경찰이 프랑스어로 내게 물었다.
“Combien de temps restez-vous?(꽁비앙 드 떵 헤스테부)” (프랑스어로 “얼마나 체류할 겁니까”라는 뜻)
나는 불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고 불어로 말할 자신이 없어서 그냥 영어로 대답했다.
“I can’t speak French.”(프랑스어 못하는데요)
“OK. How many days will you stay?”(알겠습니다. 얼마나 체류하실 겁니까?)
“What?”(네?)
“How many days will you stay?”(얼마나 체류하실 겁니까?)
“I’ll leave French in three hours.”(3시간 안으로 프랑스 떠나거든요.)
그러더니 잠시 여권과 항공권을 확인하더니 나를 입국 심사장으로 보내 주었다. 이 곳에서 입국 심사장까지 예상외로 멀었다.
나는 어떤 여자분이 롯데면세점 쇼핑백을 들고 가는 것을 보고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저, 한국에서 오셨죠?”
“네.”
“어디까지 가세요?”
“파리 중심가까지 들어가거든요.”
그리고 입국 심사장에서 여권에 스탬프를 받은 다음 수하물 찾는 곳에서 내 무거운 가방을 찾았다.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Sortie라고 씌어진 곳을 따라 가고 있었다. Sortie가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을 따라 나서기로 했다.
“저는 혼자 유럽을 보름간 돌아다니거든요. 그렇지만 유럽 곳곳에 소매치기나 강도가 있다고 하니까 걱정되거든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탈리아도 지금은 로마나 나폴리에도 소매치기나 강도는 별로 없어요.
그리고 혼자 여행하는 게 오히려 더 재미있다고 그래요.”
말은 그렇게 들었지만 나는 그래도 불안했다. 유럽에 처음 왔기 때문에 유럽의 실정을 잘 모르는 것이 사실이다.
Sortie라는 곳을 따라 나왔는데 알고 보니 공항 청사 출입문이다. 그제서야 Sortie라는 말이 출구(Exit)라는 뜻임을 알았다.
샤를 드골 공항에서 Sortie라고만 되어 있었으니 불어를 모르는 나는 무얼 알았겠는가?
어쨌든 지하철이나 철도 역을 비롯한 모든 건물에서 나가고자 할 때는 Sortie라고 씌어진 표시를 따라 나가면 된다.
어쨌든 거기서 파리시내로 들어가는 지하철을 타야 했는데 지하철을 잡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웬만한 사람들은 프랑스어로 말하고 샤를드골 공항 내부는 은근히 미로처럼 길이 복잡했다. 지나가던 청소부에게
여자 분이 물어봤고 청소부는 당연히 프랑스어로 대답했다. 그의 제스처를 따라 우리는 그대로 따라갔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어도 통로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왔던 길로 다시 와서 나는 문 앞에 있는 렌터카 영업소에서 물어보았다.
“Excuse me, where can I find the way to go to
“Please take the shuttle bus number 2.”(2번 셔틀버스를 타세요)
공항 밖으로 나와서 2번 버스를 잡았다. 그 말로만 듣던 굴절버스였다. 초저상 굴절버스이다.
우리나라에 잠시나마 들어왔던 스카니아 굴절버스가 아니라 이베코(Iveco) 굴절버스다.
공항 셔틀버스가 이 정도로 굴절버스에 초저상이니 얼마나 부러웠을까 생각한다.
차에 올라타서 기념으로 굴절버스 사진을 찍어 보았다.
버스는 샤를드골 공항 구내를 빙 돌더니 잠시 뒤에 RER-B선과 나란히 들어갔다. 처음에 이 노선이 혹시 TGV 노선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전차선과 전봇대, 그리고 전차선 받침대가 TGV와 거의 닮았기 때문이었다.
(RER-B선 선로와 전차선)
파리 시내로 들어가는 광역지하철 아에로포르 샤를드골 1역(Aéroport Charles-de-Gaulle 1)에 도착했다.
샤를드골 공항 전철역은 2개의 역이 있는데 국제선을 타거나 국제선에서 나온 사람이 탈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역이다.
나는 이 곳에서 한 외국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야말로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잘해서 깜짝 놀랐던 것이다.
여기서 광역전철 RER-B선을 타고 파리 시내로 들어가서 유로스타를 타고 영국으로 가야 한다.
그 때 그 외국인이 나와 같이 가는 여자 분에게 다가왔다.
“Are you going to
“Yes. Can I find a ticketing booth?”(네. 매표소가 어디 있지요?)
“Over there.”(저기요)
“How much is it to Gare du Nord?”(가르 뒤 노르까지 얼마죠?)
“Seven seventy five euros”(7.75유로에요.)
맙소사!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광역전철 한번 타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1만 1천원이라니...
그리고 나는 매표구에서 표를 사게 되었다. 그나마 알고 있던 프랑스어는 “Je voudrais ~(쥬 부드헤)”
(‘나는 ~를 원합니다’라는 뜻)이라 이것으로 억지로 문장을 만들었다.
“Je voudrais allez à Gare du Nord.(쥬 부드헤 알레자 가르 뒤 노르)”(가르 드 노르로 가려는데요)
그렇게 10유로짜리 지폐를 줬더니 2.25유로를 거슬러 주었다. 우리나라의 지하철 표와 똑같이 생겼다.
뒷면 마그네틱 선이 굵다. 나는 외국인이 나와 같이 온 여자 분을 안내해 준다는 말에 그리고 그 외국인에게 물어봤다.
“Can I buy the Eurostar ticket?”
“OK. I will help you.”
그 외국인은 친절하게도 나를 도와주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는 국철표를 예약할 수 있는 여행사로 들어가서 물어봤다.
외국인이 프랑스어로 물어보았다.
“Excuse moi, Je voudrais réserver une place de Eurostar pour Londre.
(익스뀌제 뫄, 쥬브드헤 헤제베 휜 쁠라스 드 유로스타 푸 런드헤).”
(실례지만 런던 가는 유로스타 표 하나 예약하려 해요)
“D’accord.(다꼬르)”(좋습니다)
잠시 후에 그 직원이 외국인에게 말해 주었다.
“150 Euros”
그리고 외국인이 내게 말해 주었다.
“150 Euros to
“Oh, No. That’s very expensive. I have heard that the ticket to
(아닌데요. 너무 비싸요. 전 75유로라고 들었는데요.)
그러자 그 직원이 내게 말해 주었다. 프랑스어로 말해서 알아듣지 못했고 외국인이 말해주었다.
“You should ask about the ticket at Gare du Nord.”(가르 드 노르 가서 물어봐야 한대요)
그 외국인은 예상외로 친절했고 프랑스어를 굉장히 잘 해서 나는 프랑스 사람인줄 알았다.
더구나 표를 나 대신해서 예약해 주려고 했으니 얼마나 고맙겠는가.
여기다가 그 외국인은 내가 가진 표를 직접 넣어주었다. 그렇게 RER-B선을 타게 되었다.
(아에로포르 샤를 드골 1역 육교에서 본 모습)
지하에 열차 타는 곳이 있어서 그런지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우리나라의 옥수역이나 버티고개역처럼 역 구조가
위에서 지나가는 열차를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프랑스 지하철 RER-B선은 좌측통행이기 때문에 오른쪽으로 내려가야 했다.
(RER-B선 노선 안내도)
나는 이 역에서 전동차를 타게 되었는데 이 전동차의 외형은 GEC 배불뚝이 초퍼차량이다.
(열차 출발전 모습)
물론 구동음은 그게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온 김에 외부 사진과 함께 열차 노선판, 출입문, 각종 주의 표지를 찍었다.
드디어 열차가 샤를드골 1역을 떠나간다. 나는 외국인에게 물어보았다.
“You speak French very well.”(프랑스어 잘하시네요)
“Thank you. Actually, My parents live in
(고맙습니다. 사실 저희 부모님이 파리에 사시거든요. 그래서 저는 파리에 많이 와요.)
“And you are very kindness.”(그리고 매우 친절하세요)
“Don’t mention it.”(천만에요)
“So, are you visiting your parents now?”(그럼 지금 부모님 댁에 가는 거에요?)
“Of course.”
열차를 타고 가는데 출퇴근 시간대라 사람들이 많이 탄다. 우리나라보다는 덜 혼잡하다.
아마도 수원-청량리 아침 출퇴근 시간보다도 사람이 적다.
(유리창에 스크래치한 모습)
프랑스에 있는 모든 객차나 기관차뿐만 아니라 웬만한 다리 밑이나 담장 밑에는 요란한 낙서가 있다.
예전 한철 전동차 5x10편성 선두차에 그려졌던 그림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 곳에 새겨진 그림들은
대개 문자나 사물을 주제로 한 낙서가 대부분이고 요란하다. 그렇지만 이를 지우려 하지도 않는가 보다.
이윽고 열차는 라 플렌(La Plaine – Stade de France)역에 도착했다. 그 외국인이 말했다.
“Yes, Gare du Nord is the next station.”(다음역이 가르 뒤 노르 역이에요)
“Why don’t you get ready?”(준비하지 그러세요?)
“I’ll get off at Châtelet les Halles.”(저는 샤텔레 레 알레역에 내릴 거에요.)
샤텔레 레알레역은 가르 뒤 노르역 다음 정차역이다. 같이 갈 줄 알았던 이 외국인이 은근히 배신(?)을 때렸다.
그래도 어찌하랴. 나는 이 사람과 붙어 다닌다고 해서 좋을 것이 없었기에 그냥 원래대로 가르 뒤 노르에 내렸다.
“Have a good trip and good luck!”(좋은 여행 하시고 행운이 함께 하길 바래요)
“You too.”
드디어 가르 뒤 노르(Gare du Nord)에 도착했다. 가르 뒤 노르는 북부역이라는 뜻이다.
역은 Gare이고 Nord는 북쪽을 뜻한다. 나는 그 외국인과 헤어지고 같이 동행했던 여자 분과 헤어졌다.
“그럼 저는 4호선으로 갈아타야 해요. 그럼 재미있게 여행하세요.”
“네. 안녕히 가세요.”
그렇게 혼자가 되었다. 그렇지만 별 문제 없으리라 생각하고 가르 뒤 노르로 들어가기로 맘먹었다.
(역으로 나가는 출입구 표지 - 이 곳에서는 국철 이용이 가능하다)
가르 뒤 노르에 들어왔는데 시발역이라 그런지 모든 역 선로는 차막이로 가로막혀 있고 차막이 앞으로는
대부분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통행로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인천역이나 목포역을 생각하면 된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는 선로가 끝나는 차막이 너머로 역 건물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 행선지 안내만 잘 따라가면
열차를 잡는데 불편이 없다. 그 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타게 될 열차를 미리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파리 가르 뒤 노르를 포함한 대부분의 주요 도시 철도역은 같은 역이라도 화물취급역과 여객취급역이
따로 떨어져 있어서 여객취급역에는 여객열차가 아니면 들어올 수 없다. 그리고 종단점은 차막이로 막혀 있기 때문에
열차가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차막이 너머로 역이 아니고 시발역 역사는 선로와 나란히 설치된
구조이기 때문에 자신이 타고 갈 열차가 어떤 열차인지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만약 자신이 탈 열차가
5번 타는 곳에 있는데 3번 타는 곳에 열차가 서있다면 열차를 잘못 탈 수도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건대
지금의 서울역, 대전역, 동대구역, 부산역과 같이 자신이 타고 갈 열차를 위층에서 확인하고 찾아갈 수 있는
낙하산식으로 만들어진 역사에 대해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으나 아직도 지하도를 이용한다거나 건널목을
이용하여 들어가거나 나갈 경우라면 상황이 틀리다.
배가 슬슬 고파왔다. 아까 먹은 기내식이 금방 소화된 모양이다. 그래서 매점에서 무엇인가를 사먹기로 했다.
나는 샌드위치와 콜라 한 캔을 사서 마셨다. 제일 싼 샌드위치는 1.99유로, 콜라는 1.40유로이다.
다 합하면 3.39유로이다. 지금부터 나는 유럽 12개국의 살인적인 물가를 체험하게 된 것이다.
콜라가 355ml 정도 그러니까 맥주 한 캔 만한 부피였는데 이 정도 콜라가 우리 돈으로 2천원이나 한다는 말이다.
생수는 더욱 비싸다. 우리나라에서 700원이면 살 수 있는 생수 한 병이 프랑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에서는 2유로,
그러니까 2,900원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제일 가격이 싼 콜라를 사 마시게 된 것이다. 우유는 없었다.
잠시 가르 뒤 노르 밖으로 나와서 시내 사진을 찍었다. 고풍스러운 건물이 유난히도 많았다.
(건물 꼭대기에 걸려 있는 삼성 로고)
저쪽 건물 꼭대기에는 삼성 로고가 걸린 건물이 보였다. 여기서도 삼성의 인지도가 높긴 높은 모양이다.
더욱 놀란 사실은 굴절버스도 많았고 그보다도 우리나라에서 고급으로 통하는 푸조나 르노 승용차가 여기서는
택시에도 사용된다는 점이다. 여기다가 영국에만 있을 줄 알았던 2층 버스가 여기에도 있었다. 물론 관광버스로 있긴 하지만.
(이층버스가 이 곳에도 있다. 물론 관광용이다)
나는 매표구로 가서 표를 사게 되었다. 매표구에는 일단 한 줄로 서서 대기선 바깥에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 공공 장소에 설치된 화장실 들어갈 때 한 줄로 서서 들어가기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줄 서고 있다가 내 차례가 되어서 창구로 갔는데
“Bonjour!”(프랑스어로 “안녕하세요”라는 뜻이다.)
“I would like to buy a train ticket to
“Sorry. You should go up to upstairs and get the Eurostar train ticket.”
(죄송합니다. 위층으로 올라가서 유로스타 승차권을 사세요)
“OK.”
그렇다. 유로스타 승차권은 위층으로 올라가야 살 수 있던 것이다. 가르 드 노르 매표구는 유로스타 매표구가 2층에 있고
프랑스 국철 SNCF(Société Nationale des Chemins de Fer Français)가 1층에 있다. 이것도 모른 채
나는 1층에서 줄서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2층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유로스타 전용창구에서 줄서서 기다렸다. 10분도 되지 않아 내 차례가 다가왔다.
여직원이었다.
“Bonjour! Vous allez où?”(프랑스어로 “안녕하세요? 어디 가십니까?” 라는 뜻)
나는 영어로 대답했다.
“I would like to buy a ticket to
“Let’s see. What time will you leave? This
“No. I will take the next train. Nine ten (
“OK. It’s 75 euros.”(75 유로입니다.)
“OK. Do you take any credit card, such as Visa or Master card?”(비자나 마스터카드 결제할 수 있어요?)
“Yes. All of cards are available.”(네. 모든 카드 사용 가능합니다)
“Here’s my Visa.”(여기 비자카드 있어요)
여기서 실제 외국 가면 비자나 마스터라고 말하면 된다. 뒤에 굳이 카드라는 말을 붙일 필요는 없다.
“And I would like to open this Pass.”(이 유레일패스 개시하려고 하는데요)
“No need to open for this train.”(이 열차 탈 때는 개시할 필요 없어요.)
“Ah...”
75유로에 유로스타 표를 샀다. 물론 카드로 결제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다.
“Anyway, how much price is it without a
"299 Euros.”
세상에... 그렇다면 우리나라 돈으로 42만원이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것도 2등석이 이정도 운임이라니?
정말 유레일패스 사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없었으면 정말 큰일날 뻔 했을 일이다.
“I see. Thank you.”
“Bye.”
(가르 뒤 노르 타는 곳 모습)
(가르 뒤 노르 열차출발 안내전광판)
(출발 대기중인 TGV 86편성)
그리고 잠시 아래층으로 와서 TGV와 일반철도 기관차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역 구내를 돌아다니면서 유로스타와
탈리스 사진을 찍었다. 여기다가 가르 뒤 노르역 구내를 잠깐이나마 캠코더로 찍었다.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인지라 동영상을 잠깐 찍다 말았다. 그 대신 영국가서 찍으면 되니까.
(프랑스 스포츠신문중 하나인 L’Equipe지)
나는 프랑스어를 잘 하지는 못하지만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어했기에 프랑스어로 된 가장 싼 것을 보려고
프랑스 스포츠신문인 L’Equipe지를 샀다. 그나마도 0.95유로나 한다. 우리나라 스포츠신문은 600원인데
비해 여기 스포츠신문은 1400원인 셈이다. 마침 포르투갈에서 유로 2004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구나 그 날 프랑스 – 스위스 경기가 있는 날이라 첫 면에 지네딘 지단이 등장했다. 대문짝만하게 Suivez le guide!
(쉬베 르 귀드! “승리로 이끌라”는 뜻으로 여겨짐) 실렸고 옆에는 Le Portugal sort l’Espagne
(포흐투갈 소흐 레스파뉴 - “포르투갈 스페인을 내보내다”라는 뜻)라는 머리기사가 작게 실렸다.
다만 프랑스어를 잘 모르기 때문에 만화로 보아야 했다. L’humeur(뤼뫼) – 우리나라 말로 유머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스머프 만화의 내용을 프랑스 대표팀 선수들 이름으로 지었다. 그런데 지단스머프에게 스머프 모자는 없다.
지단의 트레이드마크인 대머리를 부각시켜 그렸기 때문이다. 거기다 만화에서도 지주스머프라고 부르며 파파스머프는
지주스머프를 쳐다보며 자랑스러워 한다. 지주(Zizou)는 지네딘 지단의 애칭이다.
가르 뒤 노르에는 예상외로 앵벌이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곳곳에 바구니도 없이 맨 손으로 돈 한 푼만 달라고 하는
앵벌이들이 많았다. 매점에는 음료수를 먹을 수 있도록 탁자가 마련되어 있어서 그 곳에 사람들이 음료수와 과자,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데 여기까지 와서 앵벌이들은 손을 벌린다. 거기다가 열차를 대기하면서 벤치에 앉아 있는 중에도
앵벌이들은 자신들이 차비가 없거나 사먹을 돈이 없다며 구걸한다. 워낙 유럽의 강도나 소매치기에 얼어서인지
한국인들을 반가워해야 할 나는 앵벌이들을 경계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열고 놀란다고 했던가.
앵벌이들이 다가와도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다. 앵벌이를 가장한 소매치기나 강도 때문일지도 모른다.
열차타기 10분전 나는 2층에 있는 유로스타 개표구로 올라갔다. 개표구 올라가기 전에 출국 심사대가 있어서
여권을 제시하고 출국 심사를 받았고 바로 이어지는 소지품 검사... 공항과 전혀 다를 게 없었다. 모든 소지품은
X레이를 이용하여 검사한다. 검사대를 무사 통과한 후에 나는 영국 출입국 신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가르 드 노르역 구내 면세점 모습)
그런데 볼펜이 없어서 작성할 수 없었고 그래서 나는 펜을 사려고 면세구역을 돌아다녔다. 유로스타 승차할 곳은
면세구역이기 때문에 이 곳은 대부분 면세점이다. 나는 파리 기념품 판매점에서 작은 볼펜 하나를 어렵게나마 구했다.
볼펜 하나가 이 곳에서는 3유로이다. 무려 4,200원이란 셈이다. 나는 출입국 신고서를 작성한 다음 개표구에 제출하고
표를 개표받은 다음 유로스타 타는 곳으로 내려왔다.
(유로스타 승강구)
유로스타 열차는 TGV를 제작한 알스톰사의 모델이다. 그래서인지 대체적으로 TGV 차량과 비슷하게 생겼다.
(유로스타 승강구에 서있는 여승무원)
나는 유로스타를 뒤로 하고 독사진을 찍었고 가르 드 노르 역명판과 유로스타를 찍었다. 이 유로스타에는
대형 수하물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기 때문에 여기다가 대형 수하물을 넣으면 된다.
(유로스타 수하물 전용칸)
그리고 이 수하물 넣는 곳은 문도 넓다. 그래서 나는 이 사진을 필히 찍어야겠다 생각하고 사진을 찍었다.
내가 탈 유로스타 열차는 가격이 비싼데도 열차 내부는 KTX에 비하면 보잘것없었다.
그 이유는 나는 2호차 68호석 창가쪽 자리에 앉아서 가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이 좌석이 역방향이다.
그리고 자리에 앉았는데 리클 버튼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앉은 자리도 봤는데 리클을 할 수 없도록
좌석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용무를 잠깐 보고 나오는데 면도기 사용할 수 있도록
연결 플러그가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나마도 영국식으로 되어 있어서 내가 가져온 캠코더,
충전지 충전기는 사용할 수 없었다. 영국의 전원 플러그는 둥근형 콘센트가 아니라 네모형 콘센트였기 때문이다.
상상해보라. 유레일패스 가지고도 10만 5천원이다. 여기다 유레일패스 없을 경우에는 42만원
(왕복 기준이지만 편도로만 갈 경우에도 이 요금이 적용된다), 비즈니스석 편도 요금만 322.5유로
(우리 돈 47만원), 프리미엄석은 편도 요금만 420유로(우리 돈 61만 2천원)다. 그럼에도 이코노미석은 좌석이
완전 고정식이고 역방향 걸려도 우리나라 KTX처럼 단 한 푼도 할인되지 않는다. 이처럼 일본이나 유럽 철도는 운임이
우리나라의 2배 이상 비싸다. 우리나라 KTX는 역방향으로 가면 5% 할인에다가 파리 – 런던 거리이면 순방향으로 가도
5만원도 나오지 않는 아주 저렴한 운임이다. 그래서 내가 누누이 강조한 것이 바로 우리나라 철도청이 밑지는 걸 알면서도
싸게 요금을 정한 것에 대해 고마워하라는 것이다. 만약 내가 이렇게 쓴 의견에 대해 반발하여 서민들을 위한답시고
운임을 좀더 깎아야 한다고 떠들려거든 철도청에 가서 문의해보라. 철도청 관계자들이 답변은 그럴싸하게 하면서도
뒤에서는 바보라고 욕할 것이다. 철도청 직원 조차 지금의 운임이 밑지는 장사란 걸 알기 때문이다.
(SNCF 차량기지에 주박한 차량)
열차는 제 시각에 파리 가르 뒤 노르를 출발했다. 서서히 열차가 출발하면서 SNCF 소속 차량이 주박하고 있는 기지를 지났다.
TGV를 비롯한 SNCF 일반철도차량이 그 곳에 주박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점점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선로가 없다. 그리고 반대쪽을 바라보니 열차가 교행한다. 이곳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철도 통행은 좌측통행이다.
열차는 프랑스 농촌 지대를 매우 빠른 속도로 통과한다. 아주 아름다운 벌판이었고 우리나라 농촌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멋진 광경을 볼 수 있다. 시차 적응이 잘 되지 않아서 그런지 그 불편한 유로스타
이등석 객실에서 잠자다 일어나 보니 벌써 열차는 프랑스 북쪽에 위치한 가르 뒤 리유(Gare du Lille – 리유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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