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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고미숙, 북드라망, 2015 개정신판)
고미숙은 프롤로그에서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열하를 두 번씩이나 다녀왔다. 고미숙의 삶의 보니 열하에 있어서는 외부자가 아닌 내부자로서 연암의 삶과 클로즈업이 되면서 실루엣처럼 다가 온다. 고미숙의 삶의 여정 속에는 클리나멘이 연암처럼 이리저리 유영을 한다. 이런 클리나멘은 때로 고행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결국 내 삶의 방향을 결정지어 주는 선물이 아닐까 싶다. 그 동안 배워왔던 모든 것들이, 특히 근대주의의 목적론의 산물을 먹고 자란 우리의 삶은 결국 그 열매를 뱉어낼 수밖에 없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지만, 그래서 색다른 클리나멘을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고, 이 책을 통해 어떻게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바라보고 있는지 그 관점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저자의 시각은 들뢰즈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접속(노마드)를 통해서 천의 고원을 넘나드는 재미를 선사해 준다. 하긴 나는 이 책을 두 번이나 읽고 고미숙을 만나고 싶어 ‘수유+공간 너머’를 찾아갔었다. 수유 공간에서 고미숙 뿐만 아니라 이진경, 고병권을 만나게 되면서 그들의 책에 푹 빠져 철학의 맛을 알게 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1부 “나는 너고 너는 나다”
1. 젊은 날의 초상
연암의 초상화와 글을 통해 나타나는 모습은 거대한 몸집에 매의 눈초리이다. 말술을 마시고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고, 일단 논쟁이 붙으면 사흘 밤낮을 쉬지 않았다는 다혈질적 기질의 사람이다. 무료한 가운데 했던 “쌍륙놀이”는 혼자서 오른손, 왼손으로 던지며 승부에 대한 집착을 어느 한쪽에 보여주는 가운데 느낀 글이다. 정말 심심하게 지내는 무료와 고독을 혼자만의 놀이로 지내는 모습을 통해, 그리고 자기가 느낀 모습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는 정황이 오히려 쓸쓸함을 느끼게 한다. 연암은 사대부들만의 교류가 아닌 어느 누구든 담소를 즐겨하고, 격의 없이 며칠이고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다.
그의 집안 내력을 살펴보면 반남 박씨는 조광조의 문인으로, 조부 박필균은 노론으로 당론을 이끌던 분으로 경화사족의 일원이다. 처가는 장인 이보천이고, 처숙 이양천의 지도를 받아 학업에 정진했다. 이들은 송시열에서 김창협으로 이어지는 노론 학통을 충실히 계승한 산림처사였다.
우울증 치료를 위한 김신선전의 이야기인 민옹전. “나는 특히 음식 먹기를 싫어할 뿐더러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게 병이 되었나봐요” 그러자 민옹이 곧 몸을 일으켜 치하를 올린다. 당황하는 연암에게 “당신은 집이 가난한데 다행히 음식을 싫어하신다니 그렇다면 살림살이가 여유 있지 않겠우. 그리고 졸음이 없으시다니 낮밤을 겸해서 나이를 곱절 사시는 게 아니우. 살림살이가 늘어가고 나이를 곱절이나 사신다면 그야말로 수와 부를 함께 누리는 게 아니시우”
예덕선생전의 주인공 엄항수는 변두리에서 똥을 져다주면서 먹고사는 분뇨장수, 우상전의 주인공인 이언진, 방경각외전, 허생전 등은 지금 읽어도 웃음과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는 있는 글이다.
2. 탈주∙우정∙도주
아들 박종채는 연암이 과거시험에서 어떻게 탈주하는 지를 보여준다. 시험관이 합격시키려 해도 응시하지 않거나 시험지를 제출하지 않았고, 때로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당시 사람들은 연암이 어리석다고 비웃었다. 장인은 한술 더 떠서 “지원이 회시를 보았다 하여 나는 그다지 기쁘지 않았는데, 시험지를 내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으니 몹시 기쁘구나!”라고 했다나. 연암은 재야의 선비로 살아간다. 결국 이것은 정국에 대한 회의 때문으로 본다. 처숙 이양천은 영의정으로 소론계 인물이 임명된 것에 항의하다가 흑산도에 유배되는 형벌을 받았고, 또 벗 이희천은 왕실을 모독하는 청나라 서적을 소지하고 있다가 처형을 당했고, 그의 벗들이 정쟁에 휘말리는 사건을 목도한다.
연암그룹은 홍대용, 정철조, 서얼 박제가와 이덕무, 유득공, 무인 백동수 이서구 등이다. 열하로 가는 길에 앞서 연행을 다녀온 홍대용, 이덕무, 박제가의 흔적을 계속 확인한다. 담헌 홍대용은 연암보다 6살 위지만 평생 누구보다 도타운 우정을 나누었다.
“스승이면서 친구가 될 수 없다면 그 또한 진정한 스승이 아니다. 친구이면서 스승이 될 수 없다면 그 또한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고 한 배움과 우정의 일치를 설파한 명 철학자 이탁오의 말은 가슴에 와 닿는다.
연암의 우정론을 보면 “벗이란 ‘제2의 나’다. 벗이 없다면 대체 누구와 더불어 보는 것을 함께 하며, 장차 누구와 더불어 지혜와 깨달음을 나눌 수 있겠는가? 아내는 잃어도 다시 구할 수 있지만 친구는 한 번 잃으면 결코 다시 구할 수 없는 법, 그것이 존재의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절대적 비극인 까닭이다.”
3. 우발적 마주침, ‘열하’
‘열하’로의 여행은 연암에게 있어 행운이다. 1780년 삼종형 박명원이 건륭황제의 만수절(70세) 축하 사절로 청나라에 같이 간다. 5월에 길을 떠나 6월에 압록강을 건너 8월에 북경에 들어갔고, 곧이어 열하로 갔다가 그 달에 다시 북경으로 돌아와 10월에 귀국하게 되는 6개월에 걸친 대장정을 기록한 것이 ‘열하일기’이다. 열하는 애초에 일정에 없었다. 목적지는 연경이었는데, 황제가 피서산장인 열하에 있으면서 조선사행단을 급히 열하로 부르면서 겪는 돌발적 사태를 기록하고 있다. 열하일기는 여행하는 동안 보고 느꼈던 이질적 문화를 그리고 있다. 청에서 볼 때 변방의 외부자 연암과 접속이 되고, 그래서 그 주름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하나씩 하나씩 펼쳐진다. 연암은 연행을 마치고 돌아와 3년여에 걸쳐 ‘열하일기’를 퇴고하지만, 그전에 이미 초고가 나돌아 문인들 사이에 큰 파문을 일으킨다. 그는 철저히 외부자로 살아가면서 외부자의 글을 쓴다. 열하일기에는 청의 연호를 사용하며(당시 조선은 명이 망한지 140여년이 되었는데도 명의 연호를 사용) 결국 문체반정의 중심에 서게 된다. 열하일기에는 무수한 흐름에 마주침이 일어나고, 시시하고 잡다한 일들까지도 기록이 되었고, 역사, 지리, 문화, 철학 등 고담준론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이다. 그러면서도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 윤색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4. 그에게는 묘비명이 없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레퀴엠(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미사 음악). 연암에게는 묘비명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는 묘비명의 달인이다. “석치 자네는 정말 죽었는가? 귓바퀴는 이미 썩어 문드러지고, 눈알도 이미 썩었는가? 정말 듣지도 보지도 못한단 말인가? 술을 쳐서 제주로 드려도 정말 마시지도 않고 취하지도 않는구나”(제정석치문, 정철조에 대한 묘비명)
우리 형님 얼굴은 누굴 닮았나
아버지 생각나면 형님을 보았지.
이제 형님 생각나면 그 누굴 보나
시냇물에 내 얼굴을 비추어 보네.(燕巖憶先兄)
떠나는 이 정녕코 뒷기약 남기지만
보내는 이 눈물로 옷깃 적시게 하네
저 조각배 이제 가면 언제나 돌아올까?
보내는 이 하릴없이 언덕 위로 돌아가네.(伯姊贈貞婦人朴氏墓誌銘)
연암의 처남이자 벗이었던 이재성은 그 묘지명에 대해 “마음의 정리에 따르는 것이야말로 지극한 예라 할 것이요, 의경을 묘사함이 참 문장이 된다. 글에 어찌 정해진 법식이 있으랴! 이 작품은 옛 사람의 글로 읽으면 마땅히 다른 말이 없을 것이나, 지금 사람의 글로 읽는다면 의심이 없을 수 없으리라. 원컨대 보자기에 싸서 비밀로 간직할진저”. 그만큼 연암의 글은 뜨거운 감자다. 불온문서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재성은 연암의 제문에 “아아 우리 공은 명성이 어찌 그리 성대하며, 비방은 어찌 그리 많이 받으셨나요? 공의 명성을 떠받들던 자라 해서 공의 ‘속’을 안 건 아니며, 공을 비방하던 자들이 공의 ‘겉’을 제대로 본 건 아니지요”라고 했다.
안의현감 시절. 제사상을 준비하도록 한 후에 평복으로 술을 가득 따라 올린 후에 한참이나 앉아 있다가 서글픈 기색으로 아전들과 하인들이 나누어 먹도록 했다. 꿈에 나타난 친구들이 생각이 나서 예법에는 없지만 그렇게 했다고. 연암은 자신을 찬미한다. “저만을 위함은 양주와 비슷하고, 남을 같이 사랑하기는 묵적과 같구나. 뒤주가 자주 비기는 안연과 같고, 꼼짝 않고 지내기는 노자와 한가질세. 광달함은 장자인가 싶고, 참선하기는 석가인 듯하다. 공손치 않기는 유하혜와 진배없고, 술 마심은 유영과 흡사해라. 밥을 빌어먹기는 한신과 비슷하고, 잠을 자기는 진박과 같은 것을”
독연암집에 홍길주는 “수십 년 전에 한 사람이 있어 기운은 족히 육합을 가로지를 만하고, 재주는 천고를 능가할 만하며, 글은 온갖 부류를 거꾸러뜨릴 만하였다. ... 이제 내가 거울을 꺼내 지금의 나를 살펴보다가 책을 들춰 그 사람의 글을 읽으니, 그의 글은 바로 지금의 나였다. 내 얼굴은 늙어가면서 자꾸 변해가고 변하여도 그 까닭을 잊었건만, 그 글만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또한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더 기이하니, 내 얼굴을 따라 닮았을 뿐이다.”
2부 1792년, 대체 무슨 일이? - 열하일기와 문체반정
1. 사건 스케치
1792년 10월 19일. 문체반정은 정조의 청나라 서적 금지령을 강화하는 정책이다. 곧 패관잡기는 물론 경전과 역사서까지 모두 수입금지 조치가 된다. 그런데, 왜 경전과 역사서까지일까? 그것은 종이가 얇고 글씨가 작아 누워서 보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명청문집의 유행과 서학의 유포는 정조시대의 두 가지 뇌관이었는데, 첫 번째 희생타로 이옥과 남공철이 걸려든다. 이옥은 남성이면서 여성적인 글을 써 애수를 잘 드러낸 아주 특이한 작가다. 또한 연암은 그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런데도 핵심 배후로 지목되었다.
2. 문체와 국가장치
문체는 한 시대가 지니는 사유체계 및 인식론의 표현형식이다. 요즘 대학의 학문체계는 논문에 준한다. 문제제기 및 연구사, 연구방법을 제시한다. 이런 틀에 맞추려면 당연히 대학이 부과하는 규범화된 언표체계를 습득해야만 한다. 조선시대의 규범은 古文이다. 육경의 문장과 사마천과 반고로 대표되는 선주양한(先秦兩韓)의 문장 및 한유와 소식 등 당송의 팔대가의 문장이 바로 고문이다. 이것은 시간적으로 아득한 옛날, 공간적으로는 저 중원땅을 향하게 함으로써, ‘지금, 여기’를 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 교묘하면서도 집요한 습속의 장치! 그것이 바로 고문이었다. 그런데 이 고문에 균열이 생긴다. 명말청초의 문집이 유입이 되면서 소품문, 소설, 고증학 등이 유행한다. 정조는 이런 것들을 읽으면 윤리를 무시하게 되고, 삿된 학문에 물들게 된다고 보았다. (금병매, 수호지, 삼국지, 서유기 등)
3. 대체 소품문이 뭐길래!
사이비진(似而非眞) 비슷하다 함은 이미 참이 아니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
어린이가 울고 있고, 시장에서 사람들이 사고팔고, 사나운 개가 싸우고....
들뢰즈에 따르면 여성-되기, 산-되기, 꽃-되기.
이옥의 市記 - 그냥 시골의 장터를 점포의 작은 구멍을 통해 본 것을 기록했다. “소와 송아지를 몰고 오는 자, 닭을 안고 오는 자, 청어를 묶어서 오는 자, 손을 잡아끌면서 희희덕거리는 남녀....” 별의별 인간군상을 한없이 늘어놓는다. 주제는 없다. 그냥!
정조의 눈으로는 이런 글이 문장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문장이란 무릇 저 천상의 가치, 곧 천고의 역사와 우주의 이치를 논해야 한다. 연암은 “비슷하다 함은 이미 참이 아닌데”, “눈앞의 일 속에 참된 정취 있거늘 / 어쩌자고 머나먼 옛날에서 찾는가”, “사마천과 반고가 다시 살아난대도 / 사마천과 반고를 배우진 않으리라”. 어설프게 고문을 본뜨지 말고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삼라만상에 눈뜨라고 한다.
4. 연암체
연암의 글은 단지 소품제가 아니다. 소품에 능했고, 포복절도의 짧은 아포리즘을 즐겨 구사했지만, 그렇다고 연암의 문체적 실험이 소품으로 수렴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연암의 글은 늘 ‘소문의 회오리’를 몰고 다녔다. 그리고 제도권 밖에서 활동했음에도 그의 글은 언제나 궁궐로 들어가서 관각(홍문관과 예문각)에서 서로 돌려가며 읽혔다. 연암체는 리좀과 같다. 리좀은 뿌리라는 중심이 없이, 목적도 방향도 없이 접속하는 대상에 따라 자유롭게 변이하는 특성을 지닌다. “진실로 능히 옛 것을 본받으면서 변화할 줄 알고, 새것을 만들면서도 법도에 맞을 수만 있다면 지금의 글이 옛 글과 같게 될 것이다.” 법고창신-옛 것을 본받으면서 새것을 창조한다! 그리고 글쓰기를 전쟁의 수사학에 빗대고 있는 ‘소단척치인’이야말로 동서고금을 가로질러 단연 독보적인 문장론이다.
5. 열하일기-고원 혹은 리좀
연암의 열하일기는 손자 박규수가 우의정까지 역임했음에도 조부의 문집을 낼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오랜 시간 뜨거운 감자였다. 마침내 1900년 창강 김택영의 주도로 ‘연암집’이 처음으로 출판되었고, 이듬해 ‘연암속집’이 발간되었다. 열하일기가 단독으로 출간된 것은 1911년 최남선이 고전 보급을 목적으로 창설한 조선광문사가 발행한 것이 최초이다. 김택영조차도 전(傳)이나 도강록 이하의 몇 편은 순전히 패관소설체로 되어 있다며 빼 버렸다.
열하일기는 수많은 ‘고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형식상으로는 압록강을 건너는 지점에서 시작하여 마테오리치의 무덤에서 끝나지만 사실 시작도 끝도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중도에 있으며, 따라서 어디서 읽어도 무관하게 서로 독립되어 있다. 청나라에서 돌아와 정리하면서 감감한 부분들이 있기도 하고, 남북의 방위를 바꾸기도 했고, 명목과 실상이 헝클어지기도 했다고 하니, 텍스트 전체가 미완성의 벡터를 지닌다. 사실 명확한 정본도 없이 수많은 전사본이 떠돌아다니며 개작, 윤색이 이루어졌다.
3부 ‘천의 고원’을 가로지르는 유쾌한 노마드
1. 잠행자 혹은 외로운 늑대
연암은 연행사절단의 비공식 수행원이다. 자제군관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있으면서도 없는 존재. 그래서 유일한 여행자이다. 수목적인 배치 안에서 움직이는 유연한 선분. 마치 돈키호테가 천하를 주유하듯 그도 그렇게 길을 떠난다. 그럼에도 마주치는 모든 접속들, 마주침을 그대로 글로 써내려 간다. 텍스트를 채우기 위해 떠난다. 그러면서도 예정도 목적도 없이 낯설고 이질적 모험 속으로 무작정 몸을 날린다. 연암의 목적은 관광이 아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 하고, 보이는 것에서 숨겨져 있는 것들을 보려 한다. 그래서 이질적인 것들과 접속하려는 욕망에는 경계가 무궁하다. 막북행정록, 고북구, 수차... 구경의 역마살, 잠행, 가상루.
필담 중에 혹정 왕민호에게 “선생은 평소에 어째서 자주 탄식을 하십니까?” “평생에 글을 읽어도 세상에 뜻대로 안되는 것이 십중팔구이니 어찌 이 병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머리 깎는 봉변을 당했으니, 지사로서 이미 만 번은 탄식을 하였겠지요.”(혹정은 얼굴빛이 변하여 종이를 찢어서 화로에 던져 넣는다.) 인간의 촛불을 켤 것이 무엇이 있나. 해와 달 두 빛이 천지를 쌍으로 밝혀 다오.
2. 열하로 가는 ‘먼 길’
압록강에서 연경까지가 약 2천 3백여 리. 연경에서 열하까지가 약 700리 길. 찌는 듯한 무더위. 몸서리 쳐질 만큼 엄청난 폭우. 산처럼 몰아치는 파도 등 대륙의 위력은 대단했다(도강록. 막북행정록). 천신만고 끝에 연경에 도착하나 황제는 열하에 가 있었다. 그 동안 이루어지는 클리나멘. “몽고 기병 십만 명이 쳐들어 왔다오”. “배는 있는데 마침 사공이 없소”.
일야구도하기. 생사를 넘나드는 체험 속에서 나온 글. 그들은 졸면서 간다. 강행군이다. 마침내 그들은 열하에 도착했다. 피곤하고, 배고프고, 졸리고....객점에 들어 심신이 피로하여 수저가 천근이다. 한 잔 술에 잠에 빠져든다. 열하에서 코끼리를 본 이야기(象記), 회회국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여러 나라들에 대한 사람들. 괴상한 종족들과의 마주침. 황제는 조선 사절단에게 티벳의 판첸라마를 접견하도록 은전을 베푼다. 그러나 사신들에게는 날벼락이다. 유학자가 불교, 그것도 사교에 가까운 티벳 불교의 지도자에게 머리를 숙이다니!
3. ‘천 개의 얼굴’ ‘천 개의 목소리’
열하일기 곳곳에는 이국의 풍광과 정취가 매혹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는 해가 뜨고 지는 순간 만들어지는 빛의 미세하고도 미묘한 변화를 정밀하게 감지한다. 해 뜨는 순간의 묘사. 아침 안개 속에 보이는 한 조각 파란 하늘, 안개 바다, 이글거리는 붉은 해로 이어지는 빛의 변신술(盛京雜識 성경잡지). 연암의 연금술적 능력이 고도로 발휘된 대목은 특히 ‘야출고북구기’이다. 최초로 열하일기를 출간한 김택영은 이 글을 ‘삼국사기’의 ‘온달전’과 함께 조선 5천년래 최고의 문장으로 꼽았다.
호모 루덴스. 유쾌한 노마드가 벌어진다. 투전판. 달을 보고 “이상도 하이.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돋는구려” 이에 정진사는 “늘 새벽에 여관을 떠나므로 동서남북을 가리기가 정말 어렵네요”. “벽돌은 돌만 못하고, 돌은 잠만 못하다”
이용후생(벽돌, 수레, 가마), 요술, 찰륜십포. 판첸라마에게 인사도 없이 그냥 앉고, “만고에 흉한 사람이로군. 제 명에 죽나 보자”. 불상을 선물 받고 이루어지는 소동. 사대부들의 정신이 무식한 하인들에게까지 그대로 전이된 모습이 재미뿐만 아니라 앞뒤 꽉 막힌 쇄국정책의 전조를 보는 듯 한없이 우울하고, 또한 천주교의 고난을 선취하는 죽음의 그림자를 보는 듯하다.
4부 범람하는 유머, 열정의 패러독스
1. 유머는 나의 생명!
열하일기는 유머로 시작하여 유머로 끝난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도처에 유머를 구사한다. 포복절도! 연암이 움직일 때마다 ‘웃음의 물결’이 출렁거린다. 연암은 위급한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웃음거리를 만들어낸다. 그의 웃음원리는 간단하다. 웃음이란 단조로운 리듬을 상큼하게 비트는 불협화음이요, 고정된 박자의 흐름에 끼어드는 엇박이다. 그래서 금기의 벽에 도전하는 팽팽한 긴장 속에서도 그것을 이완시키며,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끊임없이 유머를 구사한다. 물론 여기에 근엄한 얼굴로 글을 읽으면 웃음을 찾을 수 없으나 학생들의 눈으로, 호기심이 많은 어린이와 같은 눈으로 본다면야 더 말할 것이 없다.
돈키호테의 언어가 어디에 놓이느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상식적인 인간들의 언어와 속담에 살고 속담에 죽는 시종 산초의 분열적 언어 사이에 놓이는 순간, 돈키호테의 그 영웅적 수사학은 광인의 징표가 되어 버린다. ‘언어는 단지 용법일 뿐’이라는 것을 돈키호테는 ‘온 몸으로’ 증언한다. 서로 다른 층위의 지닌 말들이 펼치는 마당놀이, 그래서 저력이 있다. 열하일기도 만만치 않다. 한 밤중에 발자국 소리에 “거 누구요?” “도이노옴이요”. 이 말 때문에 한바탕 웃음이 인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언어도 물을 건너면 이런 황당한 변칙적 전도가 일어난다. 기상새셜(欺霜賽雪). 열하의 한 술집에서 몽고와 회자 패거리들과의 만남.
2. 시선의 전복, 봉상스의 해체
유머에는 패러독스가 수반된다. 이 역설은 두 측면인 양식(bon sens)과 상식에 대립한다. 역설은 봉상스의 둑이 무너진 틈을 타고 범람하는 앎의 새로운 경지이다. 요동벌판을 바라보고 “아, 참 좋은 울음터로다. 가히 한번 울만하구나!”. 추사 김정희 “천추의 일대 통곡장이란 / 익살스런 그 비유가 신묘한 법문일세 / 비유를 하자면 갓난아기가 / 세상에 태어나며 울음 먼저 우는 셈”.
조선의 의관을 입은 사절단을 보고서 하는 말 “저 중이 어디서 왔을까?” 조선의 의관은 모두 신라의 옛 제도를 답습한 것이 많고, 신라는 고대 중국 제도를 본 뜬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1천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도록 변할 줄 모른다. 시대와 문화를 보는 연암의 예리한 시각이다.
3. 문명은 기왓조각과 똥거름에 있다
예덕선생전. 주인공 엄항수는 똥을 져다 나르는 분뇨장수이다. 그는 사람 똥은 말할 것도 없고, 말똥, 쇠똥, 닭, 개, 거위 똥까지도 알뜰히 취하되 마치 주옥처럼 귀중히 여겼다. 연암은 그의 고결한 인품에 매료되어 ‘스승이라 이를지언정 감히 벗이라 이르지 못하노라’며 ‘예덕선생’이란 호를 지어 바친다. 연암은 청문명의 핵심을 기왓조각과 똥부스러기에 있다고 보았다. 기왓조각은 천하에 버리는 물건이지만, 이를 둘씩 포개면 물결무늬가 되고, 넷씩 포개면 둥근 고리모양이 되니 천하의 아름다운 무늬가 이에서 나온다. 똥을 정성껏 모으되, 네모반듯하게 쌓고, 혹은 여덟 모로 혹은 여섯 모로 하여 누각이나 돈대의 모양을 이루니, 이는 곧 똥무더기를 모아 만든 규모가 대단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북벌론에 대해 연암은 허생전을 통해 이완 대장에게 머리를 깎고 되놈의 옷을 입으라 한다. 전혀 이루어질 수 없는 반격. 아니 할 수 없는 이들을 향한 대 반전이다. 예법에 얽매여 폼만 잡고 있는 사대부들의 정곡을 찌르고 있다. 청나라가 일어난 지 140년이 되었지만(명나라 멸망 후 140년), 그런데도 명의 망상에 절어 있는 그들을 향한 비수가 날카롭다.
5부 내부에서 외부로, 외부에서 내부로!
1. 사이에서 사유하기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동물인 코끼리를 보았을 때 연암은 어떻게 보았을까? 상방에 코끼리가 80마리가 있다고 한다. 재주를 부리는 코끼리도 보았다(象記 상기).
사이에서의 사유. 사이의 수사학을 즐겨 사용한다. 연암이 현란할 정도로 사이의 은유를 사용하는 것은 幻의 장막을 뚫고 나가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사유의 은유들은 연암 사유를 떠받치는 기저를 이룬다. “이명과 코골기”. 사이는 중간이 아닌 전혀 다른 제3의 길이다. “차지도 덥지도 아니한 구들목에 높지도 낮지도 않은 베개를 베고,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이불을 덮고, 깊지도 얕지도 않은 술잔을 받으면서, 장주도 호접도 아닌 꿈나라로 노니는 그 재미와는 결코 바꾸지 않으리라”(漠北洐程錄 막북행정록)
2. 세 개의 천점 : 천하, 주자, 서양
당시 청왕조 치하의 한족 지식인들은 심정적으로는 절대 만주족 오랑캐의 통치를 인정할 수 없었다. 천하를 통치하는 것은 하늘의 뜻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오랑캐로 하여금 천하를 지배하게 한 그 하늘의 뜻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에 대해 연암과 혹정의 대화 가운데, 혹정은 “대체 천하 일이란, 비유하자면 양쪽에서 줄다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줄이 끊어지면 짧은 쪽이 먼저 넘어지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결국 역리와 순리만 있지, 옳고 그른 것은 없는 법이라고. 연암은 소중화주의에 사로잡히면 잡힐수록 청의 대국적 유연함은 더 한층 돋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18세기 조선의 비극이자 아이러니다.
열하를 보고 연암은 이렇게 진단한다. ①열하는 장성 밖 황벽한 땅이다. 천자는 무엇이 부족해서 이런 변방 구석까지 와서 거처하는 것일까. 명분은 피서라지만 실상은 천자가 몸소 나가서 변방을 방비하는 꼴이니, 이로써 몽고의 강성함을 가히 알 수 있다. ②황제가 서번의 승왕을 스승으로 삼아 전각을 지어 살게 하고 있으니, 이것은 명목은 스승으로 대접을 하지만 실상인즉 전각 속에 가두어 두고 하루라도 세상이 무사할 것을 기원하고 있는 것이니, 이로써 서번이 몽고보다도 더 강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③사람들의 문자를 보면 그것이 심상한 두어 줄 편지라 하더라도 반드시 역대 황제들의 공덕을 늘어놓고, 당세의 은택에 감격한다고 읊조리는 것은 모든 한인들의 글이다. 이런 과잉충성은 명의 유민으로서 항상 걱정을 품고 스스로 혐의하고 경계하느라 입만 열면 칭송을 하고 붓만 들면 아첨을 해댄다. 한인들의 마음이 괴롭기 때문이다. ④사람과 필담을 할 때는 비록 평범한 수작을 한 것이라도 말을 마친 뒤에는 곧 불살라 버리고 쪽지 하나도 남겨두지 않는다. 이것은 비단 한인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만인들은 더욱 심하다. 법령이 엄하고 가혹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청 왕조는 주자주의였다. 강희제는 주자를 공자, 맹자로 이어지는 유학십철의 다음에 모시고, 국가학으로 적극 장려하였다. 문제는 주자학 외부에 대한 태도가 조선과 전혀 달랐다. 주자를 정통으로 표방하면서도 청왕조는 주자학과 대척적인 것들이 공존할 수 있는 영역을 상당 부분 확보해 두었다.(주자학과 양명학) 조선 사람들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주자학에만 빠져서. 연암은 주자주의와 청왕조, 지식인과 주자학, 주자주의와 반주자주의 등의 신분들이 교차하는 사이를 매끄럽게 왕래한다. 그러면 주자학의 외부, 불학과 도학 등에 대해서는 어떻게 사유해야 하는가? 연암은 이에 대해 간접화법으로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 말한다. 옹정제의 입을 빌어 “이학(주자학)이란 궁행실천 하는 것을 귀히 여기는데, 석가와 노자를 비방하는 것으로써 이학을 삼는다면, 이는 천박한 생각일 뿐이다”
3. 인간을 넘어, 주체를 넘어
연암은 ‘하늘이 만든 것치고 모난 것은 없다’고 생각된다고 하면서 대지와 일월성신들도 모두 하늘이 창조했으니, 지구가 둥근 것은 의심할 바 없다고 한다. 대단한 추론이다. 이름에 대한 것도 “이름은 너의 몸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남의 입에 달린 것이다. 남의 입에 따라서 불러지니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고, 영광스러울 수도 있고 욕될 수도 있고, 귀할 수도 천할 수도 있다”. ‘麈公塔銘 주공탑명’에 “나타나는 모든 자취가 포말”이라는 말에 연암의 달관의 모습이 보인다. 이름의 중력에서 벗어나 무상한 흐름에 몸을 맡기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생성할 수 있는 노마드적 삶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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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예전에 독토했던 내용인데, 찾아보니 글이 없네요.
조금 손을 보아 낮팀 자료로 올려 놓습니다.
정말 즐거웠습니다^^ 1년 쯤 뒤에 다시 읽어보고 용어의 낯설음이 얼마나 무뎌졌는지 시험해 보도록 하려고 해요. 좋은 책 선정해주시고 설명해 주셔서 감사히 잘 들었습니다. 오늘 주신 책들도 열심히 읽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