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적 정체성의 조형과 감수성의 반영으로서 2010년대 시의 일면
신수진(문학평론가)
1. 2019년, 우리 시의 좌표
20세기를 점령한 일제 강점기와 분단 그리고 독재정권의 파고를 극복해내면서도 가파르게 발전해온 한국 현대시의 정신적 역량은 현실의 부조리와 환멸을 언어 예술로 승화시켜 나갔다. 민족, 통일, 민주, 계급과 같은 가공할 이데올로기들이 퇴각한 90년대에는 자본화된 세계의 개별적이고 내부적인 시선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타자화되었던 주체들이 시의 독자적 영역으로 부상하며 폭넓은 스펙트럼을 생성했는데 이를테면 여성시, 생태시, 육체시, 해체시와 같은 장르들이 철학이나 사조를 거느리고 등장했다.
세기말적 흥분으로 상기되었던 우리 시의 실험들은 2000년대를 기점으로 탈중심, 탈주체, 탈서정의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시의 공리성이나 대화적 기능을 거부하는 아방가르드 시들의 출현은 감각적, 환상적, 위악적, 분열적, 무의식적, 자폐적인 이미지들로 기성세대에 응전했다. 물론 이들의 화법과 충격은 불시착하듯 잠시 그 기원을 현현했던 90년대의 몇몇 선구적인 시들로부터 복기된 것임은 분명했다.
바야흐로 2010년대의 시를 돌아보는 2019년의 끝에 섰다. 2010년대라는 거대한 문 뒤에는 무엇이 있었던가. 정치적 파국, 공권력의 부패, 대통령 탄핵, 경제 양극화, 실업, 비정규직, 난민, 고령화, 저출산, 아동학대, 환경파괴, 성추행, 인종차별, 입시비리, 학교폭력, 마약 등 부정적인 키워드들의 폭격은 2010년대 시의 지형에도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 물론 이러한 분석은 지금 여기의 시를 진단하기 위한 무수한 관점 가운데 하나인 사회학적 영향과 시적 감수성의 한 형성 과정에 국한된 것임을 밝혀둔다.
연애, 결혼, 출산 및 삶의 많은 부분을 포기했다는 뜻의 N포세대로 규정되는 젊은 세대는 정당한 룰이 지켜지지 않는 경기에서 기권할 자유조차 잃어버렸다. 2000년대 시인들이 아이, 귀신, 유령, 사물로 화하며 누락된 존재로서 무한한 자기 확장의 모험을 벌일 수 있었다면 지금의 시인들에게 탈주체의 변이들은 적나라한 현실의 재현 그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 것이다.
파토스가 사라진 시대에 왜소해진 우리 시의 자아들은 비현실적인 세계로의 이입을 촉구했다. 그들은 게임의 세계로 망명하거나 시뮬라크르의 작동을 차입했고 무의미해 보이기까지 한 미시적인 취향에 스스로를 가까스로 안착시켰다. 향유적인 주체로서 2010년대의 정체성과 감수성에 대해 대략적이나마 이해해볼 필요가 있다.
2. 사회적 지형도로 본 시대의 정체성과 감수성
2010년대 시들에 나타나는 시적 자아를 읽어내기 위해서 지금 세대의 정체성 특히 문화적 감수성을 통해 형성된 존재적 특질을 살펴보고자 한다. 독립적이면서 인과적이고 통합적인 것이기도 한 취향과 컨셉의 감성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그들은 한국에 착륙한 뉴욕 햄버거나 파란병 커피 한 잔을 위해 한나절을 대기할 수 있고, 한정판 앨범이나 공연 등을 위해 밤새 노숙을 할 수도 있다. 아직 아무도 접하지 않은 것을 소비하거나 남과 다른 아이템을 소유하는 것 혹은 인디문화에 대한 관심이나 자기만의 패션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에는 심미적 만족도를 충족시켜줄 확고한 취향의 문제가 결부되어 있다.
개인적 취향은 다양성이 공존하는 시스템을 진화시킨다. 모두가 텔레비전과 같은 대중매체의 채널을 보는 대신 넷플릭스나 유튜브의 방대한 채널 중 자기의 컨셉에 맞는 것을 스스로 채택해야하기 때문이다. 또한 양방향으로 소통하는 유튜버나 크리에이터들의 영향력은 나이, 국적, 인종, 젠더, 학력 뿐 아니라 콘텐츠의 생산성이나 논리성과도 무관하다. ‘먹방’에서 도저히 1인분이라고 상상하기 힘든 양의 음식을 한 번에 흡입하는 과정을 중계하거나, 편의점의 각종 냉동식품과 인스턴트 조미료들로 요리를 보여줄 때도 독창적인 컨셉이 중요한 것이다.
디지털 노마드 세대에게는 합리성 예컨대 가성비나 품질에 대한 고려보다 자기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키덜트’라고 불리는 매니아들이 수집하는 장난감이나 피규어 중 컨셉이 있는 것만 살아남는다. ‘한달 살기’ 열풍에도 자기만의 컨셉이 중요하다. 집이나 차 같은 재산 가치를 제외한 외식이나 취미용품 같은 비교적 적은 지출 품목에 한도를 두지 않는 ‘탕진잼’도 자기 취향과 컨셉을 위한 감성적 행위다.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계획보다는 현실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중요하기에 미래를 위해 현재를 담보 잡히지 않는다. 직관적이고 명료한 캐치프레이즈가 선호된다. 짧고 쉽고 재미있는 것이라야 한다. 카툰, 영화, 게임, 웹소설 같은 문화 컨텐츠는 호모 스마트쿠스들의 주요 서식처다. SNS시는 사진 한 장과 몇 줄의 시, 센스 있는 해시태그에 ‘갬성’을 담는 식이다. 미학적 구조와 방식은 데이터베이스의 코드로 변화하고 있다.
그것은 위압적인 세계에서 자기 의지대로 구축할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의 공간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아무도 보지 않을 것 같은 특이한 컨셉일수록 트렌드를 이루고 결국 모두 비슷해져 가는 아이러니가 있다. 최근 고조되는 반일정서와 불매운동의 확산도 사적 영역들이 집결의 장으로 전환되며 여론을 이루는 운동성을 보여준다. 양방향성을 축으로 하는 취향과 컨셉의 감성은 지금의 세대를 이해하도록 하는 하나의 기제가 된다.
3. 2010년대 시의 지각변동 속에서 발생한 문제들
2000년대를 정점으로 하여 분열되기 시작한 시적 자아의 변종들은 오타쿠적인 자기 은폐술을 펼쳐 보이다가 마침내 잘 보이지 않는 공집합의 기호로 자신의 생존을 타전하게 되었다. 없는 주체들의 패러다임은 여러 각도로 굴절되며 2010년대를 상연하고 있다. 자기동일성의 파기는 현실을 지우고 언어가 세계를 구성케 하면서 경계와 중심 그리고 관습을 뛰어넘어 보였다. 그러나 주체가 소멸한 자리에는 어쩔 수 없는 공백이 남겨졌으며 부재하는 주체는 회의론, 불가능성, 무의식, 죽음 혹은 환상에 도착하는 잉여의 존재로 표류하게 되었다. 해체의 궤도를 공전하고 있는 우리 시의 결핍과 과잉 현상에 대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온 문제점들을 몇 가지 정리해보기로 한다.
경제 악화와 정치적 추문으로 진통했던 2010년대는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과 수저 계급론(금수저・은수저・흙수저)을 통과하며 청년층까지 고독사가 확산되는 시대로 진입했다.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이 겪은 초식남, 히키코모리, 알바족 등의 현상이 그대로 전이된 듯 ‘하면 된다’는 ‘되면 한다’로 바뀌었다. 이러한 사태 이후 개인의 단자화는 심화되었고 비혼, 1인 가구, 노키즈존, 혼밥, 혼술, 일코노미의 코드를 거느리는 득도 세대가 출현했다.
사회, 공동체, 타자와의 네트워크가 소멸되어가는 시대에 골방 속에서 세계의 회로를 응시하는 시적 주체들도 등장했다. 그들은 조작하지 않은 현실의 단면을 오브제처럼 조명하여 전시해두었다. 무위적인 주체들은 거리감과 동시에 기시감을 안겼다. 현실에 대한 유예적인 태도를 고수하는 존재들의 복제 현상은 전망의 부재라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한편 썰고 자르고 토막 내는 스플래터 무비(Splatter film) 같은 파괴적 형식의 시들은 그 끔찍함이 극단화된 나머지 희극적인 성격을 띠는데 그것은 시의 함의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을 대상화할 뿐 아니라 시적 대상에 대한 또 다른 학대로 오인될 소지가 있다. 유혈이 낭자한 폭력적인 장면들과 노골적인 성적 암시만으로 기존의 권위는 극복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2010년대 시단에서 주요하게 평가되는 몇몇 시인들의 작품이 일본 애니메이션에 그 창작의 근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바다. 세계관을 표방하거나 작품의 구도나 분위기를 따르는 경우도 있고 시적 화자의 설정과 핵심 모티프까지 차용된 경우도 있다. 또 유행하는 외국의 이론에 의존하기도 한다. 프런티어를 제시하고 다른 차원의 지평을 도입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우리 시의 온전한 발생으로 승인받기 어렵다. 문화의 원류로서 문학의 고유하고 독자적인 상상력이 필요한 것이다.
시뮬라크르의 환각적 이미지 설정만으로 시를 구축할 수는 없다. 범람하는 다른 장르들을 혼재시키는 패스티쉬, 이슈가 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소재 중심적인 채택, 유사한 패턴의 반복도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현실 접속력의 약화와 실체적 인식의 부재가 유희와 환상으로 산란되는 것은 아닌지 검토해볼 때 경험으로부터 수렴된 존재론적 자각이 요구된다.
4. 2020년대 시를 향하여
이제는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시를 찾아 읽는 사람들보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정기 발행되는 웹진은 일반 독자들이 시와 만날 수 있는 용이한 통로가 된다. 창작과 수용 양방향에서 매체 환경의 변화를 인지하고 활용하고자 하는 도약의 의지가 필요하다. 누구나 쉽게 작가가 되고 독자와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은 반길 만한 일이지만 검증 과정 없이 시류에 맞는 글쓰기로 편향될 수 있음도 경계해야 한다.
소설의 약진을 본다면 시가 독자와 유리되어가는 상황에 대한 직시가 필요하다. 시는 시 고유의 장르적 문법이 존재하는데 탈서정, 산문화, 비문법 등의 현상이 오랜 시간 이어지면서 해석이 불가한 기호로 고립되어갔다. 물론 시가 주제를 전달해야 하고 특정한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탈장르적 경향만이 여전히 시의 미학적 가능성을 개진하며 역량을 고취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 시의 전위로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간 소수와 그들이 이룩한 성취는 문학사의 한 장으로 기입될 것이다. 그러나 그 줄의 맨 뒤에 선 데자뷰와 같은 장면들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숙고해야 한다. 육박해오는 현실을 온몸으로 겪어내고 자기만의 독창적인 음성을 현현하고자 하는 처절한 투신이 있을 때만 그로부터 출현한 상상력도 인간에 대한 궁극적 이해와 예술성의 승화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을 직면하고 통찰할 수 있는 정신력과 새로운 미학적 구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수진 문학평론가. 중앙대학교 대학원 박사 재학. 2014년 한국안데르센상 아동문학부문 동화 수상, 201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로 등단, 201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