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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 교수의 체계불학
 
 
 
카페 게시글
불교 문답 게시판 Re:몸과 마음의 조복과 의학
관리자 추천 0 조회 257 20.07.16 06:06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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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0.07.17 05:36

    첫댓글 깨달음은 부처님과 자신만이 안다는 것은 교수님의 편견으로 보입니다. 교수님께서 아함의 경전을 근거로 말씀하셨지만 부처님 열반후 아난존자의 깨달음은 마하가섭존자가 인가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선생님도 학생의 공부 수준을 바로 알아 볼 수 있는데 하물며 도인이 도인을 어찌 알아 보지 못하겠습니까.

  • 20.07.17 05:50

    그리고 교수님께서는 깨달음의 기준을 아함에 두고 계시나 대승경전에서는 꼭 무원삼매가 기준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선사의 오도송은 영원한 진리의 세계를 노래하지 나의 생이 다했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까.
    교수님께서는 깨달음의 근거를 탐진치의 소멸로 보고 계시지만 대승경전과 선어록을 보면 탐진치도 방편으로 걸림없이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 20.07.17 06:19

    교수님의 좌선 경험에 대한 말씀은 잘 읽었습니다. 저의 경우도 20대 초반에 불교를 접하고 이제까지 나름대로 공부해 왔습니다.
    혼자 공부하기도 하고 인연이 닿아 스승의 가르침을 받기도 했습니다.
    스승이 없을때는 경에 의지하여 공부하다가 중론도 알게 되었고 개인적으로 교수님의 저서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중론을 열심히 공부한 만큼 중론의 한계를 여실히 보기도 하였습니다.
    게송을 이해하고 공의 의미를 알아가는 것은 환희와 경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분별심의 이해로는 진리의 문을 열 수 없다는 것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 20.07.17 06:38

    저는 불교 공부의 목표는 깨달음에 있다고 봅니다. 불교 공부 과정에 교학을 만날 수는 있지만 교학이 목표가 되는 것은 전도된 것 이라고 봅니다. 분명 지금 우리나라에 실제 진리를 체득한 선지식이 계십니다.
    경에 의지하여 혼자 공부하는 것도 훌륭하지만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는 것은 더없이 좋습니다.
    교수님의 말씀은 학문적으로 훌륭하지만 그건 진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분별심의 발로일 뿐인게 분명히 보입니다. 둔하고 미련한 저도 알고 있는데 교수님처럼 지혜로운 분이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을 것 입니다.

  • 20.07.17 06:42

    제가 주제 넘고 건방지지만 감히 말씀드립니다. 이제라도 아시는 것 모두 내려놓고 선지식을 만나 진정한 진리를 찾기 간곡히 기원합니다.

  • 작성자 20.07.17 21:15

    그렇지 않아아도 <붉은 노을>님은 회원자격을 중지할까, 말까 고민하게 만드셨던, 경계선에 있던 분인데, 이제 속 마음을 다 보여주셨네요. 몇 달 전에 <진정한 사랑>이라는 아이디로 들어오셔서, <중론> 관련하여 한 가지 질문 올린 후, 바로 다음날 새벽에 깨달음을 말씀하시는 어떤 사이트 광고하시기에, 제가 광고 글 삭제하고 회원자격 영구 중지시켰는데, 다시 <붉은 노을>이라는 새로운 아이디로 본 카페 가입하신 후 하루에 너무 많은 질문을 올리셨는데, 답변자의 사정을 생각하지 않는, 상식적으로 옳지 않은 행동으로 보여서 회원자격 중지했다가, 질문에 낱낱이 답하면서 이메일 주고 받은 후 다시 회원 자격 복구해 드린 분입니다. 질문의 성격도 그렇고(내가 이렇게 생각하는데 맞는가?와 같은 질문), 위의 조언도 그렇고 저에게 무언가 묻기 위해 들어오시는 분이 아닌 것 같기에 회원자격 중지했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본 게시판을 통해서 누군가와 논쟁할 정도의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 동안 질문을 연출하셔서,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답변을 작성하게 해 주셨기에, 감사드립니다. 정진하시어, 우리 사회를 밝히는 맑은 등불의 역할 하시기 바랍니다.

  • 작성자 20.07.17 21:16

    참고삼아, 한 가지 더 말씀 드리면, 선불교의 '인가(印可)'는 초기불전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깨달음과 무관합니다. 소위 '깨달은 선승'의 경우 아라한일 수도 있고, 보살행자일 수도 있고, 궁극의 지혜와 복덕을 모두 갖추신 부처님과 같은 분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내생에 대해 다시 태어난다는 말씀을 하지 않고 돌아가시면 아라한이고, 오도송을 노래하셨지만 내생에 인간계든 천상이든 어디에 태어나겠다고 발원하고 돌아가신 분들은 보살행자이시고, 내생의 발원은 하지 않았지만 최상승의 교화로 수많은 제자를 두신 복력 높은 분은 부처님과 같은 분입니다(육조단경을 남기신 혜능스님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초기불교가 종교적으로 발전한 것이 대승불교이고, 이심전심의 샤먼적으로 발전한 것이 금강승의 밀교인데, 동아시아의 선불교는, 사자상승의 방식이나, 이심전심의 전법 등 모든 면에서 밀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는 앞으로의 큰 연구과제입니다. 종교화 된 대승이나 인가 전통의 금강승 모두 '원래의 불교'를 보다 풍요하게 만들어 준 소중한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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