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근대, 현대수필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작가를 든다면 램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의 작품들 중 번역 소개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퇴직자」, 「두 부류의 인간」, 「오래된 도자기」, 「제야(除夜)」 등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은 대부분 번역되어 있었지만, 문예출판사, 범우사, 자유세계사 등 3개사에서 나온 단행본을 모두 합쳐도, 중복된 것을 제외하면 20편에 불과했다.
최근에 서울대 이상옥 명예교수가 시공사 '세계문학의 숲' 시리즈의 하나로 27편을 새로 번역해서 『굴뚝 청소부 예찬』이란 이름으로 출간했다. 그러나 이 책도 램의 중요한 작품을 중점적으로 다루다 보니, 역시 예전에 몇 차례 번역되었던 작품이 대부분 포함될 수밖에 없어 새로 순수하게 추가된 작품은 겨우 10편뿐이다. 우리나라의 적지 않은 수필인구를 생각할 때, 지금까지 우리말로 소개된 그의 작품이 30편밖에 안 된다는 것은 아무래도 아쉬운 일이다.
램은 런던에서 태어나 일평생을 런던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그의 문학에서는 도회적인 아취가 풍긴다. 그는 만 7세에 '크라이스츠 호스피틀'이란 학교에 입학해서 7년간 수업을 받고 취직을 하기 위해 자퇴를 했다. 더 이상 고등교육은 받지 않았지만 재학 중에 뒷날 위대한 낭만파 시인이 된 S. T. 콜리지와 친구가 되어 평생을 가까이 지냈다. 그 교우관계가 램을 수필가로 대성시키는데 커다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문장은 난삽하고 고전과 성경에서 인용을 많이 해서 읽기 까다롭다는 평을 받는다. 그의 작품세계를 보면 사소설(私小說)에 가깝다고나 할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그것에 그치지 않는다. 친우, 연극, 애독하는 책에 관한 것이나 사회문제 등 자기마음 가운데 떠오르는 여러 가지 화제도 널리 다루고 있다.
램과 동시대의 비평가 헤이즈리트(W. Hazlitt)는 램 작품의 특징을 '시대의 정신'에 순응하지 않고 역행하며, 허영이나 자기주장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겸손하며, 감추어진 것, 먼 것, 내재적인 가치를 지닌 것을 선호하고, 새로운 얼굴, 관습을 싫어하는 것으로 봤다.
그는 이러한 작품을 바로 자기 자신의 맨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엘리아'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 세상에는 자기 본명을 숨기고 가명으로 글을 쓴 사람은 많다. 그러한 작가활동을 한 사람에게는 흔히 정치, 사회적인 여러 가지 외적 사유가 있었다. 그러나 램에게는 그러한 사람들과 유사한 외적 사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엘리아라는 필명으로 수필을 쓰고 있다는 것은 그의 주변사람들에게 비밀은 아니었다.
수필은 화자가 1인칭이 되는 글이다. 이러한 글을 구태여 엘리아라는 페르소나(persona)를 빌려서 집필을 한 것에 램의 특수한 가족사가 배경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21세 되던 해 나이가 11살이나 위인 누나 메어리가 정신 질환으로 어머니를 칼로 찔러 사망시킨 사고가 있었다. 그 이후 그러한 누나를 돌보며 결혼도 하지 않고 함께 살던 그가 수필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 사건이 있고 20여 년이 지난 뒤였다.
어쩌면 자기 자신도 누나와 같은 광기를 지녔으리라는 불안한 의식에 시달리는 램에게는 자신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가 필요했으리라고 본다. 그의 글에서 읽을 수 있는 유머와 페이소스는 이러한 장치의 산물인 것이다.
수필문우회 회장·뉴시스 상임고문 bonbonjk@newsis.com
※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264호(2월20일자)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