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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혜원 크로스포인트 대표
“사람들이 저를 마약이라고 부릅니다”
이번 인터뷰는 한여름 시원한 남산자락에서 진행됐다. 앉아 있기만 해도 예술적 영감이 절로 떠오를 것만 같은 이 곳, 브랜드 네이밍 전문기업 크로스포인트 사옥은 남산길 한 켠에 자리잡고 그 큰 서울시내를 다 품고 있었다. 국내 최고의 브랜드 네이밍 전문가 손혜원 대표는 이 탁 트인 전망만큼이나 시원시원한 리더였다. - Interview 김성회 경영학 박사·CEO리더십연구소 소장 -
손혜원 대표
홍익대 응용미술학과·미술대학원 졸업(1981)
현대양행 기획실 디자이너(1977. 03~1979. 09)
판 디자인(1979. 09~1983. 12)
디자인포커스(1984. 06~1986. 10)
크로스포인트(1986. 11~2002. 현재)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교수(1998~2008)
‘콩두’ BI로 홍콩디자인센터 주최 ‘아시안디자인어워드’ 수상(2004)
한국스타일박람회(Korea, the Style) 예술감독(2010)
참이슬, 처음처럼, 화요, 청풍무구, 이브자리, 이니스프리 스킨케어, 종가집 김치, 딤채, 트롬, 보솜이,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 하늘보리, 엑스캔버스, 레종, 사랑초, 위니아딤채, 엔젤리너스 커피, 현대건설 아파트 브랜드 ‘힐스테이트…모두 입에 착 붙고 눈에 익은 브랜드들이다. 놀랍게도 이 브랜드의 명명자는 한 인물이다. 손혜원 크로스 포인트 대표, 브랜드 아이덴티티(BI) 디자이너인 그녀는 현재 크로스포인트와 함께 나전칠기를 비롯한 한국공예품 브랜드 ‘하이핸드 코리아’를 운영 하고 있다.
브랜드 네이밍계에서 미다스의 손이라고 불리는 크로스포인트의 성공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크로스 포인트는 스타일이 없습니다. 크로스 포인트가 배출한 브랜드명의 글자체, 이름들을 보세요. 영어명, 순한글명, 다양한 글씨체 등 모두 이른바 한 공장에서 나온 티가 안 나지요. 저는 일을 할 때, 제 기술과 경험만 사용하고, 취향은 개입시키지 않습니다. 모르는 일에는 추적자의 마인드를, 아는 일에는 영감과 직관의 창조자 마인드로 임합니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되니 전복을 따기 위해 수심 500미터의 심해로 들어가도 두렵지 않은 것이겠지요. 어떤 이는 오늘의 저를 보며 행운이라고도 말할지 몰라요. 그럴 때 저희 어머니가 운이란 “금강산 정상에 있는 벤치와 같다”고 말씀하신 게 생각납니다. 금강산 벤치를 만나는 것, 행운임에 틀림없지만 노력해서 올라가야 만날 수 있잖아요.
손혜원 대표님의 디자인 철학은 무엇인가요?
디자인은 한마디로 소통이고 설득입니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관계를 원활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설득력이 있어야 합니다.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작품으로 아무도 설득하지 못하고,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을 탓 한다면 그런 예술걸작은 자기 집에 걸어놔야죠. 디자인은 여러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합니다. 소비자의 마음을 열고 지갑을 열어 매출로 연결시키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입니다.
소비자의 마음을 열어 움직이게 할 자신이 있는 BI를 창조했을 때 고객을 넘어 제 마음이 흡족합니다. 그래서 제가 제일 무서워하는 말은 결과물을 두고 심사숙고 한 클라이언트가 “손 대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며 최종적으로 묻는 질문입니다. 나를 만족시켜야 클라이언트를, 그리고 시장(Market)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늘 저에게 수 차례 물어봅니다. ‘네가 자신 있게 했어?’ ‘미련 없이 했어?’ 자신 있고, 미련 없을 때 일을 마치는데도 지나고 나면 항상 아쉽습니다. 그런데 그 아쉬움이 다음 일을 더 잘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CEO
가 되기 전 말단 직원일 땐 어떤 모습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좀 열정덩어리 같은 점이 있습니다. 중공업 회사가 첫 직장이어서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듣도 보도 못한 중장비 이름을 모두 달달 외워갔지요. 크로스포인트를 설립하기 전에 직장생활을 14년간 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출근길마다 오늘 가서 해야 할 일에 가슴 설레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습니다. 아침마다 회사에 일을 하러 가는 게 떨리고, 퇴근할 때는 아쉬워서 상사 몰래 일을 싸서 들고 집에 갔습니다. 일을 너무 많이 하니까 쉬어가면서 하라고 말릴 정도였으니까요. 누가 시킨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제가 이직을 한 후 제 직속상사가 남은 직원들에게 이렇게 야단을 쳤다고 해요.
‘대학교 졸업한 초짜 한 명이 도와주던 일을 지금 너희 4명이 하고 있다’고요. 저는 그만큼 열심히 일했습니다. 제게 감동하지 않은 상사가 없었어요.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몰입하는 제 자신이 좋았습니다.
그런 태도 때문에 동료로부터 볼멘소리를 듣지는 않았나요. 시키지 않은 일까지 찾아서 열심히 일하고 상사에게 인정받는 모습 때문에 동료들로부터 시기나 견제를 받은 적은 없었는지요.
감히 방해 받을 수 없을 만큼 열심히 했습니다. 회사에 상사가 3명 있으면 모두 저를 데려가려고 애를 썼어요. 저는 그 중에 저를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상사를 따랐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제 목표는 출세나 미래가 아니라 지금 현재의 일 자체에 있습니다. 늘 결과물로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죠. 일에 대한 열정, 노력, 판단력은 누구에게도 뒤져본 적이 없습니다.
흔히 재능과 열정이 넘치는 리더들은 자신만 못한 부하들 때문에 답답해하시고 부하들 역시 그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경우가 많더군요. 손대표는 직원들의 동기부여는 어떻게 하시나요?
목표를 정하고 함께 보게 합니다. 단어를 공유하고 설득의 방법을 보고 배우게 하지요. 우리는 회의보다도 프로젝트마다 리뷰를 많이 합니다. 일을 통해 자연스럽게 목표를 공유하는 거죠. 제가 그들에게 무슨 얘기를 하겠어요. 오직 일에 관해서 뿐입니다. 우리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 디자인 시안이 나왔을 경우에 저는 냉정하게 말합니다.
“나는 네 말을 하나도 못 알아 듣겠어. 너는 네 말을 알겠니? 너도 모르는 얘기를 어떻게 남한테 설명을 해. 다음부터는 올바르게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디자인만 가져와.”
가슴이 떨리는 시안이 나왔을 때는 진심을 다해 칭찬합니다.
“나는 이런 디자인을 만날 때마다 정말 디자인 회사를 하고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껴. 나는 이런 디자인을 위해서 월급을 주고 회사를 운영하는 거야. 너 같은 애가 우리 회사에 있는 게 난 얼마나 행운인지 몰라.”
말을 안 해도 좋은 디자인은 보여요. 그럼 나머지 직원들도 다 그렇게 좋은 디자인을 내놓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합니다. 될 때까지 해요. 한 시간 간격으로 리뷰하며 밤을 새는 게 일쑤입니다. 직원들도 알아요. 제 진심을…….
못 버티는 직원도 많겠네요.
1년 안에 정리가 돼요. 업계에선 크로스포인트에 3~5년 재직했다고 하면 면접도 안하고 채용한다고 합니다(하하). 저희 연봉조정은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연례의견서에 1. 지금 연봉 2. 받고 싶은 연봉 3. 그 연봉을 받아야만 하는 이유 4. 1년 동안 잘한 것 5. 잘 못한 것 6. 회사에 바라는 점을 적습니다. 제가 회사를 25년간 운영하면서 이 연봉협상으로 얻은 진리가 하나 있어요. 돈을 더 주고 싶은 직원은 적게 쓰고요, 돈을 덜 주고 싶은 사람은 꼭 더 써요. 불변의 진리입니다.
한번은 너무 열심히 일한 직원이 있는데 그가 원한다고 써 놓은 연봉보다 1,000만원을 더 줬어요. 그 직원이 한 것만 치면, 제가 더 여유가 됐다면 1억이라도 주고 싶었습니다. 저는 연봉조정을 그렇게 합니다. 저희는 작고 창조적인 회사이기에 한 명 한 명이 다 살아있어야죠. 그들이 자신의 일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제 일입니다. 우린 접대 같은 것도 없어요. 정말 일만 합니다. 일만 하면 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가요?
성과를 공정하게 인정하고 충분히 보상해주는 게 중요한 동기부여가 될 것 같습니다. 그 외에 성과 인정과 관계의 균형은 어떻게 맞추시는지 궁금합니다.
직원들과 친구처럼 친밀하게 지내는 편은 아니에요. 친한 직원들이 떠날 때 제 가슴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제 마음의 무게중심을 직원들에게 옮겨 놓으니까, 그들이 가버리면 제가 픽 쓰러져 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언젠가부터 직원들과 놀지 않아요. 예전에 어디 갔다 오는 길에 직원과 밥을 먹는데 그러더라고요. “사장님하고 이런 시간을 가지니까 정말 좋습니다.” 마음이 찔렸죠. ‘내가 이렇게 가깝게 안 지내고 있었구나’ 싶었어요. 마음으로는 늘 생각하고 아끼는데, 제가 아는 병원장분이 개인적으론 참 따뜻한데 직원들에겐 엄격하고 냉정해 ‘이중적’이란 소리를 듣는다 합니다. 나중에 여쭤보니 “실수를 용서하고 넘어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지요, 실수하면 사람이 죽잖아요”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리더의 역할이란 게 그런 것이 아닐까요? 친구 같은 관계도 좋지만, 목표를 향해 한치의 실수도 없이 전진토록 독려해야 하는 점에서요.
노래도 잘하시고, 운동도 좋아하시고 다재다능하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인맥관리도 잘 하실 것 같은데요. 한 달에 비즈니스 약속은 얼마나 자주 있으세요?
저는 계를 넓게 만들기보단 깊게 만드는 편이죠. (일정 수첩을 펼쳐 보이며) 보세요. 한 달간 약속이 거의 없잖아요. 저는 그냥 일해요, 회사에서. 오늘 점심도 콩떡 3개로 때우고 일했어요. 주말에도 교회 갔다가 와서 일합니다. 예전에는 많이 놀았던 때도 있었지요. 우리 나라에 노래방이라는 문화가 없을 때에도 저는 가라오케 레이저 디스크를 백장씩 가지고 있었어요. 심지어 직원들 면접 볼 때에도 18번이 뭐냐고 물어볼 정도였죠. 그런데 요즘엔 개인 시간을 최대한 비워놓고 내 일을 하는 게 더 좋아요. 제가 나전칠기 작업을 몰입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이처럼 저녁에 약속을 안 잡고 일하기 때문이에요.
크로스포인트 외에도 전통공예 브랜드인 ‘하이핸드 코리아’를 운영하고 계시는데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계기가 있다면요?
취미가 사업이 됐지요. 지금까지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300점의 나전칠기를 수집하는 데 30억 원을 투자했고, 나전칠기 대중화를 위해 본점에 이어 현재 서울역점과 논현점에 분점을 오픈 했습니다. 현대 나전 장인, 옻칠 장인들의 제품과 제가 기획한 디자인의 제품도 판매하고 있어요.
디자인은 잘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 공예는 그런 사람들이 없어요. 제가 명품을 많이 보았지만 우리 나전만한 게 없습니다. 진정한 한국문화전도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제 한 몸을 공예발전을 위해 거름으로 던졌습니다. 가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저는 돈을 버는 아주 쉬운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공예에서 손을 떼는 것입니다”라고 말하곤 해요. 하지만 수익을 넘어 사명의식, 소명의식은 돈보다 즐거운 것이지요. 현재는 이 사업이 돈 먹는 하마거든요. 하지만 저는 돈을 벌려고 ‘하이핸드 코리아’를 세운 게 아닙니다. ‘사람이 어떻게 평생을 돈벌이만 하고 살겠냐’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재산을 모으고 늘리는 것에도 관심이 없어요. 제 관심은 오로지 한국 공예를 살리는 일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공예 산업을 살리는 데 사명감을 가지고 있어요. 한국 공예의 가치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되는 일에 남은 인생을 걸고 싶습니다.
저는 한국공예가 발전 되기 위해선 두 가지가 지켜져야 한다고 봅니다. 일단 공예가들이 잘 먹고 잘 살아야 해요. 그리고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비록 소비자가 못 알아보고 품과 가격이 더 들더라도 제대로 제작해 명품을 만들어야지요. 현재는 사비를 출연, 투자하고 있지만 저는 그 돈이 공중 분해되는 돈이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 공예의 미래를 위해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언제 제일 행복하세요?
저는 정말 이상한 사람인가 봐요. 저로 인해 남이 행복하면 행복해요. 저는 타고나기를 제가 그런 사람인 거 같습니다. 어렸을 때는 어머니가 “너는 네 일은 열심히 안 하면서 왜 그렇게 남일에 나서냐”며 혼내기도 했어요. 이젠 남일이 직업이 되고, 사명감까지 붙었으니 행복합니다. 제 클라이언트들은 저를 마약이라고 불러요. 무슨 일을 하든 저는 그 일 자체가 되거든요. 빙의하는 거죠. 고객보다도 제가 그 일에 더 미칩니다. 그러니까 일이 잘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기쁜 거고요. 이게 재능이고 축복이란 것을 안 지가 얼마 안됐어요. 사람을 위하는 진심 어린 마음이 제 삶의 기본입니다.
베풀기 좋아하는 손 대표님이 욕심내시는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남이 기분 좋게 일하게끔 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제 목표가 크기 때문에 혼자만의 힘으론 안되잖아요. 여러 명의 힘이 합해져야 좋은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저는 늘 함께 가야 해요. 그러려면 함께 가는 사람들의 기분이 좋아야 하잖아요. 얼마 전에 저희 실장은 한 달간 미국에 갔다 왔어요. 우리 회사는 일년에 한 달씩 뉴욕에 가서 놀고 오는 게 원칙이에요. 거기까지 가서 일할 거 같으면 아예 가지 말라고 얘기하죠. 온전히 뉴욕 생활에만 빠져들 수 있도록 집까지 제공해요. 그 한 달이 얼마나 좋겠어요. 저도 가고 싶은데 나전칠기 때문에 못 가요. 그래도 이 일이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고, 제일 잘하고, 욕심나는 일입니다.
손 대표와 이야기하는 동안 어느덧 남산의 해가 지고 서늘한 저녁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텃밭의 푸성귀가 여름 햇살을 받아 아침저녁으로 쑥쑥 자란다며 티없이 좋아하는 손혜원 대표의 웃음이 해맑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며, 내년 이맘때엔 그녀가 국내 최고의 브랜드 네이밍 전문가로서뿐만 아니라 ‘한국 나전칠기의 전도사’로서 우뚝 서길 기대하는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