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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고가 위치한 인화동과 동산동 지명 바로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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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고 출신이라면 누구나 인화동과 동산동을 알고 있다. 학교가 동산동과
인화동을 가르는 곳에 위치해서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들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 지명의 유래에 대해 알아 봤으면 한다.
그당시 나룻가에서 목욕하고, 구시장에서 장을 보는 등 추억거리도 많다.
만경강 굽이흐른 호남의 들판 인화동과 동산동을 가로지르는 그 곳에 학교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변해 지금은 그 자리가 아파트단지로 변해 버렸
다. 우리들의 머리 속으로 기억되는 그 지명의 유래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1. 인화동 유래
원래는 화선동(和善洞)과 동인동(東仁洞)으로 각각 있었는데 1961년 화선
동을 인화동 1가로, 동인동을 인화동 2가로 개칭하였다. 따라서 인화동이
라는 동 이름은 동인동과 화선동의 글자 한자씩을 취하여 새로 지은 것이
다. 그리고 1994년 동산동의 나룻가와 신천이 편입되었으며. 1998년 인화
동과 주현동(珠峴洞)이 통합되기도 했다.
■ 신천(神川, 新川, 신촌)
옛뚜기 서쪽에 새로 생긴 마을로 처음에는 신촌이라 했는데 신천으
로 바뀌었다.
■ 나룻가
동산동의 모새뜸 남쪽 마을로 1994년에 편입된 만경강의 나루터가 있
던 곳이다.
■ 인화동
이리의 근원지이므로 구이리(舊裡里)라고도 하였으며, 일정 때에
이곳을 본정(本町)이라고 한 것도 이리의 근본이 되는 시가지라는
뜻에서 지어 붙인 이름이다.
2. 동산동 유래
일제 때에는 이리읍 동산정이었는데 1946년 동산동으로 개칭했고, 1951년
동산동을 남부,중부,북부로 나누었었으나 1957년 다시 통합했다. 그리고
1973년 김제군 백구면 삼정리(三停里) 일부 지역이 편입되고, 1983년 익
산군 팔봉면 일부 지역과 춘포면 석탄리 일부 지역이 편입되기도 했다.
한편, 1994년 동산동의 나룻가와 신천이 인화동으로 넘어갔고, 1998년
일부 신흥동과 금강동이 동산동으로 편입되었다.
■ 예뚜기(이띠기)
만경강의 예전 둑이 있던 곳으로 옛 둑에 접미사 이가 붙은 이름이다.
이 밖에도 여러 마을 이름이나 마을의 부분 명이 있으나 지금은 거의
연접되어 구별하기 어렵다.
■ 석탄동(石灘洞)
본시 춘포면 석탄리가 1983년 이리시로 편입된 곳이다. 석탄동의 본
이름은 전에는 만경강이 돌아서 흐르는 곳으로 돌여울 석탄(石灘)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돌이 돌(石)이 되었다.
■유천(柳川)
만경강 가로 전에는 강변에 버드나무가 많아서 생긴 이름.
■고제(古堤)
옆 마을 예뚜기와 같은 어원이다. 예뚜기가 분립함으로써 생긴 이름.
■용강(龍江)
전에는 만경강이 마을 앞으로 흘렀는데 강에서 용이 올랐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 간리(澗里)
용강과 대장의 사이에 있어 간리(間里)라고 했다고도 하고 김제군과
익산군 사이에 있으므로 간리라고도 하고, 만경강 가이므로 간리(澗里)
라고 하는 등 구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