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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회 1사무 13장-16장
13-15장은 한 가지 전승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 13장과 14장의 바탕 위에 벤야민 지방에 국한된 필리스티아인들과의 전쟁 설화 전승을 뚜렷하게 엿볼 수 있지만, 이 이야기를 사울의 통치 역사 안에 정확하게 자리매김하기가 쉽지 않다. 이 이야기는 요나탄의 용맹을 부가시키는 데 역점을 둔다. 요나탄은 필리스티아 군에서 이스라엘을 구축한 이 해방 전쟁을 시작한 사람이다(13,3). 그의 단독 공격은 적을 공포에 몰아넣었고(14,1-15), 그는 다른 군인들에게서 사랑을 받는다(14,45). 이 군인들의 사랑은 나중에 다윗에게로 넘어간다(18장). 한편 사울은 군사 문제에 별다른 역할을 못한다. 그는 오히려 종교 문제에 더 개입하는데, 그나마도 늘 적절하지 못한 조처를 내릴 뿐이다. 그는 전사들이 거의 죽어가는데도 음식을 먹지 못하게 명령하였지만 요나탄을 비롯하여 군인들은 그 규율을 지키지 않았다. 사무엘기 저자는 규율을 어긴 요나탄을 군인들이 사울에게 탄원하여 살려 주게함으로써 사울을 간접적으로 비난한다. 주님께서 사울을 버린 이유는 그가 신성한 영역을 침범했기 때문이다(13,7-15).
15장은 다른 분위기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사울이 아말렉을 쳐부순 이야기는 신명성이 덜하다. 아마도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민족 전승 안에서 아미 하나의 설화로 굳어진 일화인 듯하다. 사울은 하느님의 법을 어겼기 때무에 벌을 받는다. 왕정 제도를 다루는 9-12장에 이어 13-15장은 하느님께서 백성을 위하여 세워 주려고 하신 왕권에 사울이 적절하지 못한 인물임을 보여 주려 한다. 결국 이 대목은 다윗의 출현을 준비한다고 할 수 있다.
1사무 13,1-23 사울이 필리스티아인들과 싸우다
사울은 통치 초기에는 백성과 사무엘(예언자)의 인정을 받는다. 사울은 사무엘에게 기꺼이 순종하며 그의 인정을 얻고 보존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1사무 11,12-15 참조). 그러나 13장에서는 임금과 예언자 사이의 긴장을 예감하게 된다. 필리스티아인들은 전쟁을 하려고 군대를 동원하며 사울은 그들을 맞아 싸울 준비를 한다(1사무 13,1-5). 그런데 사울의 부하들은 필리스티아 군대를 보자 용기를 잃고 숨어 버리고 만다(1사무 13,6 이하). 그래서 사울은 부하들을 모으기 위해 사무엘(예언자)의 뜻에 거슬리는 일을 하여 그의 분노를 사게 된다(1사무 13,8-15).
“사울이 임금이 된 것은 서른 살 때였다. 그는 이스라엘을 두 해 동안 다스렸다”(1). 히브리 말 본문에는 나이를 밝히는 숫자가 없다. 몇몇 칠십인역 수사본에 따라 사울의 나이를 서른 살로 밝힌다. 이는 후대의 계산일 것이다(2사무 5,4). 2절에 보면 요나탄이 천명의 군사를 거느린 장수로 등장하고, 2사무 4,4에 따르면 사울이 죽기 전에 손자를 두엇다고 하는데 이런 기록들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사울의 나이는 적어도 마흔 살 이상은 되었을 것이다.
유다 역사가 요셉푸스는 사울의 통치 기간을 이십 년 또는 사십년으로, 사도 13,21은 사십 년으로 제시한다. 히브리 말 본문이 제사한 이 년 동안의 통치기간은 사무엘기가 묘사하고 있는, 사울과 얽힌 사건들의 양으로 보아 너무 짧다.
2절에서 “이스라엘에서 삼천 명을 뽑아”에서 히브리 원문에 '뽑아' 앞에 '자신을 위하여'라는 말이 있다. 그러므로 여기의 이 같은 행위는 암몬과의 싸움을 위하여 사울이 온 백성을 군대로 소집한 것과는 성격상 전혀 다르다(11,7,8). 즉 사울이 택한 삼천 명은, 이방국가와 같은 왕으로서의 자신의 직임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잘 훈련된 정예군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성전(聖戰)을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병력이라기 보다는 사울이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 중 차출한 근위병적 성격이 강한 군대임이 분명하다.
“이천명은 자기와 함께 미크마스와 베텔 산악 지방에 있게 하고 천 명은 요나탄과 함께 벤야민 땅 기브아에 있게 하였다”(2). 여기서 '미크마스'(Michmash)는 예루살렘 북쪽 약15km, 기브아에서 북동쪽으로 약 7km 떨어졌으며, 해발 약 660m 정도의 고지에 위치하였다. 그러나 이같은 정도의 높이는 그 지역에서는 저지(低地)에 속한 편이다. 그런데 이곳 미크마스의 남쪽은 '와디수웨이닛'(Wadi Suweinit)이라는 협곡과 연결되어 있으며, 또한 남동쪽으로는 가파른 고개들이 있어 군사적 요충지가 될 수 있었다. 특히 이곳은 보리의 산출이 많은 곳인데, 한편 '베텔 산'은 미크마스 북서쪽 약 7km 지점의 해발 약 960m의 고지에 위치한다. 바로 이같은 이 지역의 표고(標高)때문에, 여기서는 '베텔 산'으로 지칭된 것이다. 한편, 여기서 사울의 이같은 군사 행동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오랜 필리스티아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보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사울의 장자 '요나탄'은 여기서 처음 등장한다. 그 이름의 뜻은 '주님께서 주셨다'이다. 한편 '벤야민 기브아'는 사울의 고향 기브아를 가리키며, 또한 이곳은 이스라엘에 대한 사울의 통치 거점이였다. 군사 천명은 요나탄과 함께 있었고 나머지 군사들은 자기 집으로 돌려보냈다.
요나탄의 군대에 의해 게바에 있는 필리스티아의 수비대가 거의 전멸되었음을 시사해 준다. 한편 사울 휘하의 이천 군사가 포진한 미크마스와 베텔 산은 필리스티아 수비대가 있던 게바 북쪽에, 그리고 요나탄이 이끈 이천 군사가 포진한 벤야민 기브아는 게바 남쪽에 가각 위치하고 있었다(2절). 따라서 그 포진 상태로 보아 사울과 요나탄은 협공 기습 작전으로 게바의 필리스티아 수비대를 공격하려했던 것 같다. 즉, 요나탄의 군대가 정면 공격을 감행한 것 같고, 사울은 후방에서 공격을 시도한 것 같다.
이 공격에 '필리스티아 사람'이 듣고 공격을 준비한다. 따라서 그때 요나탄에 의해 패배를 당한 '수비대'의 패잔병은 약 40km 정도 떨어진 자신들의 필리스티아 영토까지 패주하여 자신들이 당했던 사실은 보고했던 것이다.
“사울은 ‘히브리인들은 들으시오!’ 하면서 온 나라에 나팔을 불었다”(3). 여기서 '나팔',(쇼파르)은 '양의 뿔'을 가리킨다. 한편 성경에서 '나팔'을 부는 행위는 '위험'을 경고하며, '성전'(聖戰)을 선포할 때 주로 언급된다. 따라서 사울의 이 같은 행동은 필리스티아 수비대를 격파한 승리의 소식을 알림과 동시에, 필리스티아와의 대규모 전쟁을 준비키 위해 백성들을 소집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었다.
'히브리인'이라는 명칭은 이스라엘 사람들 스스로에 의해서 자신들 상호간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명칭은 타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의 저항과 적개심을 불러 일으키려 하고 있다. 그리고 '들으라'(쉐마)는 명령법으로 사용될 경우 상대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사용되는 단어이다(신명 6,3.4; 1사무 20,16). 사울과 요나탄이 필리스티아 수비대를 격파함으로 인해 격분한 필리스티아가 대규모 반격을 시도하려고 한다.
“어떤 히브리인들은 요르단을 건너 가드와 길앗 지방으로 넘어갔다. 사울은 아직 길갈에 남아 있었는데, 그의 뒤에서는 군사들이 모두 겁에 질려 떨고 있었다. 사울은 사무엘이 약속한 이레를 기다렸으나, 사무엘은 길갈에 오지 않았다. 군사들은 사울 곁을 떠나 흩어지기 시작하였다”(7-8).
사무엘은 사울에게 자신을 만날 때까지 한 주간을 기다리라고 하였다. 한 주간을 기다리라는 요청은 사울에게 아무리 급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자기 의지에 따라 행동하지 말고, 사무엘을 통하여 전달되는 하느님의 의지에 모든 것을 맡기라는 명령이었다. 사울은 이를 기다리지 못해 번제물과 친교 제물을 가져 오게 하여 번제를 드린다. 바로 그때 사무엘이 전투에 임하려는 사울을 축복하려고 와서는(10), 그가 한 짓을 보고 노하여 호되게 꾸짖는다. 얼핏 보기에 사울의 변명(11-12)은 정당한 듯하다. 사울은 한 주간을 기다리라 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사무엘이 나타나지 않자 군인들이 동요하기 시작하여 부득이 주님께 제사를 올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13절에서 사무엘은 사울에게 주님의 분부를 지키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사울은 제사와 관련하여 주님에게서 어떠한 분부도 들언 적이 없다. 여기에는 설명이 필요하다. 이스라엘인들은 고대 근동의 관습에 따라 성전(聖戰)에 나가기 전에 보통 주님께 제사를 지내고 주님의 허락을 구하였다. 그런데 이런 일은 전투의 우두머리인 임금의 소관이 아니라, 사제의 일이었다. 사울의 잘못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곧 근 사제도 아니면서 사제의 고유 권한을 침범한 것이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말한다. “이제는 임금님의 왕국이 더 이상 서 있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임금님이 지키지 않으셨으므로, 주님께서는 당신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으시어, 당신 백성을 다스릴 영도자로 임명하셨습니다”(14). 여기의 이 말은 사울의 왕권이 그의 생전에 취소될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다만 사울의 왕권이 그의 당대에서 끝날 것이라는 뜻이다(13절). 한편 사울의 왕권이 그가 죽기 전에 취소될 것이라는 선언은 그의 결정적인 두번째 실수(15,9,15) 뒤에 나타난다(15,17-23). 혹자는 여기서 사울의 첫 범죄에 대하여 하느님의 징벌이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니냐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무엘을 통한 하느님의 생생한 경고(8,10-18)에도 불구하고 끝내 왕을 요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정 제도를 허락하신 하느님의 뜻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그 누구보다도 철저히 깨닫고 실천해야만 했다. 즉 사울은 백성들의 요구대로 이방국가와 같은 왕(8,5,20)이 되어서는 결코 안되며, 오직 하느님의 요구대로 그 뜻을 구현하는 하느님의 대리자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사울은 필리스티아와의 대전투라는 중요한 상황에서, 하느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백성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이방국가와 같은 왕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권'을 거룩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울의 거역 행위를 엄히 문책하신 것이다.
그러나 한편, 사울에 대한 하느님의 징계는 결코 불변적이고 결정정인 것이 아니었다. 즉 사무엘을 통해 하느님의 징계를 받은 후에라도 사울이 자신의 잘못을 진정 뉘우치고 회개했더라면, 그는 자신의 왕권을 훨씬 오래 연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2 열왕 20,1.6). 그러나 징벌을 받은 후 사울은 더욱 고집이 세져, 결국 스스로 자신의 왕권을 단축시키고 만 셈이 되었던 것이다(15,26). 그러기에 미리 하느님께서는 사울을 대신할, 마음에 맞는 한 인물을 준비하셨는데, 이같은 모든 신적 섭리의 배후에는 다만 역사를 통찰하시는 하느님의 예지(豫知)와 예정(豫定), 그리고 전지성(全知性)이 깃들어 있을 뿐이다.
16절에 사울과 요나탄 그들이 거느린 육백 명가량의 군인들은 벤야민 땅 게바에 있있다. 여기서 '벤야민 땅 게바'는 원래 필리스티아의 수비대가 주둔하던 곳이었으나, 요나탄의 군대에 의해 정복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사울이 언급된 것을 볼 때, 사울은 자신의 부대를 '길갈'(Gilgal)로부터 이동시켜 '게바'에 주둔하고 있던 요나탄의 부대와 합쳤음이 분명하다. 한편, 이곳 게바는 필리스티아의 진(陳)이 있는 미크마스와는 그곳으로 통해 있는 협곡(峽谷) 길로 약 2km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바로 이 같은 지리적 특성을 이용하여 사울과 요나탄의 소부대는 필리스티아의 대군과 대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미 이집트에 거주할 때부터 쇠를 다루는 기술을 갖고 있었다(신명4,20). 또한 이스라엘 땅에는 많은 철광석이 묻혀 있었다(신명 8,9). 따라서 그들에게는 발달된 수준은 아니었겠지만, 어느 정도의 철기(鐵器) 문화가 정착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필리스티아의 압제하에 있던 기간 동안(13,1).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의 철 독점 정책에 의하여 농기구 이외에는 철 제품을 소유할 수 없었고, 아울러 무기를 만들 만한 철공(鐵工)도 없었다. 틀림없이 이스라엘의 '철공'은 필리스티아인들이 침공했을 때 그들에 의해 납치되어 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이같은 일들은 고대 국가에서 승전국이 패전국에 대하여 취하는 일련의 정략적 조치로서, 역사적으로 매우 흔했었다(2열왕 24,14-16).
당시 필리스티아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자신들에게 예속시키기 위한 정책을 실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한편 연장을 날카롭게 하기 위해선 필리스티아 사람들에게 가는 것도 그들과 평화할 때나 가능하였지, 전시에는 그나마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그 당시 농기구 하나를 날카롭게 하는 삯이 약 2/3세겔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한 세겔은 약 은 11.4g이다.
필리스티아 사람의 부대는 이미 세 방향으로 진격해 간 병력들이 아니라 본대(本隊)의 병력이었다. 이처럼 필리스티아는 이스라엘 전역으로 병력을 3대로 나누어 보내고도(17.18절) 나머지 병력으로 이스라엘 군대를 쳐부술 자신을 가질 만큼, 다시 그들은 이스라엘의 군대를 숫적으로나, 무기면으로나, 조직면으로 얕보고 우습게 여겼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방심이 요나탄에게 허(虛)를 찔리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14,6-15).
“필리스티아인들의 전초 부대는 미크마스 길목까지 나와 있었다”(23). '길목‘은 특정한 지역으로 통하는 목을 뜻한다. 당시 필리스티아 군대는 자기들의 본진이 있던 미크마스에서 요르단 계곡으로 통하는 현재의 와디 에스 수웨이니트(wadi es Suweinit)의 골짜기를 따라 약 1km정도 내려와 보세스 강 근처에서 멈춘 후, 그들이 따라 내려온 골짜기의 왼편에 있는 '보세스'(Bozez)라는 산등성이로 올라간 듯하다(14,4). 필리스티아 군대는 그같이 함으로써 사울의 군대와 접전할 경우 유리한 전략적 위치를 선점(先占)하려고 하였을 것이다.
1사무 14,1-23 요나탄이 필리스타인들을 치다
“하루는 사울의 아들 요나탄이 자기 무기병에게 ‘자, 저 건너편 필리스티아인들의 전초 부대를 치러 건너가자.’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에게는 알리지 않았다”(1). 필리스티아 군대가 게바로 통하는 미크마스 어귀 절벽에 파수대를 세운 뒤 불과 얼마나 지난 어떤 날 요나탄은 필리스티아 전초부대를 치고자 스스로 결정한다. 사울과 요나탄의 부대는 미크마스에서부터 뻗어내려오는 협곡에서 약 1.5km 떨어진 게바에 위치해 있었다. 따라서 여기의 '건너편'은 필리스티아의 수비대가 자리잡고 있는 미크마스 어귀의 보세스 고지를 뜻한다.
“요나탄이 무기병에게 일렀다. ‘자! 저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의 전초 부대로 넘어 들어가자.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동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승리하시는 데에는 수가 많든 적든 아무 상관이 없다”(6). ’할례 받지 않는 자들‘이란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속한다는 선민 신앙(選民信仰)으로부터 나온 말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할례'(割禮), circumcision)는 하느님과의 언약의 징표였기 때문에(창세 17,10), 할례가 없다는 것은 곧 하느님의 보호를 기대할 수 없음을 나타낸다. 결국 요나탄의 이 같은 말은 필리스티아 사람들에 대한 승리를 확신하는 말인 것이다(17,26.36). 그리고 이 같은 사상에 근거하여 삼손과 사울은 할례받지 못한 필리스티아 사람들의 손에 의해 죽게 됨을 매우 불명예스럽게 여겼던 것이다(판관15,18; 1사무31,4).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동하실 것이다’ 진정 요나탄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싸우시는 용사되심을 믿었다. 승리의 관건은 수효의 다소(多少)나 군사력의 우열(優劣)에 있지 않고, 오직 하느님의 도우심 여하에 있음을 믿는 요나탄의 신앙 고백이다. 이러한 신앙은 기드온(판관 7,4.15), 다윗(17,47), 솔로몬(코헬 9,11), 이사(2역대 14,11), 히스기야(2역대 32,7,8)의 신앙과도 상통한다.
요나탄과 그의 부대는 아버지에게도 알리지 않고 필리스티아 전초부대 근처로 갔다. 요나탄은 믿음의 힘을 믿고 필리스티아인들이 ‘우리가 갈 때까지 꼼짝마라’라고 하면 올라가지 말자고 하였다. 그런데 “ ‘어디 올라와 봐라.’ 하면, 주님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넘기신 것이니 우리가 올라가자.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표징이다”(10).
그때 요나탄과 그의 무기병들이 세네 바위를 넘고 협곡을 건너 이미 보세스 바위 아래에 도착해 있었을 것이다. 그런 다음 그들은 보세스 바위 밑어느 곳에 자신들을 은폐시키고 있다가 표징을 구하고자(10절) 자신들을 노출시킴으로써, 보세스 바위 위의 필리스티아 사람들에게 목격된 듯하다.
“어디 올라와 보라”라는 말은 필리스티아 사람들이 요나탄 일행의 용기를 모욕하고 그들을 지극히 우습게 보았음을 시사해 준다. 아울러 이같은 필리스티아 군인들의 반응은 그들이 정신적으로 나태해있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였다. 따라서 요나탄은 이 응답을 접하면서 필리스티아에 대한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하였을 것이다(9,10).
요나탄의 부대는 필리스티아인들을 갈팡질팡하게 만들었다. 사울은 자신의 명령없이 군사를 움직였다는 것을 처음에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는 점점해 보니 요나탄과 그의 무기병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울은 필리스티아 진에서 벌어진 이같은 상황을 긍정적인 것으로 보았을 것이다. 물론 사울은 이때 자신의 아들 요나탄에 대한 염려를 모두 떨쳐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사울은 “하느님의 궤”를 모셔오라고 하였다.
“사울이 사제에게 말하고 있는 동안에도 필리스티아인들의 진영에서는 소란이 더욱 심해졌다. 그래서 사울은 사제에게 ‘그만두시오.’하고 말하였다”(19). 이것은 사울이, 요나탄의 안전 여부 및 필리스티아의 진으로 공격해 들어가야 할 당위성이 있는지의 여부를 하느님께 묻기를 포기했음을 시사해 준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울의 변덕스런 신앙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즉 사울은 전쟁의 작전 수행에 대하여 하느님의 뜻을 받으려 하다가(18절), 전세(戰勢)가 유리하게 돌아가자 돌연 하느님을 향한 질문을 취소하였던 것이다.
“사울과 그가 거느린 모든 군사가 함성을 지르며 싸우러 나가 보니, 필리스티아군은 제 편끼리 칼로 치며 큰 혼란을 일으키고 있었다”(20).
사울과 모든 군사들이 사기 등등하여 고함을 치며 싸우러 나갔다. 한편 '함께 한 군사'는 사울과 길갈에서부터 동행했던 육백 명(13,15)과 요나탄의 수하에 있던 병력 일천 명(13,2)을 합한 숫자를 가리킨다.
“필리스티아군은 제 편끼리 칼로 치며 큰 혼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같은 기묘한 상황은 기드온의 소수 병력이 미디안을 대항해 싸울 때에도 벌어졌었다(판관 7,22). 여기서도 하느님께서는 필리스티아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드심으로써, 자기들끼리 피차 싸우다 자멸(自滅)하도록 하셨던 것이다. 결국 이 같은 상황은, 모든 전쟁을 홀로 주관하시는 하느님께서 친히 간섭하신 결과였으며, 요나탄의 신앙적 용기와 도전에 대한 하느님의 도우심의 결과였다.
21절에 ‘필리스티아 사람과 함께 하던 히브리 사람’라는 말이 있다. 이들은 필리스티아 사람의 부대에 편성되어 필리스티아를 위하여 싸우던 용병(傭兵) 내지는 징용군(徵用軍)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한때 분명히 이스라엘을 대항해서 싸우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필리스티아의 군대로 편성된 데에는, 이스라엘 영토의 많은 부분이 필리스티아의 지배를 오래도록 받았다는 사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여기의 '히브리 사람'(이브림)은 타민족에 의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붙여지던 모멸적 의미의 명칭이었다(13,3). 따라서 그 당시 필리스티아 사람들은 이스라엘 출신의 군민들을 바로 이 '히브리 사람'이라는 명칭으로 불렀을 것이다.
1사무 14,24-46 요나탄이 사울의 명령을 어기다
“그날 이스라엘군이 곤경에 처했을 때, 사울은 군사들에게 저주를 씌우는 맹세를 하였다. ‘오늘 저녁 내가 원수를 다 갚기 전에 음식을 먹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그래서 군사들은 모두 음식을 맛보지도 못하였다”(24). 사울의 이 같은 말은, 태양이 질 때까지 원수를 무찌르겠다고 했던 여호수아의 결심을 염두에 두고 한 것 같다(여호 10,13). 따라서 이 말은 필리스티아를 완전 섬멸시키겠다는 사울의 결심을 잘 보여 주는 말이다. 그러나 사울의 이 맹세는 여호수아의 경우와는 달리 주님을 위한 진정한 충정과 신앙에서 비롯된 열성은 아니였다. 다만 사울이 자신의 공명심과 명예욕을 드높이기 위해 상황을 잘못 판단하고, 그대로 밀어부친 독선적 횡포에 불과했다. 따라서, 결국 사울의 이 같은 행동은 여러가지 부정적인 결과를 낳고 말았으며, 전쟁에 이기고도 백성들의 신임을 잃는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사울의 이러한 맹세는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열정이 가져다 주는 폐단을 잘 보여 주는 예이다.
사울은 자신의 헌신적 자세를 표명키 위하여 자신을 포함한 전군(全軍)에게 금식령을 내린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사울이 군사들로 하여금 금식하도록 한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그 전투를 속전 속결로 끝내기 위함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필리스티아와 격전을 치렀으며, 필리스티아를 쫓아 먼 거리를 행군했기 때문에 매우 허기진 상태였을 것이다. 따라서 당시 사울은 이러한 군사들의 상황을 헤아리기보다는 자신의 공명심을 채우기 위해 경솔한 맹세를 발했던 것이다. 사울의 명령이 어리석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명령에 충실히 복종했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
팔레스티나 지방에서는 벌들이 나뭇가지나 바위틈 사이에 집을 짓고 거기에 꿀을 만들어 놓았다. 심지어는 꿀이 벌집에서 넘쳐 땅으로 흘러내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러한 나뭇가지나 바위틈 사이에서 꿀을 취해 먹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성경은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신명11,9)으로 묘사하기도 했던 것이다(탈출3,8; 민수 13,27; 신명 8,8).
“그런데 요나탄은 아버지가 군사들에게 저주를 씌우는 맹세를 하였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므로, 손에 든 막대기를 내밀어 그 끝으로 벌집에서 꿀을 찍어 입에 넣었다. 그러자 눈이 번쩍 뜨였다”(27). 군령에 대한 이스라엘 군사들의 이 두려움은 결국 자신들이 한 맹세를 지키지 못할 경우 사울에 의해 시행될 엄중한 징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필리스티아 군대를 추격하던 중, 피로하고 허기에 지친 요나탄이 수풀 나뭇가지에 뭉쳐있는 꿀을 취해 먹고 기력을 다시 회복하였다.
그런데 사울의 금식(禁食) 명령이 백성들 스스로 자원해서가 아니라, 사울의 강제적인 명령에 의해 되어진 일이다. 즉 사울은 자신의 독단적인 판단하에서 금식령을 내려 백성들로 맹세케 했고, 이에 백성들은 그 위세에 눌려 할 수 없이 금식 맹세를 했던 것이다. 사울의 금식령으로 인해 백성들이 배고픔으로 무척 힘든 상태였다.
사울의 잘못된 금식령으로 인해 이스라엘 군사들이 탈진 상태에 놓였고, 결국 그로 인해 필리스티아를 철저히 추격 섬멸하지 못함으로써, 미크마스 전투의 승리가 불완전한 상태에 머물고 말았기 때문이다.
“빼앗은 것에 달려들어 양과 소와 송아지들을 끌어다가 맨땅에서 잡고 고기를 피째 먹었다”(32). 32절은 사울의 어리석은 금식 명령이 야기시킬 수 밖에 없었던 부정적 결과에 대한 언급이다. 즉 맹세의 유효 만료 기간인 저녁이 되자마자(24절), 이스라엘 군사들은 너무나 허기에 지친 나머지 자신들의 굶주린 배를 채우느라 율법의 주요한 두 가지 계명을 범하고 말았다. 곧 이때 이스라엘 군사들이 범한 죄는 소와 송아지를 같은 날에 잡아먹은 것(레위 22,28), 그리고 고기를 피째 먹은 것(창세 9,4; 레위 17,10-14; 신명 12,23)등이다. 이 중 특히 '고기를 피째 먹은 것'은, 거듭 반복 금지된 율법의 핵심 명령을 어겼다는 점에서 더욱 큰 잘못이었다.
피를 먹지 못하게 하는 규정은 긍정적인 이유와 부정적인 이유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몸의 생명은 피 안에 있고, 모든 피조물의 생명은 그 창시자인 하느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인간은 피를 두고 아무런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레위 19,26). 둘째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피와 연결된 갖가지 우상 숭배 관습에 물들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고대 근동인들은 짐승의 피를 먹음으로써, 신들과 영들의 보이지 않는 세계와 접촉하여 그들의 활기찬 기운을 자기 생명에 보태고자 하였다.
“사울은 군사들이 고기를 피째 먹어 주님께 죄를 짓고 있다는 보고를 듣고 명령하였다. ‘너희는 배신하였다! 당장 큰 돌을 하나 굴려 나에게 가져오너라”(33). “큰 돌”을 가져오라고 한 것은 전쟁터에서 임시 제단을 만들려는 것이다. 사울의 군사들은 소나 양을 제단 위에서 잡지 않고, 있는 그 자리에서 잡아먹었다. 이는 먼저 제물을 바쳐 드려야 할 주님에 대한 불경이다. 사울은 이 소식을 듣고 제단을 마련하여 정상적으로 주님께 먼저 제사를 바치고 난 다음에 제물을 군사들이 나누어 먹도록 하였다.
사울은 군사들에게 먹을 수 있도록 하고 밤에 필리스티아인들을 쫓아 내려고 하느님께 물어보았다. 우림과 툼밈을 통한 문의에 하느님께서 대답이 없자(37절), 사울은 여기에서 제비를 뽑는 방식에 의하여 범인을 가려내고 있다. “그러자 사울이 명령하였다. ‘군대 수장들은 모두 앞으로 나와, 오늘 이런 죄가 어떻게 저질러졌는지 알아보아라”(38). 그때 사울은 제비 뽑기를 통하여 백성과 자기 가족 두 편 중에서 먼저 범인이 속한 한 편을 가려내고 이어 범인이 속한 한 편으로 밝혀진 자신의 가족 중 최종적으로 범인 요나탄을 가려냈던 것이다.
요나탄은 자신의 행위(27절)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도, 겸손히 부친 사울의 뜻을 따르기로 작정한다. “사울이 말하였다. ‘요나탄아, 내가 너를 죽이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나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실 것이다”(44). 사울은 여기서 자신이 주님의 사심으로 맹세했던 바(39절)는 반드시 하느님 앞에서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 듯하다. 물론 그때 사울은 자신의 맹세가 경솔한 것이었다는 사실로 인하여 내심 후회하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한편, 그런데 여기서 요나탄이 금식령 기간 중 꿀을 먹은 사실은 결코 사울의 맹세에 대한 거역이나 불복종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때 요나탄은 그러한 사울의 명령을 전혀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27절). 즉 요나탄은 전혀 고의성(故意性) 없이 '부지중에' 잘못을 범한 것이다. 이런 경우 율법에 의하면(레위 4,3.13), 합당한 제물을 가지고 대속을 위한 속죄제를 드림으로써 죄 용서함 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요나탄에게 속죄제를 드릴 기회조차 주지 않고, 자신의 맹세를 따라 요나탄을 죽이려 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사울이 자신의 권위에 스스로 빠져버린 어리석은 행위였다.
백성들은 제비를 뽑기 전에는 소극적으로 침묵으로 일관했으나, 제비에 의해 요나탄이 맹세를 범한 장본인으로 판명되고, 이에 따라 그가 죽임을 당할 위기에 놓이자 이제 적극적으로 요나탄의 구명(救命)을 위해 사울에게 항의한다.
45절에서 “그는 오늘 하느님과 함께 이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라는 것은 백성들이 사울에게 제시한 바 요나탄이 죽임을 당하지 않아야 할 이유이다. 즉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요나탄을 도구로하여 필리스티아와 전투를 치르셨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같은 사실을 하느님께서 요나탄과 함께 하셨기 때문에, 금번 미크마스 전투를 이스라엘이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이므로, 승리를 위해서 발한 사울의 맹세는 마땅히 철회되어야 하고, 따라서 요나탄에 대한 처형 역시 마땅히 중지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즉 당시 백성들은, 이처럼 하느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을 해(害)하는 일은 그 자체가 하느님을 거스리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1사무 14,47-52 사울이 왕위를 굳히다
이 본문은 사울에 대한 찬사로, 그의 통치 성과가 인상적이며, 사울의 일생을 매우 성공적으로 묘사한다. 사울은 이전의 어떤 판관보다도 많은 승리를 거두어 명성을 떨쳤다. 47절에는 사울이 승리한 전쟁 목록이 보고되는데, 그 목록들 중 사울이 모압, 에돔, 초바와 싸운 기록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내용이다.
“그는 아말렉도 용감하게 쳐부수어 이스라엘을 약탈자들의 손에서 빼내었다”(48). 48절에서는 사울이 매우 용감하고 활발하게 행동했다고 한다. 신명기계 역사가는 그들 역사서 서문에서 “주님께서는 판관들을 세우시어, 이스라엘 자손들을 약탈자들의 손에서 구원해 주도록 하셨다”(판관 2,16)라고 언급했는데, 사울도 그들 중 하나로 본 것이다. 그래서 이 구절들은 비록 사무엘기 상권 나머지 부분에서 사울의 약점과 질투 그리고 최종적 실패를 기록한다 하더라도 그는 판관들과 같은 구원자였음을 상기시킨다.
이스라엘 초대 임금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기사는 49-51절의 사울 가족들의 목록과 그의 상비군에 대한 언급으로 마무리된다.
49절에는 아들과 딸의 이름이 나온다. 아들은 요나탄, 이스위, 말키수아인데, 사무엘기 상권 31장 2절에는 사울의 전사한 아들들이 요나탄과 아비나답과 말키수아로 나오고, 사무엘 하권 2-4장에서는 넷째 아들 이스보셋이 후에 아버지를 계승하여 잠시동안 북쪽 지파들의 임금이 된다. 그리고 역대기의 족보에서는 요나탄, 말키수아, 아비나답, 에스바알이 나온다(1역대 9,39). 49절에서 아비나답은 빠져 있고, 이스위는 여기만 나온다. 이스 보셋은 에스바알과 동일인이다. 보셋은 ‘부끄러움’, ‘수치’를 뜻하는데, ‘바알’을 대치시켜서 생긴 이름이다. 그런데 이스위가 이 이스 보셋(에스바알)과 동일 인물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리고 아비나답이 빠진 이유도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사울의 큰 딸은 메랍이고 작은 딸은 미칼이다. 둘째 딸 미칼은 후에 다윗의 아내가 된다(1사무 18,27).
50절에서 사울의 아내는 아히마아츠의 딸 아히노암으로 나오는데, 25장 43절에서는 다윗의 아내가 아히노암으로 나온다. 사울에게는 적어도 한 명의 후궁(리츠파)이 있었다.(2사무 3,7). 사울 재임 시 관리들의 수는 매우 적었다. 사울 정부는 단 한 명의 공직자만 언급되는데, 사울의 삼촌인 네르의 아들 아브네르였다. 이러한 단순성은 다윗과 솔로몬 정부의 엄청난 수의 관리들과 큰 대조를 이룬다.
솔로몬의 중앙 행정부와 비교하면(1열왕 4,1-19) 과다한 낭비에 빠지지 않은 매우 소박한 전시 정부이다. 사울이 사무엘기 상권 8장 10-18절에 열거된 ‘임금의 권리’에 탐닉한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 결과 사울의 통치는 백성들에게 왕정에 대한 구미를 더욱 돋우어 주게 되었다. 그들은 임금이 특히 전시에 자기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해 줄 수 있는지 보았으며, 사울에게서 자신의 권리를 남용하지 않는 임금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을 것이다.
“사울은 평생 필리스티아인들과 격전을 벌였다. 그는 용감하고 힘센 사람을 보면 누구든지 자기에게 불러 모았다”(52). 52절에서 긍정적인 요약이 계속된다. 필리스티아인들과 격전을 벌였다는 것은 사울이 전 생애 동안 치른 그들과의 전쟁에서 우세 했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리고 사울의 새로운 군사 모집 방법에 대한 간략한 기사로 끝맺는다. 그때까지 정규 군대가 없었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각 지파에서 의용군을 모집하여 전쟁을 치렀는데, 사울은 용감하고 힘센 사람을 불러들여 상비군을 조직한 것이다. 이로써 16장 18절에서 음악적 재능이 있는 ‘힘센 장사이며 전사’인 다윗의 거명이 준비된다. 다윗은 마침내 사울의 무기병이 된다(16,21). 그리고 15장에서 사울은 사무엘에게 단호하게 거부당한다.
15장은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여기서 사울은 전통 안에 나타나 있고, 또 사무엘이 철저히 옹호하고 있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 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했다고 볼 수 있다. 사울은 야훼와 그분의 예언자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임금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다(12장 참조). 이제 사무엘과 사울 사이는 금이 가게 된다. 15장 35절은 사울을 임금으로 세운 것이 실수였음을 깨닫는 사무엘의 심경을 표현하고 있다.
1사무 15,1-9 사울이 아말렉과 싸우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당신에게 기름을 부어서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임금으로 세우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1). 판관 사무엘이 주님의 말씀을 사울 왕에게 전달하기 위해 그에게 다시 온 때는 두 사람이 헤어진 이후(13,15) 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인 듯하다. 대략 당시의 시점을 추정해 보면 다음과 같다. 즉 다윗은 그의 나이 30세 때인 기원전 1010년 경에 왕위에 올랐는데, 만일 다윗이 최초 기름 부음 받은 때를 대략 15세 때로 본다면(16,11.12) 그때는 아말렉 전투 직후였으므로(16,1), 아말렉 전투는 기원전 1025년 경에 벌어졌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결국 사무엘이 사울에게 다시 온 이때는 미크마스 전투 때(기원전 1048년)이므로 사울과 헤어진 지(13,15) 약 23년 후라는 계산이 나온다.
기름부음받은 사울이 전에 주님의 예언자 사무엘의 직무를 침범했던 제사 사건(13,8-14)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사울은 그 사건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하느님의 일차 시험을 통과치 못했었다. 그러므로 여기 사무엘의 이 언급은 사울이 반드시 통과해야만 할 새로운 시험이 하느님께로부터 주어질 것을 예시한다. 이로 볼 때 미크마스 전투 개시 직전, 사무엘이 사울의 불순종에 대해 심판적 경고(13,13)를 내린 것은 최종적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그 선언 이후 사무엘이 다시금 사울을 찾아와 주님의 말씀을 지킬 것을 당부한 것은 주님께서 아직 사울을 버리지 않았고, 그로 하여금 새롭게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계심을 의미한다. 이것은 마치 니네베 성에 대한 요나의 심판 선언도 최종적인 선언인 것 같았으나, 니네베 성이 회개하자 하느님께서 그 뜻을 돌이키신 것과 같은 이치이다(요나 3,4-10).
그러나 사울은 금번 아말렉 전투에서도 하느님께 불순종하는 거역과 반역의 죄를 범함으로써(9절), 마침내 하느님께 버림받고 만다(26절; 16,14).
아말렉 족은 에사우의 손자 아말렉의 후손들로서(창세 36,12; 1역대 1,36), 유다 남부 광야 지역을 거점으로 유목과 약탈로 살아간 호전적인 족속이다. 이 족속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탈출 직후 르비딤 광야에 이르렀을 때, 교활하게 이스라엘 후미(後尾)를 기습 공격했었다(탈출 7,8-13). 그런데 그때는 이스라엘이 오랜 노예 생활 끝에 해방된 직후였으므로 아무런 전투 능력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신명 25,17-19).
따라서 그때 이 일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입은 타격은 막대하였다. 그러므로 여기서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한 짓, 곧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올아오는 길을 막았던 그 일”(2) 은 바로 이러한 아말렉의 기습 공격 사건을 뜻한다. 아말렉의 이 공격 사건이 특히 용서받지 못할 사건이 된 것은 이것이 주님께서 이스라엘 위에 베푸신 크신 이집트 탈출의 은총을 무시한 채 가나안 여정을 방해했던 사건이고, 피곤하고 지친 이스라엘의 후미를 공격하는 비겁한 전술을 구사했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아말렉 족속을 선민(選民) 이스라엘의 제 1의 대적국으로 간주하시고, 그 족속을 천하에서 도말하고 진멸할 것을 선언하시고 명령하였다(탈출 17,14; 신명 25,19), 이에 하느님께서는 마침내 사울을 통해 아말렉 족속을 진멸코자 하셨던 것이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아말렉을 치고 그들에게 딸린 것을 완전히 없애 버리라고 말하였다. 하느님의 뜻에 의해 '헤렘'(바쳐진 것, 금지된 것)으로 지정된 것은 결코 다른 용도로는 쓰여질 수 없었고, 오직 하느님의 공의(公義)의 만족을 위해 반드시 '헤렘의 법칙'대로 시행되어야만 했다. 따라서 만일 이 '헤렘'이 산 것이면 죽여야 했고, 그 밖의 물건들은 불로 다 태워버려야 했으며, 불로 태워지지 않는 금과 은 등은 성소에 귀속시켜 하느님께 봉헌되어야만 했다(레위 27,28; 신명 13,16).
“그런데 사울과 그의 군사들은 아각뿐 아니라, 양과 소와 기름진 짐승들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것들과 새끼 양들, 그 밖에 좋은 것들은 모두 아깝게 여겨 완전히 없애 버리지 않고, 쓸모없고 값없는 것들만 없애 버렸다”(9).
1사무 15,10-35 주님께서 사울을 버리시다
“주님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내렸다. ‘나는 사울을 임금으로 삼은 것을 후회한다. 그는 나를 따르지 않고 돌아섰으며 내 말을 이행하지 않았다.’ 사무엘은 화가 나서 밤새도록 주님께 부르짖었다”(10-11). 사무엘의 제사권 침해 사건(13,9)에 이어 여기서는 사울이 하느님에 의해 제시된 두번째 시험, 곧 아말렉 진멸 사건에서도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사무엘은 자신의 간곡한 권면(1절)에도 불구하고 사울이 자신의 이기적 충동을 따라 하느님께 불순종함으로써, 결국 왕을 세운 하느님의 거룩한 목적이 손상되고 파괴되었다는 그 사실로 인하여 거룩한 의분(義憤)을 느꼈을 것이다. 사무엘은 “밤새도록 주님께 부르짖었다”라는 그의 태도는 왕과 백성들을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겠다고 했던 자신의 각오(12,23)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자신의 각오처럼 이때 사무엘은 하느님께로부터 사울의 불순종의 죄를 사죄받기 위하여, 그리고 무엇보다 사울이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뉘우치고 회개하기를 바라고 기도하였을 것이다. 이처럼 사무엘이 주님께 부르짖는 모습은 그가 기도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죄인이 죄 용서함 받기 위해서는 가장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전제 조건이 있으니, 곧 당사자인 그 죄인의 회개이다. 그러나 사울은 끝내 회개치 않음으로써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고 만다.
사울은 자기를 위하여 카르멜로 가다가 기념비를 새웠다. 이는 아말렉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승전비(勝戰碑)를 가리킨다. 사울은 카르멜에서 승전비를 세운 뒤 유다 산맥을 가로질러 요르단 계곡의 길갈로 갔다.
사울은 사무엘과 만나 “저는 주님의 말씀을 이행하였습니다”라고 말한다(13). '주님의 말씀'은 분명 아말렉에게 속한 모든 것을 남김없이 진멸하라는 것이었다(3절). 그러나 사울이 이 같은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행치 않았으면서(8,9절), 말씀을 온전히 이행한 듯 묻기도 전에 말한 것은 죄의식(罪意識)의 결과였다.
“그러자 사무엘이 ‘제 귀에는 양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어찌 된 일입니까? 또 소 울음소리도 들리는데 어찌 된 일입니까?’ 하고 물었다”(14). 사무엘은 들려오는 짐승의 소리를 증거로 사울의 말(13절)이 위선이요 거짓임을 예리하게 폭로한다. 마치도 사울의 양심은 침묵하나 오히려 짐승은 사울의 위선과 불복종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사울은 계속적으로 변명을 늘어놓는다. 사울은 아말렉족을 모두 없애 버리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듣지 않고 양 떼와 소 떼들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기 위해 마련해 놓았다고 변명을 댄다. 사무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우려는 의사를 보였을 때에 사울이 취했던 겸손한 행동을 가리킨다(9,21). 그러나 왕위에 오르고 권력이 생기자 사울은 점차 교만한 자가 되어, 결국은 비천한 자신을 들어 왕으로 세우신 주님의 명령까지 무시하는 자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하달된 주님의 신성한 명령을 사울이 전적으로 이행치 아니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사울의 주장(13,15절)이 자기 변명과 겉치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분명하게 말한다. “그러자 사무엘이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 바치는 것을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진정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고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숫양의 굳기름보다 낫습니다”(22).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은 헌신을 상징하는 제사이다(레위 1,3-17). “진정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고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숫양의 굳기름보다 낫습니다”라는 말에서 사울을 잘못을 보게 된다. 사울은 아말렉 족속에 대한 주님의 진멸 명령(3절)을 무시한 채, '주님께 제사드릴 목적으로'(15,21절) 그 족속의 가장 좋고 기름진 짐승들을 끌고 왔노라고 극구 주장한다. 이에 사무엘이 명쾌히 선포한 이 말은, 오고오는 세대들에게 외적 의식(儀式) 행위 보다는 내적 마음의 순종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금언적(金言的)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사무엘 이후 많은 예언자들에 의해, 주님께 대한 합당한 예배의 기본 자세로 거듭 강조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사실 구약 시대의 모든 희생 제사 행위는 짐승을 잡아 피를 뿌리고 그 고기를 제단 위에서 태우는 일,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만 그러한 행위를 통하여 인간이 그 행위 속에 담긴 참뜻을 깨달아, 하느님께 헌신하고 순종하는 일이더욱 중요한 것이었다. 즉 '제사'는 그림자요, '순종'은 실체인 것이다.
그러나 사무엘의 이 말은 '제사'를 부정하는 말은 아니다. 다만 사무엘이 여기서 강조한 근본 사상은 제사 행위 속에는 반드시 순종의 자세가 깃들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제사로 말미암아 순종이 거부되거나 무시될 수 없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주님의 말씀을 거역하였기에 주님께서도 사울을 왕위에서 배척하였다고 말한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빌었다.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군사들이 두려워서 주님의 분부와 어르신의 말씀을 어기고 그들의 말을 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와 함께 돌아가시어, 제가 주님께 예배드리게 해 주십시오”(24-25). 사울은 사무엘의 날카로운 심문과 경고에 의하여, 변명으로 일관하던 태도를 바꿔 이제 자신의 죄를 시인했지만, 그 시인한 죄조차도 불가피한 상황하에서 백성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울의 고백은 진정 자신이 하느님 앞에서 무엇을 범죄하였는지를 깨닫고 뉘우치는 참된 회개라고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계속 자신의 죄를 시인치 않고 변명과 책임 전가로만 일관하다가, 사무엘의 무서운 심판적 선언(22, 23절)을 듣고 난 후에야 비로소 어쩔 수 없이 시인했기 때문이며, 또한 죄의 고백 후에, 다시금 백성들의 탓으로 그 죄의 원인을 책임 전가하는 말(24b)을 덧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고백 후에도 계속 왕위 보존과 왕권의 명예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30절). “사울이 간청하였다.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만, 제 백성의 원로들과 이스라엘 앞에서 제발 체면을 세워주십시오. 저와 함께 돌아가시어, 제가 주 어르신의 하느님께 예배드리게 해 주십시오”(30). 사울의 이 고백은 순수한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온 통회의 회개가 아니라, 단지 왕국의상실과 명예의 실추를 두려워한데서 비롯된 '입술의 회개'였다.
하느님의 최종적인 폐위(廢位) 선언으로 말미암아(23, 26절), 사울은 이후 왕위에는 있으나 실상은 왕이 아닌 자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사무엘은 함께 제단으로 가서 주님께 제사드리자는 사울의 간절한 요청(25,30절)을 들어주었다. 이처럼 사무엘이 사울의 요청을 허락한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비록 형식적이긴 하지만 차기 이스라엘 왕이 등극할때까지 그래도 사울을 통하여 외적인 정치 질서를 유지시켜 나갈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울과 함께 가서 아말렉왕 아각을 죽임으로써, 사울이 완수하지 못한 일을 자신이 마저 처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무엘은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울을 두고 슬퍼하였다. 주님께서도 사울을 이스라엘 위에 임금으로 세우신 일을 후회하셨다”(35). 처음 사무엘이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었을 때는 그를 진정 위하는 마음으로, 사울의 왕직(王職) 수행을 기꺼이 도와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이 계속 하느님의 뜻을 어기고 이방국가와 같은 왕으로 전락하자, 그는 마침내 하느님께로부터 왕직을 박탈당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된다(23,26절). 따라서 이제 사무엘은 주님께서 폐위시켜버린 왕을 위해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다만 사울을 위해 슬퍼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 말속에는 사무엘이 사울의 회개를 위해 개인적으로는 계속 기도했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1사무 16,1-13 다윗에게 기름을 붓다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언제까지 이렇게 슬퍼하고만 있을 셈이냐? 나는 이미 사울을 이스라엘의 임금 자리에서 밀어냈다. 그러니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떠나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사이에게 보낸다. 내가 친히 그의 아들 가운데에서 임금이 될 사람을 하나 보아 두었다”(1). 하느님께서 사울의 왕위를 배척하셨다는 언급은 사울이 예언자 사무엘의 제사 행위를 침해했을 때, 그리고 사울이 이기적 욕심에 따라 아말렉에 속한 것을 전멸시키지 아니했을 때 나타났다. 그러나 첫번째의 경우때에만 해도, 사울은 자신의 이후 행위 여하에 따라 자신의 왕위를 계속 유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두번째의 거역 행위로 인하여 사울에게 선언되었던 '폐위(廢位) 선고'는 완전히 확정되고 말았던 것이다.
사무엘의 깊고 오랜 슬픔은 단순히 개인 사울의 비극에 대한 사적(私的) 심정 때문만이 아니라, 사울의 폐위로 인하여 이스라엘 사회 전반에 나타날 부작용을 염려한 때문이었다. 사실 그때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사울의 군사적 능력만은 분명히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라는 말에서 '뿔'(케렌)은 양의 뿔을 가리킨다. 그런데 왕의 기름 부음을 위해서는 '병'(파크)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10,1). 그러나 '뿔'이 사용되는 경우와 '병'이 사용되는 경우는 분명 어떤 대조점이 암시되고 있는 듯하다. 즉 '뿔'이 사용될 경우에는 주로 그 왕의 정통성 및 긍정적 성격이 암시되며(1열왕 1,39). 반면 '병'이 사용될 경우에는 그 왕의 비정통성 및 부정적 성격이 암시되는 듯하다(10,1; 2열왕 9,1-13). 성경이 이처럼 의도적으로 '뿔'의 사용을 보다 긍정적 차원에서 보는 것은, 성경의 여러 문맥상 '뿔'이 왕권(王權)을 상징하고 있다는 사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주님을 사무엘은 베들레헴 사람 이사이에게 보낸다. '베들레헴'이란 '빵집'이란 뜻으로, 이곳은 사무엘의 고향인 라마 남서쪽 약 16km, 그리고 예루살렘 남서쪽 약 10km지점의 해발 690m에 위치한 유다의 작은 성읍이다(룻 1,1). 한편 '이사이'는 부호(富豪) 보아스와 모압 여인 룻 사이에서 태어났던 오벳의 아들로서(룻 4,17, 22). 그 이름의 뜻은 '주님의 사람'이다. 이사이는 그의 할아버지가 부자였으므로, 그 당시 그 역시 부유했었음이 분명하다(룻 2,1). 그러므로 사무엘은 인근 마을의 유력한 가문인 이사이의 집에 대해 개략적으로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당시 이사이의 막내 아들 다윗에 대해서는 몰랐음이 분명하다. 당시 이사이에게는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다(6-11절).
비록 사울은 하느님께로부터 최종 폐위 선언을 당함으로써(15,23) 영적 왕권은 이미 상실된 처지였지만, 그래도 당시 사울은 정치적, 군사적으로는 여전히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왕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만일 사무엘이 다른 사람을 왕으로 기름 부을 경우, 그 일은 당연히 역모(逆謀) 행위로 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사무엘은 일이 그런 식으로 전개된다면 자신의 죽음이나 추방이 문제가 아니라, 이사이 가문까지 화를 면키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사무엘은 그러한 현실적인 문제를 솔직히 하느님께 아뢰었던 것이다. 따라서 사무엘의 이같은 반응은 불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우려되는 불행한 상황을 방지하고, 보다 나은 방법을 하느님께 아뢴 예언자의 사려깊은 기도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사무엘의 그러한 반응을 전혀 책망하지 않으시고, 즉시 지혜로운 방법을 그에게 알려 주셨다는 사실에서 충분히 입증된다.
사무엘은 베들레헴에 이르자 원로들이 떨면서 그를 맞았다. 베들레헴 성읍 원로들의 이같은 태도는 당시 사무엘은 주님의 예언자로서 가장 권위 있고 존경받는 인물이었으며, 또한 사무엘은 판관로서 그 직무상 종종 죄 범한 성읍을 방문하여 책망하고 징벌하는 일을 하는 자였기 때문에, 성읍 원로들은 갑자기 방문한 사무엘을 불안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무엘이 대답하였다. ‘물론 좋은 일이지요. 나는 주님께 제사를 드리러 온 것이오. 그러니 몸을 거룩하게 하고 제사를 드리러 함께 갑시다.’ 사무엘은 이사이와 그의 아들들을 거룩하게 한 다음 그들을 제사에 초청하였다”(5). 몸을 거룩하게 하고 제사를 드리는 행위는 부정한 상태에서 벗어나 몸과 의복을 깨끗케 함으로써, 하느님과의 영적 친교에 합당하도록 준비하는 것을 뜻한다.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고 사울을 대신하여 왕위에 오를 인물로 생각하였다. '엘리압'(Eliab)은 '하느님은 아버지이시다'란 뜻이며, 그는 필리스티아의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침공했을 때 사울을 따라 종군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 고르신 인물은 가장 작은 이였다. 바오로는 1코린 1,27-28에서 주님께서 우리와 다른 선택 기준을 가지고 계시다고 한다.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7).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처음 외모를 중시하여 왕을 선택했던 일이 결국 실패로 돌아갔던 사실을 사무엘로 하여금 회고케 함으로써 그 같은 실수의 재발을 방지하려고 하신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 머리에 기름부을 자를 택할 때 결코 외적인 모습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이 용모나 신장은 무조건 배격하고 무시하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러한 것이 결코 하느님의 일꾼이 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사람은 육신의 눈으로 보거니와, 주님은 마음의 눈으로 본다. 즉 이것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에 있어서 인간의 척도와 하느님의 척도가 전혀 다름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는 비록 인간은 육신의 눈을 가지고 사람의 외적 용모, 신장, 배경 등을 보지만 하느님께서는 마음의 눈을 가지고 사람의 내적 겸손, 신앙, 인격, 진실성 등을 보신다는 의미이다.
사무엘은 이사이의 여러 아들들 중 누가 하느님에 의해 왕으로 선택됐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이사이의 아들들을 차례로 자기 앞으로 지나게 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물었으나, 그러나 이사이의 일곱 아들들 중에는 왕으로 선택된 자가 끼어있지 않았다. 아마도 사무엘은 그러한 사실을 하느님께서 주신 내적 음성 또는 내적 확신을 통해 알았을 것이다.
사무엘은 엘리압에 이어 아비나답과 삼마로 선택하지만 부름받지 못한다. 아비나답과 삼마는 형 엘리압과 함께 필리스티아의 골리앗이 침범했을 때 사울을 따라 종군했었다. 한편 여기서 '아비나답'은 '아버지는 훌륭하시다'란 뜻으로서, 이사이의 둘째 아들이다. 그런데 사울 왕의 둘째 아들이름도 '아비나답'이었다(31,2). 그리고 '삼마'는 '황무지'란 뜻이다. 이사이가 사무엘에게 그 아들 일곱을 보게 한다. 다윗의 가계에 따르면, 이사이의 아들은 다윗까지 포함하여 도합 7명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다윗까지 포함하면 이사이의 아들은 도합 8명이 된다. 이러한 차이는 분명 이사이의 8아들들 중 한 사람이 어려서 일찍 죽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당시 이사이의 가족들이 다윗을 아직 어른으로 생각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당시의 풍속으로 볼 때, 어른만이 제사의 초청에 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왕은 고대 중근동에서 종종 '목자'로 인식된다는 점에서, 여기서 다윗이 양무리 가운데 있는 것으로 언급된 것은 다윗의 미래를 상징적으로 예시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깃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느님은 그런 다윗을 선택한다. “그래서 이사이는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왔다. 그는 볼이 불그레하고 눈매가 아름다운 잘생긴 아이였다. 주님께서 ‘바로 이 아이다. 일어나 이 아이에게 기름을 부어라.’ 하고 말씀하셨다”(12).
'불그레‘함은 머리털 색깔이 붉음을 뜻한다. 대부분 검은 머리털 색깔을 지닌 중근동에서 이 붉은 색 머리칼은 귀한 것으로서, 그 지역에서는 아름다움의 한 조건이었다. 눈매가 아름다운 잘생긴 아이라는 말은 총기어린 아름다운 눈을 가리킨다. 이것도 뛰어난 얼굴 모습의 소유자가 갖추어야 했던 한 조건이었다(창세 29,17).
사무엘은 다윗을 선택한 주님의 말씀에 따라 기름에 담긴 뿔을 가져다가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 다윗은 모두 3차에 걸쳐 기름 부음을 받았다. 즉 여기 첫 번 기름 부음은 비공식적으로 이사이의 가족만 참석한 가운데 은밀히 부어졌고, 두 번째의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으로 올랐을 때(2사무 2,3.4) 기름 부음 받았다. 그리고 세 번째는 마침내 다윗이 전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했을 때(2사무 5,3)받았다.
형제들이 목격하는 가운데서 다윗이 기름 부음 받았다. 그러나 그때 이사이의 가족 이외의 사람들은 그 장소에 아무도 없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다윗의 형제들은 사무엘의 엄중한 부탁과, 그리고 사울의 보복 등을 우려해 그 사실을 비밀로 유지한 듯하다.
“주님의 영이 다윗에게 들이닥쳐 그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렀다”(13). 이것은 주님의 영이 다윗에게 즉각적으로 임했고, 또한 영구적으로 그에게 머물렀다. 이는 하느님께서 다윗에게 신정 국가의 왕으로서 이스라엘의 정치적, 도덕적,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역량과 은사를 허락하셨음을 뜻한다. 그 결과 다윗의 행동과 말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18절). 한편, 이처럼 기름을 붓는 객관적 의식(儀式)의 결과로 주님의 영이 주관적으로 임했다는 이 사실은 사울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났었다(10,1.10). 그러나 사울의 경우와는 달리, 다윗의 경우는 이같은 일이 기름 부음의 의식 직후에 있었으며 머물러 계신 주님의 영이 끝까지 떠나지 않았으며, 주님의 영이 임할 때 발작적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울의 경우와는 구별된다.
2사무 5,4에 이하며, 다윗은 그의 나이 30세에 전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된다. 그러나 여기서 처음 다윗이 사무엘에게 기름부음받을 때, 그의 나이를 15세 가량으로 추정한다. 아무튼 당시 다윗이 제사 의식에 공식 참여치 못했다는 사실은 그가 만 20세 이상의 성년 남자가 되지 않았음을 시사하므로(11절), 따라서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마침내 등극될 때까지 약 10-15년 가량을 예비 왕으로서 준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혹자는 사무엘의 생전에 다윗이 라마의 예언자 학교에서 일정 기간 동안 훈련받았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1사무 16,14-23 다윗이 사울을 섬기다
사울이 다윗을 선택한 기사(14-23절)에도 두 가지 전승이 들어 있다. 악령에 사로잡혀 고통당하는 사울에 관한 전승과 적대자 사울을 음악으로 진정시키는 다윗에 관한 전승이 그것이다.
“주님의 영이 사울을 떠나고, 주님께서 보내신 악령이 그를 괴롭혔다”(14). 14절에서 주님의 영이 이스라엘 초대 임금에게서 영원히 떠나고, 주님께서 그에게 악령을 보내신다. 구약성경에서는 악이나 유혹을 야훼의 손길 탓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신명 13,2-4; 2사무 24장; 아모 3,6 등). 하느님은 아비멜렉과 스켐 지주들 사이에 악령에 내리셨고(판관 9,23), 미카야 예언자 시대에는 거짓 예언자들의 입에 거짓말하는 영을 넣으신다(1열왕 22,19-22).
15-16절에서 신하들은 비파 연주로 사울의 주기적 발작을 완화시킬 음악 연주자를 구하라고 조언했다. 비파 연주는 예언자 집단을 황홀경에 빠지게 하는 촉매제로도 사용되었다(1사무 10,5; 2열왕 3,15).
17절에서 사울은 신하들에게 비파를 잘 타는 전문 음악가를 찾아보라고 한다. 그러자 18절에서 젊은 시종 가운데 하나가 즉시 매우 적합한 인물을 알고 있다고 보고한다. “젊은 시종 가운데 하나가 말하였다. ‘제가 베들레헴 사람 이사이에게 그런 아들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비파를 잘 탈 뿐만 아니라 힘센 장사이며 전사로서, 말도 잘하고 풍채도 좋은 데다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십니다”(18).
그는 다윗의 음악적 재능에 덧붙여 다른 좋은 자질들도 여럿 나열한다. 이로써 17-20장에서 펼쳐질 다윗의 활동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우선 그는 힘센 장사요 전사이다. 전사로서 다윗의 용맹은 필리스티아인을 패배시킴으로써 드러났다. 그리고 그의 능숙한 언변은 이스라엘에서 높이 평가받는 또 하나의 미덕이다(잠언 23,9; 25,9.11.15; 29,20). 다윗은 사무엘기 상권 17장 34-36절, 24장 10-15절, 26장 18-20절 등에서 자신의 언변을 증명했다. 다윗은 또한 훌륭한 외모를 지니고 있는데, 훌륭한 외모와 두드러진 신체 조건은 사울(9,2), 다윗(16,12), 압살롬(2사무 14,25-26)등 다른 왕권 후보자들에게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가장 눈에 띄는 자격은 주님께서 그와 함께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무엘기 상권 18장 12절, 14절, 28절 그리고 사무엘기 하권 5장 10절에서 확증된다.
“사울은 전령들을 이사이에게 보내어, ‘양을 치는 너의 아들 다윗을 나에게 보내라.’ 하는 말을 전하였다”(19). 19절에서 사울은 사람을 보내어 결국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다윗을 불러와 자신을 섬기게 한다. 이 구절에서 다윗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다.
20절에서 아들이 궁중 직무에 뽑혀 영예를 얻게 된 이사이는 선물들과 함께 다윗을 보낸다. 사울이 남쪽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실질적인 통치권을 유지했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의심스럽지만 이러한 이사이의 행동은 사울이 유다 지역에서도 실직적인 권위를 행사했다고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리하여 다윗은 사울에게 와서 그를 시중들게 되었는데, 사울은 다윗을 몹시 사랑하여 그를 자기 무기병으로 삼았다”(21). 21절에서 사울은 뛰어난 자질을 가진 다윗을 몹시 사랑하는데, 이 ‘사랑하다’라는 단어는 정치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다윗에 대한 요나탄의 사랑(1사무 18,1.3; 20,17), 사울 신하들의 다윗에 대한 사랑(18,22), 미칼의 사랑(18,20) 등도 모두 정치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의 무기병이 되었다. 무기병은 특별히 시중드는 자로, 요나탄과 그의 무기병 사이의 밀접한 관계(14,1)와 사울의 죽음 뒤 자살을 택한 사울의 무기병의 충성심(31,4-6)을 보면 그들의 관계를 알 수 있다.
22절에서 사울은 두 번째로 이사이에게 사람을 보내 다윗이 왕궁에서 직무를 수행하도록 요청한다. 23절은 음악가 다윗의 직무에 대한 묘사다. 주님께서 사울에게 악령을 내릴 때마다 다윗은 비파를 연주하여 사울을 일시적으로 안정시켰다. 그렇게 하여 사울은 편안해지곤 했지만 야훼의 영은 영영 내리지 않았고, 악령을 주기적으로 내쫓아야 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이 어깨 밖에 차지 못했던 사울의 당당한 모습은 이제 점점 움츠러들기 시작한다. 사울은 서서히 상황에 대한 지배력을 잃어 가며 자기 손에서 왕관이 미끄러져 나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는 ‘주님께서 보내신 악령’으로 표현된 어떤 정신 질환에 시달리고 있으며, 무엇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손쓸 수도 없는 끔찍한 공포에 사로잡혀 절망한다. 그의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영혼을 다윗이라는 청년이 음악으로 달래는 것이다. 18장 10-11절과 19장 9-10절에서는 다윗이 사울을 위해 연주하고 있을 때, 그를 두 번이나 죽이려 한 사울의 시도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