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cafe/15462F404D0D328C1E)
( 푸에르토리코 자치령 기 )
1492년 4월 17일, 크리스토프 칼럼버스는 스페인 왕실(Ferdinand and
Isabella)과 재정 지원 계약을 맺었다. 즉, 먼 바다로 항해하여 새로운
대륙을 발견 할 경우, 발견 된 영토의 통치권자가 되며, 전 자산의 10%를
소유 한다는 내용이다. 인류 역사에 큰 획이 된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의
시동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03C91434D0D330B22)
( 크리스토퍼 칼럼부스 )
1492년 8월 3일 세척의 배가 스페인을 출항, 10월 12일 새벽 먼동이
틀 무렵, 바하마 군도의 하나인 산살바도르( Half Moon Cay)에 도착,
이 곳을 인도의 동쪽이라고 생각하고, 이 곳에 살고 있는 원주민을
“인디안” 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1차 항해 후, 칼럼버스는 2차 항해에 관한 조건으로 스페인 왕실과 심한
갈등을 겪었으나, 드디어 1493년 9월 25일, 17척의 배와 1,500명의
선원으로 구성 된 함대가 2차 항해를 떠났다. 이 때 처음으로 유럽의 가축
(말,양,소 등)을 운반 했다고 한다.
1493년 11월 19일, 제 2차 항해 도중 칼럼버스는 큰 섬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원주민( Taino )의 수가 무려 5만 명이나 되었다. 평화를 사랑하는
원주민들은 칼럼버스 일행에게 강에서 발견되는 금을 소개하고 마음껏
가져가도록 했다.
그 후 그들은 이 섬을 " Puerto Rico (Port of Rich) "라고 불렀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4442F3F4D0D34BE26)
칼럼버스가 세상을 떠난 (1506년)후, 1508년 칼럼버스의 부하였던 Juan
Ponce de Leon 이 이곳을 다시 방문, 스스로 Governor 가 되고 1521년까지
이 지역을 통치하였으며, 그 후 400 년 동안 이 지역은 캐리비안 해역에서의
스페인의 중요한 군사 요충지가 되었다.
16 세기 말, 한 때, 영국과 네덜란드의 침공을 받기도 하였으나, 1897년 스페인
정부로부터 정식으로 자치권을 부여 받았다. 이듬해 1898년 미국 - 스페인 전쟁 때,
미국이 점령 하였다가 전 후, 정식으로 접수 하였으며,1917년 합법적으로 미국의
자치령으로 편입 시켰다.
면적 : 8959 km2
인구 : 3,856,000 명
수도 ; 산주안(San Juan )
1인당 국민 소득 : $ 7,000.-
11월 2일 (화) - San Juan, Puerto Rico
![](https://t1.daumcdn.net/cfile/cafe/144199454D0D367922)
( 접안 하기전 배에서 바라 본 산 후안, 푸에르토리코의 수도 )
멀리서 보이는 산주안( San Juan ) 시는, 목판 위에 정교하게 조립한 조각
품들처럼 보였다. 푸른 바다 빛을 배경으로 한 목판, 그 위에 백색과 초록색이
어우러져 요철로 점철 된 조각품.
배가 서서히 항구로 접어듦에 따라 여러 척의 쿠르즈 선박들이 해안을 끼고
정박 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한 곳에서 웅장한 여러 척의 쿠르즈 선을
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장관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53A88424D0D38332E)
우리의 Eurodam 쿠르즈 선이 푸에르토리코의 수도, 산주안 항구에 접안 한
시간은 오후 1시, 거대한 선체를 조심스럽게 흔들며 접안에 성공, 하선이 시작
되었다.
말로만 듣던 푸에르토리코, 미국의 자치령이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실 지도
에서도 찾아내기 어려웠던 섬이다. 간혹 국제 대회에서( 육상, 권투)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들이 출현 할 때마다 궁굶 했던 사항이다. 적어도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는 푸에르토리코의 이미지는 미국령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매우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8459A404D0D396E25)
인구 4백만 명, 1인당 국민 소득 $7,000, 미 본토 1인당 국민 소득의 17% 에
불과하나, 세계적인 행복 지수 조사 기관들의 평가에서는, 이들의 행복 지수는
항상 미국 본토의 행복 지수보다 월등히 높아 세계 10위 권 안에 놓여 있다.
최근 인터넷에 실린 시사 칼럼을 인용 해 보자!
영국 레스터 대학의 경제학자인 에이드리언 화이트 교수가 2006년에 발표한
세계 행복 지도에 의하면, 행복 지수 1위는 덴마크, 2위 푸에르토리코, 한국은
102위라고 소개 했다. 소득과 행복이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
하고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540553E4D0D3A5B2C)
( 섬 전체 해변을 따라 아름다운 해수욕장이 수도 없이 많다.)
“이스털 린의 역설 (Easterlin Paradox )" 이란 것도 있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나라 사람들보다 행복 하다고 느끼는 의외의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178개국의 국민 평균 수명, 건강, 국민 총 생산, 복지, 환경,
교육 등, 총 100개 항목을 종합 평가한 행복 지수에서 덴마크, 스위스,
오스트리아, 아이슬란드, 바하마 순으로 이어지고, 미국 23위, 독일 35위
영국 41위, 프랑스 62위, 중국 82위, 일본 90위, 한국 102위, 인도 125위 등.
![](https://t1.daumcdn.net/cfile/cafe/193CC3434D0D3AA729)
( 노점상이 관광객들의 인기를 끈다.)
하나만 더 인용하자.
미시간 대학 세계 가치관 조사(WVS) 팀은 1995년부터 2007년까지 97개국
국민의 행복도 조사를 했다. 1위 덴마크, 2위 푸에르토리코, 일본 43위, 중국
54위, 한국 62위, 순이다.
가치관의 정의를 다시금 음미 해 볼 대목이다.
황금이냐? 아니면, 자기만족에 충실한 행복이냐?
![](https://t1.daumcdn.net/cfile/cafe/14597E414D0D435228)
푸에르토리코의 수도, 산 후안 시가지 )
수도인 산주안은 구 도시와 신도시로 구분된다. 해안을 가르는 방파제를 중심
으로 동 쪽은 구시가, 서쪽은 신시가지다. 구시가는 주로 역사적인 유물들이
많고, 신시가지는 미국의 자치령이 된 이후 현대식 도시의 면모를 갖추었다.
관공서나 박물관, 기념관 등은 신시가지에 있다.
특히 신시가지 부두에 설치 된 현대식 쿠르즈선 접안 시설이 눈길을 끈다.
하루에도 10 여척의 5만 ~10 만톤 급 이상의 쿠르즈 선이 접안을 한다고
한다. 하루에도 수 만 명의 돈 잘 쓰는 관광객들을 유치하여 막대한 관광
수입을 올린다. 삼면이 바다인 나라, 관광 입국을 구호처럼 외치는 우리나라에
국제 규격의 쿠르즈선이 한 척도 접안이 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https://t1.daumcdn.net/cfile/cafe/183F52444D0D3C0427)
24인 용 관광버스의 운전기사는 40대 여성으로 안내 역를 겸하고 있다.
스페인의 후예답계 스페인 식 영어 발음과 자유분방한 제스처로 쉴 새 없이
승객들의 주의를 모은다. 승객들이 웃지 않아도 혼자 호방하게 웃는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344873F4D0D3FCE34)
( 화물 트럭을 개조한 관광 버스, 24인용, 운전 기사는 관광 안내역을 겸한다.)
신시가지는 버스에 탄 채, 창 밖 눈 요김 만으로 때우고, 구 시가지에 있는
성벽 앞에 승객들을 풀어 놓았다. 자유시간 3시간. 푸에르토리코의 가장 상징
적인 유물이니, 성벽에 올라 탁 트인 전망을 즐기면서 역사 공부를 하고 오라는
취지다.
검은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는 성벽은 멀리서 보아도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성벽에 다가 갈수록 성벽을 뒤덮고 있는 검푸른 이끼가 오랜 세월의
인고(忍苦)를 말 해 주는 듯하다.
“Fort El Morro,” 푸에르토리코의 역사를 대변하는 상징물이다.
성벽 길이 9.6km, 높이 15 m, 두께 6m, 이 성은 16세기 영국의 빈번한
침공에 대비하기 위하여 축성 된 이래 수 세기 동안 열강의 침공에 유용하게
활용 되였으며, 특히 미국과의 전쟁에서 위력을 발휘 했다고 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3458E404D0D41582B)
(푸에르토리코의 가장 상징적인 유물, Fort El Morro 성, 포대가 해안을 향해 배치되었다)
성벽 입구에서 긴 터널을 지나 광장으로 나오니, 다시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세 개의 동굴로 연결 된다. 그 중 하나가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정상은
사방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광장이다.
얼핏 성의 모양은 삼각형인데 넓은 면이 바다를 등지고 있다.
성벽 가까이에서 끝없이 펼쳐진 푸른 빛 바다를 조망한다. 확 트인 시야에
한 동안 넋을 잃는다. 조그만 동판 안내문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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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벽 위로 올라가면 넓은 공간이 조성 되어 있다.)
“ 우측으로 4,000 마일- 유롭, 서쪽으로 2,000 마일- 미국,
남쪽으로 500마일- 남미 대륙 “
![](https://t1.daumcdn.net/cfile/cafe/2045F2404D0D429528)
성벽 모서리마다 원형 초소가 있고, 성벽 사이로 대포를 설치했던 포대가
있다. 바다를 뒤덮고 몰려오는 미 해군 함대를 향하여 여기서 섬광을 일으
키며 포문을 열었으리라. 그 때의 포성이 그대로 들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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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잠시 상념에 빠진다. 국내 문제를 해결 한 서구 열강이 해외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 때가 15세기, 폴트칼, 스페인, 영국, 네덜란드, 등의
해양에서의 각축전은 그대로 세계사가 되었다. 특히, 16세기 칼럼부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열강들의 땅 뺐어먹기 투쟁은 20세기 초반까지 계속 되었다.
같은 시기, 우리들 조상의 위상은?
16세기부터 20세기 초반이면, 이조 10대 연산 군부터 27대 순종까지다.
사색당파에 국가가 찌들어 있을 때이고, 일본의 식민지가 됐던 시기다.
한 반도의 역사를 어떻게 평가 하여야 할까?
출항하는 시간까지는 아직도 많이 남았다. 많은 승객들이 육지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모양이다. 선내 식당이 오래간만에 한산하다.
오늘 카지노는 결장이다.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동안은 카지노 영업은
불법이다. 공해 상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
밤 10 시경 극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상하층 5백석 정도 되는 공간이
빈틈없이 찼다. 남녀 4인 보컬 그룹의 춤을 곁들인 노래가 한창이다.
안무가 생동감 있고, 요즈음 라스베가스에서 유행하고 있다는 뮤지컬의
테마 곡도 분위기를 돋운다.
밤 11시 6분, Eurodam호는 다음 목적지인 St. Thomas 섬을 향하여
San Juan 항을 출항하였다.
(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