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 네게도 분명 밤은 길겠지 외로울거야 |
이상하다 꽃그늘 아래 이렇게 살아 있는 것 |
여윈 개구리 지지 마라 잇사가 여기 있다 |
연잎 위에서 이 세상의 이슬은 일그러지네 |
나의 별은 어디서 노숙하는가 은하수 |
죽은 어머니 바다를 볼 적마다 볼 적마다 |
옷 갈아입어도 여행길에는 같은 이가 따라나서네 |
자식이 있구나 다리 위의 걸인도 부르는 반딧불이 |
죽이지 마라 파리가 손으로 빌고 발로도 빈다 |
꽃그늘 아래 생판 남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
때 낀 손톱 냉이풀 앞에서도 부끄러워라 |
사람이 물으면 이슬비라고 답하라 동의하는가 |
내 옷소매를 풀잎이라 여기니 기어오르는 반딧불이 |
무엇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나 마타리꽃은 |
쇠못 같은 앙상한 팔다리 가을 찬 바람 |
저녁 제비여 나에게는 내일도 갈 곳 없어라 |
새끼 참새야 저리 비켜 저리 비켜 말님 지나가신다 |
나무 아래 나비와 머무는 것도 전생의 인연 |
고향에는 부처 얼굴을 한 달팽이들 |
사람도 한 명 파리도 한 마리다 넓은 방 안에 |
쌀 주는 것도 죄짓는 일이구나 싸우는 닭들 |
이 세상은 나비도 아침부터 분주하구나 |
돌아눕고 싶으니 자리 좀 비켜 줘 귀뚜라미 |
재주 없으니 죄지은 것도 없다 한겨울 칩거 |
잠이 든 나비 들불의 연기가 뒤덮을 때까지 |
봄날 저녁 물 있는 곳에는 남아 있는 빛 |
무를 뽑아서 무로 길을 가르쳐 주네 |
눈 녹은 온 마을에 가득한 아이들 |
사람이 오면 개구리로 변해라 물 속 참외야 |
모 심는 여자 자식 우는 쪽으로 모가 굽는다 |
젊었을 때는 벼룩 물린 자국도 예뻤겠지 |
이슬방울 함부로 밟지 마라 귀뚜라미여 |
휘파람새는 왕 앞에 나와서도 같은 목소리 |
평등하게 새해의 눈비 맞는 작은 집 |
고아인 나는 빛나지도 못하는 반딧불이 |
혼자라고 숙박부에 적는 추운 겨울밤 |
몸에 따라다닌다 전에 살던 사람의 추위까지도 |
나는 외출하니 맘 놓고 사랑을 나눠 오두막 파리 |
사립문 위에 자물쇠 대신 얹은 달팽이 하나 |
나팔꽃으로 지붕을 새로 엮은 오두막 |
이 가을 저녁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가볍지 않다 |
얼마나 운이 좋은가 올해에도 모기에 물리다니 |
저녁의 벚꽃 오늘도 또 옛날이 되어 버렸네 |
좋은 눈으로 봐도 추운 기색이다 |
초겨울 바람 길어서 날 저무는 거리의 악사 |
주무시는 모습 파리 쫓아 드리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 |
고향 땅이여 닿는 것 스치는 것 가시나무꽃 |
달과 꽃이여 마흔아홉 해 동안 헛걸음이라 |
고요함이여 호수 밑바닥 구름의 봉우리 |
이곳이 바로 마지막 거처인가 눈이 다섯 자 |
올빼미여 얼굴 좀 펴게나 이건 봄비 아닌가 |
이 세상은 지옥 위에서 하는 꽃구경이어라 |
첫 반딧불이 왜 되돌아가니 나야 나 |
가을바람 속 꺾고 싶어 하던 붉은 꽃 |
이슬의 세상은 이슬의 세상이지만 그렇지만 |
다만 있으면 이대로 있을 뿐 눈은 내라고 |
극락세계에 가지 않은 축복 올해의 술 |
태어나서 목욕하고 죽어서 목욕하니 종잡을 수 없음 |
아름다워라 찢어진 문틈으로 보이는 은하수 |
죽으면 나의 날을 울어 줘 뻐꾸기 |
구석구석 내리는 새해 비를 맞는 작은 짐이며 |
새해도 길 떠난 그대로인 넝마주의구나 |
집 없이 에도의 새해를 맞이하도다 |
또 올해도 현세는 춥구나 초가집 |
흙벽으로부터 비스듬히 비치는 새해 아침 햇빛이여 |
신춘이여 연기가 나는 것도 겉모양 |
올해부터 고스란히 돈을 벌겠다 사바 놀이 |
붓글씨 쓰고 받을 밀감 보면서 정원 첫 붓글씨여 |
우는 고양이에게 빨간 눈을 하고 공놀이인가 |
한결같이 성대의 큰 연 작은 연이구나 |
축복으로 눈도 내리는 정월 보름 불태우기 |
도망가려고 할 때구나 물로 축복받는 오십된 신랑 |
물든 나막신 진흙으로부터 봄이 왔구나 |
정원이여 매화 대신 큰 눈보라 |
사람은 무사 왜 죠닌이 되어 오나 |
무사여 휘파람새마저 사용하는구나 |
흰 이슬에 첨벙 내딛는 까마귀인가 |
수레에 짓눌려 시든 제비꽃 |
무슨 벚꽃인지 금전 세상이 되었도다 |
나와 놀자꾸나 어미 없는 참새 |
학의 새끼의 천년도 하루는 줄었구나 |
곡물 가격 자꾸 떨어지는 더위이구나 |
하룻밤 넘긴 두부 불빛에 우는 모기여 |
새벽녁이여 희미한 안개가 밥상을 덮네 |
시원한 바람이 구불구불 돌아서 왔도다 |
가을밤이여 장지문 구멍이 피리를 부네 |
덧없는 세상은 덧없는 세상이지만 그렇지만 |
월화여 사십구년의 허송 세월 |
고향은 파리마저 사람을 찌르는구나 |
고요함이여 호수 바닥에 산봉우리 구름 |
걸으면서 우산 말리는 두견새 |
가을바람에 걸어서 달아나는 반딧불이 |
좁긴 하지만 뛰는 연습이라도 내 집의 벼룩 |
번뇌의 세상 아무리 벚꽃이 피었다 한들 |
이슬이 지네 추한 이 세상에는 볼일 없다고 |
이슬의 세상 이슬 속에서도 다툼이 있네 |
홀로인 것은 나의 별이겠지 은하수 속에 |
두 말할 필요 없이 뻐꾸기는 울보 스님 |
원숭이도 자식을 업고 가리켜 보이는 반딧불이 |
아무것도 없지만 마음의 편안함이여 시원함이여 |
저무는 날이 그리도 반가운가 풀벌레 소리 |
휘파람새가 흙 묻은 발을 닦는 매화꽃 |
갈퀴덩굴에서 저런 작은 나비가 태어나다니 |
달고 짜다면 필시 나의 이슬 남의 이슬 |
옆방에서 새는 불빛으로 밥 먹는 밤의 추위여 |
어린 은어는 서쪽으로 지는 꽃잎은 동쪽으로 |
야윈 국화도 비틀비틀거리며 꽃을 피웠네 |
수레에 눌려 짓뭉개어져 버린 제비꽃이여 |
달팽이야 봐, 봐, 너의 그림자를 |
오늘도 장구벌레 내일도 또한 |
쓸모없는 이 몸도 초대하네 모내기 새참 |
여름 매미의 울음은 이 세상에 주는 선물 |
사이좋구나 다시 태어난다면 들판의 나비 |
가엾어라 나를 따라오는 나비 |
달팽이 그 몸 그대로 자고 일어나고 |
달팽이 부처 몸을 둥글게 말고 잠이 들었네 |
오늘부터는 우리나라 기러기다 편히 자거라 |
노천탕에서 사람들 머리 세는 어린 나비 |
사람이 있으면 파리가 있고 부처가 있다 |
나를 보면서 얼굴을 찌푸리는 개구리여라 |
불안하게 빗속을 나는 봄날의 나비 |
덧없는 세상 저런 작은 새조차 둥지를 짓네 |
구석의 거미 걱정 마 대청소는 안 할 테니까 |
귀뚜라미도 따라서 들어오는 한겨울 칩거 |
나도 너처럼 늙을까 가을의 나비 |
그런 목소리라면 춤도 한번 추어 봐 개구리야 |
좀 거들어서 이 좀 잡아 줘 어린 참새야 |
백어 우르르 태어나는 아련함이여 |
한쪽 구석의 그을린 인형 한 쌍의 부부 |
한마음으로 피려고 하지 않는 문 앞의 매화 |
내 집의 벼룩 가엾어라 어느새 수척해지네 |
그 돌 위험해 머리를 부딪겠어 반딧불이야 |
휘파람새 오줌을 누면서도 경전을 외네 |
커다란 불상 콧구멍에서 제비 날아 나온다 |
모기는 내가 귀머거리인 줄 아나 자꾸 또 오네 |
젊었을 때는 소문날 정도로 사랑받았지 늙은 벚나무 |
이 세상은 풀벌레까지도 잘 우는 놈 못 우는 놈 |
불평을 말할 상대는 벽뿐 저무는 가을 |
쓸쓸함이여 어느 쪽을 향해도 제비꽃 |
자벌레까지 자로 재고 있다 내 단칸방 기둥을 |
봄은 오는데 마흔세 해 동안을 남의 밥이라 |
얌전하게 빈집 잘 지키고 있어 귀뚜라미야 |
나와, 반딧불이 방문을 잠글 거야 어서 나와, 반딧불이 |
아침에 내리는 비 어느새 곁에 있는 달팽이 |
달팽이 천천히 올라라 후지산 |
풀벌레 운다 어제는 못 보았던 바람벽 구멍 |
그네를 타네 벚꽃을 한 가지를 손에 쥐고서 |
이러나저러나 말하는 것도 잠시뿐 눈사람 |
나비가 안다 나의 몸도 먼지 같은 것 |
재 속의 불 살 나이 줄어듦도 저리하겠지 |
좋게 보려고 해도 역시 추운 그림자 |
달팽이 나와 함께 살자 첫 겨울비 |
살아남은 나에게 걸리는 풀잎의 이슬 |
다만 살아 있을 뿐이어라 나와 이 양귀비꽃 |
마음으로부터 고향에 눈이 내리네 |
음력 정월 매화 대신 날리는 큰 눈보라 |
나비 날아가네 마치 이 세상에 바랄 것 없다는 듯 |
첫 반딧불이 휙 하고 벗어나는 손바람 |
휴지에 싸여 있어도 빛나는 반딧불이 |
반딧불이 이리 와 반딧불이 이리 와 혼자 마시는 술 |
우는 풀벌레 너에게도 어머니가 있니 아버지가 있니 |
이슬의 세상이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하지만 |
울지 마 풀벌레 헤어지는 사랑은 별에도 있어 |
휴지를 깔고 앉는데 제비꽃 |
눈이 녹는다 어제는 못 보았던 '집 세놓음' 팻말 |
흩날리는 눈 반쯤 섞여 내린다 봄비 |
극락세계가 가까워져 오지만 몸은 춥구나 |
불을 끄러 때맞춰 왔구나 나방이 |
외로운 무덤 언제나 함께 있는 굴뚝새 |
이 모기 여인의 방 불빛을 보고 몸을 불살랐구나 |
뛰어라 벼룩 이왕이면 연꽃 위에서 |
술잔에 떨어진 벼룩 어서 헤엄을 쳐 헤엄을 쳐 |
번개에 휘청거리며 다리를 건넜어라 |
내 오두막은 풀들도 여름이면 여위어 가네 |
오는 반딧불이 내 오두막이라고 깔보는 건가 |
산 위의 달 꽃 도둑에게 빛을 내려 주시네 |
비 내리는데 어딘가로 향하는 달팽이 |
저녁달 아래 허리까지 옷 벗은 달팽이여라 |
이 달팽이는 못었을 먹고 사나 가을 저물녘 |
도망쳐 와서 한숨을 쉬는 거니 첫 반딧불이 |
날뛰는 벼룩 내 손에 걸려들어 부처 되어라 |
내가 죽으면 무덤을 지켜 주게 귀뚜라미여 |
쓸모없는 풀 너도 높아져 가고 해도 높아지고 |
흔들리면서 봄이 사라져 가네 들판의 풀들 |
오고 또 와도 서툰 꾀꼬리 우는 집 담장 |
뛰는 솜씨가 서툰 요 벼룩 귀여움은 한 수 위 |
나의 가을 달은 흠 없는 달 그렇지만 |
지는 억새꽃 점점 추워하는 게 눈에 보이네 |
그럴 가치도 없는 세상 도처에 벚꽃이 피었네 |
늙은 몸은 허무가 길어도 눈물이 나네 |
나팔꽃이여 사람의 얼굴에는 결점이 있다 |
이슬의 세상 이슬을 노래하는 여름 매미 |
오는 사람이 길을 내 주네 대문 앞의 눈 |
울지 마 풀벌레 때가 되면 세상이 나아질 거야 |
저녁의 벚꽃 놀이 집이 있는 사람들은 바삐 돌아가네 |
무슨 일로 그리 심사숙고하나 달팽이 |
내 집에서는 휘파람만 불어도 모기가 달려오네 |
위를 향하고 떨어지며 우네 가을 매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