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열차 타고 '춘천의 추억' 속으로 쾌속질주!
'ITX-청춘' 춘천 여행
이름 한번 감성적이다. 춘천 가는 열차 이름이 '청춘'이다. 청량리의 '청', 춘천의 '춘', 앞 글자를 따서 지었다는데, 그보다는 춘천행 열차에 몸을 싣던 청춘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준고속열차를 뜻하는 ITX까지 붙여 'ITX-청춘'. 올 봄부터 운행을 시작한 쾌속열차는 용산에서 춘천을 1시간여 만에 주파한다. 청춘 시절을 더듬는 추억 나들이는 ITX처럼 빠르게 달려간다.
ITX-청춘 2층 열차
종착역인 춘천역
청춘열차는 모양새가 제법 근사하다. 한가운데 2층 열차까지 갖췄다. 유럽 기차 여행에서나 만났을 2층 기차를 용산역에서 보는 것 자체가 생경하다. 내부는 꽤 쾌적하다. 간식거리를 사먹을 수 있는 자동판매기가 있고, 자전거 투어 열풍에 맞춰 자전거 비치대가 따로 마련돼 있다. 아니나 다를까. 쫙 달라붙는 유니폼에 헬멧, 선글라스까지 이미 착용한 바이크족이 좌석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머리를 받치고 있는 하얀 등받이 덮개다. 덮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청춘으로 달려갑니다!' 멋지다. 그래, 이 열차를 타면 분명 청춘으로 달려가는 거다. 평일인데도 머리 희끗한 노부부에서 연인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여행자들이 춘천행 열차에 몸을 싣고 있다. 이들은 흰 덮개에 머리를 기대고 차창을 내다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흐뭇한 미소만큼은 누구나 모두 '청춘'이다.
청춘열차는 빠르다. 빠른 구간은 180km로 달린다. 덜컹거리며 스르르 달렸던 예전 경춘선 통일호 열차와는 분명 다르다. 추억의 MT 공간이었던 마석, 청평, 강촌 등은 쏜살같이 지나친다. 평내호평, 가평, 남춘천, 춘천역이 청춘이 서는 역이다. 그나마 중간 역을 건너뛰고 춘천까지 직통으로 내달리는 열차도 있다. 덕분에 춘천에 닿는 감성의 거리는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예술가의 흔적이 서린 중앙시장, 망대골목
낭만시장으로 변신중인 중앙시장
[왼쪽/오른쪽]망대와 망대길 전경 / 조각가 권진규의 하숙집 골목
춘천은 많이 변했다. 춘천역부터 번쩍번쩍해졌고, 역에서 받아든 춘천 지도를 보니 명동에만 있는 줄 알았던 닭갈비 골목은 어림잡아 일곱 곳이다. 신북, 동면, 만천리, 낙원동, 온의, 후평동… 이게 다 닭갈비 골목 이름이다. 웬만한 식당들은 세 집 건너 한 곳이 닭갈비 아니면 막국수 간판을 내걸고 있다.
이럴 때는 차라리 오래된 터의 뒷골목이 그립다. 명동과 중앙시장이 춘천 나들이의 원조 아니었던가. 춘천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시장인 중앙시장은 때마침 낭만시장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변신 중이다. 비좁은 시장 골목 구석구석 벽화가 그려졌고, 연주회가 열리며, 춘천의 옛 이야기와 풍경과 시장을 잇는 산책길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일단 주목할 곳은 망대골목이다. 망대골목 언덕 위에는 일제강점기에 화재 감시를 위해 세웠다는 망대가 남아 있다. 망대로 오르는 길이 예전 화가 박수근이 살았고, 조각가 권진규가 하숙을 했던 그 골목이다.
중앙시장에서 명동길 반대편으로 접어들면 옛 풍경 산책이 시작된다. 첫 번째 만나는 길이 간식 골목. 이곳에는 30~40년 세월을 간직한 작은 분식집들이 오밀조밀 몰려 있다. 튀김만두와 떡볶이의 결합체인 '만볶이'가 간식 골목의 주 메뉴. 간식 골목 끝자락에서 농협 건물을 마주보고 왼쪽으로 올라서면 망대골목 입구다. 조각가 권진규가 춘천고에 다닐 때 망대 아래 동네에서 하숙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고, 화가 박수근이 은사가 있던 춘천에 와서 개인전을 열고, 유화를 그리고, 생활이 어려워 나무를 해다 시장에 내다팔았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골목이다.
가장 오래된 고갯길과 죽림동성당
하늘 카페에서 내려다본 약사리 고갯길
죽림동 성당
예술가들의 사연을 더듬으며 언덕을 오르면 흰 망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망대는 사방이 탁 트인 춘천을 내려다보며 화재를 감시하던 탑이었다는데, 힘겹게 산을 넘던 중앙시장 상인들이 망대 인근 산비탈에 하나 둘 집을 지어 살면서 달동네가 형성됐다고 한다. 언덕 정상의 기대슈퍼는 20년 전 달동네 주민들이 서로 기대 살자는 뜻에서 이름 지은 곳으로 이 동네의 유일한 슈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망대길 언덕을 지나 약사천 방향으로 내려서면 망대정과 '하늘' 카페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에서는 망대골목을 아우른 약사동 일대의 골목과 옛 가옥뿐 아니라 남춘천과 공지천까지 내려다보인다. 하늘 카페의 야외 테라스는 이 지역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조망 포인트다.
약사천 건너서 만나게 되는 남부사거리 인근의 맛집에서도 오랜 맛과 사연이 묻어난다. 춘천의 3대 막국수집으로 꼽히는 남부막국수는 외관조차 허름한 예전 기와집 그대로다. 입간판도 입구도 큰마음 먹고 찾지 않으면 쉽게 지나칠 정도로 얄궂다. 남부막국수가 문을 연 지 올해로 45년째. 고춧가루로 간을 하고 국물을 자작하게 부어 비벼 먹는 법은 예전 그대로다. 남부막국수 옆에는 1968년부터 영업을 했다는 대원당 빵집이 사이좋게 들어서 있다.
마임 등의 공연이 열리는 몸짓극장을 뒤로하고 다시 중앙시장 쪽으로 약사리 고개를 넘는다. 실제로 망대길과 나란히 늘어선 약사리 고개는 춘천에서 가장 오래된 고갯길이다. 봇짐 멘 장사꾼과 주민들이 시내로 가기 위해 넘나들던 고갯길은 예전 약사동에 형무소가 있었을 때 독립투사들이 포승줄에 묶인 채 끌려가던 곳이다.
그 약사리 고갯길 끝자락에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죽림동성당이 자리 잡았다. 죽림동성당은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 살아남은 곳으로, 분주했던 시장이나 골목과는 달리 아늑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앞마당 벤치에 앉아 성당을 바라보고 있으면 고갯길 산책의 피로가 차분히 가신다.
방송국 안에 들어선 갤러리 카페
강원도립 화목원
알 뮤트 카페와 의암호
망대골목 풍경 산책은 번잡한 도심 한가운데서 느닷없는 한적함으로 반전의 감동을 안겨준다. 좀더 완연한 산책을 원하면 외곽으로 발길을 옮겨도 좋다. 춘천호 가는 길에 있는 화목원은 꽃과 나무 외에도 연못, 분수, 박물관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아기자기한 산책로를 걷다 보면 산림박물관과 반비식물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화목원 인근에는 인형극장과 인형박물관도 있어 함께 둘러보면 좋다.
강변과 예술이 어우러진 공간은 춘천MBC 내에 자리한 '알 뮤트 1917' 갤러리 카페가 압권이다. 딱딱하게 느껴지는 방송국이 갤러리 카페 덕에 부드럽게 변신했다. '알 뮤트 1917'은 현대미술가 마르셀 뒤샹이 <샘> 이라는 작품에 적어놓은 서명이다. 일상의 어떤 것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정신과 맞닿아 있다. 방송국을 갤러리 카페로 재구성한 것도 그런 취지와 제법 어울린다. 카페 내부에 작품들을 실제로 전시하고 있다.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의암호, 공지천 또한 수려하다. 단, 갤러리 카페에서 너무 큰 소리로 대화하는 것은 주의해야 듯.
ITX-청춘이 닿는 가평역 주변도 '청춘'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국제재즈페스티벌의 메카로 자리매김한 자라섬은 가평역에서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거리다. 4개의 섬으로 이뤄진 자라섬은 캠핑족의 아지트로도 완벽하게 변신했다. 섬은 드라마 <아이리스> 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자라섬 초입의 사계절 정원인 이화원은 동서양의 열대 및 난대식물과 브라질의 커피나무 등을 커피 한잔 곁들이며 만날 수 있는 호젓한 곳이다.
자라섬
첫댓글 기차타고 여행을 신나겠죠 ~~!
평온한 밤 되삼~~!!
좋은곳이네요 ^^
즐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