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학기를 끝으로 은퇴하였다.
아이들을 좋아하여 여고 때부터 주일학교 봉사를 하였고 뒤늦게 유아교육 공부를 하여 아이들이 다니던 유치원에서 종일반 지도를 하였다.
이민 올 무렵, 함께 근무하던 동료 교사가 영국 유학을 다녀왔고 캐나다로 이민간다는 나에게 정보를 주었다.
선생님, 영국에서 저는 특수교육을 공부하였어요. 유치원에서 무언가 좀 배우려고 기웃거렸지만 접근할 수가 없었답니다.
캐나다도 영연방이니 아무래도 유치원은 어려울거예요.
2001년 2월 중순
캘거리 공항의 칼바람은 무섭게 불어댔다
낯선 다른 나라에 도착하였다는 것이 실감났다.
한국에서 미처 다 마치지못한 송년회의 눈물겨움은 온몸에 열이 나면서 몸살로 찾아왔다.
임시로 빌린 타운 하우스 창가에 3월이 기웃거리는데 현관 옆 우편함에 무언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커뮤니티 잡지였다.
부활절이 다가오는지 달걀 초코렛 문양에 색칠하기 대회 광고가 있었고 그 옆에 아주 작은 글씨로 데이 케어 교사 모집 광고도 보였다.
데이 케어라, 아 옆집 아이가 다닌다는 어린이집이라고 했지
어느 새 나는 잡지에 적힌 전화번호로 다이얼을 돌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지 이 주 되었고 유치원 교사였습니다. 배우며 일한다는 광고를 보고 전화 드리니 메시지 받으시는대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날 이력서를 준비해 오라는 답변을 듣고 찾아간 데이 케어에서 나는 그날부터 일하게 되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영어를 그럭저럭 하는 줄 알았는데 자꾸 벌어지는 영어 듣기 실수를 하면서 칼리지에서 하는 영어 학교에 가기로 하였다.
오전에는 영어 배우고 오후에는 일하고 퇴근하고 집에 와서는 영어 숙제로 저널을 썼다.
캘거리에서는 여름마다 스탬피드 축제를 한다.
그해 처음으로 보게된 뜨거운 축제 그러나 나의 마음은 앨버타 주정부에 보낸 교사 라이센스를 기다리느라 지쳐있었다.
중간 점검차 주정부 사무실에 전화하였을 때 직원은 추가로 성적증명서를 요구하였다.
급한 마음에 학교에서 바로 주정부 사무실에 우편으로 보내도록 부탁도 하였었다.
그러나 벌써 몇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여름이 거의 끝나갈 무렵 현관 옆 우편함에 누런 봉투가 보였다.
혹시, 하는 마음에 열어보았더니 역시 사자 두 마리 그림이 그려진 레벨 3 데이 케어 자격증이었다.
서류를 보는 순간 기쁨도 잠시 눈물이 쏟아졌다.
이그젬션(면제) 캐나다에서는 아이들을 돌보는 데이 케어 인력이 모자라서 자격증을 받기 전 대기하는 기간 동안에 정부에서 면제 서류를 주어 근무하게 한다.
자격증을받은 이후 나의 대우는 급격하게 달라졌다. 월급은 배가 되었고 베네핏(복지)도 좋았다.
마침 다운 타운 영어 학교 안 빌딩에서 교사 채용 공고를 보게 되었고 나의 포트 폴리오는 그곳에서 원하는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었다.
십일 월부터 정식 근무하게 되어 삼 년 넘게 근무하다가 같은 계열인 석유회사 빌딩 안 데이 케어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친정어머니의 도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는 우리가 이민가는 것을 많이 걱정하셨다.
유난히 추위를 타는 딸이 그렇게 춥다는 캐나다로 살러 간다고 전화 하실 때마다 너희 안가면 안되니, 하고 물으셨다.
그해 어머니를 하늘 나라로 보내드리고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매니저가 물었다.
좋은 조건인데 석유회사 데이케어로 가면 어떨까요.
그렇게 시작된 다운 타운 석유 회사 안 데이 케어 생활은 십 년을 넘게 이어졌다.
나의 뜻은 아니었지만 돌아보면 주님의 섭리가 작용한 것이리라.
부족한 데이케어 건물 대신 이제는 가정에서도 아이들을 볼보는 데이홈 시스템이 정부에서 발표되었다.
다행히 그 시기에 아들이 독립한다고 방을 얻어 나가니 지하실이 비게 되었다.
케네디언들은 베이스먼트(지하)라고 부르지만 우리 주거 형식으로는 뒷마당과 연결된 반지하라고 보면 될 것이다.
2011년 9월 새학기가 시작되면서 에이전시의 도움을 받아 데이홈 비즈니스를 시작하였다.
동네 아이 한 명으로 시작한 데이홈은 늘 기다리는 아이들로 분주하였다.
특별히 세계에 불어오는 한류 열풍과 K 문화로 학부모들에게 관심이 커졌다.
피아노와 사물놀이 악기등을 이용한 음악 프로그램이 주인기였고 이탈리아 레지오 에밀리아 지역에서 시작된 프로젝트 기반의 유아교육 철학인 레지오에밀리아 접근법 교육은 한국에서부터 지도하던 방법이라 익숙하였다.
어느덧 십사 년 차로 접어들면서 슬슬 은퇴를 생각하게 되었다.
남편 베드로는 먼저 은퇴하여 여름마다 골프를 즐기고 주말에는 함께 로키 산행을 하였다.
은퇴 조언을 보면 가장 많이 말로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한다.
정부에서 주는 연금은 작아도 참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어머니가 사시는 노인아파트에서는 효자도 이런 효자가 없다고 한단다. 하루도 날짜를 어기지않고 나오는 연금이 얼마나 고마운가 하시면서.
우리도 이제 그 대열에 서있다.
아이들이 독립하여 분가하여서 제 아이들을 잘 기르고 있으니 우리는 이제 우리의 삶을 살아가야지
다가오는 이 월에는 가족의 날이 있다.
우리는 이제 이민 이십오 년차 중견 이민자가 되었다.
돌아보면 무조건 감사할 뿐이다.
오늘 이 자리에 우리가 두 발로 서있게 하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