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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차말씀열기(83)_에봇과 흉패=제사장과 백성들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출28:28,요17:21-26,요일4:9-16)
출애굽기 28장 28절 보겠습니다. 제사장의 의복 가운데 판결 흉배에 관한 부분 28절 함께 읽겠습니다. 28절 청색건으로 흉패 고리와 애복 고리에 매어 흉패로 공교히 짠 애복 뒤 위에 붙여 떠나지 않게 하라 전체적으로 말씀을 드렸고 오늘은 그중에 남아 있는 한 부분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사장의 가슴에 붙이고 있는 이 판결 흉배 몇 가지 의미가 있죠.
함께 나눴습니다만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는 하나님 앞에서 보석 같은 존재라는 거죠. 12지파를 말하고 보석 같은 존재라고 그랬습니다. 그 안에 들어있는 우림과둠님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에 인도하심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판단하고 공의로 심판하기도 하고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고 그랬고 결국은 말승과 성령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그랬습니다. 어쨌든 015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판단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의 원함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이고. .
그것이 가슴 위에 항상 있으라 가슴을 품고 거기에 새겨 있다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보석처럼 정교하게 여기시고 동시에 공의로 다스리신다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게 바로 이 흉배 판결흉배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의 순종 우림과 등림의 인도함을 받아서 말씀의 순종하고 언약을 지키면 이제 그들은 소유가 된다. 내 보배다 그런 뜻입니다. 출애 읽기 19장 5절에서 6절 말씀 다 기억하십니까? 기억하시죠.
세굴라 세 개가 다 네 개 속하였는데 말씀을 지키면 소유가 된다고 그랬는데 바로 그 소유된 백성이 바로 이 보석 같은 존재라는 겁니다. 그래서 언약을 지키는 백성 하나님의 말씀에 인도함에 따라 순종하는 그 백성들을 세굴라라고 하고 보배라고 합니다. 보석 같은 존재라는 거죠. 하나님 안에서 보석 같은 존재 우리를 그렇게 생각하신다는 겁니다. 언약 안에 있는 백성이 그렇다 라는 거죠. 하나님이 우리를 보석처럼 아낀다라는 것은 엄청나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죠. 우리는 별로 볼품없어 보이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라는 겁니다.
흉배의 규정에서 이게 몇 줄이 그 앞에 22절로 가보시면 정검으로 노끈처럼 딴 사스를 흉배 위에 붙이고 그다음에 23절에 고리를 달고 24절에 고리를 꿰어서 매고 25절에 금태에 매고 26절에 달고 27절의 끝에도 달고 28절에는 고리에 껴서 흉배로 공교히 짠 에봇 위에 에봇띠 위에 붙여 떠나지 않게 하라 이렇게 붙여서 떠나지 않게 하라 이거는 떠나지 않는다는 건 분리불가라는 뜻입니다.
분리불가분리 풀리 불리에 불구하고, 이 붙이라는 게 뭔가 하면 하야에요. 하야 다 기억하시죠. 그렇죠. 그러니까 12지파는 어디에 붙어 있어야 된다고요. 에봇 그러니까 대제사장이 입고 있는 대제사장의 마음에 새겨져 있어야 하는 분리불가한 존재라는 겁니다. 존재예요. 그냥 그래서 정확하게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몇 줄이 나와 있죠. 그러니까 붙여서 떨어지지 않게 하라는 항상 붙어 있어야 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분리불가한 존재 그러니까 존재론적으로 하나라는 거야. 하나 정확하게 하나하나 연합 연합되어서 하나라는 뜻입니다. 이게 성도의 존재 방식을 설명하는 구절이에요. 성도들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하야가 존재라고 그랬죠 우리의 존재 방식은 어떠한가 라는 겁니다. 금방 이해가 가요 우리가 우리가 살아있되 어떻게 살아 있어야 된다. 하나하나 그러니까 제사장 가슴에서 결코 분리되면 않도록 단단히 고정시켜서 딱 붙여놓으라 본드처럼 붙여서 분리되면 안 된다라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과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죠 예수 그리스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존재론적으로 하나가 돼야 된다라는 거예요. 하나가 이게 존재 방식이에요.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이라고 해요. 되게 중요하죠. 그냥 우리는 대충 살면 안 되는 거죠. 우리가 지금까지 주일날 오전에 한 거예요. 이게 제사장은 예수님 대제사장 우리 용운의 대제사장 백성의 12지파는 오늘날 그 당시에 백성이고 오늘날 우리 교회를 말하고 우리를 말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제4장이니까.
예수님과 백성들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래서 나의 아내 그하라 하고 있는 내용이 그겁니다. 그래서 일곱 나라의 연합이 주는 의미가 똑같은 거죠. 그런가요? 그래서 이 하야라는 단어 우리는 다 알죠 이제 새언약 창세기의 빛이 이스라가 하야였죠 그 다음에 새언약에서 마음의 새기라 그게 하야 존재론적으로 하나라는 겁니다. 우리는 분리되어서 살 수 없다. 그 내용이요. 정확하게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에요.
여기 대제사장 의복에 의복에 나오는 이 내용이 제일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고 그다음에 백성과 제사장과의 관계 하나는 이 제사장이 하나님을 섬기러 갈 때 어떠한 자세로 가야 된다. 이 딱 두 가지거든요. 이 중에 이제 우리 모습과 제사장인 우리의 모습이 어때야 되는가를 정확하게 볼 수가 있죠. 우리는 백성으로서 자녀로서 그 안에 거하고 있어야 된다는 걸 말해요. 항상 그래서 나는 저 안에 있다. 저 안에 있다. 성령 안에 있다. 항상 여러분 반복적으로 인식하라고 그랬죠 하고 계세요. 그렇게 할 때 뭔가 다르던가요 달라야 돼요. 왜냐하면,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
라는 뜻이잖아요. 그럼 그리스도의 다스림 안에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그냥 나 혼자 서 있는 거랑 이건 하늘과 땅 차이죠. 완전히 다른 겁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와 붙어있는 관계라는 거예요. 절대로 떼지 말라는 거예요. 가슴에 이름을 새겨서 마음에 붙이고 있으라는 거예요. 이스라엘 제사장은 어차피 영원한 제사장으로 오시는 스님을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니까. 다른 말로 풀이하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 연합되어 있을 때만 연합되어 있을 때 연합 하나 되어 있을 때만 그때만 우리는 존재가 된다라고 수없이 했죠.
콜레스에서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 있느니라 존재가 된다고 그랬죠 그러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 살아있는 상태가 된다. 이런 뜻이에요. 존재와 비존재의 차이라고 그랬죠 그러니까 우리가 그리스도 밖에 서 있으면 비존재라는 거예요.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거예요. 이건 이제 좀 와닿는 게 다르죠 그리스도 밖에서 아무리 발버둥쳐도 존재하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수십 년 교회 다녀도 나 혼자 따라 혼자 따로 놀면 하나님 안에서는 하나님 눈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리고 만다는 거죠. 이건 좀 심각하죠. 얼마든지 가능하죠.
교회 다니면서도 나 혼자 알아서 다니면은 내 멋대로 살면 그 상태로는 존재하지 않는 상태라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르는데 비존재 모르지 비존재니까 모르죠 존재하지 않는 걸 어떻게 알겠어요. 뭐가 있어야지 그렇죠. 긴가민가 보여야지 존재해야지 인식이 될 거 아닌가요 그래서 예수 이름으로 사역도 하고 별의별 걸 다 해도 예수님이 그랬잖아요.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른다는 존재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율법 안에서 아무리 그렇게 행해봐야 때로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라는 거죠. 먼저 존재 안에 있어야 그 다음에 뭐가 있는 거죠. 그렇죠. 중요하죠. 우리가 행하는 모든 종교 활동 예배 행위 모든 것들이 그렇다라는 거죠.
밖에서 아무리 발버둥 치고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거라니까요? 그러니까 그건 연락이 안 돼요. 아무런 하나님께 아무런 뭐가 안 된다고 없는 거라고요. 그러니까 예배 행위 그 자체가 없는 거라고요. 그러죠 아닌가요 아니 말씀 그대로 제가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러면 어떻게 그 안에 붙어서 있죠. 지금까지 한 거잖아. 이거 하나님께로 나서 우리는 그리스 안에 있죠. 이미 하나님이 우리를 그 안에 심어놨잖아요. 그런데 육에 속한 자아가 강할 때는 밖에서 알아서 하죠. 그런데 어떻게 그 안에 있는가 영생을 얻은 자는 그 안에 있죠. 그런가요?
영생은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는 그 상태를 영생이라고 그랬잖아요. 영생의 실제는 그 안에 거하면서 교재를 나누는 게 영생을 실제로 지금 현재 누리고 있는 거고, 이루고 있는 거고, 행하고 있는 거죠. 맞나요? 다른 말로는 예수님과 교회는 분리가 안 되죠. 예수님은 머리고 우리는 지체죠 그러니까 지체가 따로 넣을 수는 없죠 분리될 수 없잖아요. 몸에서 지체를 떼낼 수 떨어져 나가면 이건 없는 거죠. 붙어있을 때만 있는 거죠. 그거하고 똑같은 개념이죠. 그래서 우리가 그 안에 있는 것은 식탁을 통해서 연합해서 영생의 관계 안에 있는 걸 말하고 있다라는 걸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이토록 꼭 붙어 있으라 여기 껴서 매라 매달아라 굳이 이렇게 계속 강조하는 이유를 이제 아시겠죠. 왜 그렇게 강조할까요? 왜 이토록 붙어 있으라고 그렇게 말을 하냐고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방금 말씀을 드린 대로 왜 지금까지 떨어져 있어 고통과 괴로움만 당하고 있었잖아요. 그렇죠. 창세 이후로 분리되어 있었잖아요. 우리가 지금까지 했던 분리 분리되어서 죽음의 고통 괴로움을 맛보고 있었죠. 그러니까 분리된 상태에서 하나님과의 교통을 할 수가 없죠 그러니까 모든 게 불통인 거예요. 불통 사통불통 붙어있는 건 함께함이죠.
붙어있는 거 연합에 있는 함께를 성경에 계속 우리가 나눴죠 에트라고 기억나요? 이게 바로 뭐라고요. 알페가 오메가 함께 하고 있는 것 형통이라고 그랬잖아요. 형통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심으로 그가 형통하였더라 여러분은 열심히 해서 뭘 형통해야죠 뭔가 뼈빠지게 해서 형통하기를 원하죠. 분리되어서 뼈 빠지게 하면 존재하지도 않는 거예요.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안에 붙어있기만 하면 우리는 똑같이 동일한 존재예요. 보석의 위치가 바뀌어도 그게 그대로 있죠.
그게 형통이라는 거예요. 나무가 가지가 나무에게 붙어 있으면은 열매를 저절로 맺는다고 한 바로 그 말씀이죠. 새언약에는 말씀을 마음에 새김으로 연합한다고 그랬고요. 연합하는 이유가 하나님이 하나님 되고 나는 그 백성의 자리 바로 이거죠. 가슴에 새겨서 하나가 되는 백성이 되는 세굴라 가장 귀한 존재라고 했던 그 말씀 그게 언약이었죠. 이게 언약이에요. 그러니까 언약을 보여주는 그림이에요.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가 되는 것은 지체가 몸에 붙어 있을 때만 가능한 거죠. 그런가요?
그래서 예수님이 공생의 마지막에 기도했던 게 요한복음 17장 20절에서 26절 아래 쭉 나오는 그거였죠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처럼 너희도 우리 안에서 온전한 하나 그게 완성품이라고 이게 완성품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모습이에요. 그러니까 그 안에 있을 때만 우리는 완성된 존재라는 거죠.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삼위일체 안에 연합해서 거하는 거라고 그랬죠 상원해줘 그럴 때만이 그게 완성품 그러니까 하나님은 분리된 우리를 교회로 불러서 완성품이 되기까지 만들어 가겠죠. 교회에 온다고 해서 완성된 거 아니에요. 불러내었으면 이제 연합되어서 온전한 하나를 이루어야 완성품이죠. 거기까지 하나님은 쉬지 않고 일하시죠. 그게 완성품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온전한 완성품이 되었을 때 그걸 하나가 되었다. 너와 내가 연합대화 하나가 되었을 때 그걸 완성품이라고 하는 거예요. 완성품에 다스리는 자로 등극할 때가 바로 일곱 날이라고 했죠. 샤와트 기억나죠. 완성품의 하나님이 좌정할 때가 바로 일곱 날 샤바트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 보석이 붙어서 떨어지지 않게 있으라는 것은 우리가 항상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하는 거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 이 수가 그리스도여야 한다는 거예요. 주가 되어서 나를 다스리고 인도하는 상태가 되어 있어야 우리는 존재하고 있다 라고 그게 우리의 존재예요.
그러니까 각자 따로 떨어져 각자 도생이 안 되는 거예요. 그건 없는 거고, 존재하지 않는 상태라는 겁니다. 성경이 다 정확하게 맞죠. 그래서 여러분이 이제 형통하죠. 하면 어디 가나 형통하잖아요. 옥살이 하면서 형통 총살이 하면서 형통 그것만 있는 거 아니잖아요. 총리 하면서 형통 앞에 두 개는 없으면 좋겠죠. 그렇게는 안 됩니다. 그게 과정인데요. 그렇죠.
어쨌든 예수님이 그렇게 요한보험 10장 마지막에 공생이 마지막에 그렇게 기도를 하시면서 기도 그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 영생을 얻는 자들이 얻은 자들이 하나가 되는 것 그리고 그 영광을 보는 것까지 가 있어요. 그러니까 하나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영광을 보게 된다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거예요. 스님이 만세전에 누렸던 영광을 우리에게도 준다고 했던 그 영광 그 영광이 바로 수 그리스도의 생명 수 그리스도의 성품 자체라고 그랬죠 그래서 그렇게 하나 되어 있을 때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거예요. 그냥 영광이 그냥 나타나는 거예요. 존재 자체가 영광이 된다. 라는 거죠.
뭔가 해서 영광이 아니고 그 안에 있을 때 왜 영광이 되는가 이수 그리스도만 나타나잖아요. 그렇죠. 성품만 나타날 거 아닌가요 그러니까 영광이죠. 그 부분은 많이 했던 부분이고 어쨌든 영생 얻는 얻은 자들이 아들 안에 거하는 것 요한일수로 가면 계명을 지키면 그 안에 거한다고 그랬죠 사랑할 때 계명의 완성 하나밖에 없죠 사랑할 때 그 안에 거한다. 그럴 때 계명에 복종하는 거다 그럴 때 그 안에 거하는 거다 라고 그랬죠 그래서 계명을 지켜 복종하면 그 사랑 안에 거하고 우리는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는 연합이 이루어지는 그게 요한질서 4장에 나오는 요한의 전체 내용이었죠.
우리 얼마 전에 했지만, 그때 어쨌든 우리는 아들 안에 거하고 아버지 안에 거하게 되는데 그게 영생의 실제죠 실제 안에 거해서 하나가 되는 존재가 됐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 우리도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으니까 하나님 앞에 보석이 되는 거예요. 연합되어 있을 때 보석이라는 거예요. 그리스도가 붙어 있을 때만 보석이라는 거죠. 떨어져서 아무리 멋진 종교활동을 하더라도 여기서는 벗어날 수가 없어요. 어떠한 것도 인정이 될 수가 없는 걸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헛된 종교활동을 많이 했는지라는 것들은 이제 정확하게 깨달으셔야 돼요.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 안에라는 단어가 우리가 지금까지 하고 있는 성경 전체 내용을 다 포함하고 있는 한 단어가 바로 그리스도 안에입니다. 그리스도 아니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기도했던 부분도 그거고, 그것이 곧 영광이라고 그러고 우리를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창조했다고 그랬죠 그러니까 우리의 창조 목적은 바로 연합되어 완성품이 되어 하나가 되었을 때 그것이 영광이 되고 창조한 목적이 달성이 되는 거죠. 그런가요? 성도 각각 개인은 하나님이 볼 때 우리가 볼 때도 별 존귀한 존재 같지는 않아요. 그런데 그 안에 들어가 있을 때는 우리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거죠. 그래서 그 안에 붙어있으면 차별적인 존재는 없는 거예요.
너는 잘났고 너는 못났고 교회 안에 누구는 잘났고 못났고 이게 없는 거예요. 우리는 그런 교회 다닐 때 차별 받아보지 않았어요. 혹시 어떨 때 주로 처벌받았어요. 헌금 많이 낼 때 아 그런 교회로 그만 다녀야 돼요. 그렇죠. 헌금 안 내는 사람 맨 뒤에 앉아 있다가 가야 되고 그 헌금 낼 돈이 없으면 왠지 차별을 받는 것 같고, 그래요. 저는 돈이 없어서 그런 걸 많이 괜히 괜히 그런 거예요. 괜히 나 혼자 내가 여기 더 다녀야 되나 그 12보석이 다 동일하죠. 색깔은 다르고 형태가 다르고 이름은 다르지만 하나님 안에서 노란 보석 빨간 보석 파란 보석 다 보석이에요.
색깔이 다르고 형태가 형태는 다 똑같이 생겼잖아요. 네모로 이렇게 다 똑같은 거예요. 그 앞에서는 이게 여러분 하나님 앞에 있는 우리의 존재 모습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교회 와서 누구는 잘났기 때문에 이런 거 없는 거예요. 나는 못나서 주눅 들고 이거는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을 비하하는 거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거예요. 나름대로 똑같은 존재 보수 세굴라로 불렀다라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 밖에 있으면 좀 생각을 해봐야죠 나는 똑같은 존재가 아니다. 라는 인식을 가져야 돼요. 그때는 어떤 의식을 가져야 될까요? 나는 별 볼 일 없는 존재잖아요.
이거는 조건과 상관없죠 가진 것과 배운 것과 아니면 어떤 예배 횟수와 뭐 이런 것과 상관없죠 그런가요? 이런 부분이 바로 하나님이에요. 차별 없이 우리를 동일한 값을 주고 산 거거든요. 예수님의 피 늘 위해서는 피를 너는 한종지로 구원했고 그런 거 아니잖아요. 그런가요? 그럼 어떻게 살겠어요. 천국에 와서 어떻게 살겠어요. 피 많이 부순 사람 이리 와 그러면 그 어떻게 살겠냐고 그러니까 여러분 교회 와도 띄엄띄엄 오더라도 당당하게 와야 돼요. 자주 오는 사람도 내세울 거 없어요. 아시겠어요. 목사라고 내세울 거 있어요. 피를 도루암 드럼통으로 샀나요?
그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교회 출석 잘하고 목사 말 잘 듣고 헌금 잘 하면 보배입니까? 그런 줄 알았어요. 옛날에 그래서 힘을 다해요. 하나님 보시기에는 없어 하나님 밖에서 아무리 열심히 출석하고 목사님 말 아무리 잘 듣고 헌금 아무리 많이 내도 그 밖에 있으면 보석은커녕 없음이야 없음 그러지 않나요? 그래서 차별이 없는 거예요. 손가락하고 머리하고 차별이 발가락하고 차별이 되면 안 된다라는 그런 성경이 많이 나오는 내용이지만 어쨌든 그런 개념을 가지고 있고 그다음에 그 안에 우리가 더 있어야 한다라는 게 핵심 내용이에요.
교회에 아무리 열심히 낼지라도 그리스도 밖에서 분리되어 있으면은 세굴라가 안됩니다. 그래서 영생을 지속적으로 우리는 지금 현재 시간 안에서 살고 있어야 되는 거예요.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살고 있어야 돼요. 그리스도요 주로 모시고 사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 원함대로 존재하는 그런 게 아니죠. 일부분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은 문제가 생깁니다. 지속적으로 교제함을 통해서 우리는 영생이 실제화되죠. 그 안에 그 안은 삶이 실제화 되잖아요. 붙어 있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나야 한다라는 거죠.
그래서 주신 계명은 오직 하나 사랑의 계명으로 요약되었고 사랑할 때 우리는 보석이라라는 증거가 되는 거죠. 나는 보석으로 살아가고 있다라는 증거가 바로 그런 거죠. 제사장에 흉패 붙이고 있는 그 흉패의 12개 하나님이 구원하신 증거죠. 그게 증거 하나님의 구원의 증거라고요. 그리스도 안에 붙어있는 게요 모양은 다르지만 같은 소중한 존재라는 거죠. 그리고 이 존재들은 반드시 우림과 투님 하나님의 말씀에 인도하심 아래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죠.
말씀과 성령의 인도와 짐 아래에 있을 때야 우리가 그 안에 있는 거라고 그랬죠 이 부분이 그럴 때가 함께 있는 거고, 우리의 삶이 형통하게 되는데 왜요 말씀과 성령이 우리의 목자가 되기 때문에 10편 23편은 그때 발휘 능력을 발휘하는 겁니다. 원소의 목전에서 상을 펴신다니까요? 우리 존재가 그런 존재예요. 그 정도로 엄청나게 귀한 보석 같은 존재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왜 그토록 보석 같은 존재인가요? 자기 생명과 맞바꿨잖아요. 엄청난 거 아닌가요 우리는 그 정도로 엄청난 사람들이에요. 세상 사람들은 우리 모습을 보고 손가락질하고 무시할지 몰라도 그건 그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에요.
사실은 그냥 없는 거라고 먼지라고요. 먼지 먼지 같은 존재 하나님 눈에 보면 세상에서 아무리 제일 갑부라도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아무것도 없어도 그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을 가진 자보다 훨씬 더 엄청난 존재죠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면 어디를 택하겠어요. 세상의 모든 걸 다 가진 존재로 그게 안 낫지 않겠어요. 우선 거기 좀 살다가 들어오면 되잖아요. 어때요 아니 살다가 정신 차리면 되죠. 보석처럼 우리가 귀하기 때문에 공의로 다스리는 거예요.
절대로 하나님은 그런 어떤 편견 차별이 없는 거예요. 완전하게 공의로 다시 의리를 내가 아무리 모습이 훌륭하고 그래도 하나님의 판결을 굳게 할 수가 없어요. 아무리 잘나도 아무리 못나도 그 안에는 동일해요.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피로 똑같이 갑주가 샀기 때문에 그래서 이 흉배 안에 들어있는 우림과 두님이 바로 공이로운 다스림이라는 거예요. 우리는 그런 다스림을 지금 받고 있는 중이에요. 그래서 교회 안에서 내가 좀 잘 나가는 것 같고, 그래서 우쭐하면 이건 아주 심각한 질병에 걸린 거예요. 그런 것 같지 않아요. 내가 좀 들떨어진다고 해서 하나님도 그렇게 그건 아니에요.
그게 공의예요. 정확하게 그래서 판결 흉배에 정확하게 붙어 있는 게 그런 뜻을 가지고 있고 공의로 판결하시고 그 다음에 말씀과 성령으로 인도하셔서 우리를 보석처럼 살게 하는 거예요. 존귀한 하나님 자녀로 살게 한다고 지금 내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실망하죠. 실망합니까? 혹시 왜 대답을 그렇게 잘나서 실망 안 합니까? 질문을 동시에 두 개 드린 거죠. 뭔 말인지 아시나 모르겠네 못나면 실망해야 합니까? 그게 아니죠.
말씀과 성령을 품고 있는 우리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과 성령을 품고 있잖아요. 우리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보석처럼 살게 하겠다라는 하나님의 뜻이에요.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으면 그 안에 연합하는 존재가 되죠. 십자가 연합 무덤의 연합 부활의 연합 하게 되면 우리는 그 안에 있죠. 그가 우리 안에 있죠. 그렇죠. 거기에 값이 뭐 특별한 다른 값이 매겨지나요? 각자에게 그게 보석이란 보석이 가지고 있는 뜻이에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과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때만 그래요.
그럴 때만 보석이에요. 그런 존재들을 우리는 누구도 차별할 수 있는 권리가 없어요. 그렇죠. 하나님이 차별을 안 하는데 그렇죠. 누가 차별을 할 수가 있습니까? 만약에 그런 어떤 차별적인 대우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멸시함과 심판을 받게 돼 있어요. 그런 부분도 여러분 아셔야 돼요. 우리는 나 중심으로 누군가를 판단하죠. 항상 나 중심으로 그렇죠. 쟤는 몇 점 쟤는 몇 점 점수를 매기죠 안 그런가요? 나도 점수 매기죠 기분 좋을 때는 몇 점 후한 점수 기분 나쁠 때는 오늘 왠지 교회 가기 싫으면 점수를 좀 덜 주고 그런가요?
그런 거 아니에요. 하나님 안에서는 똑같아요. 우리는 누구도 차별할 수가 없고 누구에게도 차별받아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쟤는 왜 저러해 절대로 그런 말 하면 안 돼요. 혹시 마음속으로도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임합니다. 거기에는 내가 너도 똑같지 너뿐만 아니라 너도 똑같이 피 피 한 통으로 샀다 반통으로 산 게 아니고 암에 그래서 우리는 그런 존재를 하는 거예요.
조 안에서요 만약에 그렇게 살고 살지 않는다면은 누군가에 의해서 내가 차별을 받는다든지 내가 차별을 하고 있다라면 하나님의 심판이 분명히 임하고 나를 그렇게 심판하는 것도 하나님을 조롱하는 거예요. 왜요 예수님의 공로를 무시하는 거잖아요. 되게 중요한 부분이에요. 그래서 그런가요? 그래서 우리는 이 존재 실존적인 실존이죠. 진짜로 그렇죠. 존재론적으로 온전히 하나가 되는 이 관계를 살아있는 안에서 항상 유지를 하고 있어야 돼요. 지속적으로 그래야 우리 삶에 의미가 있어요. 그렇지 않은 삶이 의미가 없다니까요? 그 많은 시간들이 다 없음이 되어 버리고 말죠 10편 90편 다 기억나시죠.
하루가 천 년을 살더라도 주 앞에 한 점에 지나지 않을 수 있는 게 바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인생이 그렇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거를 배우라고 그랬죠 똑바로 알라고 똑바로 배우라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계명에 복종함으로 이제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 아버지 안에 거하는 삶을 그게 영생이라고 그랬죠 영생의 삶을 누리고 있어야 하는 거예요. 날마다 그러니까 날마다 자기 주장 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을 때만 이게 가능한 거예요. 그런가요?
그러니까 이 연합된 삶을 매일 누리고 있어야 되는데 매일 누릴 수 있는 삶의 핵심은 바로 날마다 자기 주장 자기 주장 의지를 십자가에 예 십자가에 못 박을 때만 이 연합된 삶을 지속적으로 누릴 수가 있죠. 이 자기 주장의지 부분을 여러분 깊게 새기셔야 돼요. 내 자신을 주장하려는 조금이라도 의지가 발동이 되면 우리는 승마 성령이 인도함을 벗어나는 거죠.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연합된 상태가 유지가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렇게 행한 것들을 심판의 대상이에요. 대대로 지켜야 규례라고 그랬잖아요. 이게 신약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이 되었고 성령이 오심으로 우리를 그렇게 새롭게 창조해서 완성해 가고 있는데, 날마다 그래서 자기를 부정하고 매래 십자가에 자기를 못 박을 때만 이 연합된 관계 안에서 행할 수가 있죠. 그래서 십자가가 그렇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내 원하는 대로 말하고 내 원하는 대로 행하고 내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결단해서 행하는 게 아무리 선해 보일지라도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아무리 많은 종교 활동을 행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받아들여지지가 않습니다.
붙어 있어서 온전한 하나를 이루는 그 존재의 행동 양식이에요. 이거 그러죠 거기 안에서는 예수가 그리스도요 주시잖아요. 예수가 그리스도요 주로 모시고 있는 존재 방법 존재의 상태를 말해요. 그런 존재를 말한다고요. 그러면 거기서 나라는 건 더 이상 나올 길이 없죠 절대 없는 겁니다. 존재론적으로 하나 되어 있는데, 왕과 신하처럼 하나님과 백성처럼 하나 되어 있다고요. 그 존재로 하나 되어 있는 거예요. 그 안에 있어서 존귀하다고 하니까 또 내가 막 이런 착각을 하시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좀 구체적으로 잡혀갑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해 죽어도 주를 위해 사는 삶이 바로 이 존재예요. 존재 존재론적으로 하나 되어 있다니까 너무 좋죠. 저 안에 그거 하니까 너무 좋지 않아요. 그렇죠. 그런데 거하는 그 상태에서 행동 양식은 왕과 백성의 관계 안에서 하나가 되어 있는 그래서 왕이 할 일이 있고 신하가 백성이 할 일이 있죠. 백성이 할 일은 뭔가요 왕의 명령을 따르는 거고, 그 명령의 하나는 서로 사랑하는 거죠. 그럴 때만 우리는 그 안에 있다라는 증거가 되는 거예요.
내 멋대로 쟤는 마음에 안 드니까 얘는 마음에 안 드니까 두 개 마음에 안 드니까 없어 이러면은 이제 차별이죠. 예수님도 그렇게 하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기분 나쁘면 저쪽으로 가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예수님은 그렇게 안 하셨잖아요. 우리가 막 뿔나서 그래도 끝까지 안 놓쳐 우리는 들이받으면 바로 그러니까 하나가 된 관계라는 건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그 안에는 내 자유 의지 자기 주장 의지를 가지고 뭔가를 이렇게 하겠다라는 그게 전혀 없는 상태예요. 이 상태로 우리는 연합되어 있는 실존이에요. 그렇죠.
그게 바로 영생의 실재라고 그랬죠 그 영생이 좋아요. 그래도 좋아요. 예수님 말만 들어야 되는데 내멋대로 하면서 예수님의 나는 하나다 이렇게 마구 외쳐 보세요. 어떻게 되나 그거 하나가 아니잖아. 그건 내 멋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막 하면서 나는 주님과 하나 된 상태야 이렇게 하면 좀 곤란하죠. 그거는 따로잖아요. 그래서 날마다 예수님이 나를 따라오래요. 예수님이 우리가 예수님이 붙어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따라가려면 예수님이 가는 곳으로 가야 되잖아요. 계속 그럼 내가 가는 곳은 없죠 거기 맞나요?
그래서 예수님이 누가 본 9장 23절이 바로 그 내용이에요. 날마다 자기를 부정하는 거죠. 거기에 자기주장 의지가 들어가 있잖아요. 자기주장 의지로 말씀을 가지고 행하는 게 뭐라고 그랬는지 기억나요? 바로 로마스 7장이죠. 다 기억나시죠. 그걸 누가 한다고요. 죄 세력이 자기 이 몸을 죽을 몸을 지배해서 자기주장 의지를 발동시키죠 내 몸의 사욕 이게 자기주장 의지 아닌가요 내 몸의 사욕을 쫓게 해서 그러니까 내 멋대로 살게 해서 어떻게 한다고요. 속여서 죽인다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관계를 잘 모르면서 맹목적으로 교회를 열심히 다녀요 맹목적으로 그러면 심각합니다. 그래서 난 열심히 다녔는데 안 된다고 막 이제 원망불평 푸념이 나오고 아무리 다녀도 안 되더라 그러면서 옆에 사람도 또 코치하죠. 아무리 다녀봐야 소용없다. 일주일에 한 번만 겨우 다녀라 그냥 아무리 많이 다녀봐도 아무 소용없더라 이런 일들이 일어나죠. 그럼 처음 온 사람들은 잘못 만났어 그 사람을 그 사람이 법이잖아. 그러면 이제 둘 다 그냥 넘어지는 거예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여러분들은 주로 그런 사람들을 만났었죠.
지금까지 그렇지 않나요? 그 자기 주장 그러니까 이 자아가 강한 분들은 강한 자아를 가지고 교회도 열심히 다녀요 강한 자아를 가지고 종교활동도 열심히 해요. 그렇죠. 그래서 뭔가 헌신도 열심히 해요. 그런데 자기 주장 의지대로 하는 거예요. 자기 자아의 원함대로 하는 거예요. 이건 맹목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뜻과 전혀 관련 없이 그리스도 밖에서 열심히 내는 거죠. 여러분 그렇게 안 했죠. 지금까지 했어요. 얼마나 했어요.
40년을 했어요. 아까워서 어떻게 해 저도 한 20년 한 것 같은데, 누구한테 물려달라 하죠. 거기 대한문교 제일 오래된 교회에 가세요. 저 동료랑 같이 가서 동료 뒤에 있잖아. 같이 가서 20년 내놔라 최소한 20년 이상 있었잖아. 남편은 아직도 거기서 허송세월 하고 있고 그렇죠. 그런 성도들을 잘한다고 비행기 태우잖아요. 그러다 한 번 교회 안 나오면 난리 못한다고 엉망이라고 저 믿음이 엉망이네 이렇게 난리 나죠. 그게 맞는 말인가요?
나오든 안 나오든 둘 다 골치 아픈 거 어차피 밖에 있는 거잖아. 내 멋대로 가는 카운트가 안 되거든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림과 두림이 그 안에 있잖아요. 그게 인도함을 받아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건데 너무 안타깝죠 존재적으로 당연히 하나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말씀과 성려의 인도하심 아래 있어야 진정한 보석과 같은 역할을 보석과 같은 취급을 받을 수가 있다라는 거죠. 이것이 이제 정확하게 발전이 되어서 새언약으로 가요 못 지키잖아요. 십계명 못 지키잖아요. 1계명 하나도 못 지켰는데 이걸 어떻게 지켰겠어요. 그러니까 이제 안 되니까. 세 계명을 다시 주셨고 그 세 계명의 핵심도 연합이죠.
결국은 연합되어서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예술 그리스도가 주로 섬기는 그 상태가 되는 게 제1이었잖아요. 그런 상태 안에서 교제를 하는 게 아는 거였죠 그러니까 하나님과 그 아들을 아는 게 영생의 핵심이고 그 영생을 실제화하는 건 그 안에서 그리스도로 섬기면서 교제하는 상태를 말해요. 그래서 법을 지키면 마치 친구처럼 교제할 수 있는 상태가 되죠. 그러더라도 그리스도 요주임에는 틀림없죠 그래서 법을 지킬 때 마치 우리를 친구처럼까지 대해주신다 라는 거예요. 진짜 멋지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는 내가 지킬 만한 법은 지키고 아닌 건 아니고 이렇게 지사 선택하죠.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아닌 건 아니고 이게 이제 밖에서 내 혼자 맹목적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섬기는 불상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이럴 때는 심각한 거예요. 결과가 이게 새언약하고 똑같죠 그런 새언약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이 됐잖아요. 그런가요? 여태까지 했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그리스도 오셔서 그 새언약을 완성했고 가시고 우리에게 오셔서 성령을 보내주셨고 이제 우리 안에 오신 성령 여기 안에 품고 있는 예수님과 말씀과 성령하고 똑같죠 우림과 금님 품고 있는 거 이제 우리 안에 예수님이 말씀으로 오셨고 성령으로 오셨잖아요. 그러니까 그 관계 안에서 하나님 안에 나아가는 거예요. 그게 쫙 붙어서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거거든요. 떨어져서 못 들어가요 교제가 안 된다고 영생의 누림이 지속이 안 된다고요.
그 안에 있어야 되는 걸 항상 우리는 기억하고 있어야 되죠. 그 언약관계 안에 있을 때만 이게 가능한 거거든요. 그 언약관계 안에 있으면 언약대로 심판을 하겠죠. 그게 공의심판 나는 그 안에 있어서 그 인도암을 받아 살고 있으면 공의로운 심판이 임하는 되었던 심판 세굴라가 되는 심판이죠. 맞나요? 밖에 있으면 세골라가 아닌 심판 돌보심이 없다고 그랬죠 히브리스 8장 구절 돌보심을 얻지 못한다고요. 그러니까 내 자기 주장 의지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 사람들이 제일 위험해요. 돌부심을 못 받을 뿐만 아니라 그 언약의 관계 안에서 심판을 받아요. 언약 위반이니까.
언약을 위반하면 심판을 해야 공의가 이루어지죠 그런가요? 그 언약대로 그 안에 있으면 공의의 심판을 받아서 세굴라가 되는 거고, 세계가 다 내 것이니 그래서 그걸 누릴 수 있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거죠. 이게 이루어지는데요. 그렇죠. 그런데 저게 안 되는 이유가 지속적으로 우리는 자기주장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자각이 정말 강해요. 그래서 그걸 가지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알려고 덤볐다라는 거죠. 그 부분이 가장 잘못된 부분이에요. 그렇게 했으면 너무 열심히 했잖아요. 열심히 안 한 분 있나요? 너무 열심히 했잖아요.
그러면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데 그건 일어나기는커녕 어쩌다가 그렇게 심판을 받아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예요. 그렇죠. 밖에서 삽질만 했어요. 이 누구의 죄인가요? 이게 말씀과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않고 맹목적인 신앙생활을 하니까 그럴 수밖에 없죠 자의 인도함을 받은 거죠. 아니면 누구의 신앙 전통에 따라 간 거잖아요. 아니면 잘못 가르친 누구에겐가에 물이 들어서 그렇게 간 거잖아요. 그걸 누가 책임져요 내가 책임져야죠 그래서 내가 심판을 받는 거예요.
여러분 그게 얼마나 엄청난 사건이고 그 밖에서 행했던 모든 것은 하나님 앞에 없음이 되고 예수님이 도무지 모른다라는 그런 상태가 돼버리는데 그 삶이 헛방이잖아요. 지금도 내가 내 의지대로 뭔가를 막 열심히 열심히 막 멋지게 행해 봐도 뭐 헛방이 되는 거하고 똑같잖아요. 인생이 헛방이 되는 거거든요. 아닌가요 그런데 그걸 몰라요. 나만 몰라 나만 나만 몰라요. 열심히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것도 열심히 잘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쟤는 몰라도 나는 아닐 거야. 최소한 나는 아닐 거야. 멋대로 응답도 받고 그랬잖아요. 안 그래요. 그럴 때는 그 안에 있을 때도 있잖아요. 가끔씩 그렇다고 다 무시하느냐 아니죠. 하나님이 인도하기 위해서 어떤 뭔가를 행하기도 하죠. 그렇죠. 그것까지 다 무시하는 건 아니에요. 이 부분을 정확하게 깨닫고 계셔야 돼요. 그 공의로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이 종교활동을 열심히 교회 열심 율법적인 열심 이런 것들이 내 자의적인 자기 주장 의지 아래서 열심히 이게 일어난다고 하면 얼마든지 우리는 그렇게 될 수가 있다라는 거예요. 그렇다고 그리스도 안에 다 거하게 되는 겁니까? 그게 아니잖아요. 이 모든 활동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카운트가 안됩니다. 10편 91편에 확인을 다시 해보죠.
얼마나 그 모세가 10편에 모세 10편에 모세가 쓴 게 하나 있는데, 이 부분이라고 그랬죠 869페이지 90편에 구절에 가보면 우리의 모든 날이 추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70이오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오 신속히 지나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예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 대로 주의 진누를 알릴까 우리에게 우리의 날 괴수함을 가르쳐서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이게 용을 알게 하소서라고 그랬죠 우리의 날 개수 이게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는 그 안에 있을 때만 날이죠. 그러니까 그 밖에 있어서 내가 자의적으로 행한 이 모든 것들 성령과 말숨 말숨과 성령을 통해서 일날 이날 이루어지죠 그게 말씀과 성령 안에 있을 때 이루어지는 거잖아요. 그렇게 이루어져서 일곱 날까지 가서 연합되어 완성이 되는 게 완성품이잖아요. 그럴 때 그 안에 있을 때만 그게 날이라는 거예요. 우리는 그 날 안에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자기 주장은 말씀과 성령을 무시하고 내 의지대로 많은 종교 활동을 하더라도 그게 일곱 날 안에 창조가 되고 있었나요?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져 가고 있었나요? 아니라면 그 날 안에 없는 거죠. 그래서 이 날 안에 날을 개수하는 걸 알게 해달라고 한 거예요. 무세가 우리가 일생을 살더라도 많은 시간을 그 밖에서 허비하고 있다라는 거죠. 우리가 지금 우리에게 주신 이 모든 시간은 그 일곱 날 안에서 지속적으로 돌아가고 있어야 될 그때만 날이라는 거예요. 그 밖에 있으면 그 날 안에 안 들어가는 거라는 거죠. 그런가요? 그러면 일평생이 일식간에 훅 지나가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죠. 그걸 말하고 있거든요. 심각하죠.
이거 우리는 이런 진리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맹목적으로 선배들이 하는 것 전통대로 그냥 막 밀고 가잖아요. 박수 쳐서 으샤으샤에서 몰고 가면서 이렇게 열심히 하고 기도도 열심히 해야지 열심히 나가야지 막 이렇게 그냥 막 그냥 하잖아요. 좋아 보이기도 하고 간증도 하고 이래서 내가 잘 됐고 큰 집도 사고 이러이렇게 그렇죠. 그러면서 많이 뿌리면 많이 거둘러라 하면서 맞아 이렇게 막 몰려가죠 그렇게 신앙생활 안 했어요. 바라보면 된다고 막 그러면서 확 바라보면서 뛰어가고 그렇죠. 한쪽에서는 막 흙 뿌리면서 뛰어가고 막 그런데 새롭게 창조 안 되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죠.
그 40년 동안 창조됐어요. 새롭게 안 됐어요. 뭐 했어요. 그럼 자꾸 열받게 해요. 제가 열 그만 받게 해야 되겠다. 저도 분통 터져서 엄청 울었어요. 내가 도대체 뭐 했지 몸을 바쳐서 교회 다녔거든요. 저도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나니까 억울해서 못 살겠는 거예요. 속였던 거룩한 분들 때문에 우리의 날을 계수함 아이고 하루가 아까우니까 하루하루 열심히 살자 우리 이거 이런 뜻으로 알았어요. 저도 이거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삽시다 우리 허튼 짓 하지 마시고 교회 와서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전도하고, 열심히 봉사하고 또 위트에서 열심히 일합시다. 막 이런 건 줄 아세요.
저는 이거 여러분 지금도 그렇게 알고 있죠. 아니에요. 안 까먹었어요. 이거 이 날이 요미라고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 날은 말씀과 성령이 첫 번째 성령이 운영하면서 빛이 있으라 그게 지금 우리가 여기 품고 있는 그거잖아요. 똑같죠 그럼 그 안에서 뭔 일이 일어나야 돼요. 요음 창조가 변화가 일어나야 돼요. 저녁이 되면 아침이 되니 이게 일어나야 돼요. 이게 안 일어나면 그 밖에 있는 거예요. 말씀과 성령의 역사 분명히 이쪽으로 끌고 가서 일곱 날로 빚어가죠 우리를 그런데 내 자의로 가면 그 밖에 있잖아. 말씀과 성령이 인도하시면 밖에 있잖아. 그러면 창조 변화 저녁이 되면 아침이 되는 게 없잖아요.
그런데 그러면서 수십 년이 얼마든지 지나갈 수 있잖아요. 천 년이 지나간다고요. 그러니까 여기는 천년이요. 그런데 이 안에 있으면 천년의 하루고 하루가 천년 같다 왜냐하면, 영원 안에 있기 때문에 그 영원 안에 있는 게 영생이죠. 우리가 말씀과 성령 안에 인도암을 받을 때 우리는 영원 안에 있는 거예요. 영원 안에 있다라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지금 지속적으로 누리고 있는 거고, 생명으로 계속해서 연합되어 가서 하나가 완성법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잖아요. 그게 영혼 안에 있는 삶의 방식이기에 존재 이게 존재방식이라는 거예요. 분리에 대해서는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 거예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헛되이 보냈는지 아셔야 합니다. 그런데 그 위에 그게 연수가 아무리 많아도 수고한 슬픔 뿐이라는 이게 분리된 존재의 이 말 저주의 증상이잖아요.
혼동 고노허감 안에 있는 거 정확하잖아요. 그 우림과 두림이 인두암을 받으면서 그리스도 안에 딱 있어야 되는 존재 영화수 8장 1절에 생략된 부분 기억하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중저함이 없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가 육신의 소역대로 육신의 소역을 쫓지 않고 성령의 소역을 쫓아 행하는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고 그랬죠 그래서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되고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반드시 말씀과 성령을 품고 있잖아요. 말씀과 성령이 우리를 뭐하게 해요. 첫날에서 일곱 날로 피져가잖아요. 그 안에 있어서 결국은 예수님이 요한모음 17장이 말한 대로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서 완성품이 되어 예수가 그리스도의 주가 되어서 완성품이 되는 거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가는 완성품 그럴 때 완전한 하나 완성품이라고 그러고 그때가 주요 그리스도잖아요. 그렇게 우리는 지속적으로 빚어져 가서 완성되고 있어야 하는데 지금 시간 안에서 그 시간 그 날을 이탈해서 내가 이제 날 두 날을 개척하는 거죠. 뭐 하기 위해서요. 복 받으려고요. 신앙생활 종교활동 하고 있는 거예요. 예배하고 흥검하고 이런 것들을 열심히 아주 무비판 무지승 맹목적으로 쫓아왔던 거죠. 얼마나 무서운지 아세요. 그래서 수가 슬픔만 있으면 그래도 나아요.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11절 보세요.
신속히 날아가는데 누가 주의 노예 능력을 알면 누가 주를 두려워해야 할 때로 누가 주의 진노를 알릴까 진노가 임한다고 왜 진노가 임합니까? 왜 이게 언약이잖아요. 영원히 지켜야 할 규례잖아요. 새 언약으로 가서 예수님이 완성해서 우리에게 전가해 준 거잖아요. 그럼 우리가 그 안에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서 말씀과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때 그 안에 있는 거잖아요. 그 안에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어야지 언약 안에 있는 거죠. 그럼 언약 밖에서 내가 알아서 나를 살고 있어 보세요.
뭐가 이만한 걸 심판이면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지키지 않은 심판 언약을 지키면 지킨 심판 바로 세굴라 돌보심을 받지 못하고 수고와 슬픔 그걸로 끝나던가요 영원히 속아서 죽는 거예요. 영적인 사망의 상태로 가는 거예요. 영적인 사망은 영원히 죽은 거잖아요. 껍데기는 가지고 있지만 껍데기를 벗을 때는 죽음이요. 지옥불이라고요. 그게 그래서 이엄이 뭔지 깨닫게 해달라고 모세가 창세기를 쓴 사람이잖아요. 모세는 다 아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순이도 만난 사람이 다 아는 사람이거든요. 이걸 다 아니까 이런 시편이 나오는 거예요. 이런 말이 우리만 몰라요. 이제 알아요.
다행이야 다행이야 다행이야 인생을 얻은 거야. 여기 와서 그런 생각이 안 들죠 욕만 먹는 것 같지 않아요. 맨날 와서 웃는 사람은 다 한 번쯤 의심해야 돼 속으로 욕만 엄청 한 사람들이야 틀림없어 그렇죠. 아니라 해도 소용없어요. 나 이미 다 알아 그게 지혜의 마음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요하여 돌아오셔서 언제까지니까 주의 종들 확률이 13절이에요. 그래서 극률을 베푸셔서 그 안으로 들어오게 해달라 라는 거예요. 그래서 1절에 보세요. 90장 1절에 보면 주요 주는 대대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 이 거처가 바로 거하는 거예요. 내 안에 이걸 말해요.
이게 거처라고 대대로 영원부터 영원까지 우리가 주님을 거처로 삼고 거하고 있어야 되는 걸 말해요. 그걸 벗어나면 아웃이에요. 여러분 영혼부터 영혼까지 주는 하나님이라고요. 나를 나의 하나님이 되셔야 됩니다. 언약의 핵심은 그거잖아요. 그럼 하나님 우리는 뭐예요? 세굴라 백성이 되는 삶이 거처된 삶을 살고 있을 때 이루어지는 관계잖아요. 언약관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 은혜잖아요. 이거거든요. 그런가요? 그래서 티끌로 돌아가게 하고 자신을 거기다가 부으시는 거죠. 그래서 연합된 관계 안에서 살도록 하신 거죠. 주의 목전에는 그래서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시고 말씀하신 너 인생들아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으니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라는 거죠. 그렇죠.
주해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나 밤에 한 경점뿐인 그러니까 그 밖에서 하나님 목전에서 천 년을 살아도 없는 거라고 이게 우리가 주님을 거쳐 삼고 주님을 하나님 하나님으로 주로 섬기며 살지 않는 그 삶 다른 말로 마귀에게 미혹당해서 지배당해서 자기주장 의지로 사는 그 삶 종교활동을 포함해서요. 자기주장 의지로도 얼마든지 사도바울처럼 할 수 있잖아요. 사도바울의 결론이 뭐였어요. 오호라 나는 시체에 붙어서 썩어가고 있는 자구나 그런 고백을 했잖아요. 그게 사도발이 얼마나 열심히 신앙생활 했어요.
하나님을 제일 잘 아는 사람 학벌도 제일 좋은 사람이었잖아요. 제일 열심히 한 사람 그런 사람이 나는 죽어가고 있었도다 왜 죄의 세력에 속아서 그러면 우리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우리가 주장하고 싶은 의지대로 이 신앙생활을 하면 얼마든지 잘못될 수 있잖아요. 사도바울처럼 아닌가요 지금 시간에서 우리가 구약을 사는 것처럼 그렇게 돼버려요 잘못하면 율법 아래 있으면 그 의문은 죽이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죽게 돼 있더라고요. 왜 죽이는 건가 이제 사도 마을이 죽었으니까 아는 거죠. 그 의문이 그렇게 자기를 자기 주장 의지를 발동시켜서 잘못된 길로 속여 죽게 하더라는 거예요. 그건 자기 온몸을 경험해서 안다 라는 거죠.
그래서 이제 로마스 8종으로 넘어가면서 그리스도에서 안의 인자는 결코 정재함이 없는데 생명의 성령이 죄와 삼아 바로 재하 사망 마귀의 세력에 이끌려 다니던 율법 아래 매여서 죽어가던 그게 생명과 성령 성령 안에서 해방되더라는 거죠. 그래서 그 아래 울림과 둔림이에요. 그게 그리스도 안에서 말순과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때만 저와 사망에서 해방되어서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다. 라는 거죠. 이걸 모르고 저도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헛되이 보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좋은 일을 하려고 했고 선한 계획을 이뤄보려고 애썼는지 몰라요. 교회 안에서도 교회를 위하여 많은 일을 하려고 했어요.
저도 그게 분리되어 행하는 자기 주장 의지가 되어버리니까 인생이 슬픈 거예요. 교회에 다녀도 기쁨이 없었던 거예요. 저도 그래서 여러분 이게 심각한 거죠. 교회 다니면 기쁨이 넘쳐야죠 행복이 막 넘쳐야죠 이게 안 되고 있었던 게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것 같은데, 모르는 거예요. 도대체가 모르는 거야. 언약 밖에서 종교활동이 돼버리고 말았던 거예요. 저도 그런 본보기 중의 하나예요. 사도바울도 그랬다고 나와 있지만 결국은 언약대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죽다가 살아났어요. 그래서 불쌍히 여기서 그 무덤 같은 상황에서 살려낸 거예요.
부활의 생명으로 돌보심을 받지 못한다라는 이게 세굴라의 사실 반대말하고 똑같거든요. 세굴라는 장롱 속에 꽁꽁 숨겨놓고 제일 귀하게 이렇게 취급을 하는 거라고 그랬잖아요. 그 밖에 있으면 그 반대죠 그러니까 새 언약 안에서 완성이 되게 되었고 성령 안에서 이제 우리에게 완성된 언약이 집행이 이루어지고 있잖아요. 결국은 일곱 날로 가는 그 삶이 우리 안에서 계속 돌아가고 있어야 되는 거죠. 변화 변화되지 않는 건 죽은 거죠. 0은 살아있는 거죠. 생명의 말씀 0은 그게 빛이잖아요. 빛이 있으라 하면 갈라 위에 끝과 아래의 것을 탁 갈라 쪼개잖아요. 그렇죠. 그런 일이 살아있는 말씀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살아있는 영의 말씀이 내게 들어오면 이게 내 생각인지 하나님의 생각인지 나눠지잖아요. 그러면 이제 내 생각을 죽일 수가 있죠. 성령으로 인해서 둘째, 내가 사실 공장이 예수님으로 인해서 공장이 나중에 쪼개지고 연합이 되잖아요. 나중에 가서 또 말씀을 드릴 기회가 있을 텐데 더 깊은 거라 제가 말씀을 안 드린 부분도 있어요. 그런 관계를 모르고 그냥 맹목적으로 무비판 무지성 신앙생활 열심히 했더라는 거죠. 거기에 결과는 처참했어요. 저도 그 밖의 신앙생활은 반드시 심판을 받아야 돼요. 그래야 공이로운 하나님께서 심판을 통해서 구원을 이루고 심판을 받아 저도 구원에 이르렀던 거고, 영생 안으로 들어온 거죠.
여러분도 심판을 받아 여기 가서 영생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거예요. 심판을 잘 받았죠 나중에 죽기 전에 심판받으면 끝이에요. 돌이킬 시간이 없다고요. 절대로 없어요. 그래서 지금 이 그림을 잘 보면은 제사장 가슴에 붙이고 떨어지지 말게 하라고 딱 붙어 있게 완전 하나가 되게 하라고 그 안에는 마성과 성경으로 인도함을 너희가 받아야 한다. 그걸 벗어나면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이 백성의 존재를 상실하게 되죠. 그러면 성령을 무시한 신앙생활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여러분 교회에 오랫동안 다니셨는데 성령 인도함을 받으려고 해 보셨나요?
성령충말이나 말은 들어봤죠 어떻게 하는지 몰랐죠 무슨 뜻인지 잘 몰랐죠 성령이 있는 걸 알고는 있었어요. 이전에 교회 다닐 때 말로만 들었대요 말로만 전도사님이 처리해 말로만 들었대요 저는 머리가 분석적이다. 보니까 도대체 성령이 뭔지 모르니까 아무도 안 가르쳐줘 그래서 이 성경에 나오는 성령에 대한 구절을 다 뽑아서 봤다니까요? 그러니까 잘못하고 있더라는 걸 알겠더라고요. 아 잘못 이거 뭔가 잘못됐다. 내 아무도 그걸 안 가르쳐줘 그래서 책을 찾고 찾고 안녕하세요.
성령님 그런 것부터 시작해서 오초만 니까지 가고 별의별 책을 다 보고 그래도 시원하게 안 돼 창조라는 것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성경에 새롭게 하신다 새롭게 지으심을 받고 이런 단어가 버젓이 나와요. 에베수스에도 나와 있고 그렇죠. 장세기는 천지창조라고 치부하고 놔뒀다고 치더라도 뒤쪽으로 나오면 옛것은 벗어버리고 새것이 되었더니, 새것이 교회에 오면 새것인 줄 알았어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뭔 말인지 알았어요. 교회 왔으면 그걸로 된 줄 알았죠 맞긴 맞아 법적으로 예수 믿으면 거듭난 사람이 맞긴 하잖아요.
그런데 물과 성룡으로 난다고 되어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나느냐고 이게 한 번도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어 목사님부터 시작해서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니까 나는 그렇게 하고 있는 줄 알고 있어 새롭게 창조 무슨 말이야. 무슨 창조를 또 해 에비소스에는 버젓이 나와 있잖아요. 에비소스 4잖아. 22절에서 24절 진리안에서 새 사람을 입어야 되죠. 새롭게 지어심을 받는 새 사람 그 새롭게 창조되는 거예요. 그 어떻게 진리의 안에서 창조되는 거예요. 진리가 뭐예요? 말씀과 성령이죠.
성령의 운행하심과 빛이 있으라 그게 진리 성령이 진리고 말씀이 진리잖아요. 그게 창세기 1장이었어요. 그러니까 다 풀어지더라고. 아이고 헛살았구나 그래서 10편 95편을 보니까 땅을 치고 통곡이 나오는 거예요. 모세는 그걸 알았던 거고, 나를 개수함을 알게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의 하루 같고, 이게 무슨 감이 잡히면 도저히 감이 안 잡혀 그런데 우리는 지금 하루가 천 년 가고 천 년의 하루 같은 걸 지금 살고 있잖아요. 그 증거가 뭐예요? 도저히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쁨이 올라오는 그 크게 천년이 하루같이 지금 우리가 시간 안에 살고 있는 거예요.
그게 그게 증거라고 아무 파도가 휘몰아치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거 그게 하루가 천 년이 하루처럼 살고 있는 영혼을 지금으로 살고 있는 거잖아요. 옛날에는 어때요 오랫동안 교회 열심히 다녔었는데 파도 치는 대로 난리 났죠. 그러면 그 밖에 있는 거라고 그게 예수님 안에 있으면 파도가 잠잠할지어도 그 안에 있는 거죠. 그런 걸 모르고 시간만 낭비하고 낭비하게 가르치셨죠 아 그거 어떻게 다 책임지죠 저는 안 가르쳤거든요. 많은 젊은이들을 어디로 인도하셨는가 큰일 났어요. 여러분도 코치 잘못하면 그렇게 돼 충단이요. 이러면 연좌 몇 돌 매야 돼요.
제사장이잖아. 여러분 제사장 아니에요. 맞잖아요. 지금 그거 하고 있는데, 그 멋대로 코치 한번 잘못하면 여러분 큰일 납니다. 큰 코 다칩니다. 그냥 이런 걸 모르고 열심으로 신은 원통해 죽겠더라고요. 그러면 우링가둠림을 품고 있는 걸 이제 아시겠죠.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기 1장의 모습하고 똑같아요. 딱하게 똑같이 가요 세언약하고도 똑같이 가고요. 그래서 성령이 지금 우리를 품고 있고 우리 안에 계신 거고, 말씀이 우리 안에 와 계신 거고요. 그것이 우리를 창조해 가고 있죠. 그래서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은 어떠한 것도 말씀이 아니에요. 그거는 그냥 문자일 뿐이에요. 그냥 말대잔치예요.
말대잔치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 0일 때 살아서 역사하는 게 역사가 첫나라에서 일곱 나라 안에 이루어지는 게 역사잖아. 하나님의 일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건 말씀이 아니에요. 율법이고 문자죠 그래서 오랫동안 그렇게 문자로 율법으로 신앙생활을 했는데 내 본성 심보는 안 변하고 외모만 계속 변했던 거죠. 칠을 했던 안 됐던 거예요. 그래서 수고와 슬픔이 여기에 안 떠난다고 그랬잖아요. 수고와 슬픔이 안 떠나는 거예요. 헛수고밖에 없었던 거예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여러분 그렇게 갖다 바쳤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엄청나죠. 교회에 와서 살다시피 한 적도 많고요. 여러분 그런데 오늘날 교육을 잘 보시면 독립성을 엄청 강조하죠.
아주 어릴 때부터 독립성을 강조해서 교회 와도 독립성을 하나님과 독립해서 내가 열심히 하나님 일을 해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 일을 내가 해야 돼 그렇죠. 하나님 일 해놓고, 내가 해 하나님 일은 하나님이 하죠. 내 안에서 말씀과 성령 위에 하나님이 일을 하시죠. 그게 뭐예요? 나를 창조하는 거예요. 새롭게 재창조가 그게 하나님의 일이에요. 우리는 하나님의 일이 뭐예요? 교회를 멋지게 꾸미고 크게 짓고 열심히 흥금하고 전도하고, 이런 게 하나님의 일이라고 그러잖아요. 속았어요. 여러분 독립성을 강조하다 보니까 교회에 와서도 엄청 독립성을 강조해 하나님과 분리 독립선언 아닌가요 아담의 dna가 그거잖아요.
그러니까 사회에서 가정에서 독립심을 기른 사람들 교회 오면 하나님 의지하는 게 진짜 잘 안 돼요. 진짜 안 된다니까요? 그것도 자기가 독립심을 길러서 하나님이 일을 하려고 허수고 슬픔이 분리독립선언한 핏줄이 어디 가겠어요. 타고난 핏줄이잖아요. 그러니까 죽어라 독립하는 거예요.
독립선언 요즘은 캥거루족이 유행이라면서요 독립이 아니라 그 속에 푹 파묻혀서 주는 거 받아먹고 사는 우리 집에도 아직 캥거루족 두 명 있는데, 실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부인과 십자가죠 그게 일곱 날 안에 다 들어가 있는 거고요. 부활의 연합대사 하나가 되는 것 믿음으로 되죠. 그렇죠. 복음이잖아요. 그게 복음 그런가요?
이미 완성되어 있고 지금 믿음으로 돼 믿음 우리 믿음 아멘으로만 되는 믿음이 아니고 이 네 사건에 참여해서 연합되어서 이루어지는 거 그게 진정한 믿음이잖아요. 그걸 이루는 게 말씀과 성령이고요. 그렇죠. 우리에게 믿음을 불어 넣어주셔서 말씀이 믿음의 재료고 그런 말씀과 성경이 운행하면서 믿음을 가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그 안에 들어가도록 우리를 인도하죠. 그렇게 되는 거예요.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되어 있지만 그러나 아직 죽을 몸을 가지고 있죠. 이 죽을 몸의 본능이 독립심이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고통이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임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떠나서 우리가 겪었던 그런 것들이 예레미아 2장 19절 말씀 기억납니까 너희가 나를 떠난 것이 나를 경외하지 않는 것이 나를 버리고 떠난 거 그리고 경외하지 않는 거 그게 뭐라고요. 악 악이요. 중요한 걸 까먹으면 어떡해요. 고통이라 그래서 연합하지 않고 그리스도 밖에서 행하는 모든 게 악이에요. 신앙생활도 잘못하면 악이 죄악이 되고 그게 고통이 된다고요. 그래서 여러분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었는데 고통이 떠나질 않았던 거예요. 아까 수고와 슬픔이 나와 있지만 일생을 안 떠나고 있었던 거예요. 이유를 아시겠어요.
이제 그런데 나중에 좋은 데 가는 걸로 위안을 삼고 끝까지 지금도 꿋꿋하게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있어요. 가정에 있잖아요. 말을 해도 못 알아듣죠 진짜 그래요. 막귀가 돼 가지고 안 되거든요. 전두서에는 버젓이 그게 전부 헛되다고 그랬고 고통과 괴로움이라고 그랬고 그렇죠. 수고와 슬픔이라고 그랬는데 그래서 항상 자기 주장 의지 이게 분리대로 행하는 걸 말하죠. 그걸 십자가에 매일 못 박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매일 자기를 그 자기 남아 있는 자기 주장 이미 십자가에 못 박힌 거죠. 죽을 몸도 못 박힌 거죠. 그런데 육체가 남아 있잖아요.
죽을 몸 거기에 마귀가 집에서 역사에서 자꾸 자기 주장 의지를 내세우게 하잖아요. 그런 것들을 십자가에 못 받고 부정하고 따라오라고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거기로 가야 돼요. 우리는 그래서 이게 꼭 붙여놓고 떨어지지 말라고 하는 게 그런 의미예요. 그 말씀 안에 성경이 다 들어가 있고 우리 인생이 다 들어가 있어요. 피조물의 행복 말씀을 드렸던 기억납니까 피조물은 오직 하나님만 절대 의존함으로 살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존재다 그쯤은 좀 외워보셔도 괜찮 피조물은 오직 하나님을 절대 의존함으로 살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
다른 말로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여 자기 힘으로 행복과 선 기쁨에 이를 수 없다. 이런 뜻이 그게 죄로 분리된 자아의 저주의 증상이죠.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그 안에 있을 때만 존재해요. 살아있는 존재라고 그 밖에 있을 때는 존재 자체가 안 되는 거예요. 육신대로 살지 않고 성령의 인도화심을 받을 때야 이제 이 죄악의 눌림에서부터 자유함을 누릴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완전한 자유 썩어져 가는 그 상태로부터 건집을 받아 자유함을 누릴 수 있는 게 그거예요. 주안에 그거하는 거예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거고, 그래서 연합 때 딱 붙어 있는 그 삶 자체는 완전히 주님만을 위한 삶이 되죠. 그렇죠.
로마스에 나오는 살아도 추를 위해 죽어도 추를 위해 그 삶이 붙어 있는 자의 삶의 방식이에요. 천국의 삶의 방식이잖아요. 그건 그런가요? 예수님이 그렇게 사셨잖아요. 우리에게 남아있는 삶은 그거라고요. 사실은 그렇게 살 때 우리가 가장 행복하도록 우리는 애정이 되어 있어요. 그러죠 자기 점점 자기 부인이 심각 깊은 단계로 들어가고 있는 중이에요. 자기 주장 의지 자아 성취를 위해서 지금까지 교회를 다녀오셨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엄청 부딪혀요 너무너무 부딪히는 거예요. 그런데 이 안으로 들어갔을 때 누리는 이걸 여러분 아셔야죠 그게 조금씩 조금씩 살면서 나타나고 있잖아요.
그러면 완전한 완성품이 될 때는 얼마나 엄청나겠어요. 그런가요? 그걸 우리는 소망이라고 그래요. 일곱 날의 소망 그 소망을 바라보면서 달려가는 거죠. 언젠가는 물론 예수님이 오셔야 완성되겠지만, 이 시간 안에서도 얼마든지 우리가 오순절날 보니까 다 누리고 있었잖아요. 우리도 그런 상태가 될 수 있어야 돼요. 성령 충만 그래서 성령 충만을 구하는 거고, 성령 충만 안에서 이 일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도록 해 달라고 구해야 돼요. 우리는 우리 기도는 그거여야 돼요. 광고는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그랬거든요. 그게 반드시 들어준다고 한 게 그런 내용이거든요.
그러니까 나의 안에 거하는 것 그 안에 거하면서 내가 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해서 사는 것 그게 붙어있는 자의 삶의 방식 바로 천국의 삶의 방식인 거예요. 그럴 때만 우리는 한 날 두 날이 있는 거예요. 안 그러면 없는 거예요. 우리 삶은 저 앞에 없는 삶이 되어버리고 여러분은 어디에 속하고 있는 것 같습니까? 삶이 정확하게 여러분 우리를 진단할 수 있어야 돼요. 말씀으로 진단할 수가 없다면 이게 안 보이면 여러분 계속 이거 못 벗는다니까요? 해결하고 나면 또 뭐가 오고 해결하고 나면 또 뭐가 오고 계속 연속되잖아요. 원인도 모르고 계속 반복이 되거든요.
그거 모르고 나중에는 좋은 데 가면 되지 그러고 사는 게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요? 그렇게 살아보셔서 알잖아요. 이제는 못 돌아갑니다. 이걸 한 번 맛보는 사람은 절대로 못 돌아가요 다 판다니까요? 진짜로 못 들어간다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그래서 그 안에 거할 때만 오직 존재하고 있는
1. 보석 같은 존재
1-1. 하나님의 보석 같은 존재
- 제사장의 의복에 12지파의 이름과 함께 나오는 정검, 고리, 판결 흉배에 대해 설명함
-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보석이라 표현하며, 우림과 등림의 인도를 통해 이스라엘을 판단하고 공의로 심판한다고 설명함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판단하고 인도하시는 역할을 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언약을 지키면 소유가 된다고 설명함
- 하나님의 말씀에 인도함에 따라 순종하는 백성들을 '보석 같은 존재'라고 표현함
- (중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석처럼 아끼신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짐
1-2. 존재론적 관점
- '보석 같은 존재'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하야'라는 단어를 소개함
- '하야'는 우리의 존재 방식이며, 분리되어 살 수 없음을 의미함
- 성도의 존재 방식은 '하야'에 따라 분리되어 살 수 없음을 강조함
- '제사장의 가슴과 백성의 마음'을 '분리불가한 존재'로 표현하며, 이스라엘 백성들과 제사장의 관계를 설명함
-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늘날의 교회와 연결되어 있으며, 제사장은 예수님을 대제사장으로 모시는 역할을 함
1-3. 연합된 존재
- 제사장이 하나님을 섬기러 가는 자세를 설명하며,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야 함을 강조함
- 우리의 존재 방식은 '하야'에 따라 분리되어 살 수 없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킴
- 제사장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백성들이 말씀에 순종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보석이 되고 소유됨을 설명함
-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그리스도 밖에서 발버둥 치거나 아무리 외롭다 해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표현함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역하고 별의별을 거는 것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때에만 진정한 존재가 됨을 설명함
2. 그리스도와의 연합
2-1. 그리스도와의 연합, 영생을 얻는 자의 존재
- 육에 속한 자아가 강할 때, 영생을 얻은 자는 그 안에 있음
- 영생은 내가 너희 안에 거하는 그 상태를 의미함
- 예수님과 교회는 분리될 수 없음, 붙어있을 때만 영생을 누리고 이룸
- 그리스도 안에 붙어있는 것은 형통, 즉 함께함을 의미함
- 요한복음 17장 20-26절에 예수님의 기도가 나옴
2-2. 완성된 존재로서의 그리스도
- 우리는 분리된 상태에서 하나님과의 교통을 할 수 없음
- 모든 것이 불통, 사통불통, 분리되어서 죽음의 고통과 괴로움을 맛보았음
- 하나님은 분리된 우리를 교회로 불러서 완성품이 되기까지 일하심
-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 되는 것은 지체가 몸에 붙어 있을 때만 가능함
- (중요) 우리는 완성된 존재로서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야 함
2-3. 그리스도와의 연합, 영광과 완성품
- 연합된 자만이 그리스도의 완성품이 됨
-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존재가 됨
- 계명을 지키고 사랑하며, 그 안에 거할 때 완성된 존재가 됨
-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 영생의 실제,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게 됨
- 그리스도의 생명과 성품이 우리에게 나타남, 이 것이 하나님의 영광임
3. 그리스도인 존재론
3-1. 보석 같은 존재
- 우리는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 조건과 상관없이 차별 없이 동일한 값을 받음
- 예수의 피로 인해 죽음을 대속하고 하나님의 보호 아래 살아감
- 우리는 교회 출석이나 목사의 말, 예배보다 하나님을 더 의식해야 함
-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별 볼 일 없는 존재'로 비하받을 수 있음
- 우리는 차별받지 않으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보석 같은 존재임을 인지해야 함
3-2. 공의로운 다스림
-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므로 그분의 보호 아래 삶
- 우리는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야 하며, 그분의 말씀과 인도하심 아래 있음
- 말씀과 성령은 우리의 목자가 되어 우리를 보석처럼 살게 함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존재로서 공의로운 다스림을 받음
- (중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으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연합하여 그분의 보석이 됨
3-3. 그리스도인의 삶
- 우리는 실망할 필요가 없으며, 하나님의 심판과 차별이 없음
-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석이 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함
-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차별받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연결된 존재임을 인지해야 함
-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지속적으로 삶의 의미가 있고, 우리의 존재가 가치 있음
- 그리스도인은 하루가 천 년을 살지 못할 정도로 귀중한 존재임을 기억해야 함
4. 영생의 삶
4-1. 영생의 삶과 자기 주장 의지
- 영생의 삶을 살기 위해선 날마다 자기 주장 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함
- 이 과정이 자기를 부정하고, 매일 자신을 못 박을 때만 연합된 관계 유지 가능함
- 자기 주장 의지는 하나님의 뜻과 관련 없이 그리스도 밖에서 발동하는 것임
- (중요) 자기 주장 의지로 인한 불순종은 심판의 대상이 됨
- 예수는 우리의 대리자이시며, 우리가 말씀과 삶을 통해 그분을 연합하려 해야 함
4-2. 영생의 실재와 하나님의 인도
- 우리는 영생의 실재를 통해 하나님과의 연합을 이룸
- 존재론적으로 하나 되어 있으며, 이는 왕과 백성의 관계와 같음
- 백성은 왕의 명령을 따르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중요함
- 예수님은 우리의 자유 의지와 자기 주장 의지를 존중하심
- 우리의 행동 양식은 왕과 백성의 관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함
4-3. 영생의 본질과 계명
- 영생은 예수가 우리를 따라오며, 연합되어 있는 것임
- 로마서 7장은 자기 주장 의지로 말씀을 행하는 것임을 가르침
- 자기 주장 의지는 죄 세력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됨
- 자기 주장 의지를 발동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동떨어짐
- 새 언약의 핵심은 연합이며, 세 계명은 하나님으로 예배드리는 것임
5. 새 언약과 그 구현
5-1. 새 언약과 그 중요성
- 하나님과 아들을 아는 것이 영생의 핵심임
- 이 상태에서 그리스도로 섬기며 교제하는 것이 법을 지키는 것임
- (중요) 법을 지키면 친구처럼 교제할 수 있는 상태가 됨
- 이 상태에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섬기는 불상사가 일어나면 심각함
- 새 언약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며, 성령을 보내주셨음
5-2. 새 언약의 완성과 그 상태
- 새 언약의 완성은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가서 그 상태를 누리는 것임
- (중요) 그 상태에서 우리는 하나님 안으로 나아가야 함
- 그 상태가 유지될 때만 진정한 영생이 이루어짐
- 우리는 새 언약을 유지하면서 살아가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영생을 누리지 못함
- 그 상태에 머물면 공의심판을 받게 됨
5-3. 자기 주장과 영생의 관계
- 자기 주장 의지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에 큰 위험을 초래함
- 이로 인해 언약의 관계에서 심판을 받아야 하게 됨
- (중요) 이런 심판은 우리가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자신의 주장을 줄여야 함
- 우리 생활의 모든 활동이 그리스도와 함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함
- 이 모든 활동들이 이루어질 때, 그 상태가 완성품으로 하나님의 눈에 보여짐
6. 창조와 변화, 영혼의 연합
6-1. 창조와 변화의 중요성
- (중요) 아침과 밤이 바뀌어도 요음 창조가 변화가 일어나야 함
- (중요)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이 일곱 날을 빚어가고 천 년이 지나갈 수 있음
- 우리는 말씀과 성령 안에 인도를 받아 영원한 생명을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음
- 분리된 존재의 증상인 존재 방식을 버리고 영원한 생명과 연합되어야 함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여야 하며,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반드시 말씀과 성령을 가지고 있음
6-2. 완성된 예수와 그리스도인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하며, 그 안에 반드시 말씀과 성령이 함께 있음
- 예수님은 요한복음 17장에서 완성품이 되어 우리에게 주요 됨
-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완성된 하나임
- 우리는 지속적으로 빚어져 가서 완성되야 하며, 시간 안에 개척해야 함
- 우리는 복 받으려고 예배와 종교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깨달아야 함
6-3. 언약과 영적 사망
- (중요) 예수가 그리스도의 주인이 되어 우리에게 완성품이 되어야 함
- (중요)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말씀과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함
- 영적 사망은 영원히 죽은 것을 의미하며, 껍데기를 벗을 때는 죽음이 오는 것과 같음
- 모세는 창세기를 쓴 사람이며, 그 안에 영원한 생명과 영적인 연결이 있음
- 사도바울은 자신의 열심히 행한 신앙생활에도 불구하고 죄의 세력에 속아 죽음을 맞았음
7. 새 언약
7-1. 새 언약의 핵심
- 생명의 말씀이 내 생각을 죽이고 성령으로 이끌어줌을 강조함
- (중요) 말씀이 없으면,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됨을 역설함
-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않으면 의미가 없음
- 성령의 인도함은 성령의 운행하심과 빛으로 드러남을 밝힘
- 새 언약의 핵심은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임을 상기시킴
7-2. 창조의 의미
- 성령의 인도함과 말씀으로 인해 창조가 이루어짐을 설명함
- 진리 안에서 창조되며, 이는 새로운 사람, 새 영혼을 의미함
-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것은 말씀과 성령임을 깨달아야 함
- 하나님의 일은 우리를 창조하고, 말씀과 성령으로 이끌어 나가는 것임
- 독립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말씀과 성령으로의 연합이 중요함을 일깨움
7-3. 말씀과 성령의 역할
- 독립성을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분리되어 독립선언으로 이어질 수 있음
- 캥거루족의 인기에서 보듯, 교회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야 함
- 새 언약의 핵심은 새 세상, 새 언약으로서의 연합과 부활의 연합임을 상기시킴
- 부활의 연합이 믿음으로 이루어짐을 기억하며, 새 언약의 핵심을 다짐함
8. 믿음과 슬픔
8-1. 믿음과 연합
- 믿음은 사건에 참여하고 연합되어 이루어짐
- 말씀과 성령이 믿음의 재료이자 인도하심으로 작용함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나 죽을 몸을 가지고 있음
- 죽을 몸의 본능은 독립심으로, 고통이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옴
- (중요) 하나님을 떠나는 것, 경외하지 않는 것은 악이며 고통이 됨
8-2. 신앙생활과 고통
-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고통이 떠나지 않고 지속됨
- 이는 신앙생활의 잘못으로 인한 죄악이 죄를 가르는 결과임
- 자기 주장 의지가 분리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것을 말함
- 예수님이 십자가에 자기 주장을 못 박고 부정함
- 죽을 몸도 못 박히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함
8-3. 완전한 자유와 연합
-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죄악의 눌림에서 자유함을 누릴 수 있음
- 연합하여 주님만을 위한 삶을 살 때,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음
- 로마서에 따르면, 살아도 추를 위해 죽어도 추를 위해 살 때가 천국의 삶임
- 우리는 자기 부인을 심각하게 깊게 가야 함
- 성령 충만을 구하고, 이를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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