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아침, 황사인지 연무인지 잔뜩 흐린 날씨다. 8시30분에 출발하기로 한 문학기행, 서둘러 시청 앞에 도착하니 8시다. 줄져 서있는 관광버스만 무려 10여대, 한동안 헤매다가 맨 끝에서야 '경기수필가협회 문학기행'을 알리는 차를 볼 수 있었다. 벌써 많은 분들이 탑승한 것을 보면 진작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회원님들이 속속 도착하고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가운데 차가 출발한 것은 예정 시간을 훌쩍 넘어서다.
목적지는 공주풀꽃문학관, 소요 시간은 1시간30분정도로 예상했지만 토요일이다 보니 정안휴게소의 남자화장실도 장사진이다. 길도 막혀 10시30분까지 도착하기로 했지만 11시를 훨씬 넘어서다. 버스안에서 충남 공주가 고향이라는 밝덩굴 수필가가 학창시절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의 고교시절인 1957년4월23일, 59년 전 오늘에 있었던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우리나라가 3등과 5등을 하여 4등을 한 일본 놈들을 이겼다며 쓴 일기를 소개해주어 감회의 박수가 쏟아졌다. 박수뿐만 아니라 팁이라며 배춧잎이 여기저기서 나오기도 하여 돌아올 때는 초코렡 선물이 되어 모두를 즐겁게 해주었다.
공주풀꽃문학관 전경 '공주풀꽃문학관'은 충남 공주시 봉황로 85-12(반죽동)에 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의 이름을 붙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이라는 이런 짧은 시를 연작으로 쓴 것이다. 문학관의 이름을 시인의 이름이 아닌 시의 제목으로 했다는 것이 무엇보다 풀꽃처럼 신선해보였다. 다른 문학관들보다 비교적 작고 아담한 이곳은 마루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했다. 복도를 거쳐 방은 10여 평 남짓, 시인이 직접 쓰고 그렸다는 시화들이 사방 벽과 열두 폭 병풍에 그려놓아 인상적이다. 전에 일본사람이 살았던 이 집을 시에서 구입하여 수리해, 문학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문인들이나 문학 지망생들이 모여 강의를 듣고 회의도 하고 담소도 나눈다고 한다. 약속시간보다 늦게 도착하여 죄송한 마음으로 모두들 자리에 앉자, 나태주 시인이 들어왔다.
강의 중인 나태주 시인 1945년생인 나태주 시인은 공주사범학교를 졸업, 교직을 거쳐 공주문화원 원장으로 있으며, 내년이면 임기가 끝난다고 했다. 1971년 신춘문예에 당선,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그동안 130여 차례의 문학 강의를 했다고 한다. 자동차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늙어서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책을 낸 것이 93권이라는 것, 책이 많이 들어와 쌓인 책들을 묶어내다 보면 송장을 묶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마지막 1권만 더 쓰고 나면 책에서 해방되고 싶단다.
시인은 시를 쓴다고 했다. 그러나 수필도 쓴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시적 수필이 된다며 지나치게 화사하고, 미사여귀가 많고 분칠한 삶을 산다고도 했다. 젊었을 때는 작가의 마음으로 쓰고, 필자의 마음으로 썼다며, 그러나 이제 나이 들어가며 독자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천득 수필을 꼭 읽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태준의 '무서록'은 순서 없이 쓴 글을 말하며, 이 수필을 읽어봐야 한다고도 했다. 또 김기린의 '길'이라는 산문을 시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아름답고 깊이가 있다는 것이다. 박연구, 김진섭 수필가를 들며 대단한 분들이라고 한다. 시에 비해 산문은 품이 크고 인생을 담을 수 있는 좋은 그릇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말은 방문객들이 수필가라는 것을 의식해서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오빠생각'을 부르는 것은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시인은 글을 쓰다보면 글이 나를 끌고 간다고 했다. 그 속에는 독자의 마음이 있다고 한다. 특히 산문에는 비탈이 없어야 하고, 오해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맑고 깨끗하고 명징하게 써야 한다고 했다. 또 설득력, 공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제 나이가 있어 시인은 생각해보게 된다며, 내가 죽고 나면 땅과 재산도 모두 누구 것이 될 것인가, 모두 남의 것이 된다며 그러나 글은 남이 뺏어갈 수도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자취이므로 좋은 글을 많이 써 자식들에게 남겨두라고 한다.
또 시의 재료는 사건이나 일이 아니라 감정이라며, 형상화하고 이미지화 하라고 했다. 그리고 짧아야 된다고 한다. 작은 형식 속에 많은 의미를 넣어야 좋다고 한다. 개성이 있어야 좋지만 보편성이 있어야 하며, 보편성이 넓을수록 성공이라는 것이다.
작은 문학관을 장식하고 있는 각종 소품들 좋은 시란 어린이에게는 노래가 되고, 청년에게는 철학이 되고, 노인에게는 추억이 되고 역사가 되고, 인생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태주 시는 평론가들이 싫어한다고 했다. 쉽기 때문에 평론거리가 안된다는 것이다. 강의를 마친 시인은 '오빠생각'동요의 악보를 나눠주었다. 그리고 풍금 앞에 앉아 마치 그것은 초등학교시절로 우리 모두를 되돌려놓기에 충분했다. 악보도 손수 그려 만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모두는 그렇게 방바닥에 앉아 시인의 풍금소리에 맞춰 옛날 그 시절을 떠올리며 최순애 동시, 박태준 작곡의 '오빠생각'을 부르고 또 불렀다. 소녀 최순애와 소년 이원수의 사랑을 떠올리며...
이 시가 발표되고 박태준은 작곡을 했다는 설명이다. 노래를 부르는 모두는 꼭 수원사람이 아니어도 그랬을 것이다. 울컥한 마음에 눈시울이 시큰거리기 시작한다. 그것은 어린 날의 추억이며 서슬 한 고향이기도 했다. '뜸북! 뜸북! 뜸 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때 우리오빠 말 타고...' 아주 각별한 문학기행이었다. 나태주시인께 감사드린다. 수원 방문객을 위한 나태주 시인의 특별한 배려가 아니었다면 그런 자리가 마련될 수 있었을까.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