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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1-18
세미한 소리의 계시 / 손상률 목사
엘리야는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을 대표할만한 불세출의 인물입니다. 후세 사람들은 엘리야를 두고 「불의 사자」라고 부릅니다. 폭군 아합 왕과 맞서서 싸웠던 인물이며(왕상 18:18), 특히 왕후 이세벨로 인하여 이스라엘에 바알과 아세라 우상이 만연했을 때 하나님 종교로 일대 개혁을 단행한 사람입니다.
그는 바알과 아세라 우상의 선지자들을 갈멜산에 불러 모으고 어느 신이 참신인지 시험하자고 제의 하였습니다. 제단 위에 제물을 올려놓고 불로 응답하는 신을 가려내게 하였습니다. 그때 바알과 아세라 신은 아무 반응이 없었으나 엘리야의 하나님은 불로 응답하여 제물을 모두 태웠습니다(왕상 18:38). 엘리야는 그 여세를 몰아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을 모조리 기손 강가에서 칼로 쳐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무적의 용장인 엘리야도 낙심을 하고 실의에 빠진 때가 있었습니다. 이세벨의 칼날이 이스라엘 전역으로 뻗쳐 하나님의 선지자를 모두 죽이고 엘리야마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절박한 지경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하나님을 향하여 죽기를 기도하였습니다(왕상 19:4).
그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시켜 물과 떡을 주어 먹게 하고는 그에게 호렙산으로 가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으라고 하였습니다(왕상 19:6-8). 그는 사십 주야를 걸어서 호렙산에 이르렀고 그곳 굴속에 틀어박혀서 하나님의 계시를 기다렸습니다. 엘리야는 그곳에서 크고 강한 바람소리와 지축을 흔드는 지진과, 그리고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강렬한 소용돌이 속에는 하나님의 계시가 없었습니다. 잠시 후 자기 귀에 들리는 세미한 소리 가운데 하나님의 계시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여기 세미한 소리로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호렙산의 계시야말로 이 시대 하나님의 백성이 사모해야 될 은혜의 한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I.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고 모든 역사의 주권자이십니다. 로마서 11:36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고 하였습니다.
(1) 하나님이 역사를 경영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생사화복과 인류의 흥망성쇠를 주장하시는 분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레오바고에 모인 그리스의 철학도들 앞에서 하나님은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또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다”고 하였습니다(행 17:26-27). 사람들은 흔히 유명한 장군이나 정치가가 세상나라를 좌지우지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를 경영하십니다.
옛날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자기의 권세와 능력으로 그 나라를 건설하였다고 스스로 교만해졌다가 왕궁에서 쫓겨나 칠년 동안 짐승처럼 풀을 먹으며 정신을 잃고 살았습니다. 기한이 차서 제 정신이 돌아왔을 때 그는 자기 입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린다고 고백하였습니다(단 4:28-34).
(2) 사람은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도구입니다.
엘리야는 중요한 시기에 하나님께서 크게 들어 쓰신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폭군 아합 왕을 앞에 두고 “내 입에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고 선언하였습니다(왕상 17:1). 그만큼 선지자로서 확신과 패기가 있었습니다. 「불의 사자」라 불릴 만큼 하나님의 능력을 대행하며 무서움을 모르는 활동가였습니다.
그렇지만 엘리야가 위대하고 유능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들어 쓰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때나 자기가 필요해서 사람을 부르시고 사역을 맡기실 때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십니다(벧전 4:11).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식하지 못할 때는 자기의 초라한 모습을 발견하고 오히려 낙심하고 주저앉게 되고 맙니다(왕상 19:4).
하나님께서는 좋은 사람만 들어 쓰시지 않습니다. 무능한 사람, 또는 약점을 지니고 있는 사람까지도 필요로 한 시간 적절한 일을 맡겨서 이를 수행하게 하십니다.
잠언 16:4에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3) 자기 사람을 챙기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구별하신 자기의 자녀들을 언제나 챙기시고 보호하십니다. 옛날 출애굽의 인도자 모세는 이스라엘의 40년 광야여행 기간에 그들을 지키고 보호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회고하면서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고 하였습니다(신 32:10).
엘리야의 경우도 이세벨의 칼날을 피해서 브엘세바 광야로 도망을 다니다가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기도하며 쓰러져 있었습니다.
이때 엘리야의 생각으로는 하나님께서 저를 외면하신 줄 알고 체념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시간 천사를 보내서 떡과 물을 먹이시며 기력을 차려서 호렙산으로 가게 하였습니다(왕상 19:1-8).
사람들은 마음먹은 일이 잘되거나 형통할 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생각하다가도 실패하거나 어려워지면 하나님께서 저를 멀리 하신다고 생각하여 낙망하게 됩니다(시 42:3).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떤 경우에도 자기 백성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들어나지 않게 살피시며 시간을 재고 계시는 것입니다(창 16:13).
II. 계시 사역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사람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지시와 명령에 따라서 자기의 역할을 하는 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고 하였습니다(요 8:28).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의 뜻을 나타내고 손에 잡혀 주는 방법은 계시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마 11:27). 지금 자기의 역할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호렙산으로 가서 하나님의 계시 내용을 살피라고 하신 것입니다.
(1) 신비로운 이적으로 나타내십니다.
엘리야가 사십 주야를 걸어 호렙산으로 가서 그곳 굴속에 유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하나님께 같은 내용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곧 자기의 역할이 다 끝났으니 이제는 죽을 일만 남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여러 가지 이적으로 하나님의 위엄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곧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강한 바람이 그 앞을 지나갔습니다. 잠시 후에는 지축을 흔들고 땅이 폭발하는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 후에는 강렬한 불길이 초목을 태웠습니다.
한순간 그 앞에서 전개되는 이런 이적들은 구약시대 하나님께서 자기를 나타내시는 방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신약의 경우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실 때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 앞에는 급하고 강한 바람소리와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모습으로 이적을 보였습니다(행 2:1-3).
(2) 계시의 본질은 말씀입니다.
본문 말씀 11-12절에는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길이 지나갔으나 그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12-13절에 보면 세미한 소리 가운데서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하시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때 엘리야는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14절).
하나님의 계시 사역은 초자연적인 이적이나 여러 가지 신비를 통해서 나타나곤 하지만 결국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사역으로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접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감동되어 자기의 의사를 하나님께 아뢰이고 마음속에 있는 것을 고백하는 등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소리로 전해지는 말씀이거나 기록된 성경말씀이라도 다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그 능력이 발휘됩니다(히 4:12). 물론 이 말씀의 실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는 것입니다(요 1:14).
(3) 성령의 감동으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 사역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신이신 성령이 작용합니다. 어떤 수단을 통해서든지 하나님께서 자기의 뜻을 나타내실 때 이를 보고 듣고 깨닫게 하는 것은 성령의 감동으로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2:10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2:13에는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의 경우 자기의 의지와 생각으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는 것이 가장 좋다고 여겼으나 하나님의 계시로 인하여 그의 뜻을 분별한 이후에는 지체 없이 그 분부에 따라 자기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III.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요 8:56). 아브라함 뿐 아니라 이삭도 야곱도 모세도 다 예수 그리스도의 때를 사모하며 살았던 사람들입니다(히 11:16).
어느 때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늘을 살면서도 내일을 준비하는 자들이요 하루를 살더라도 영원을 사모하는 비전 메이커(Vision maker) 들입니다.
(1) 사명 받은 자의 특징
하나님께 부름 받은 사람은 자기 몸을 자기 뜻대로 사용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소년 선지 예레미야를 부르시고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렘 1:7).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가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놀고 싶은 대로 놀고,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오직 나를 향한 주님의 요구가 무엇인가 거기에 마음의 초점을 맞추고 그 뜻에 따라서 살아야만 되는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하였습니다(롬 14:7-8).
엘리야도 지금까지 화려하게 사역하였으나 말년에는 자칫 불명예롭게 될까 염려하여 하나님께 죽기를 구했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새로운 임무를 부여하실 때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이라도 순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주의 종 된 사람의 삶의 특징인 것입니다(요 21:18).
(2) 하나님 나라의 영속성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나라는 특정인 한 사람에 의해서 좌우되지 않습니다.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경륜
과 계획에 따라 적절하게 운행되는 것입니다(롬 8:28). 출애굽의 영도자 모세가 광야 40년을 통과하고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채 요단강 동편 모압 땅에서 숨을 거두었으나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시종 여호수아로 후계자를 세워서 가나안 입국을 완성시켰습니다(신 34:5-9).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다음에도 사도들과 속사도 교부들을 통해서 지상에 교회운동을 계속하게 하셨습니다.
여기 불의 사자 엘리야도 이세벨의 박해에 기가 꺾이고 죽기를 기도할 때 하나님나라 운동은 끝장난 것으로 판단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엘리야가 알지 못하는 부분까지 헤아리고 계셨습니다. 엘리야는 능력의 한계가 들어나고 그의 수한이 끝나서 세상을 떠나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를 누구를 통해서라도 계속해서 진행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원대하신 경륜을 헤아리게 되면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옛날 요셉은 죽기 전 가족들에게 유언하면서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창 50:24).
(3) 내일을 준비하시는 하나님
호렙산의 굴 어귀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엘리야는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하고 호소하였습니다(14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중에는 아직도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자 칠천 명을 남겨두었다고 하였습니다(18절). 그리고 자기의 할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엘리야에게 그가 하여야 될 중대한 임무를 부여하였습니다.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할 것과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고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자기를 대신할 선지자로 세우는 일이었습니다(15-16절). 이러한 일은 엘리야 이후에 나타날 종교적 환경에 대비하여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일을 수행하여야 될 책임자를 세우는 작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오늘보다 다 나은 내일을 준비하시는 분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계시와 그 비전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분별하는 지혜를 가진 자이며 하나님나라 사역에 동참하는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