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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랑하는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겸손
1.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부자가 되는 것보다 귀한 것이 천국에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2.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개하고 죄를 떠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3.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우리가 실천해야 할 최고의 사랑이 복음전파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두 가지를 간청했는데, 먼저 자신을 위해 간청했습니다.
누가복음 16: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그 다음, 자신의 형제들을 위해 간청했습니다.
누가복음 16:27-28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이처럼 그는 자기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형제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부자가 변화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데이비드 E. 갈런드는 예리하게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이 두 번째 간청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부자의 관심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가족은 그 자신의 연장으로 여겨졌다. 부자는 자기 형제들을 조심시키려고 하면서 여전히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 하지만 그는 자기 가족을 돌봤어’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구약은 가난한 자들도 역시 형제라고 규정하지만(참고. 레 25:25, 35, 39; 신 15:7, 9, 11; 느 5:7), 부자는 이런 형제들은 단 한 번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어쨌든, 부자는 형제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원했습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이 가족구원에 관심이 없으면 되겠습니까? 그것은 어쩌면 부자만도 못한 심히 이기적이고 악한 것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여러분은 그동안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이 시간 자신을 깊이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한편, 형제들의 구원을 위한 부자의 요청에 아브라함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누가복음 16:29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 중 “모세와 선지자들”은 독특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16절에 ‘율법과 선지자들’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은 이 표현을 약간 변경한 것일 것입니다. 또 그 뒤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눅 24:27)과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눅 24:44)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또한, 다른 성경에도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요 1:45)과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행 28:23)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모세와 선지자에게 들으라는 것은 구약성경의 가르침을 잘 들으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왜 부자에게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라고 말했는지 그 이유를 보여줍니다. 한 마디로, 구약성경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학자가 이에 동의하는데 그 중 도움이 될 만한 세 가지를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먼저, 토머스 R. 슈라이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나사로가 그 다섯 형제에게 경고하러 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배격한다. 그런 경고가 완전히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섯 형제는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경고를 받고 있다. 달리 말하면 그들은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주님께 돌이키라고 부르는 구약성경을 갖고 있는 것이다. 형제들은 이미 구약을 통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이키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
또, R. T. 프랜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대인은 구원의 길을 몰랐다는 것에 대해 핑계 댈 것이 없다. 유대인은 ‘그 책의 백성’(유대교에서 유대인을 가리키는 표현-옮긴이 주)이었기 때문에, 율법과 선지자가 빈번하게 표현했던 가난한 자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또한, 데이비드 E. 갈런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미 성경은 대단히 많은 경고를 준다. 그 예로 신명기 30:11-14이 적절할 것이다. 거기에서는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고 명령한다. 우리는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라’라고 물을 필요가 없다.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문제는 그 말씀이, 특히 가난한 자들을 돌보라고 명령하는 말씀이 그들의 마음속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구약성경을 통해 회개를 촉구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관대하게 대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실제로 구약성경의 많은 본문이 이웃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는 사람도 이런 구약성경보다 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부자의 청을 거절하고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설교를 잘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데이비드 E. 갈런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된 믿음은 말씀과의 만남에서 일어난다.”
또, 바울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맞는 말이지요! 그러므로 절대로 설교를 건성으로 듣지 마십시오. 사모하는 마음으로 집중해서 잘 들으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 모두 참 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한편, 부자는 모세와 선지자들이 전해주는 말로 충분하다는 아브라함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16: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왜냐하면 자기 형제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형제들의 생각과 생활뿐 아니라 그들이 율법이나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자신도 세상에 살 때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처럼 형제들이 그런 메시지에 주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충격요법이 필요하다고 믿었습니다.
어떻습니까? 부자의 생각도 일면 타당하지 않나요? 더구나, 유명한 청교도 설교자 리차드 백스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사람이 죽어서 지옥에 던져지고, 또 다른 사람이 그들 가운데서 끌려 나가 지옥에 들어가도 이런 것이 남아 있는 자들의 기세를 꺾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먼저 죽은 자들이 어디에 가 있는지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불쌍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지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불경건한 생활을 계속해나갑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친구들이 지금 지옥의 고통 속에서 애통해하고 있다는 것을 거의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들으니 부자가 요구한 것이 더 필요하고 정당해보이시지요!
하지만, 부자가 아브라함의 말에 동의하지 않은 것처럼 아브라함도 부자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복음 16: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그런데, 이 말은 다소 충격적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저는 2대지에서 25절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왜냐하면 자동적인 내세의 뒤바뀜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뜻이 아니라고 자세히 설명해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대지에서는 31절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선뜻 혹은 완전히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존 웨슬리는 어떻게든 이 구절을 타당하게 설명해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에게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효과적으로 회개하도록 할 수 없다는 것을 더 상세히 증명하려고 한다.
생각될 수 있는 모든 이점들을 가지고 이런 경우를 제시할 것이다. 그러면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않는 자를 생각하자. 성경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 믿지 않는 자가 침대에서 잠들었다가 갑자기 시계가 한 시를 칠 때 일어났다고 생각하자. 그는 방이 정오처럼 밝은 것을 보고 놀란다. 그는 위를 보고 그의 침대 옆에 잘 아는 분이 서 있는 것을 본다. 처음에는 약간 놀랐으나 곧 정신이 들어 용기를 가지고 당신은 아무 때 죽은 나의 친구가 아닌가 하고 묻는다. 그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왔는데 너에게 대한 전갈을 가지고 왔다. 너는 가끔 죽음으로부터 일어선 자를 보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때 회개할 것이라 말했다. 너는 소원을 성취했다. 네가 너의 생애의 과오에서 죽음을 구하기에 너에게 알리러 명령받았다. 만약 네가 지금 상태로 죽으면 너는 영원히 죽을 것이다. 그의 이름으로 나는 경고하는데 성경은 하나님의 참 말씀이다. 당신은 죽는 순간 아주 행복하거나 말할 수 없이 불행할 것이다. 당신은 여기서 거룩하지 않으면 후에 행복할 수가 없다. 거듭나지 않으면 거룩할 수 없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이 부르심을 받으라! 영원이 가까이 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 말을 하고 그는 사라지고 방은 전처럼 어두워진다.
사람들은 쉽게 그가 현재 확신하지 못함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 믿을 것이다. 그는 그 밤 더 이상 잘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가족에게 보고 들은 것을 말하였을 것이다. 이것으로 만족치 않고 그는 급하게 그것을 그의 친구들에게 말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가 말하는 열심을 보고 그들은 반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 ‘그에게 냉정할 시간을 주자. 그러면 그는 다시 이성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기억에 남겨진 인상들이 점차 사라지는 것을 계속 발견한다. 그것들은 시간이 감에 따라 점점 약해지고 그것들의 흔적들은 점점 희미해진다. 그의 친구들은 이 경우를 보고 기회를 잡는데 실패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 의미로 말할 것이다. ‘얼마 전에 네가 우리에게 한 이야기는 이상했다. 네가 사려 깊은 사람으로 알고 광신으로 기울지 않음을 알기에 더 그러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들은 깰 때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충분히 생각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것들 사이의 무오의 표준을 누가 발견할 수 있었는가? 이 생생한 인상이 너의 마음에 만들어졌을 때 너는 잠들어 있은 것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가 생각하게 되었을 때 아마 그것은 꿈이었을 것이다 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들은 곧 그를 설득했겠고 아마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 후 오래지 않아 그것은 확실히 꿈이었다고 믿었을 것이다. 사람이 죽은 자에게서 나왔다는 것이 얼마나 효과에 무가치한지!
다른 것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에게 행해진 효과는 무엇이었는가? (1) 그는 심히 놀랐다. (2) 이 놀람은 그 때 선포된 진리에 대해 깊은 확신의 길을 만들었다. 그러나 (3) 그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전능자만이 이것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4) 그의 영혼의 편견은 여전히 잘못된 길에 있었다. 그는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고 결과로 성경이 참되지 않기를 원했다. 그래서 얼마나 쉽게 두려움이 사라지자 다시 그가 원한 것을 믿으려 했는가! 그러면 결론은 확실하고 명확하다. 만약 사람들이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죽은 자에게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회개하고 복음을 믿도록 권함을 받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완전한 결말로 가져오는 하나의 고찰만 보태겠다.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으로 옮겨진 그 때쯤인가 전인가 마리아와 마르다의 형제인 또 다른 나사로가 실제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그러나 그 사실을 믿는 자들까지도 회개했는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우리 주님과 함께 나사로를 죽이려고 모의했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해도 죽은 자에게서 산 자가 있으면 권함을 받을 것이라’는 자들의 맹신적인 상상은 버리라.”
하지만,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죽은 후 천국과 지옥을 보고 살아난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또, 그들의 간증과 경고를 듣고 회개하고 돌이킨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예로, 우리 교회에서 출판한 “죽었다가 살아난 남연의 권사님의 천국과 지옥 간증, 아이고 집사님, 아이고 권사님, 아이고 목사님이 왜 지옥에 계시나요?”가 그 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31절의 아브라함의 말과 다릅니다.
그런데 왜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했을까요? 저는 이 점이 궁금했습니다. 여러분도 궁금하시지요?
그래서 답을 찾기 위해 주석들을 읽으며 연구하던 중, 몇 가지 답이 될 만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먼저, 브루스 바톤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이 모세와 선지자들(다시 말해서 구약성경)의 말을 읽을 수 있고 그 성경에서 고통의 장소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 형제들이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중요한 메시지를 주의하여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찮은 심부름꾼의 말을 주의하여 들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평소 나사로를 무시하고 박대한 것을 생각할 때 일정 부분 일리가 있는 말이지요! 심지어, 박스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부자의 죄악 된 형제들이 자기들의 죽은 형제가 지옥에 있다고 증거하는 자를 중상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지나 않을까?”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다음으로, 존 라일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후에 ‘나사로’라는 사람이 죽음에서 살아난 것을 보고도 유대인들은 여전히 불신의 상태로 남아있었던 현저한 사실을 명심하도록 하자.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자신이 죽음에서 살아나셨으나 유대인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던 사실을 기억하라.”
또, 데이비드 E. 갈런드도 비슷한 설명을 했습니다.
“헤롯은 요한 혹은 선지자 중 하나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 소문은 헤롯의 호기심을 자극했으나 회개하도록 이끌지는 못했다(1:79; 13:31).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어떤 사람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을 때-우연히도 그의 이름은 나사로였다-그 일은 회개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를 촉진했다(요 11:45-53). 마태복음에서 무덤에 있던 경비병들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알린 것은 지도자들로 하여금 거짓말을 꾸며내고 진리를 억누르기 위해 경비병들에게 돈을 주게 했을 뿐이다(마 28:11-15).”
이것은 팩트고 훨씬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사람들의 이런 완악하고 강퍅한 마음을 생각할 때 정말 마음이 무너집니다. 그들에겐 답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31절의 내용이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제가 이 의문에 대해 찾은 가장 만족할만한 답은 이것이 아닙니다. 저는 다음 세 가지 설명을 읽다가 이 의문의 답에 대한 힌트를 얻었습니다.
먼저, 찰스 G. 피니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마음이 ‘불신앙’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기적이 거듭된다고 해도 결코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들이 실제로 죽었었다고 해도 저 세상에 대한 그들의 증언은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성경에 대해 많은 반박을 하듯이 아니 그보다 더욱 그럴듯하게 반박합니다. 그들은... 더욱 강경하게 반대하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가르침을 받지 않으려고, 그리고 회개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또, 하워드 마샬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기적이 도덕적으로 어두워져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회개케 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설득당하지 않는 ‘완고한’ 사람들이다.”
또한, 이동원 목사님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나사로란 똑같은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이 요한복음 12장에 있는데, 그는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나사로를 본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죽이려는 엄청난 음모를 시작합니다. 죽은 사람이 살았어도 유대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기적이 없어서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습니까?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지성적 증거가 불충분해서 믿지 못합니까? 성경은 말씀하기를, 죽은 자가 살아나서 복음을 증거 해도 ‘마음이 강퍅’하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거절하며 복음을 배척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설명들에 나오는 ‘불신앙’, ‘완고’, ‘강퍅’이라는 단어에 주목하십시오. 저는 이 단어들을 통해 힌트를 얻었고, 31절이 완고하고 완악한 사람들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것이 제가 답을 찾기 위해 만들어낸 추론일 뿐 이 구절이 꼭 그런 사람들에 대한 것이라는 증거가 없지 않느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가만히 생각해보니 증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있었습니다.
그럼 과연 그 증거가 무엇일까요?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부자가 지금 누구를 위해 탄원하고 있나요? 부자가 나사로를 모든 사람에게 보내달라고 했습니까? 아니지요. 자신의 다섯 형제에게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부자는 자기의 다섯 형제를 위해서 탄원했습니다. 그러므로 31절의 대상은 부자의 다섯 형제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첫째로, 부자와 쏙 닮은 사람들입니다. 즉, 부자처럼 내세에는 관심이 없고 세상 것을 전부로 여기고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 가난한 자를 돕는 데는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는 이기적인 자들입니다.
둘째로, 그들은 신앙생활을 해도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을 귓등으로나 듣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이라고 말한 이유입니다. 그들은 설교를 진지하게 듣고 죄를 깨닫고 회개할 자들이 아닙니다.
셋째로, 그들은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미 말했듯이, 이 비유의 대상은 바리새인들입니다(14절). 그러므로 부자와 그의 형제들은 바리새인과 특징이 일치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어떤 자들입니까? 그들은 예수님이 행한 수많은 기적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또, 나사로가 살아나고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도 덮으려고만 하고 믿지 않은 심히 완고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31절은 실제로 그들처럼 완악하고 완고한 자들에 대한 것임이 분명하지요! 따라서 31절은 모든 사람들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또, 죽은 자의 증언이 모든 사람에게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 증거가 아이러니하게도 학자들이 죽은 자의 증언이 소용없다는 것의 증거로 가장 많이 내세운 나사로의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요한복음 12:10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모든 학자가 죽은 자의 증언이 소용없다는 증거로 이 구절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구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12:11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이처럼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것을 통해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의 증언이 모두에게 효과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로 보건대, 사람은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대제사장과 같은 부류입니다. 즉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그리고 부자와 그의 다섯 형제 같은 자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설교는 물론이고 죽은 자의 증언도 소용이 없습니다. 너무나 마음이 교만하고 완악하고 강퍅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11절에 나오는 “많은 유대인”과 같은 부류입니다. 그들은 마음이 가난하고 죽은 자의 증언을 들으면 두려워하고 회개하고 믿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뿐 아니라 오늘날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만약 31절이 주석들에서 학자들이 하는 설명하는 단지 그런 뜻이라면, 하나님께서 절대로 죽은 자에게 천국과 지옥을 보여주신 후 돌려보내지 않으셔야 합니다. 아무 소용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이와 다릅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이런 일들을 행하십니다. 또, 그들의 증언을 듣고 바리새인들처럼 회개하지 않는 사람도 많지만, 두려워하고 회개하고 믿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그런 수많은 사례들과 간증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이 구절을 편파적으로 이해하고 사후체험 간증들을 모두 부정하는 극단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오직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만이 필요하고 기적은 필요가 없다는 극단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제발 교리적으로 왜곡된 편협한 시각을 버리고 성경을 정직하게 읽어보십시오. 예수님은 헤롯이 호기심으로 기적을 보고자 했을 때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표적과 기사를 충분히 보여주었음에도 믿지 않는 바리새인들이 표적을 요구할 때도 표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일반 백성들에게는 삼중사역을 통해 항상 치유와 축사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것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또, 예수님은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마치 도마처럼 표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못할 사람이 많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다 지옥에 가게 말로만 복음을 전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6:15-18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또한, 사도들은 소리 높여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사도행전 4:29-30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심지어, 신약성경의 3분의 2를 쓴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고린도전서 2:1-5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마지막으로, 이런 유의 구절을 하나만 더 소개하겠습니다.
마태복음 11:21-23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이 구절은 말로는 구원하지 못할 자들을 기적으로는 구원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기적을 통해 소돔사람들처럼 가장 악한 사람들도 구원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마지막 때 이 세상이 롯의 때처럼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7:28-30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실제로 유럽, 미국, 캐나다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영리나 제자훈련이나 강해설교가 능사가 아닙니다. 지금은 성령의 권능으로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하고 그보다 큰일을 하며 복음을 전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 수많은 영혼들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사모와 아프리카 선교가 얼마나 성경적이고, 효과적이고, 그리고 중요한지 잘 아시겠지요!
그 중요성을 확증하는 의미에서 토요일 설교준비를 할 때 제게 도착한 따끈따끈한 우간다 포트포탈 치유전도대성회 첫째 날 보고 내용을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말씀 시작 1시간 30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을 보니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더욱이 말씀을 전하러 현장에 도착했을 때 빗방울이 더욱 굵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계속 비가 온다면 회중들이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강단에 올라가 빗속에서 인사말을 전한 후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가 그칠 것을 명령했습니다. 만약 이 상황에서 비가 계속 내리면 분위기가 더 이상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믿음으로 선포했을 때 빗줄기가 서서히 약해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완전히 그쳤습니다.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첫째 날 참석인원은 18,000여 명입니다.
첫째 날은 담임목사님의 ‘노후 준비보다 중요한 사후 준비’ 1대지와 3대지를 전했습니다.
말씀을 전한 후 결신 초청했을 때 8,000여 명이 나와 결신했습니다.
결신 후 치유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음은 첫째 날 주요 간증입니다.
페니나라는 10세 소녀는 태어날 때부터 양쪽 귀가 멀어 있었고, 혀도 굳어 지금껏 전혀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가 열리고 혀가 풀어진다는 선포 후 어머니가 확인했을 때 아이가 태어나 처음으로 소리를 듣고 혀가 풀려 말을 따라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강단에 아이를 데리고 올라와 귀가 열리고, 혀가 풀어진 것을 보여주며 놀라운 일을 행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또한 페니나도 자신에게 일어난 놀라운 기적으로 인해 계속해서 미소를 지으며 기뻐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어머니는 이런 기적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며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임금과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한 여성분은 지난 3년 동안 오른쪽 얼굴이 풍선처럼 심하게 부풀어 올라 고통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치유선포 때 풍선처럼 부풀었던 얼굴이 즉시로 가라앉고 양쪽 얼굴의 균형이 맞춰졌습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놀라운 기적에 감격하며 주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한 형제님은 한 달 전에 갑자기 왼쪽 눈이 실명되어 전혀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병원에도 가보았지만 의사는 더 이상 병원에서 해줄 것이 없다며 돌려보냈습니다. 평생 한쪽 눈으로만 보아야 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큰 근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눈이 열린다는 선포를 들을 때 즉시로 왼쪽이 눈이 열려 모든 사물을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어머니는 태어난 지 한 달밖에 안 된 딸아이를 안고 성회에 참석했습니다. 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오늘까지 왼쪽 다리에 발작 증상이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치유선포 후 아기의 다리를 보았을 때, 한 달 동안 계속되었던 모든 발작 증상이 즉시로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아이를 안고 강단에 올라와 치유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한 형제님은 2주 전에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왼쪽 다리 정강이가 완전히 부러졌고, 다리에 깊은 상처가 보이는 상태로 성회에 참석했습니다. 통증이 극심했고,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뼈가 붙는다는 선포를 들은 후 즉시로 통증이 사라졌고, 확인해 보았을 때 부러진 뼈가 완전히 붙어 제 자리에서 기뻐 뛰며 치유하신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한 여성분은 3년 전에 오른쪽 복부에 망고만 한 큰 종양이 생겨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다. 통증이 너무 심해 몸을 구부릴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종양이 사라진다는 선포를 들었을 때 즉시로 모든 통증이 사라졌고, 확인해 보니 그 큰 종양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한 여성분은 4년 전에 망고만 한 종양이 복부에 생겨 고통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치유선포 후 그 큰 종양이 감쪽같이 사라졌고 아무런 통증이나 불편함 없이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며 치유하신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한 남성분은 목 뒷부분에 2년 반 동안 달걀 만 한 종양이 있었고 이로 인해 극심한 통증 가운데 살았습니다. 오늘 종양이 사라진다는 선포를 들은 후, 목 뒷부분을 확인했을 때 종양이 즉시로 사라졌고 흔적만 남아 있었습니다. 강단에 올라와 그 자국을 보여주며 치유하신 주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한 여성분은 지난 3년 동안 자궁경부암으로 진단된 주먹만 한 종양 때문에 고통 가운데 살았고, 몸을 앞으로 구부리기조차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암이 사라지라는 선포 후 극심한 통증이 즉시 사라졌고, 몸을 구부려보았지만 더 이상 종양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고백하며 치유하신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한 남성분은 전립선에 있는 종양으로 인해 수년 동안 고통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런데 종양이 사라진다는 선포를 들은 후, 즉시로 모든 통증이 사라지며 마치 종양이 터져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며 종양이 완전히 사라졌다며 치유하신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20세 자매님은 태어난 직후 왼쪽 귀에서 고름이 나오며 왼쪽 청력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그래서 20년 동안 오른쪽 귀로만 듣고 살았는데, 오늘 귀가 열린다는 선포를 들은 후, 왼쪽 귀가 완전히 열려 태어나 처음으로 20년 만에 양쪽 귀로 소리를 완벽하게 듣게 되었다며 기쁨으로 치유하신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15세 소녀는 7살 때부터 악한 영에 사로잡혀 8년 동안 광인으로 살았습니다. 학교도 다닐 수 없었고, 정상적인 생활을 전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악한 영이 파쇄되라는 선포 후 즉시로 정신이 온전히 회복되어 강단에 나와 자유케 하신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36세 여성분은 10년 전에 삼촌이 우상에게 자신을 제물로 바쳤고, 그 후부터 악한 영으로부터 계속된 공격을 받았습니다. 눈을 감을 때마다 사나운 맹수들이 보였고, 극심한 영적 공격이 계속되었습니다. 심지어 그 후 여덟 번이나 큰 사고를 당했다고 합니다. 집회나 교회에 참석해 축사를 받으려 했지만 목회자에게 가려고 할 때마다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사역조차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여덟 번째 사고를 당한 후 왼쪽 팔과 왼쪽 다리가 마비되어 잘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치유 성회에 참석해 악한 영이 떠나가라는 선포를 들었을 때, 모든 영적 공격이 사라지고 팔과 다리에 있던 마비도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강단에 나와 자유케 된 것에 감격해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며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54세 여성분은 4개월 전에 원인도 모르는 채 갑자기 혀가 굳어져 그 후 전혀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굳었던 혀가 풀어진다는 선포를 들었을 때, ‘아멘’이라고 외치려 하자 혀가 즉시로 풀려 ‘아멘!’이라고 소리가 나왔습니다. 너무나 기뻐 앞에 간증하러 나와 마이크에 대고 한번 더 ‘아멘!’이라고 외치며 치유하신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한 자매님은 7년 전에 낙상 사고를 당한 후 왼쪽 팔이 안쪽으로 굽혀진 채로 마비가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큰 고통 가운데 있었는데, 오늘 마비가 풀린다는 선포를 들은 후 즉시로 마비가 풀려 굽혀진 팔이 펴지게 되었습니다.
65세 여성분은 3개월 전 양쪽 다리가 마비되었습니다. 그 후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치유선포 후 주님의 권능이 양쪽 다리에 들어오는 것이 느껴지며 모든 마비가 완전히 풀렸습니다. 너무 기뻐서 강단에 올라와 펄쩍펄쩍 뛰며 치유하신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한 남성분은 18년 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다리에 문제가 생겨 그 후 걷지도 못할 뿐 아니라 스스로 혼자 서 있을 수도 없어 지팡이를 의지해야만 서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걷지 못하는 분이 걷게 된다는 선포를 들은 후 다리에 힘이 들어와 확인했을 때 지팡이 없이 스스로 서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18년 만에 처음으로 걷게 되었습니다.
한 여성분은 2달 전부터 오른손에 마비가 와 주먹을 쥔 체로 손을 펼 수 없는 상태로 손이 굳어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비가 풀린다는 선포를 들은 후, 즉시로 마비가 풀려 오른손을 자유롭게 쥐었다 폈다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일 부자가 음부에서 나올 수 있었다면 만사를 다 제쳐놓고 무엇을 했을까요? 의심할 여지없이 지옥에서 원한 두 가지 일을 했을 것입니다. 먼저, 다시는 지옥에 가지 않게 즉시 죄를 회개했을 것입니다. 그 후, 형제들에게 가서 회개하라는 요나의 전도를 했을 것입니다. 찰스 하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본 비유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우리는 매 순간 자칫하면 천국에 있을 수도, 지옥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과,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살아야만 한다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동일한 곤경에 있다는 것.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로 자신들의 위험을 의식하도록 영적으로 깨어나게 하는 데 노력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이 비유를 읽고 공부함으로 부자처럼 내세의 실상을 알고 있는 저와 여러분이 최우선적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교회의 주보 4면에 보면, 무명의 선교사가 한 이런 말이 쓰여 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일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그런데 저는 이 말을 약간 변형시켜서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여러분 모두 동의하시지요! 먼저, 최고의 사랑은 영혼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9:1-3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보통 영혼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표현합니다. 왜냐하면 마치 해산하는 것처럼 큰 근심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을 느끼며 드리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찬송가 가사에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때가 가장 즐겁다”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은 가장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기도를 날마다 끊임없이 할까요? 그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영혼구원을 위한 기도는 사랑입니다. 그것은 큰돈을 주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사랑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돈을 주는 것만 좋아하고 그들의 영혼을 위해 안타깝게 기도하고 전도하는 것을 감사해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우리가 먼저 실천해야할 최고의 사랑입니다. 본문에 보면, 심지어 지옥에 간 부자도 형제들의 구원을 위해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그것은 지옥에 가 있는 부자보다도 더 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족의 구원을 위해 매일 간절히 기도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또 하나의 최고의 사랑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왜 최고의 사랑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천국과 지옥이 실제로 존재하고, 지옥은 너무 무섭고 끔찍하기 때문입니다. 지옥은 북한보다 더 끔찍하고, 인신매매를 당한 것이나, 일제의 생체실험실과 나치의 아우슈비츠수용소보다도 훨씬 끔찍한 곳입니다. 때문에 토마스 아 켐피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옥에서 한 시간 받는 고통이 이 세상에서 100년 동안 받는 가장 심한 고통보다 더 견디기 힘들다!”
이 말은 절대로 과장이 아닙니다. 때문에 저는 여러분이 충분히 깊이 인식할 수 있도록 생생한 지옥 간증 몇 가지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1948년 캐나다 앨버타에 사는 조지 고드킨이라는 사람이 오랜 중병을 앓다가 숨졌습니다. 그때 잠시 동안 지옥을 경험했는데, 그 경험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나는 지옥이라 부르는 영계로 인도되었다. 이곳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한 사람들이 들어가는 처벌의 장소였다. 나는 지옥을 봤을 뿐만 아니라 거기 들어갈 사람들이 겪을 고통도 맛보았다.
지옥의 어둠은 얼마나 두껍던지 평당 압력을 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정말 지독하게 껌껌하고 끔찍했으며, 적막하고 묵직한 어둠이었다. 어둠 속에 있는 각 사람을 짓누르고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그런 어둠이었다.
물기라곤 찾아볼 수 없게 하는 열 기운이 그곳에 있었다. 눈알이 어찌나 건조하게 느껴지는지 눈구멍 안에 빨갛게 단 석탄 두 개가 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입술과 혀가 고열로 바짝 말라붙어 쩍쩍 소리가 나게 갈라졌다. 콧김이 마치 용광로에서 뿜어 나오는 바람처럼 후끈후끈했다. 몸 바깥쪽은 무슨 난로 안에 갇힌 것처럼 뜨거웠고 몸 안쪽도 밖에서 들어오는 뜨거운 김으로 고통스럽기 그지없었다.
이 지옥이 인간 영혼에 주는 고통과 고독의 처절함은 정말이지 말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저 겪어봐야만 알 수 있을 뿐!”
또, 우리 교회에 강사로 왔던 아이반 터틀 목사님은 “1시간의 죽음, 지옥과 천국에 가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저는 당신이 지옥에 가게 되면 지옥이 얼마나 소망이 없는 곳인지, 그리고 그곳에서 당신이 얼마나 끔찍한 느낌들을 갖게 될지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 곧 내가 부딪칠 정도로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은 있는 힘을 다해서 비명을 질렀고, 하나님을 모독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말하기를 자신들의 자녀들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지옥이 정말로 있다는 것을 전해달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들은 지옥이 절망의 장소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고통 중에 소리 지르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지옥에서 느끼게 될 고통은 당신이 이 땅에서 육체적으로 느끼는 고통과는 같지 않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전인을 삼켜버리는 고통입니다. 당신이 느낄 수 있었던 가장 지독한 치통이나 두통보다 1,000배나 고통스러운 것이며, 그 고통은 당신의 전인을 관통합니다.
당신이 낙하산 없이 12,000미터 상공을 나는 비행기에서 추락하여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그러면 당신은 죽게 됨을 알 것입니다. 하지만 지옥으로 떨어지는 느낌은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느낌보다 10,000배나 더 절망적입니다.”
또한, 리처드 시그문드는 “8시간의 죽음 천국과 지옥의 파노라마”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내가 지옥에서 보았던 모든 것을 자세히 설명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지옥의 참상을 생각하기만 해도 내 몸이 몹시 아프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나는 지옥에 절대적인 공포가 있다는 것을 당신에게 말할 수 있다.
당신이 죽게 되면, 영적 몸을 갖게 된다. 영적 몸은 당신이 지구에 살아있는 동안에 가지고 있는 육체와 정확하게 같은 성질이다. 당신은 영적 존재이다. 하지만 육체의 모든 감각이 그대로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지옥에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썩은 살이 늘어진 채로 걸어 다니는 해골과 다름이 없었다. 지옥에는 구더기들이 있었고, 냄새는 도저히 맡을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파괴당하고 있었다. 뱀들이 사람들의 사지를 먹고서 소화시켰다. 그리고 나면 사람들의 사지가 회복되었고,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되었다.
나는 귀신들에 의해서 사람들의 몸이 동강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몸 조각들은 둥근 돌들과 바위들에 걸려있었다. 그리고 귀신들은 몸 조각들을 먹고서 배설했다. 그 후에 몸은 같은 과정을 반복하기 위해서 다시 완전해졌다.
귀신들이 한 소녀의 입에 불붙은 숯들을 강제로 넣으면서 조롱했다... 불타는 작은 새장들 안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불타는 작은 새장 안에 끌려 들어갔다. 새장들은 불 못에 잠겼다.
하지만 그들의 몸은 소멸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몸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반 해골이었다.
귀신들은 사람들에게 액체같이 유동적인 불을 마구 퍼부었다. 지옥에는 숯이 불타는 구덩이들로 보이는 곳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영원한 고통과 고난을 받고 있었다.
한 남자는 썩고 있는 팔을 가지고 있었다. 팔이 썩는 데는 백년이 흘렀다. 그 후에 그의 팔은 다시 썩기 위해서 회복되었다.
거기에는 전쟁 때 머리의 일부가 절단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자기 머리의 나머지 부분을 계속 찾아 헤맸다.
지옥의 고통은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고통에 백만 배를 더한 것과 같다.”
여러분, 지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곳입니다. 그런데, 전도는 이 무시무시한 지옥에서 사람을 건져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가 가장 큰 효도이고, 전도가 가장 큰 자녀사랑입니다. 그리고 전도가 가장 큰 이웃사랑입니다. 때문에 로버트 맥체인은 거듭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더욱 사랑할수록, 지옥에 관해 더 많이 언급할 것입니다!”
“마음속에 사랑을 가장 많이 간직한 자들이 지옥에 관해 가장 많이 언급합니다.”
“어제 들판을 걷고 있을 때, 제 설교를 들은 자들이 조만간 심판대 앞에 선 후 천국이나 지옥으로 보내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제 마음을 강하게 압도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에게 경고해야 하며, 지옥에 관해 말해야 합니다.”
동의가 되시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전도하는 자에게 가장 큰 상급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저는 오래 전, 어떤 입신간증에서 천국에서 받게 될 여러 종류의 면류관 중 전도를 많이 한 사람에게 주는 면류관이 가장 크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또,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책에 보면 이런 간증이 나옵니다.
“모두 나와서 강단 주위에 둘러서 기도를 하고 있었고, 나도 강대상 가까이 접는 의자를 하나 놓고 강단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방언기도를 시작했는데, 나는 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리로 올라오너라!’
... 그때 나는 눈을 떠 천막 꼭대기 부분쯤에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내가 다시 눈을 들어보니 천막은 사라져버리고 접는 의자도 사라져버렸습니다. 천막을 지지하고 있던 기둥들도 사라져버리고 강대상도 사라져버렸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영적 세계를 보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거기 서 계시고 나는 그의 임재 안에 서 있었습니다.
주님은 손에 한 왕관을 들고 계셨습니다. 이 관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인간의 언어로는 감히 묘사할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사람이 쓸 면류관이란다. 나의 백성은 너무나 영혼구원에 무관심하구나. 이 면류관은 모든 나의 자녀들을 위해 준비된 것이다. 내가 ‘이 사람에게 가서 말하라. 혹은 저 사람을 위해 기도해라’고 해도 내 백성은 너무 바쁘구나. 그들은 이것을 미루어버리고 그들이 내게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영혼들은 잃어버린바 되는구나.’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을 때 나는 주님 앞에서 울었습니다. 나는 무릎을 꿇고 나의 잘못들을 회개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내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이리 올라오너라!’
나는 마치 내가 주님과 함께 대기권을 통과하여 한 아름다운 도시에 온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 도시의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은 너무 이기적으로 자기들이 천국에 올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한다고 하셨습니다. 또 그들은 그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어둠 속에 소망 없이 살고 있는데도 하늘의 영광과 맨션에 관해 말하고 있다고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나의 소망을 그들과 함께 나누고 그들도 나와 함께 천국에 올 수 있도록 초청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나를 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 이제 지옥으로 내려 가보자.’
우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내려갔습니다. 수많은 성경구절들이 지옥은 우리 아래 있는 곳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사야 14장 9절과 15절에는 ‘아래의 음부가 너희로 인하여 소동하며…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지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옥으로 내려갔는데 그곳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불꽃에 싸여 있는 사람인 듯한 것들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남자들과 여자들에게 이곳에 관해 경고해라.’ 나는 그러겠노라고 울면서 소리쳤습니다.”
또한, 리처드 시그문드 목사님의 책에도 이런 간증이 나옵니다.
“선교사들의 주택
이 대로 곁에는 비할 데 없는 주택들이 있었다. 나는 천사로부터 그 주택들이 선교사들을 위한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선교사들이 드린 모든 것은 주님께 드린 것이다. 나는 우리가 이 땅에서 받지 못하는 모든 상을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주실 것이라는 점을 믿는다...
어떤 선교사들은 근래에 죽었는데, 수많은 사람이 휘장 앞에서 그들을 환영하고 있었다. 나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휘장 안으로 들어온 한 선교사를 보았다. 그가 휘장 안으로 들어와서 했던 것 중의 하나는 자기 옷을 잡고서 ‘오, 정말 아름답군요. 더는 누더기를 입지 않아도 되겠어요.’라고 말한 것이었다. 그의 옷은 금실로 만들어졌다. 수천 명의 사람이 그에게 인사했다. 선교사들의 상은 대단히 크다. 하나님께서는 선교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신다.
나는 대로에 있던 한 주택으로 인도받았다. 그 주택은 거대한 진주를 깎아 만든 단독 건물이었다. 그 주택은 60-90미터 길이에 30미터 높이로 보였다. 내부에 있는 가구들은 천사들이 진주를 깎아서 모양을 낸 것들이었다. 샹들리에도 진주를 깎아서 만든 것이었다. 샹들리에는 불이 켜져 있었으며, 내부로부터 빛이 뿜어져 나왔다.
진주로 만들어진 그 주택은 펄(Pearl. 진주)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의 소유였으며, 천사들은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기가 먹을 음식을 나누어준 선교사로 알려졌다. 결국, 그녀는 아사(死)했다. 진주 주택은 순결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주어진 상이었다.
그 대로 위에는 다수의 다른 종류의 주택들이 있었다. 이 세상에서는 그런 주택들을 짓는 것을 상상도 못할 것이지만, 천국에서는 가능하다...
나는 다른 선교사에게 속한 특별한 주택을 보고자 잠시 멈춰서기를 원했다... 그 주택 안에는 수백 명의 사람이 있었다. 그들 모두는 이 선교사가 주님께로 인도한 사람들이었다. 이 선교사에게 있어 그들은 가족이요 삶의 일부였다. 그들은 여전히 그 선교사의 대가족의 일부였으며, 진정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있던 평화와 안식은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전도를 열심히 한 사람들의 상은 이렇게도 큽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열심히 전도합시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모든 가능한 수단을 사용해서 전도하고 또 전도합시다.
그런데, 우리가 전도할 때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참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워드 마샬은 부자와 다섯 형제들이 가지고 있었던 믿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예들이어서 죽은 다음의 벌 따위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사복음서를 통해, 우리는 이런 잘못된 믿음이 유대인들 사이에 팽배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믿음은 모세와 선지자들의 가르침과는 충돌합니다. 또, 예수님의 가르침과도 충돌합니다. 대럴 벅은 그것을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자신의 가르침과 구약성경의 윤리적인 메시지를 매우 밀접하게 연결시킨다. 같은 성격을 지닌 것으로서, 이 비유는 누가복음 16장 16~17절과 같은 구절들의 가르침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사실상 자기들이 모세오경과 선지서들의 수호자들이라고 이해했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예수님의 윤리적인 가르침을 존중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수님의 윤리적인 가르침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종들이 가르쳤던 것과 일치한다. 따라서 예수님에 대한 어떤 사람의 반응은 그가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 나타낸다(요 5:39~47). 재물에 대한 인식과 가난한 사람들을 관대하게 대해야 한다는 문제와 관련하여, 이 점은 특히 사실이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구약성경의 메시지를 선포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구약성경이 요구하는 공의와 사랑(특히 이웃에 대한 사랑)을 성취하려고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약성경의 모든 선지자가 이구동성으로 외친 것이 무엇입니까? 회개하라 입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회개를 강조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오직 믿음’ 운운하며 믿기만 하면 무조건 천국에 간다고 말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은 참 복음이 아닙니다.
또, 많은 이들이 로마서 10장 9-10절에 근거해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부활하신 것을 믿으면 구원을 받고 무조건 천국에 간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로 보건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입술의 시인이 아닙니다. 행위로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시인하는 것입니다(딛 1:16). 그러므로 예수님의 주되심을 강조하지 않는 것은 모두 참 복음이 아닙니다.
또한, 구약성경과의 단절을 꾀하는 복음 역시 참 복음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구약시대에는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았는데, 신약시대에는 복음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믿기만 하면 말씀대로 살지 못했어도 최소한 천국에는 간다고 말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전한 복음과 다른복음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17-20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때문에 저뿐 아니라 신현우 교수님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세와 선지자의 가르침을 듣지 않는다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자(예수님)의 가르침도 듣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이것은 교회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모세의 가르침(율법)과 선지자의 가르침(선지서), 즉 구약성경을 무시하고 율법이 폐지되었다고 하면서 삶의 기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복음서에 담긴 많은 윤리적 교훈들)을 율법의 일종으로 여기면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거짓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되 참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을 단순히 교회가 아니라 구주와 주님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세상에 이것보다 가치가 있고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또한, 이것이 저의 설교와 책이 특별히 중요하고 우리 교회의 사역과 선교가 특별히 중요한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는 단지 불신자들에게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 복음에 속아서 평생 신앙생활 하다가 지옥에 갈 수많은 목사와 신자들을 깨우고 살리는 사역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옥경 목사님이 말한 대로 우리 교회는 뭇 영혼들을 위해 절대로 실패해선 안 되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힘을 합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통해 이루시기 원하시는 꿈을 반드시 이뤄드려야 합니다.
끝으로, 강력한 동기부여를 위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김상호 장로님의 “깡통을 차고 빌어먹어도 지옥만은 가지 마라!” 책에 보면 참으로 가슴 아픈 간증이 나옵니다.
“천사가 말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지옥을 방문하도록 하자.’
그 말에 나는 소스라쳤다.
‘안 됩니다. 나는 더 이상 지옥에는 못 갑니다’
그러자 천사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부터는 방문자로서 지옥의 고통을 느끼지 않고 지옥의 상황만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 하지마라.’
그때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무서운 지옥을 다시 간다는 말에는 언뜻 내키진 않지만 그렇다고 천사의 말에 마냥 불순종할 수도 없었다. 어떤 면에서는 신앙생활에 큰 유익도 있을 것 같아 순종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천사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데, 건물에 불이 났을 때 타오르는 매콤한 유독가스가 코끝을 자극하며 목은 1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막혀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디쯤 왔을까? 내가 생각하기도 한참 들어온 것 같은데 천사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하도 궁금하여 물었다.
‘천사님,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인지요?’
‘가보면 안다.’
‘어디를 가보면 안다는 것인지요?’
‘지금은 말할 수 없다.’
‘그래도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나도 마음이 아파 차마 입을 못 열겠구나.’
나는 더욱 조바심이 났다. 천사는 왜 확실히 말해주지 않는 것일까 생각하며, 손으로 코를 막고 걸어가고 있는데 유황불이 활활 타오르는 어느 곳에서 천사가 발걸음을 멈췄다.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천사님 여기는 왜 왔는지요?’
‘조금 후면 알게 된단다.’
천사는 그 유황불을 관리하며 사람을 태우는 마귀에게 뭐라고 말하는 것 같더니 조금 후에 불에 타서 온몸이 개처럼 끄슬린 노인네가 기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어디서 본 듯한 노인인데 금방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힘없이 끌려 나오던 노인은 나를 보자 놀란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상호야! 어찌된 일이냐?’
‘아…, 아버님이세요?’
‘그래, 너도 죽어서 지옥에 온 게냐?’
‘아닙니다. 죽어서 온 것이 아닙니다. 방문자로 왔습니다.’
흐르는 눈물이 목으로 넘어가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아버님이 좀 더 오래 사셨으며 분명 전도하여 구원시켜드렸을 텐데, 이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아버지의 몰골을 보니, 이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온몸이 유황불에 그슬렸고, 마귀의 채찍에 휘둘려 온몸의 살점은 떨어져나가 흉측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때 아버지가 죽을힘을 다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상호야, 내 아들아!’
‘네, 아버지…’
‘이곳은 사람이 살 데가 못되는 곳이다. 그러니 너는 나중에 이곳에 오면 안 된다.’
‘네.’
‘세상에 나가거든 남은 형제들에게 우상이고 뭐고 다 버리고 하나님 앞에 가라고 해. 네가 세상에 나가거든 꼭 형제들을 전도해야 한다.’
‘네, 아버지.’
나는 울면서 아버지를 부둥켜안았다. 나만 운 것이 아니라 아버지 또한 통곡을 하고 계셨다. 이 통곡이 차라리 남북이산가족 만남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 자신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지옥에서 만날 사람이 있으면 안 된다.
면회시간이 끝나고 아버지는 힘없는 발걸음으로 마귀에게 끌려가셨다. 뒤돌아보는 아버지의 얼굴 모습을 보니 가슴이 천근만근처럼 느껴졌다. 그때 나는 결심을 하고 또 결심을 했다. 가족들 전도를 위해서라면 내 목숨을 담보로 구원시키리라.”
정말 가슴 아프고 끔찍한 일이지요! 여러분, 이처럼 부모나 형제나 친척이 귀신들에 의해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을 보는 것도 끔찍하고 못 볼일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자녀가 마귀에게 붙잡혀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을 보는 것은 얼마나 더 목불일견이겠습니까?
제가 지금까지 자녀를 키우면서 경험한 가장 끔찍한 것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울산에서 개척교회를 할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주원이가 교회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팔이 부러졌습니다. 팔이 완전히 부러져 덜렁 덜렁하는 팔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급히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부러진 팔의 뼈에 구멍을 뚫어서 나사를 박고 붙을 때까지 교정시키는 수술을 하기 위해 수술실로 아이를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주원이는 어릴 때 굉장히 귀여웠습니다. 그래서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제가 뽀뽀하고 깨물고 했더니, 귀찮아하며 따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시험에 들 정도로 튕기고 또 튕겼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아빠를 따르지 않는 주원이가 수술실로 의사에게 들려 들어가면서 공포에 질려 두 팔을 벌리고 울며 “아빠”를 연거푸 부르는데, 그것을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참으로 제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저는 그 날의 경험이 참으로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매일 기도할 때마다 빠짐없이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바로 자녀들을 예수님의 피로 덮고, 모든 사고와 위험과 질병과 감염과 천재지변으로부터 보호해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자라면서 한 번도 안 다친 것은 아니지만 그런 끔찍한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제가 이 말을 왜 하는지 아시겠지요! 자녀가 다쳐서 의사에게 수술실로 끌려들어가며 두 손을 벌리고 “아빠”를 부르는 모습을 보는 것도 이렇게 견디기가 힘듭니다. 그런데 만일 사랑하는 자녀가 불신자로 살거나 신앙생활을 똑바로 안 하다가 죽어서, 치료하려는 의사도 아니고 영원히 고문하려고 악귀들이 지옥으로 끌고 가는 모습을 본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상상하기도 끔찍한 일 아닙니까? 그것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지금 기도하고 전도하고 말씀으로 훈육하면 됩니다. 만일 부자처럼 죽은 후에는 그 끔찍한 일을 막을 수 없습니다. 또, 자녀가 죽어도 그 일을 막을 수 없습니다. 둘 다 살아 있을 동안에만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큰 은혜요 복이고, 사랑하는 자녀들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도 하나님의 큰 은혜요 복입니다. 우리 모두 이 귀한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복음을 전합시다. 자녀들이 듣기 좋아하든 싫어하든, 자주 예수 믿고, 죄를 회개하고, 성경 읽고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합시다. 자녀뿐 아니라 부모 형제 친척 이웃들에게도 그렇게 말합시다.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가 그들을 최고로 사랑하는 것이고, 그 기회는 영원히 우리에게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https://youtu.be/2ea4WliMykI?si=X9VqR3dtvLVQVCU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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