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성교육의 허와 실 (칼럼)
천안교육지원청 교육장 / 이병도
교직을 천직으로 알고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 투신한 지도 어언 30여 년이 넘었다. 스스로의 발자취를 뒤돌아보면서 나는 봉급에 목숨을 건 월급쟁이였나? 아니면 페스탈로치의 후예를 꿈꾸었던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 교육입국의 패러다임에 천착하여 온 교육자다운 교사였나를 회고해 본다.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던 최근의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초등학교 3학년 학생에게 하교를 만류하다 뺨을 맞고 책가방으로 구타당하면서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던 교감 선생님의 모습이다. 우리는 무엇을 했나 쓰게 웃는 스스로에게 연민이 그늘을 지운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한 워딩이 당면한 현실 앞에 무슨 의미가 있고 이념의 허구 앞에 사상누각이 되어 허물어져 가는 느낌이다. 우리는 역사가 없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야만족이라고 폄훼한다. 당연하다. 우리의 역사는 반만년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신화적이기도 하고 우화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간과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이기지심이 읽고 싶은 것만 읽고 쓰고 싶은 것만 쓰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는 것이다. 하여 우리가 지도하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전인적인 교육이거나 인성 중심의 효교육이 진개장의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사람답게 살고 싶어 한다. 사람답게 사는 것이란 무엇인가. 맹자는 4단 7정을 통해서 측은지심(惻隱之心) 남을 가엽게 여기는 타고난 착한 마음, 수오지심(羞惡之心)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 사양지심(辭讓之心) 양보하고 사양하는 마음, 시비지심(是非之心)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을 역설하고 최소한 4단을 알고 행하는 사람을 사람답다고 일찍 설파했다.
지금의 학교 교육은 사람다운 삶 즉 사람다운 성품을 길러 주는 교육인가. 아니면 입시 위주의 교육, 생업을 위한 기술교육, 출세를 위한 진로 교육이 그 대종을 이루고 있는가. 각급학교마다 특성화 교육에 매진하고 있는 일선 학교의 애환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의 행군이라는 생각에는 추호도 흔들림이 없다. 그러나 변질되어 가는 학부모의 횡포에 가까운 간섭과 이들의 눈치를 거스를 수 없는 학교의 현실도 안타깝다.
앞서 말한 교감 선생님의 예에서 보듯이 현행 법령이나 예규나 조례가 있어도 교육자와 피교육자라는 관점에서 대칭관계로만 정립시킬 수 없는 현실의 답은 찾아 제시하기가 힘들다. 교육(敎育)이라는 단어에서 교(敎)는 효도 "효"와 칠 "복"(攵)의 합성이다. 즉 교(敎)는 ‘孝+攵’, 효를 회초리로 때려 가르친다는 의미인데 대한민국에는 효도 없고 회초리가 없다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인성교육의 지침이 되는 효교육은 아예 없어진다는 의미가 되고 현재도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에 귀착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인 기현상만 해도 바로 인성교육의 부재에서 그 원인을 찾고 싶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라고 하여 인구 감소 현상은 인명 경시 사상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강보에 싸인 아기를 냉장고 속에 얼려 죽이고, 보육원 처마 끝에 버리고, 집어던져 침대 모서리에 부딪혀 죽이고, 보육원 보모가 이불을 덮어 눌러 죽이고, 비닐에 싸서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는 것이 대종은 아닐지라도 매일이다시피 지면을 장식한다. 세계 제1의 노인 고독사의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처방이나 대안은 무엇인가? 세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패륜범죄와 패역 범죄가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의 법치가 실종되고 법 정의가 미흡해서 발생하는 것인가?
2024년이 서서히 그 막을 내리고 있다. 세계는 3대 위기에 봉착에서 그 해를 찾기에 급급하지만 이에 대한 해답도 보이지 않는다. 그 하나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재앙이고 둘째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아랍 진영과의 전쟁으로 이어지는 재앙이고 셋째가 내로남불로 이어지는 인성마비가 가져올 재앙이다. 셋째 재앙은 인류 스스로가 자초하는 것일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감히 제언한다. 우리에게 기회는 늦지 않았다. 우선하여 가정교육에서 학부모는 자식들 인격을 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인성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출세하여 돈 많이 벌고 남보다 앞서가는 자식들의 개인적인 역사 속에 효자가 나오는지 착한 인성이 길러지는지를 꼼꼼히 살펴보기를 바란다. 흔히들 자식에게 목숨을 잃어버리는 예를 보면 그들은 자식 교육보다 돈의 노예가 되어 내로남불의 대표적인 실세들이다. 그들은 자식들에게 효를 받는 것이 아니라 보복을 받는 것이다.
학교 교육에서 교사들은 어떠한 경우도 권위를 잃어서는 안 된다. 교권이란 누가 만들어서 부여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지키는 것이다. 교권이 지켜져야 학생 인권도 존재한다. 이스라엘의 경우는 13세까지 부모는 회초리로 매섭게 자식 교육의 위엄을 고수한다. 사회 일각에서 하고 있는 어른들의 행위는 성장과정의 학생들에게는 오염원이다. 맹자의 4단 7정을 기억하며 아이들에게 손가락질당하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행동들을 자제하기 바란다.
우리 모두는 남의 일에는 간섭하기를 꺼려하지만 그래도 객관적이고 합리적 판단을 제시하려 한다. 지피지기를 통하여 자신에게도 객관적인 잣대로 재단해야 한다. 자신의 일에 있어서는 지독하게도 이기적이고 편파적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자신의 불행이고 가족의 불행이고 사회적 손실이다. 2025년은 인성이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되고 가정 학교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함께 환하게 웃을 수 있도록 사람다워 지자.
2. 가정 윤리의 실종이 주는 경종 (칼럼)
천안교육지원청 교육장 / 이병도
초등학교 교실에서 한부모 가구 학생비율 통계는 약 7%다. 초등학교에서 중등학교로 올라갈수록 그 숫자는 증가한다. 청소년 보호 감호소의 보호감호중인 청소년들에게 너희들은 출소 후에 무엇부터 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져 본다. 머뭇거리다 작심한 듯 눈물을 흘리며 하는 말 중 아버지를 죽여 버리겠다는 청소년이 있다. 패륜살인은 가족 간의 살인 행위다. 가끔씩 지면을 장식하는 젊은 살인마들의 행태 중 무차별 살인이나 이유 없는 살인으로 세간의 이목을 뜨겁게 달군다. 이들의 성장배경에는 부모의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결손 가정이거나 부모의 성격장애나 가정불화 속에서 자란 기형적인 성격 형성이 사회적 이단아를 만드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교육은 모태부터라고 강변한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형성된 사랑은 지적 수준을 벗어나 이지적이고 합리적이다. 보편적 가치에 기준을 둔다. 부모는 보편적 가치 실현을 위하여 모범을 보이고 약속을 이행한다. 대다수가 3대가 함께 산다. 조부모 대와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가 일가를 이룬다. 이는 조부모 세대의 경륜과 경험을 중시하고 부모세대의 상경하애 정신을 중심으로 자신의 세대가 도전하는 미래의 길을 제시하여 준다.
더하여 민족 공동체에 대한 철두철미한 자존의식으로 말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정신영역의 DNA를 구축한다. 그들의 비극적 역사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비장한 각오들을 주입시키어 오늘의 이스라엘을 만들어 낸 것이다. 모태교육,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이 같은 맥락에서 혼연일체로 길들여지고 훈련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남과 북이 주적으로 총부뿌리를 겨누고 있다. 일제의 식민 노예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데 36년간의 수탈과 탄압의 고통을 받았다. 더하여 2천만 민족 중 1천만 이산가족을 잉태한 6·25 전쟁의 참상을 겪었다. 그 참상의 아픔을 딛고 경제대국으로 무역국가로 신흥 문명국가로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였지만 국민의 국가관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행복지수 또한 최하위다. 저출산 국가로 악명이 높고 자살률도 연 13년간 최고의 자리를 지킨다. 국방의무를 해태하고자 하는 청년층의 마음가짐에 놀라고 오로지 돈과 권력의 추종을 위한 천민자본주의의 민낯을 보이는 일부 학부모들의 과잉 자식 사랑에 대한 내로남불에 놀라고 결혼이 필요 없다는 80%의 미혼 여성들에게 놀라고 사사건건 정적들의 힐난과 물어뜯는 당쟁의 극심한 사태에 놀라고 이혼을 여름날 냉수 마시는 것처럼 가볍게 여기는 사고에 놀라고 이를 보편시 하는 국민들의 시각 변화에 놀란다.
특히 은혜를 나 몰라라 하는 풍조가 만연되면 사회가 짐승만 못한 본능이 지배하는 사회로 전락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짐승은 약육강식의 룰에 길들여져 있지만 모성 본능은 인간만 못지아니하다. 인간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두뇌에는 영특함과 간특함 이 있다. 시기와 질투가 있고 오만과 독선이 있다. 그리고 이를 교묘하게 이용할 줄 아는 지혜가 있다
우리는 교육을 통하여 선(善) 지향적인 인간의 두뇌로 바꾸어야 한다. 부끄러움을 알고 어려운 이웃에게 베풀 줄 알고 사양을 통하여 양보할 줄 알고 보다 겸손할 줄 아는 동물과 다른 가치관을 지녀야 한다. 본능과 이성이 병존하는 보편적 가치지향이 실종되어 가는 모습들이 우리를 아연하게 한다. 가정윤리란 부모는 부모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국가 윤리는 나라가 나라다워야 하고 국민은 국민다워야 한다. 부모의 은혜, 자식의 도리가 실종되면 가정은 파탄 나고 가정윤리는 실종된다.
필자는 교육 현장에서 교육이 국가백년대계(國家百年大計)임을 되새긴다.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도 국가도 무너진다. 교육으로 가정을 지켜내고 국가를 지탱할 수 있다고 믿는다. 혼탁한 세상에 맑은 물을 부어줄 수 있는 마중물이 절실하다.
[이병도 프로필]
1964년 충남 서천 출신
공주대 교육학박사
중고등학교교사 28년
충남교육청 장학관.
현재 천안교육지원청 교육장
첫댓글
덕향문학 15호 이병도 천안교육지원청 교육장님 칼럼 원고 2편
추가하여 편집합니다.
옥고를 보내주시어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