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불교를 억압(抑壓)
태종은 불교의 폐해 됨을 깊이 살피시고 승려를 계칙하시고 사전(寺田)을 몰수하여 관전을 만드시고 정치적으로 눌렀으나 승려들의 폐해는 졸연히 없어지지 않았다. 삼국과 고려 이후로 국민의 머리에 침륜되어 전멸되기는 극난한 일이다. 지금 남은 것 선교(禪敎) 2종만 남았으나 이제 전국에 있는 불전이 많이 훼파 하고 노비전토는 다 몰수되고 다만 국내에 몇 백의 사찰만 두고 엄중한 감시를 더하고 역대군왕도 다 선왕의 유지를 받들어 불교를 억압하여 대삿갓 쓰고 바랑을 지고는 경성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다.
따라서 민간에서도 불교를 이단이라 하여 절에 가서 중이 되는 자는 죄인이나 사생자이나 첩의 자손들이나 그렇지 않으면 무의무탁한 자들 사회의 불구자들 이외에는 들어가는 이가 없었다. 승려는 모두 심산궁곡에 숨어 있어 산금(山禽) 야수(野獸)와 짝하고 이 사회의 일민(逸民)으로 산중 별건곤에 가만히 숨어 있어 불등(佛燈)을 지킬 뿐이다.
이제도 일천여의 절과 수천의 승려가 있으나 정치상에 아무 관계가 없고 절집은 삼국 혹 고려 때 지은 것은 그냥 두고 다시 수축하지 않았다. 산중에 장엄한 불전이 모두 창연(蒼然)한 고색(古色)을 띄고 서 있는 것을 본 국민들은 눈물 먹음 고 예를 생각는 마음 금할 수 없다. 삼국고려시대에는 정치상 우월한 권리가 있으며 일반 민중의 숭배도 끔찍하였더니 오늘 와서 승려의 무가치 무자격으로 인정되고 중이면 일반사람들 앞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고 하대를 받아 왔다.
이것은 이조에 유교가 들어와 정치윤리를 주장한 후로는 불교는 무부무군(無父無君)인 이단으로 배척을 받았다. 역대 선현들이 척불(斥佛)하지 않은 선배가 없고 따라서 역대군왕들도 척불하지 않은 군왕이 없었다. 그 후 성종(成宗)때 보우(普雨) 중이 있어 중도 과거를 보게 하고 궁내에까지 침입되었다가 일반유신들의 상소로 인하여 며칠 못가서 없어졌다. 이로 인하여 불교에서도 위대한 일문이 없는 고로 따라서 불교가 쇠미에 도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