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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3927Bible 말씀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운영자예은.
사마리아의 성령의 광복절/행8:14-25
사마리아 선교가 빌립 집사에 의해 성공적으로 실행되자,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서 대표로 베드로와 요한이 파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두 사도는 사마리아 교회의 현실을 살핀 뒤 그들 교회의 부족한 점을 채워 줌으로써, 사마리아 성도들이 더욱 역동적으로 신앙 생활을 영위해갈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유대와 사마리아는 오랜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마침내 예수님과 상령 안에서 하나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복된 상황 중에서도 마술사 시몬의 물욕적인 은사 매매 제안이발생했습니다. 실로 이같은 물질 지상주의에 오염된 은사관, 신앙관은 앞으로초대 교회 아니 모든 교회가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할 하나의 유혹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사도행전의 핵심 구절은 1:8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역사란 바로 행 1:8절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28장은 1:8절에 의해 그 순서가 결정되게 됩니다. 복음이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능력을 얻었습니다. 성령을 받자마자 그들은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고 밖으로 뛰어나갔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예루살렘에서 복음이 편만하게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예루살렘 중심가에서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성령은 첫째 예루살렘에 임했습니다. 이것이 1장부터 7장까지의 내용입니다.둘째,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가 8장부터 12장까지 나옵니다. 그 다음 13장부터 23장까지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내용입니다.
여러분의 생애도 행 1:8절에 의해 결정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먼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주변에 있는 친척들과 이웃,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싫어하는 사람이 모두 구원을 받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이 임하면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우리 나라로 말하면 성령이 임하면 우리 나라가 복을 받습니다. 이 복은 사마리아와 같은 존재인 일본과 주변 국가에 전해지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제일 놀라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성령 세례가 내게 임하면내가 생각했던 신앙의 틀을 벗어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는 자기가 생각하는 신앙의 틀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면 자기를 초월합니다. 자기의 가치관, 성격, 이성과 같은 것들이 유감스럽게도 다 깨져 버리는 것입니다. 완전히 산산조각 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우리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곳에도 가게 됩니다.
본문 14절에 보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니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았을 뿐이로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성령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져야 합니다.
여기에 보면 성령을 아직 한 사람에게도 내리신 일이 없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았을 뿐이지 성령이 무엇인지 알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본문의 말씀에서 성령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여기에 나타나는 시몬과 같은 사람이 생각한 성령관이 오늘날 버젓이 기독교 대한 감리회에도 예수교 장로회에도 개신교에 지금도 횡행하고 있다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성령은 이상하게 기사와 이적이나 나타나고 별나게 굴게 되어지는 일을 성령으로 알기가 쉽습니다. 또 이렇게 잘못 인식시켜서 가르치거나 말씀되었던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참으로 성령이 무엇입니까? 지금 여기에는 신약의 말씀이 성령입니다.
이 성령은 예수님의 4개 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거룩하신 구원의 역사가 신약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전부가 성령입니다. 진리가 곧 성령입니다. 이 말씀이 내게 불같이 함께 하시고 이 말씀대로 사는 것이 성령 받은 생활입니다.이 말씀으로 세상을 이기는 것이 성령의 승리입니다. 이 말씀으로 효험을 이루어가는 것이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이 말씀대로 살았더니 원수를 사랑할 수있었습니다. 이 말씀으로 기도했더니 변화를 입게 된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찬송을 했더니 세상이 고마운 상급의 일터가 되어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말씀으로 아내를 사랑했더니, 남편을 사랑하고 존경했더니, 이 말씀으로 부모를 잘 섬겼더니, 이 말씀으로 자녀를 주안에서 잘 키웠더니, 엄청난 하늘의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나게 된 것이 곧 성령의 열매가 되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쓸데없는 생각은 말아야 합니다. 어떻게 기도를 하면 능력이 있어서 이산을 저쪽으로 옮기라면 옮겨질 수 있을까 하는 능력을 좀 받았으면 좋겠다고 하지를 말아야 합니다. 능력이 있으신 분은 오직 주님뿐입니다. 주님만이 그것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 분의 능력을 힘입어서 할 일은, 산을 옮기는 것이 할 일이 아닙니다. 병고치는 것이 할 일이 아닙니다.
"주여! 내가 주의 이름으로 병든 자를 고치고 능력을 행했습니다 할 때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불법을 행한 자야 내 뒤로 물러가라" 하신 주님의 음성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엉뚱한 것을 청하고 신앙인의 잘못된 생각에 빠지고 마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이름으로 차력이라도 하면 이것은 신비한 성령한 역사로 되어지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며 마술을 부리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그게 무슨 성령의 역사인줄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신통하게 꼭꼭 집어내는지 쪽집게라고 합니다. 기독교 운동에 쪽집게가 어디 있습니까?
남의 허물을 보는 것이 기독교가 아닙니다. 허다한 것을 덮어 주고 감추어 주고 용서해주고 하지는 못할 망정 남의 허물을 들추고 쑤시고 아프게 하는 것은 기독교 운동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남의 흉을 보는 것은 빗나가도 보통 빗나간 사람이 아닙니다.
장로, 권사, 집사들 가운데서 남의 흉이나 보고, 남의 소리나 하는 것은 기독교인이 아닌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주의 일을 이루어 나가는데는 언제든지 협력해서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빌 바를 알지 못하는 나를 위하여 성령께서 빌어주시고 역사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사실과 이런 세계를 알아볼 수 있도록 되어지는 것이 성령이 충만케 된 증거가 되는 것이고, 이것이 성령의 열매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봉독된 본문의 말씀 14절부터 25절까지의 말씀을 잘 모르게 되면 여기에 빠지게 되어서 시몬처럼 하는 일이 더 성령 충만인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언의 말씀을 하지 않으면 다 가짜들입니다. 어디에 그런 짓을 하라고 되어 있습니까? 성서적으로 잘못되어진 것이 오히려 더 제대로 되어진 것처럼 알게 되어지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에 더 몰리고 더 흥행하게 되어있는 악하고 험난한 세대가 되어버리고 만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것은 신약시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 때에도 다 있었던 일입니다.
신명기 13장 1절에서 5절까지를 보면 꿈꾸는 자 혹은 이적과 기사를 보이면서 우리를 꾀어내려고 하는 자를 죽이라고 했습니다. 옛날에도 오늘날에도 이런 흉악한 거짓된 자들이 우리를 미혹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 것이 가시덤불에 불길이 역사 하시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해서 이 세상을 의로 통과할 수 있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통과할 수 있다는 것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우리 주님은 "불법을 행하는 자야 너는 내 뒤로 물러나라!" 이렇게 책망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이와 같은 꼴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루즈벨트 대령이 한참 스페인과의 전쟁으로 인해 식량이 모자라 쿠바 주재 미국 적십자사를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자기 수하에 있는 부상병들에게 줄 간식을 사기 위해, 가지고 있는 모든돈을 모아 가지고 적십자사를 찾아갔습니다.
루즈벨트 대령은 담당 직원에게 돈을 내밀며,
"나에게 빵을 좀 팔지 않겠소?"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담당 직원은 예상외로 빵은 팔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낙심한 그는 어쩔 수 없이 적십자사의 최고 책임자를 찾아가 사정을 말하고 빵을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책임자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당신은 뭔가 오해를 하고 있군요. 그 빵은 돈을 받고 파는 것이 아니라 병사들을 위해 위문 선물로 들어온 것입니다. 가셔서 담당직원에게 그냥 달라고 말해 보십시오."
잠시 후, 루즈벨트 대령은 한 푼의 돈도 내지 않고 한아름의 빵을 안고 적십자사 문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병사들을 위해서 마련된 구호품과는 비교도 안 될, 하나님께서 주님을믿는 모든 자에게 값없이 선물로 주시는 은사를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가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시몬은 하나님의 은사를 돈주고 사려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팽배해가는 배금주의에 휩싸여서 과거 시몬과도 같이 하나님의 선물을 간절히 구할 생각은 하지 않고, 마치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란 착각 속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야 할 것입니다.
시몬이란 사람은 돈을 주고 안수의 능력을 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 simon에 y를 붙여서 '성직의 매매'라는 뜻의 영어 단어인 simony라는 단어로 굳어져서 성도와 교회에 경계가 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귀신 쫓고 능력을 행하는 것,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열매입니다. 거룩의 열매가 있는가, 희생과 헌신의 열매가 있는가 살펴 보아야 합니다. 성령을 통해 무엇을 얻었습니까? 성령을 통해서 내가 무엇을 주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어떤 것입니까? 내가 이익을 보았습니까? 아니면 손해를 보았습니까? 여기 진정한 성령 사역의 갈림길이 있는 것입니다.
성령 사역에서의 가장 큰 유혹은 물질과 세속의 영광을 섬김과 연관시킴으로써 하나님이 거룩과 영광과 빛을 보지 못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하여 자기 내면의 깊은 세계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시몬은 사실은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녔습니다. 그런데 빌립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스데반과 똑같은 운동을 하니까 도무지 이 세상을 겁내지 않고, 사마리아의 많은 병자들을 오히려 두려워하지 않고,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옮을까봐 피하지 않고 그들을 더 위해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놀라운 역사로 인해서 세상의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것들이 고쳐지니까 이것은 성령의 도우심이요, 하나님의 신령한 축복 가운데 역사 되어지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많은 疾苦도 우리의 힘으로 못 고치겠다고 포기하면 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고쳐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질고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질고보다 평안과 기쁨과 은혜는 얼마나 충만하게 주고 계시는지 모릅니다. 이것은 성령의 신령한 축복과 은혜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바로 알아야 하는데 이것을 무슨 돈을 주고 사면 될 수 있는 일인 줄로 시몬이 착각을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사도들 가운데도 이것을 잘못 알아 가지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유다와 사마리아와 온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고 하신 말씀 속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해서 예루살렘을 안 떠나면 되는 줄 알았던 사도들이 그게 아닌 줄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이 중대한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이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이 바로우리 주 여호와 아버지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입니다. 우리 주 여호와 아버지 하나님은 편재하시는 하나님이요,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신데 무슨 처소가 따로 있겠습니까?
이것을 깨달아 안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을 안 떠나고 있던 것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예루살렘을 떠나서 빌립이 애써서 수고한다는 사마리아로 오게 되어졌습니다.
사마리아가 온통 예루살렘의 불길에 싸여지게 되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제일 문제의 인물이 시몬이라는 사람입니다. 시몬은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지만 세례를 받은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시몬이야 말로 나도 어떻게 하면 성령을 행할 수 있을까? 이런 엉뚱한 생각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빗나간 교회상이 여기에서 싹트게 되어지고 만 것입니다.
교회가 할 일 중에 무엇이 더 급한지 그것을 다 상실해 버리고 말았습니다.으리으리한 예배당 짓는데 만 도취되고 말았지 진짜 예배당이 할 일이 무엇인지 잃어버리고 예루살렘 성전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진짜 교회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하지 못한 교회가 더 많다는 것은 사마리아와 똑같은 재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사마리아에 와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에 나타나셨던 성령이신 진리를 이들에게 전파하기 시작했더니 성령을 받아들이는 사마리아의 모든 성도들이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동안 2,500년을 두고 이런 기쁨을 처음 맛보게 되어졌기 때문입니다.
사람 대접도 처음이고, 성도의 대접을 받아보기도 처음이고 성한 사람이 되어서 소망의 대우를 받아본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여태까지 이들이 살아온 것은 전부 다 병중에서 살았고, 죄중에서 살았고, 멸시중에서 살았고, 고통중에서 살았을 뿐입니다. 편안한 데서 살아보지를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진정 성령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과 기쁨과 충만하신 소망 가운데 살 수 있게 되고 보니 그 동안 잘못 살은 것에 대해서 뉘우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시몬은 이런 놀라운 역사가 빌립과 베드로와 요한으로 인해서 이루어지는 줄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순수한 운동입니다. 즉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운동이십니다. 우리에게 힘이 되시고 기도가 되시고 넘치는 충만한 역사가 되시는 성령님의 운동이신데 이것을 시몬은 빌립이 하는 줄로만 생각했다는 것은 잘못된 판단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면 되는 줄로 아는 것은 다 시몬들입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성령이신 신약의 말씀을, 공관복음의 말씀을, 주님께서 이 땅위에 오신 그 말씀을, 주님이 세상을 이기신 그 말씀을, 주님이 육신을 쫓지 않고 영을 쫓아서 역사 하신 그 말씀을 머리로 삼아 나가겠습니다 하는 이 운동만이 참 교회운동이 되어 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부 다 시몬이 생각한대로 금이나 은이나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권능으로 생각하는 운동이었습니다.
이것은 교회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네가 하나님의 권능을 돈주고 살 줄로 생각 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고책망했습니다. 하나님의 은사나, 성령의 역사나, 하나님의 교회를 물질적인 것과 연관시켜 해석하고 사역을 할 때는 돈과 함께 망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이렇게 책망하는 이들이 없습니다. 오늘날은 이런 것들을 오히려 두둔할지언정 책망하는 이가 없는 시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이 교회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바 되었구나.
성령을 물질화, 상품화하는 사람 자신은 '도'와 '분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분깃은 '몫' 또는 '제비 뽑아 얻은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 후에 제비를 뽑아 팔레스타인을 분할한데서 유래한 표현입니다.신약에서는 하나님 나라에서 얻게 될 축복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여기에서 우리에게 놀라운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비록 시몬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악한 결과를 갖게 되었을 경우라도, 우리가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면 용서해 주십니다.
시몬은 이 말을 듣자마자 다음과 같은 요청을 합니다. 24절을 보십시오."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말게 하소서 하니라." 시몬은 참 순진했습니다. 이 사람은 원래 점치는 무당이었습니다. 예수 믿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습니다. 성령의 안수로 인해 기적이 나는 것을 보고서 돈을 주고 그 능력을 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돈과 함께 망할지어다" 라고 하니까,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게 해 달라고 말합니다. 매우 순진합니다. 이런 신앙의 순진함이 이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에게도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날도 시몬 같은 목사들이, 은사 교권자들이, 엄청난 세력을 가지고 큰 자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진정 베드로도 지난날에는 모세의 40대와 같은 혈기를 가지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모든 것이 다 수포로 돌아가고 아무것도 아니고 참으로 하나님을 뵙기가 부끄럽게 되었고, 주님을 맞이하기가 민망스럽게 되었고, 주님을 죽어도 따르겠다고 했던 베드로가 자기 힘으로 따르려 해도 될 수가 없는 것을 깨달아 안 체험이 한 두 가지가 아니고 자기의 얼굴에 먹칠을 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시몬은 바로 깨달았습니다. 물론 완전히 깨달은 것은 아니지만 겁을 먹을 수있는 사람이 되어졌습니다. 이제 이 사람이 좀더 온전하게 되어지기 위하여서는 성령을 참으로 체험하지 않으면 안될 사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광복절이라고 하는 중대한 때를 같이한 우리 교회마다 우리가 속회에 모여서 신약의 말씀을 읽을 때마다 구약과 신약이 하나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살아 계신 말씀이 그 가정에 임하여 그 말씀으로 하나라도 이루어 가기만 하면 성령이 충만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가지고 기쁨을 이루어 가는 집은 그 집에 성령의 기쁨이 충만한 가정입니다. 그 말씀을 가지고 누구를 대할 때도 우리 하나님께서 상급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가지고, 복음으로 살아가는 집들은 복음에 약속된 하나님의 큰 역사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무슨 일을 하든지 복음을 따라 일하기를 바랍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복음서에 나타난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이 명령으로 알고 그 말씀에 피동이 되어서 그 말씀이 하자는 대로 하신 사람들의 삶이 바로 성령 충만함을 받은 삶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염두에 두지도 않고 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성령이 충만한 것과는 관계가 없는 삶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에 보면 네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거하여 거하여 거하여 라고 여러번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농사를 짓더라도, 공무원, 장사 등 무엇을 하더라도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그 말씀에 의해서 일하는 것이 성령 충만인 것입니다. 그 말씀대로 살아갈 때 역사하는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부부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을 대할 때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남편을 대할 때 성령이 충만한 것이요, 성령이 충만하면 성령의 열매가 있을 것이요, 성령의 열매가 있으면 큰 보화가 될 것이요, 영원토록 하나님의 나라에 부요를 이루어가는 역사가 된다고 하는 이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몬 운동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시몬 운동이 되면 돈가지고 되는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그때 그때 제목 따라서 이루어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 생활을 충실하게 해 나가는 성령 충만한 운동이 없이 내 멋대로 내 생각나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하고는 관계없이예배당이나 들락날락하면서 하나님의 말씀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운동을 한다면 부부생활도 성령의 생활이 아닙니다.
부자지간의 생활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지 않으면 성령의 운동이 아닙니다. 모든 매사에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역사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하나 하나를 이루어 가는 것만이 성령에 충만한 주의 은혜의 생활이 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아야 합니다.
이 사람은 성령의 광복절을 입어서 언제든지 기쁨이 넘치는 승리의 생활이 되고 모든 죄와 허물로부터 해방 받은 생활이 되고 어떤 경우에도 자유가 넘치는 생활이 곧 광복절이지 자유도 없는 생활이 무슨 광복절입니까?
어떻게 성령 세례를 받든지 간에 우리에게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받고 구원받는 것과 동시에, 능력있게 주님을 위해 살 수 있도록, 승리하며 살 수 있도록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한 기독교인 작가가 "지금의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님을 증거할 때 느꼈던 흥분을 잃어 버렸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기 잡는 생업에 열중하느라 정신없는 어부들을 부르셔서“나를 따라오너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그들은 고기잡는 일보다 더 기뻐하면서 많은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서 희열과 만족을 느꼈음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도록 주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저 감격도, 흥분도 느끼지 못한 채 무덤덤하게 복음을 받아들이거나, 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위하여 사람을 낚는 즐거움을 맛보려면 그들 속에 들어가 진정한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의 기쁨과 슬픔과 걱정들을 같이 나누고, 같이 느껴야 합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얼마나 그들을 배려하는가를 알 때까지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복음을 증거할 기회를 찾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