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界經典Ⅱ 제1부 하나님과 창조
제5장 죽음 이후의 삶과 영계
영생을 위한 준비
종교는 내생의 모습을 단순히 사별한 사람들에게는 위안으로, 혹은 현생에서 억압받은 사람들에게 진정제로 말해질 수 없다. 오히려 내세의 삶은 지상생활의 목적을 고양시키고 그 의미를 분명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지상에서 어떻게 사느냐가 그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영생을 지향하는 안목을 갖고 이 땅에서 산다.
사실 지상의 삶이야말로 우리가 내세의 삶을 준비해야 하는 유일한 기회라는 것이 널리 알려졌다. 행위와 그 응보에 대한 연결고리는 죽음에 의해 분리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영원한 세계에서 자신이 현생에서 행한 행위들의 결실들을 거둔다. 지상생활에서 어떤 사람이 열심히 일하거나 게으르고, 관대하거나 인색하며, 용기 있거나 겁이 많으며, 관용적이거나 질투심이 많은 것처럼, 그의 내생에서도 그 상태대로 지속된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죽기 전에 종교적인 가르침을 따르고 그릇된 행위를 참회하며 모든 잘잘못을 깨끗이 정화함으로써 영생을 바라보는 눈을 갖고 산다. 준비된 자에게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부주의하고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죽음은 회한을 남기며 무시무시하고 갑자기 닥쳐온다. 문선명 선생은 영계에서 영혼들은 사랑의 공기로 숨 쉰다고 가르친다. 지상에서 사랑하는 능력을 가꾸지 않으면 그 영계가 숨 막히는 곳임을 알게 된다. 영원한 세계에서 인간이 누릴 행복의 척도는 지상생활에서 닦은 사랑의 능력이다.
1. 영원의 시간에서 찰라와 같은 지상생활
종교 경전
너희가 회당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의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것처럼 현세는 앞으로 도래할 세계의 현관과 같다. 미슈나, 아보스 4.21 (유대교)
귀매(歸妹): 군자는 (이 괘를 보고) 끝을 영원하게 살펴서 한때의 감정이 무상함을 깨닫는다. 역경 54 (유교)
이 세상에서 선행을 베풀고 한 시간 동안이라도 회개하는 것이 저 세상에서의 모든 삶보다도 훨씬 좋다. 그리고 저 세상에서 한 시간 동안 평온을 가지는 것이 이 세상에서의 모든 삶보다도 낫다. 미슈나, 아보스 4.22 (유대교)
오랜 시간의 과정 속에서 사람의 생을 받는 것은 매우 드문 기회이다. 어렵고 또 어려운 것은 업보이다. 가우타마여, 항상 주의하라! 웃타라디야야나 수트라 10.4 (자이나교)
그리고 우리는 사망, 곧 앰율레크가 말한 사망이 인류에게 임함을 보나니, 이는 현세적 사망이라. 그러할지라도 사람에게는 회개할 기간이 주어졌나니, 그러므로 이 생은 시험의 상태요,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는 시간이요, 우리가 말한 바 죽은 자의 부활 이후에 있는, 저 끝없는 상태를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되었느니라. 몰몬경, 앨마서 12.24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일시적 현세의 것을 바라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은 원하는 사람에게 원하는 것을 주실 것이니라. 그러나 종국에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지옥을 마련하셨으니, 그곳에서 불타고 더럽혀지고 버려지리라. 내세의 것을 추구하여 인내로써 노력하고 신앙을 가진 자는 그들의 노력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리라. 꾸란 17.18-19 (이슬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장보기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장바구니를 채우든 못 채우든 시간이 되면 집으로 가야만 한다. 이보족의 노래 (아프리카 전통종교)
비유하여 수명을 다한 낙엽이 땅 위로 떨어지듯 사람의 삶도 또한 그러하나니, 고타마여, 늘 삼갈지니라! 풀잎 끝에 매달린 이슬방울이 다만 한 순간에 사라져버리듯 사람의 삶도 또한 그러하나니, 고타마여, 늘 삼갈지니라! 인생은 흐르는 물과도 같이 또는 시위를 떠난 화살과도 같이 순식간에 흘러가며 현존은 불확실하나니, 그대가 지은 온갖 죄악들을 서둘러 씻어 버리라. 오, 고타마여, 늘 삼갈지니라! 웃타라드야야나 수트라 10.1-3 (자이나교)
저녁에 다음날 아침까지 살아 있기를 기대하지 말며, 아침에는 저녁까지 살아 있기를 기대하지 말라. 너희가 건강할 때 아플 때를 준비하고 살아 있을 때 죽음을 준비하라. 알 나와위 하디스 40선 40 (이슬람)
오! 사람들이여, 무슨 일을 하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예기하여라. 일시적이고 부질없는 현세의 부귀와 권력, 쾌락을 대신해서 영원한 은총을 얻도록 하여라.
쏜살같은 과정을 준비할지니, 이곳은 너희가 잠시 쉬어가는 곳이니라. 항상 죽음을 준비해야 하느니, 당신들은 한갓 죽음의 그림자 아래 살고 있을 따름이라. 하나님의 복음을 들은 사람처럼 현명하게 처신하고 그 복음으로부터 경고의 의미를 새길지어다.
현세는 당신들이 영원히 살 곳이 아님을 깨우쳐야 되나니, 당신은 그 삶을 내세에서 바꾸게 되리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지니, 그분께서는 목적 없이 당신을 창조하지 않으셨고 의무나 책임도 지우지 않고 내버려두시지 않으셨도다.…
당신은 내세에서 당신들에게 유용하고 도움이 되는 수확을 현세에서 거둘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나흐줄 발라가, 설교 67 (이슬람)
말씀 선집
우리들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영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과 영계는 두 세계가 아니고 하나의 세계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야 할 곳, 우리가 가서 살아야 할 곳이 어디입니까? 물론 우리는 육신 생활을 하면서 이 땅에 있지만 영원한 세계를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세상에 태어나게 되면 일생 동안 10대를 지나, 20대를 지나, 30대를 지나 중년을 지나고 장년, 노년시대를 거쳐 갑니다. 이렇게 지는 해와 같이 일생을 끝마칩니다.
그러나 영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일생이라는 것이 잠깐이고, 죽은 다음에 우리가 맞이해야 할 세계가 영원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일생이라는 것은 영원한 세계를 준비하기 위한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140-121, 1986.02.09)
육신과 영인체를 중심삼고 볼 때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육이 아니라 영입니다. 육은 70-80년의 시간권, 한계권내에서 살다가 사라지고 말지만 영은 시간권을 초월하고 공간권까지 초월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역사적인 책임을 깨닫고 책임을 다하는 것이 인간의 본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육신을 중심삼고 잘 살더라도 결국은 죽게 됩니다. 어차피 육신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기준과 육적인 기준 중에 어느 것이 보다 중요한 것이냐? 육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육은 영을 위하여, 영은 육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20-326, 1968.07.14)
영계에 가게 되면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질식합니다. 호흡이 맞지 않습니다. 지상생활은 무엇입니까? 지상세계는 저 세계에 들어가서 호흡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훈련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아내보다도 남을 사랑해야 합니다.
(121-294, 1982.10.29)
어머니의 복중에서 태교를 잘 받아야만 건강하고 선한 애기로 태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고, 하나님의 심정을 본받고, 하나님의 거룩한 신성을 본받으며 자라야 됩니다. 자라서 또 생명을 걸고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14-17, 1964.04.19)
지상에 천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훈련시키기 위한 무대가 종교입니다. 종교는 본향에 돌아가게 될 때 그 고향 법을 살아생전에 지상에서 훈련받아서 그 법도에 적응할 수 있는 인격을 갖추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종교생활의 도리입니다.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자신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온유 겸손을 강조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희생 봉사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됩니까? 본향의 법칙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어차피 본향을 찾아가는 나그네와 같은 신세이므로 본향에 가서 살 법도에 알맞게 훈련시키려니,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희생하라고 가르쳐 온 것입니다.
(77-189, 1975.04.06)
이 땅 위에 있는 생활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한 번밖에 없습니다. 지상 생활을 영생에 비유하면 이것은 한 점에 불과하고 너무 짧은 순간입니다. 나의 육신 생활을 넘어 영계를 위해서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항상 그런 주류사상을 지니고 일체를 주관하고 정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개성 완성을 이룰 수 없습니다.
(207-99, 1990.11.01)
‘내가 젊으니 이제부터 적어도 사십 년, 오십 년은 산다’는 욕심을 갖고 있지요? 하나님에게 보증 받고 있습니까? 될 수 있는 대로 짧게, 일년 이내에 죽을 것으로 생각하십시오. 이 짧은 기간에 준비를 다 해야 합니다. 이 관념을 갖고 사십시오. 될 수 있는 대로 짧게 잡을수록 행복합니다. 짧게 잡을수록 손해 안 봅니다. 그 기간에 참되게 준비하는 내용이 자기의 영원한 생명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2년 후에 진짜 죽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심각하겠습니까? 공동묘지에도 가 보고, 장사 나가는 데도 가 보십시오. 이것은 신앙생활에 절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죽는 것이고, 죽겠다고 하는 사람은 사는 것입니다. 원리가 적용되는 것입니다. 내가 빨리 죽고자 하면서 짧은 기간에 뜻을 위해서 죽겠다고, 하늘을 위해서 죽겠다고 생각하면 영원히 살게 됩니다.
(102-122, 1978.11.27)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