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나는 나의 힘 되신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내가 재난을 당할 때에, 주님은 나의 요새, 나의 피난처가 되어주시기에,
아침마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노래하렵니다.
[시편 59:16]
시편59편의 표제는,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사람을 보내어서 그의 집을 감시하고 있을 때 다윗이 지은 시'다.
암울한 상황에서 시인은 기도한다.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변한 것이 없다.
하지만, 기도 후 시인의 마음이 변했다.
기도하기 전에는 지금 눈 앞에 보이는 현실에 절망했지만,
기도한 후에는 하나님께서 이 불의한 현실을 바로 잡아주실 것을 믿고 소망을 품는다.
이것이 기도다.
한결같으신 하나님께서 바로 잡아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다잡는 것, 그것이 기도다.
하나님은,
차별없이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시다.
시편 59편에서는 '한결같은 하나님'이 10,16,17절에 반복되어 표현된다.
그렇다.
하나님은 변함없으시며 한결같은 분이시다.
진리는 불변하며 한결같다.
그러나,
인간은 변하고 한결같지 않다.
그래서,
인간은 매순간 새롭게 변해야 한다.
기도는 그 출발선이다.
11절을 유진 피터슨은 이렇게 해석했다.
"하나님,
내 백성이 잊지 않도록 저들을 단번에 해치우지 마소서.
저들을 천천히 쓰러뜨리시고 아주 서서히 해체하소서."
조금 더디더라도 잊지않고 기억해야 다시 반복되지 않으므로,
악인들을 천천히 쓰러뜨려 모든 이들이 보고 기억할 수 있도록, 그래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간구인 것이다.
살다보면 사방 적들에 욱여싸여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악인들이 승승장구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무기력증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러한 때에 기도는 우리를 무기력증에 빠져들지 않게 하는 힘이다.
오경운은 기도는 '앙망'이라고 한다.
하늘을 우러른다는 말이다.
이렇게 하늘을 우러루는 시간을 통해서 숨 막히던 현실로부터 눈을 돌려,
그 현실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자신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너머의 하나님의 섭리가 보이기 되는 것이다.
이것을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참된 기도다.
"아침마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노래하렵니다(16)."
그렇다.
기도는 영적 호흡이다.
아침의 공기가 가장 맑듯, 하루의 첫 시간에 가장 맑은 기도를 드릴 수 있다.
기도한 후에는 현실 너머의 것,
한결같으신 하나님께서 이뤄주실 것을 '미리 봄(믿음)'으로 모든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변함없는 분이시다.
그러나 인간은 변해야 한다.
거듭나야 한다.
기도는 거듭남의 출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