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견인(perseverance)과 배교(apostasy)의 문제는 신자가 중도에서 타락할 수 있는가 할 수 없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 질문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 가운데 어느 쪽의 역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하는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서도 칼뱅주의와 아르미니우스주의의 입장은 상반된다.
루이스 벌코프(L. Berkhof)는 구원의 길에서 인간의 지속적인 활동을 견인의 요인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고 지적하면서, 성도의 견인을 “심령 안에서 시작된 신적 은혜의 사역이 지속되고 완성에 이르게 하는 신자 안에서의 성령의 지속적 사역”으로 정의했다. 이는 견인에서 인간이 협력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견인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칼뱅주의를 대변하는 장로교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17장에서는 성도의 견인을 이렇게 고백했다: “하나님이 그의 사랑하시는 자로 받아들이시고 성령으로 유효하게 부르시고 성화하게 하신 자들은 은혜의 상태로부터 전적으로나 최종적으로 떨어져나갈 수 없으며, 마지막까지 확실히 견인하며 영원히 구원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 셈이다. 하지만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성경적 사례와 신앙의 속성을 근거로 견인사상을 비판한다. 신자들도 실제로 배교하여 하나님을 떠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회중주체적 조직신학], 456-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