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결
시호시호 이내시호 부재래지 시호로다
만세일지 장부로서 오만년지 시호로다
용천검 드는칼을 아니쓰고 무엇하리
무수장삼 떨쳐입고 이칼저칼 넌즛들어
호호망망 넓은천지 일신으로 비껴서서
칼노래 한곡조를 시호시호 불러내니
용천검 날랜칼은 일월을 희롱하고
게으른 무수장삼 우주에 덮여있네
만고명장 어디있나 장부당전 무장사라
좋을시고 좋을시고 이내신명 좋을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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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검결은 대신사께서 남원 은적암에서 칼노래를 부르면서
목검으로 칼춤을 추신 심정을 읊으신 글이다.
“龍泉劍(용천금) 드는 칼을 아니쓰고 무엇하리 무수장삼 떨쳐입고 이칼저칼 넌즞들어 호호망망 넓은천지 일신으로 비껴서서 칼노래 한고조를 시호시호 불러내니 용천검 날랜칼은 일월을 희롱하고 게으른 무수장삼 우주에 덮혀있네 만고명장 어디있나 장ㅂ당전 무장사라 좋을시고 좋을시고 이내신명 좋을시고”라는 칼춤이 절로 추어진다. 칼은 전공(戰功)을 세우려고 하든가, 또는 기도하면 흉기가 된다. 기술로만 보면 殺人器(살인기)다. 마음을 바르게 하고 사회의 기강을 세우라는 뜻에서 스승님께서 劍舞(검무)를 추시고 劍歌(검가)를 부르셨다. 그리고 무궁한 나를 노래하셨다. 대신사께서는 이 검결로 인하여 조선조에서 처형을 달하셨다. (묵암 신용구 선생 강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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訣(결)의 사전적 의미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아 내 놓는 말씀이라는 뜻으로 다소 예언적이고 또 잠언적인 성격을 지닌 말씀이 된다. 이 '결'은 대신사께서 임술년(1862년)12월에 흥해 매곡동에 있는 손 봉조라는 도인의 집에서 처음 접주제를 확립하고 새해인 계해년을 맞아 새해에 새 아침에 쓴 시가 된다. 그러므로 이 시에는 새로운 결의와 내일에 대한 희망이 담겨져 있음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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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사님께서는 1860년 4월 5일 영부를 받고 무극대도의 길에서 수련과 정진을 계속하였다. 그 사이에 동학의 경전 <용담유사>에 실리는 각종 가사를 지었다. 석가ㆍ예수ㆍ마호메드 등 성인들이 종교를 창도할 때 글이나 책을 쓰지 않고 ‘말씀’을 한 것을 제자와 신도들이 나중에 기억을 옮긴 데 비해 최제우는 경전을 직접 남겼다는 차이가 있다.1860년은 조선(대한제국)이 일제에 병탄되기 꼭 50년 전이다. 이 시기에 대신사님의 등장은 ‘역사순환사관’이나 ‘종교섭리론’으로 보아서 ‘후천개벽’을 통한 메시아(구세주)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에 받은 주문과 영부 그리고 직접 한글로 지은 각종 <가사>는 한결같이 ‘시대적 변혁의지’와 ‘종교적 정신희열’을 담고 있다. 그 중에서 ‘검결’ 또는 ‘검가’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대신사께서 ‘검결’과 ‘검가’를 별도로 지은 것인지, 같은 내용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1922년에 천도교단에서 <용담유사>를 간행할 때 ‘검결’과 ‘검가’는 왠일인지 빠졌다. 일제의 탄압을 피하고자 하여 뺀 것인지, 아니면 총독부 검열과정에서 삭제된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현존하는 것은 필사되어 전해진 것을 옮긴 것이다.< 검결>은 ‘칼노래’라는 뜻으로 2음보 1구로 총 24구의 짧은 노래이다. 사회변혁적 의지가 강하게 담긴 이 가사는 최제우가 전라북도 남원의 은적암에서 수도를 하면서 득도의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검결>을 짓고 목검(木劍)으로 춤을 추었다고 한다.< 검결>은 그 제목에서 시사되는 바와 같이 ‘검무(劍舞)’라는 춤동작과 직결되는 작품으로, 동학의 의식에서 주로 사용되던 노래이다. 동학의 의식에서는 특히 달이 밝은 밤이면 산정에 올라 하늘에 제(天祭)를 지내는데, 이 의식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목검(木劍)을 손에 쥐고 검무를 추면서 의식에 참가한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이러한 <검결>이 보여 주고 있는 모습은 곧 동학이라는 종교적 의식, 또는 표현의 하나로서, ‘칼’이 지니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와 함께 동학이 지향하는 후천개벽의 새로운 세상을 위해 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나서겠다는, 그러한 일련의 의지를 작품을 통해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호(時乎)’란 때가 이르렀다는 말이다. 지금은 다시 올 수 없는 기회이며, 개벽 후 5만년 동안 처음으로 맞이한 시기에 용천검을 사용하자는 주장이다. 이 노래를 부르며 칼춤을 추는 의식은 ‘혁명’의 거사를 의미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래서 이 가사 ‘검결’은 <용담유사>를 간행할 때 빠지게 되었을 것이다
종교집단에서 ‘검무’를 추고 ‘검결’을 찬양하기란 쉽지 않다. 내용도 무기(武氣:무의 기운)가 넘친다. “용천검 드는 칼을 아니 쓰고 무엇하리. 무수장삼 떨쳐입고 이칼 저칼 넌줏들어 호호망망 넓은 천지 일신으로 비켜서서 칼 노래 한 곡조를 시시호호 불러내니.”에서 보이듯이 최제우는 수도나 포덕에만 그치지 않고. 후천개벽의 세상을 위한 변혁을 시도하였던 것임을 보여준다.
1894년 갑오농민혁명 때에는 동학군의 군가로 애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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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천 오만년의 무극대도로서 세상을 살려 나가기 위하여는 활활발발한 기운으로 이 세상 속에서 살아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천도교도 많은 부분이 현대적으로, 국민이 쉽게 다가올 수 잇도록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좀더 긍정적으로 승화되어야 합니다. 어진 동덕님들이 많이 모여서 위하고 위하는 마음으로, 한울님 마음으로, 지혜를 모으고 예악이 살아나고, 풍류로 흥이 일어날 때 더욱 더 세상을 조화롭게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천덕송도 편곡이 되어 좀 더 신명이 나는 곡조로도 불려지면 좋겠다는 소망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어진 새로운 분들이 많이 우리 천도교 도문으로 오시도록 하여 신파람나게 천도교를 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셔야 합니다.
오늘도 매우 춥습니다. 도체 잘 보중하시며 심고드리고 시천주 주문 외우시며 행복한 천도의 삶 이루소서.
포덕167년 1월 21일 부암 심고 010.2664.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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