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맛을 보기 좋게 버무려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MKZ에 이어 신세대 링컨 MKC가 국내에 들어왔다. 보수 대신 진보를 택한 디자인은 스타일 숭배자들의 관심을 끌 만하고, 정제된 움직임과 합리적인 값은 신흥 부유층의 구미를 당길 만하다.
경제위기를 맞아 재규어와 랜드로버, 애스턴마틴 등 프리미엄 브랜드를 차례로 정리한 포드는 2012년 수퍼볼 광고를 내는 등 링컨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밝혀왔다. 동시에 포드 산하의 링컨 사업부를 ‘링컨 모터 공공연히 컴퍼니’로 승격시키며 중장기 전략의 일환으로 링컨 재건을 위해 10억달러(약 10조원)라는 두둑한 현금 투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고스란히 제품 경쟁력의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등장한 MKZ가 그 첫 결과물. 그리고 이제 두 번째 수혜자인 MKC가 국내에 발을 디뎠다.
신세대 링컨 SUV
지난해 LA오토쇼를 통해 정식 데뷔한 MKC는 MKZ에 이어 등장한 신세대 링컨 모델이자 첫 소형 SUV다. MKC의 크기(길이×너비×높이 4,550×1,865×1,640mm)는 BMW X3(4,657×1,881×1,678mm), 아우디 Q5(4,629×1,898×1,655mm)보다는 작고 메르세데스 벤츠 GLK(4,525×1,840×1,690mm)에 가깝다.
새롭지만 링컨 100년 전통을 깡그리 무시하진 않았다. 전통을 잇되 세련된 표현법을 썼다. 펼친 날개를 형상화한 그릴은 한결 날렵해져 지나치게 근엄했던 이전 링컨들에 비해 산뜻하다. 중앙에 링컨 로고가 선명하고 날개 끝으로 자연스럽게 헤드램프를 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LED DRL(주간주행등)을 두었다. 범퍼 안쪽엔 연비 향상을 위한 액티브 셔터 그릴을 숨겼다. 저속에선 활짝 열어 많은 공기를 받아들이고 고속에선 틈새를 메워 공기저항을 줄이는 똑똑한 아이템이다.
코르사의 매력은 대부분의 B 세그먼트 모델들이 그렇듯 4m 남짓한 콤팩트한 사이즈에 5인승 시트를 갖춘 경제성과 효율성을 첫손에 꼽는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소 밋밋했던 4세대 디자인을 한층 매력적인 외모로 진화시켰다. 공간 확보에 주력하느라 복어처럼 빵빵하게 부풀렸던 보디는 유지했지만 전체적인 인상은 크게 달라졌다. 헤드램프는 아래쪽의 단차를 다른 모델보다 조금 더 강조해 ‘ㄱ’자 형태로 날카롭게 꺾었고, 프론트 그릴은 범퍼 흡기구와 일체화시켰다. 또한 보닛에 새로운 라인을 넣고 사이드 캐릭터 라인을 더욱 강조하는 변화를 꾀했다. 섀시는 완전 신형이라고 홍보하고는 있지만 사실 구형에 사용된 GM-피아트 합작 소형 플랫폼을 대폭 개량한 것이다. 이는 개발비 부담을 줄여야 하는 소형차 브랜드에서 흔한 수법으로 폭스바겐 골프 역시 2세대에 한 번씩 플랫폼을 전면적으로 교체하고 있다.
차체에 비해 큰 19인치 휠과 타이어를 품은 펜더 위로 캐릭터 라인을 그은 동시에 중간을 살짝 안으로 밀어넣어 입체감을 살린 옆모습도 매력적이다. 이른바 ‘윙 그릴’로 앞에서 링컨의 전통을 지켰다면 뒤쪽에선 가로형태로 긴 테일램프가 그 역할을 담당한다. 램프 중간을 살짝 아래로 내리는 센스도 맘에 든다. 키를 갖고 있는 상태에서 왼쪽 테일파이프 아랫부분을 발로 저으면 스스륵 열리는 테일게이트는 보디 바깥쪽까지 일체형으로 디자인해 체구를 넓게 보이도록 했다. 아우디 Q5와 비슷한데 테일램프를 끝까지 연결하지 않은 점 때문에 이 같은 시각적인 특징이 더 두드러진다.
변화의 기조는 실내에도 이어진다. 대시보드 중간에 자리한 우드 트림과 가죽이 마치 모던 가구 느낌이다. 부드러운 시트의 감촉 또한 칭찬할 만한 요소. 스코틀랜드의 가죽회사인 브리지 오브 위어(Bridge of Weir)에서 공급하는 딥소프트 가죽인데 감성품질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크롬 성분이 없다. 이 회사의 가죽 소재는 체어맨 W 보우 에디션, 링컨 MKX 등을 통해서 뛰어난 품질을 경험한 바 있다. 스티어링 휠은 볼스도프(Wollsdorf)사의 가죽으로 마무리했다.
실내 거주성도 나쁘지 않다. 1열 레그룸은 1,087mm로 이스케이프는 물론이고 Q5(1,041mm), GLK(1,052mm)보다 넉넉하며 2열 레그룸은 935mm(이스케이프 동일)로 Q5(950mm)와 GLK(892mm) 사이다. 숄더룸은 Q5가 가장 넉넉하고 헤드룸은 GLK가 앞서며 MKC는 그 중간이다. 총 거주공간(EPA)은 2.77㎥로 GLK(2.92㎥)와 Q5(2.87㎥)에 약간 뒤진다. SAE 기준으로 측정한 트렁크는 799~1,504L로, Q5(824~1623L)와 GLK(467~1549L)의 중간이다.
진중한 움직임의 매력
시승차의 엔진은 2.0L 에코부스트로 직분사와 터보를 버무린 다운사이징의 대표주자다. 포드 이스케이프를 통해 익숙한 유닛인데 5,500rpm에서 최고출력 243마력, 3,000rpm에서 최대토크 37.3kg·m를 낸다. 같은 엔진을 쓰지만 MKC의 무게가 1,865kg으로 1,785kg인 이스케이프보다 좀 더 나간다. 연비와 CO₂ 배출량이 9.0km/L, 198g/km로 이스케이프(9.2km/L, 192g/km)보다 살짝 뒤지는 이유다.
기어레버를 없애고 센터페시아 왼쪽에 나란히 버튼으로 붙인 변속 시스템이 독특하다. MKZ부터 쓰고 있는 것인데 공간활용 면에서 좋은 점수를 줄 만하다. 반면 팔이 짧은 체형이라면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여야하기 때문에 기능적인 면에선 호불호가 갈린다.
엔진음은 이스케이프보다 정돈되었다. 소리의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니라 음색이 그렇다.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 기능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으리라. 듣기 거북한 소리를 반대 파형으로 상쇄시키는 기능인데 단순히 소리를 줄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좋은 소리만 골라 남긴 느낌이다.
가볍지 않은 몸집임에도 초기 가속은 빠릿빠릿하다. 토크컨버터 방식의 6단 변속기 동작도 미끄럼 손실이 크게 느껴지진 않는다. 늘어난 몸무게를 감안했기 때문인지 이스케이프보다 초기 가속에 집중한 세팅이다. 덕분에 도심 주행에서나 급출발할 때 경쾌하게 움직인다.
다만 시속 80km 수준을 넘어서면서 움직임이 얌전해진다. 절대적인 가속감이 떨어진다는 소리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밀어붙이는 경향이 조금 누그러진다는 뜻이다. 예전 깡통 터보처럼 터보랙이 크진 않지만 토크밴드가 두터운 편도 아니다. 국내 시장에서 겨뤄야 할 동급의 라이벌들이 대부분 묵직한 토크를 내는 디젤 유닛을 달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울 수 있는 부분이고 같은 엔진을 쓰는 이스케이프와 비교해도 살짝 느슨하다.
드라이빙 모드를 스포츠로 바꾸면 이러한 약점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 엔진회전을 높게 쓰며 스포티한 사운드를 뿜는 것이 꽤 자극적이다. 굽이진 코너는 MKC의 또 다른 면을 맞보기에 안성맞춤인 무대. 세단에 비해 키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와인딩이 두렵지 않다. 거의 실시간으로 댐핑 강성을 조절하는 연속 댐핑 제어(Continuously Controlled Damping) 시스템 덕분에 롤과 피칭이 크지 않다. 게다가 똑똑한 토크 벡터링 시스템은 바깥쪽 바퀴에 힘을 실어 자연스럽게 코너를 돌아나가도록 돕는다.
그러나 아무리 무림의 고수라도 필살기를 난발할 수 없는 것처럼 스포츠 모드는 양면의 날과 같다. 엔진회전수를 높여 운전의 즐거움을 주는 만큼 연료를 빨아대는 먹성도 상당하다. 급가속을 반복하는 구간에선 연비가 5km/L 가까이 떨어졌고, 차분히 달린 고속도로의 크루징 모드에선 14km/L까지 올랐다. 고로 스포츠 모드는 가끔 기분 풀기용으로만 써야 하는 필살기인 셈이다.
이스케이프를 통해 경험한 바 있는 다양한 편의장비도 반갑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기능은 주변 환경에 따라서 가속과 감속을 능동적으로 해주는 장치로 막히는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유용하다. 다만 최근에 나오는 시스템과 달리 저속에서는 자동으로 이 기능이 해제된다. 차선 이탈 방지 시스템은 졸음운전 등으로 차선을 이탈할 경우 시청각적인 경고뿐만 아니라 스티어링 휠을 살짝 안쪽으로 돌려 운전자의 주의를 깨운다. 졸음으로 인한 대형사고가 늘어나는 추세이기에 모든 차량에 기본으로 달았으면 하는 장비들이다.
지난 7월 포드 CEO에 오른 마크 필즈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반드시 이뤄내야 할 과제로 링컨의 재건을 강조했다. 2020년까지 300만 대를 팔아 마진을 두 자릿수로 올린다는 야무진 계획도 세웠다. MKZ가 그 시발점이었다면 MKC는 그 문을 조금 더 넓혀야 하는 숙명을 갖고 태어난 셈. 경험컨대 정성을 쏟은 티가 ‘팍팍’ 난다. 고급스런 링컨의 전통을 잇되 상류층 노인네들이 즐기던 사치스런 분위기를 말끔히 씻어내고 ‘합리적인 부(富)’에 익숙한 새로운 입맛에 맞춰 진화했다. 덕분에 단점이 많지 않다.
국내 수입차 시장의 대세를 이룬 디젤 엔진이 없다는 점을 약점으로 꼽을 이들이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값으로 이를 보상한다. 국내에 들어온 모델은 2.0 AWD로 4,960만원짜리와 5,300만원짜리 두 종류.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5,000만원 후반대에 시작하는 라이벌들보다 1,000만원 가까이 저렴하다. 이 정도라면 기름값 보상으로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