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불교기원 2560년 부처님 오신날이다.
사찰마다 봉축행사로 연등을 걸어놓고 부처님 탄생일을 축하하는
여러 행사가 사찰을 중심으로 이루어 지는 것 같다.
내가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는 불과 몇 년 안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독실한 신자라고 하기에는 그렇고 부처님상 앞에서 소원을
빌거나 염불을 하면서 득도하려는 사람도 아니다.
그리고 유명한 스님들의 설법을 많이 들어가며 수양을 쌓기위해
노력하는 사람고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과거 내 자신이 경험했던 인간의 근본문제...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 ? 인간의 존재는 왜 사람마다 다른 가치로 비쳐지며
내 자신은 왜 좋은 것보다도 안좋은 악연의 고리가 그렇게도 많은가 ?
내가 지금도 누구에게 말하기 껄끄러운 옛 가정사 문제..
이것도 나하고는 아무 관련이 없는데 나와 알고 있는 주변의 일이 나에게
엮어지고, 이로인한 엄청난 금전 손실등...
이에 따른 극도로 엄청난 스트레스는 결국 몸이 만신창이로 변하고,
그간 하던 사업도 그런대로 큰 돈은 못벌어도 밥은 먹고 살 정도였지만
한번 망가진 몸둥이는 이것마저 도저히 버틸수 없게 되면서...
그래도 이놈의 빌어먹을 마지막 자존심 하나는 있고보니..
말없이 조용히 가야겠다는 생각만 들고,
이제 더 이상 삶의 희망이 없어 결국 자살시도...
얼마나 시간이 지난는지는 몰라도 나도 모르게 몽롱한 상태에서 깨어보니
모 병원 응급실이지라...
당시 흐릿한 내 눈자위에 아른아른 거렸던 두분..
한분은 나와 잘아는 무역업 사장이고, 한분은 전혀 모르는 스님이 내 침대옆에
서 있지 않은가 ??
나중에 알아보니 당시 119에서 연고자를 연락할 방법이 없어 내 지갑속에
있는 이 무역업체 사장 명함을 보고 이분에게 연락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 무역사장님은 독실한 불자인데... 마침 이 스님과 저녁 식사중에
연락을 받고 같이 온 것이었다..
이 분들 한참후 가시면서...
“병원비는 대충 계산했으니 걱정말고, 앞으로 더 좋은 인연이 있어 달라는
부처님의 뜻으로 생각하고 몸이나 우선 잘 추수리게“ 하는 말만 지금
생각난다...
하여간 죽을 팔자는 아니었던지 그후 병원에서 나온후 모든 것 접고
좀 쉬다가 애따 모르겠다고 가락시장 노가다판에 뛰어들었다..
막상 이런 노가다일은 처음 해보는 일이라 입에 악바리를 물고 했지만
도저히 힘에 겨웠고 버티기 힘들어 사장에게 못하겠다고 하자,
그럼 화물차 운전일을 할수 있냐고 하길레.. 그러마 하고 핸들을 잡았다.
사실 예전에 승용차만 했었지 5톤 화물차는 처음이라.. 역시 궁하면 통하다는
말이 있듯이 시장바닥 몇바퀴 돌아본후 바로 수입물건 실으러 인천
연안부두로 출발했던 기억이 있다.
이일 하면서 팔자에 없는 지게차 운전 박사가 되었고, 화물차 엔진소리만
들어도 어디 이상이 있는지 나도 모르게 알게 되었다...
물론 이런일 3년정도 하다가 그만 두었지만...
이 시장통 일 하면서 일요일 쉬는 날이면 꼭 그 스님을 찾아가 세상사는
여러 이야기를 나누곤 하면서 절친해져 지금은 아주 막역한 친구처럼
재내고 있는 사이이다..
이 당시 이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더러 불교에 관한 지식이 정말 박식하다면서 불교발전을 위해 좋은 글
또는 일반 불도들이 생활의 지침이 되는 글이나 좀 써 줄수 없냐는 이야기도
자주 한 것 같은데...
물론 예전에 좀 읽어 보았던 몇권의 불교경전뿐이고, 사실 내가 더 많이
보았던 것은 기독교 성서와 관련된 것이 더 많았었다.
과거 영문학 공부하면서 영어사 관련부문에 고대영어 중세영어를 공부하면서
특히 고대영어 교재는 주로 초기 라틴어나 헬라어를 번역한 초기 성경이
거의 유일한 문헌이라서 본의 아니게 성서를 많이 읽어본 것이다.
그후 개인적으로 신.구약 해설서까지 독파하다보니 어느정도 기독교문화를
이해 할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당시 불교에 관련해서는 참 빈약한 지식밖에 없었고 해서..
당시 어느날 서울 남산밑에 있는 대원정사(불교전문 출판사)에 찾아가
불교학개론서부터 여러관련 경전이나 각종 해설서등 열 서너권을 사와
그때부터 지금까지 시간이 나는데로 틈틈이 지금까지도 보고 있는 중이다.
지금은 가끔씩 불교잡지나 신도 소식지란에 글을 쓰는것도
이런저런 식견이 이제는 더해지다보니 예전보다는 한층 깊어졌다고는 하나
그저 아직은 아마추어 수준일 뿐이다.
불교는 아시다시피 기독교나 이슬람교와는 달리 우주의 근원을 절대자
조물주 신(즉 하나님)이 있어 이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는 것을 것을
인정하지 않고, 우주 만물이 생겨나고 발전하는 것은 만물 밖의 다른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내에서 행해지는 인과법칙의 원리에 기인하다고
한다.
우리는 이것을 인연(因緣)법칙이라 하는데...
그래서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도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본다.
기독교는 우주만물 뿐만 아니라 인간도 신의 창조물이며, 특히 인간은
최초의 신의 피조물인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
카인과 아벨등 그후로 태어난 인간은 아담과 이브가 지었던 죄를 운명적으로
안고 태어난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신의 말씀을 믿고 행하여만 구원을 받아 이런 죄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반면 불교는 끊임없이 변하는 삼라만상 자연의 순환고리 즉 인연의 법칙에
의해 모든 생명체가 탄생하는 데, 인간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인간은 대우주 만물중에서도 깊은 인연의 결과로 태어나지만
인간도 결국 생노병사를 걸을 수밖에 없는 운명자체를 괴로움으로 보는
시각이다. 즉 이것을 고업(苦業)이라고 부른는데..
사람은 8가지 괴로움(八苦)이 있으며 이런 괴로움 고(苦)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8가지 바른 길(八正道)로 수행해야만 이런 고업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자세한 이론이나 내용은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설명하겠지만
오늘은 내가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에 대해 이야기 하는 관계로
이런 여러 자세한 불교이론은 생략하련다.
하여튼 내가 괴로움을 엄청 겪다보니 막연히 알고는 있었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이런 고업(苦業)이 어찌나 그리 잘 이론적으로
내 자신과 불교 인연론에 내가 살아온 과거가 너무 부합되기도 하는 것 같다.
내가 힘들었다면 힘 들었던 그 당시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것도
그런 것 모두가 나도 모르게 전생에 악업이 있어서 그려러니 하며 쉽게 잊고
지금 존재하며 이런 글줄이라도 쓰는 현실을 오히려 고맙게 여기니
참 마음 편하게 갖는 것도 나름대로 수양이라면 수양이 된것도
불교라는 덕분이다.
사실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사랑이나 불교에서 강조하는 자비란 말.
내용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이 동일하지만 왠지 자비란 말은 약간의
동정이나 애정이 더 서려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공자님이 강조한신 인(仁)이라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사람이 살면서 어떤 특정의 종교에 의해 더 삶이 밝아지고
아름다워 진다면 그것만으로 종교의 역할은 크다고 하겠다.
다만 맹목적인 숭배나 극단주의적 종교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들
있는 것 같은데... 이런 것은 참 종교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이런 사람들 종종 종교를 과학과 동일시 하는 데...
과학과 종교는 엄격히 분리해서 볼수 있는 마음의 식견도 필요한다.
과학은 자연 현상계에 존재하는 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고
종교는 현상계에 존재하지 않는 인간 내면의 깊은 심연의 세계에서
철학적 존재가치를 부여하는 의식이란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잠시 새벽에 일어나 잠시나마 불교 철학사 몇 페이지 좀 보면서
조용히 내 자신을 삶을 관조하며,
잠시후면 일터로 나갈 준비를 하련다..
이 새벽 길거리를 비추는 연등의 불빛만큼 온 세상이 더욱 밝고
따뜻하기를 바라면서,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부처님의 자비가 온누리에 가득하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