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동 시인의 시 읽기
지키는 존재의 오래된 윤리
-지킴의 윤리로 되살아난, 우리 시대의 개 이야기
❙이명 시집 『개』 (문창)
-「개」를 읽고
버려짐에서 귀의(歸依)로 — 시가 되살린 개의 존엄
이명의 시 《개》는 먼 길을 함께 걸어온 주인과 개의 마지막 장면에서 시작된다. 주인은 개를 차에 태우고 산기슭에 내려놓고 떠난다. 개는 몇 번을 짖으며 쫓아가지만 끝내 따라가지 않는다. 표면적으로는 ’유기(遺棄)’의 장면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는 곧바로 그것을 단순한 버림의 이야기로 두지 않는다.
“나는 주인을 알고 있다
주인의 사랑을 기억하고 있다”
개는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 관계를 끝까지 품고 남겨진 존재다. 함께 걸어온 먼 길의 시간은 이별의 순간에도 개의 마음을 지탱한다. ‘먼 길’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주인과 개의 연대기이며 서로의 삶이 겹쳐진 관계의 시간적 궤도다. 그렇기에 떠남도 단절이 아니라, 두 존재가 걸어온 길이 허락한 마지막 형식의 연대가 된다.
시의 중반, 한 줄이 세계를 바꾼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이 되라는 주인의 마음이 읽히기 때문이다”
떠남은 포기가 아니라 귀의다. 주인은 개를 자연에 돌려보내며, 억지로 붙들지 않는 노장사상(老莊思想)의 무위자연을 실천한다. 개 또한 그 마음을 읽고, 자신의 자리를 스스로 선택한다.
“산은 높았고
나는 산을 지키기로 했다”
여기서 개는 더 이상 유기된 존재가 아니라, 자신에게 남겨진 윤리를 수행하는 존재로 변모한다.
전통 회화 속 개 — 지킴의 윤리,
이암(李巖)의 《모견도(母犬圖)》—생명의 온기
조선시대에서 개는 늘 인간 곁을 지키는 존재로 그려졌다. 16세기 왕족 출신 화가 이암의 《모견도》는 현재까지 확인된 조선시대 최초의 개 그림이다. 이 그림 속 어미개는 성근 나무 아래에서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거친 표현 속에도 정감이 흐르고, 생명을 지키고 기르는 모성의 윤리가 담겨 있다. 개는 여기서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생명을 품고 지키는 존재의 원형으로 그려진다.
민화 속 신구도(神狗圖) — 수호의 상징
민화에서 개는 ‘신구도’라 불리며 잡귀를 쫓고 집안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등장한다. 특히 삽살개는 ‘귀신 잡는 개’로 불렸고, 민화 속에는 눈이 세 개 달린 개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는 귀신을 수색하는 영력(靈力)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곳간문에 개 그림을 붙여 도둑을 막았다는 기록처럼, 개는 우리 문화에서 ‘지킴’ 그 자체를 상징하는 존재였다.
신윤복(申潤福) 《나월불패도(羅月不吠圖)》 — 흔들려도 짖지 않는 개
그리고 이 전통을 가장 상징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 바로 혜원(蕙園) 신윤복의 《나월불패도》다. 전통적으로 ’나월패(羅月吠)’라는 고사(故事)는 달빛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고 개가 착각해 짖기 시작하면 다른 개들도 따라 짖는다는 뜻으로, 헛것에 놀라 경거망동(輕擧妄動)하는 인간을 경계하는 교훈적 비유였다.
그러나 신윤복은 이 관습을 완전히 뒤집는다. 그는 달빛 아래서 가지가 흔들리는데도 짖지 않는 개를 단정하게 그려 넣는다. 이는 개를 강직한 선비의 마음, 즉 어떠한 혼란 속에서도 자리를 지키는 존재로 비유한 것이다.
“세상이 흔들려도,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 ‘지키는 존재의 미학’은 시 《개》에서 개가 선언하는 마지막 문장과 정확히 포개진다.
“나는 산을 지키기로 했다”
개는 버려졌지만, 버림보다 더 큰 윤리를 스스로 선택한다. 주인을 지키던 마음이 이제 산을 지키는 마음으로 확장된다. 전통 회화 속 개가 지녔던 의미—수호(守護), 충성(忠誠), 절개(節槪)—가 현대적 감각으로 되살아나는 순간이다.
불교적 세계관 — 윤회(輪廻)와 환생(還生)의 주체
한국 문화에서 개는 불교와도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불교 경전에는 독경(讀經) 소리를 듣던 개가 환생을 거듭해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또한 삼목구(三目狗) 전설처럼, 눈이 세 개 달린 개가 삼재(三災)를 쫓는다는 믿음도 있었다.
특히 불교에서는 개를 인간으로 환생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동물로 여겼다. 윤회의 고리 안에서 개는 단순한 축생(畜生)이 아니라, 업(業)을 쌓아가는 수행의 주체였다.
이 시의 개가 “무위자연이 되라는 주인의 마음”을 읽고 “산을 지키기로” 결정하는 장면은, 바로 이러한 불교적 깨달음과 수행의 순간을 닮아 있다. 버려짐을 받아들이되, 그 안에서 자신의 수행을 완성하는 존재. 그것이 바로 이 시가 그려낸 개의 모습이다.
시대적 역설을 감싸는 시의 아름다움
오늘의 한국 사회는 반려견 인구가 1,500만이 넘는 한편, 버려지는 개 역시 해마다 10만 마리를 넘는다. 사랑을 말하면서도 책임을 내려놓는, 이 시대의 슬픈 역설이 일상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명의 시는 날선 비판 대신 아름다운 반어(反語)로 그 현실을 감싼다. 버려짐을 자연 귀의로, 단절을 긍정적 선택으로, 상처를 수행으로 바꾸어낸다. 이 시에서 개는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 윤리를 완성하는 마지막 주체로 선다.
인간과 개, 오랜 동행의 역사
개는 인류가 야생동물 중 가장 먼저 가축화한 동물이다. 3만 년 전 구석기시대부터 함께해온 동반자. 고구려 고분벽화 수렵도(狩獵圖)에도, 신라 무덤의 토우(土偶)에도, 조선시대 민화에도 개는 언제나 인간 곁을 지켰다.
한때는 식용으로, 한때는 수렵의 동반자로, 그리고 지금은 가족으로. 개와 인간의 관계는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지만, 한 가지는 변하지 않았다. 개는 언제나 인간을 지켜왔다. 그 지킴의 윤리가, 이 시에서는 “산을 지키는” 존재로 확장된다.
맺음말
《개》는 한 마리 개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사실은 관계, 책임, 윤리, 시대의 양심을 묻는 작품이다. 신윤복의 《나월불패도》가 그랬듯, 이 시의 개도 흔들리지 않는다. 함께 걸어온 먼 길의 기억을 품고, 떠남 이후까지 ‘지킴’이라는 오래된 윤리를 이어간다.
이 개는 결국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버려진 것은 내가 아니라, 당신의 책임이었다고. 그리고 자연은 그 책임마저 품고 다시 길을 만들어낸다고. 결국 우리가 흔히 쓰던 “개보다 못한 놈”이라는 말이 얼마나 부당한 표현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정작 개보다 못한 것은 책임을 저버리고 사랑을 포기하는 인간의 마음이었다. 개는 끝까지 지키고, 기억하고, 자신의 윤리를 완성해 나가는데, 과연 우리는 어떤가. 어쩌면 진짜 “개같은”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