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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 길
새벽시간 어느 결에 일어났는지 부엌에서는 달그락 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형순이 아침을 먹는 모양이다. 형순이는 매일 같이 아침을 먹기가 바쁘게 중앙시장 직장으로 출근을 한다.
거기 가서 하루 종일 재봉틀에 매달려 씨름을 하다가 어느 결에 하루해가 다 가는지 모를
때도 있을 만큼 그의 일은 만날 바쁘게 돌아간다.
그가 하는 일은 헌옷을 수리하는 작업을 하는데 종업원을 다섯 명을 두고 일을 한다.
종업원에게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돌아가면서 쉬도록 하니 모두가 좋아는 하였지만 어떤 때 사정이 있어서 두 사람이 한꺼번에 빠질 때에는 형순이 그의 목까지 해야 들어온 옷의 수선을 하는데 차질이 생기지를 않는다.
그런데 이 일을 너무 오래해서 그런지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지루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
는가 하면 고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더구나 나이를 먹다보니 허리며 다리팔이 아프기 시작하여 어떤 때는 누워있고 싶을 때도
종종 있었다.
이 모든 원인을 생각해 보니 그동안 밤낮 없이 열심히 일을 해서 이제는 좀 편히 지내야겠
다는 마음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런데 하루는 옛날에 중학교를 같이 다니던 친구를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나게 되고 그와
자주 접촉을 하다 보니 자기도 걔처럼 살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것이었다.
우 현자라는 이애는 학교 다닐 때만해도 시골에서 이사를 와서 그런지 아주 촌스러워서 아
이들이 시골 띄기라고 놀려 주었다.
그런데 우 현자는 누가 놀리거나 말거나 열심히 공부를 해서 3학년 때에는 전교에서 1등을
차지하여 장학금까지 타게 되자 아이들이 더 이상 놀리지를 않았다.
우 현자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바로 서울로 올라갔으며 그 후에는 소식을 전혀 몰랐다
가 만나고난 후에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정기적으로 만났는데 그는 만날 때마다 고급옷을 입
고 와서 형순은 때로 주눅이 들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였다.
그녀는 장학금 덕에 미국으로 유학을 갈 수가 있었고 거기 가서도 남에게 질세라 뛰어나게
성적이 좋아서 끝내는 박사학위를 따고 돌아와서는 모대학교에서 외국어교수로 있다고 하였
지만 흰소리 같기도 하여 그것을 믿어도 되나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였다.
어쨌거나 형순은 그를 만나는 것이 즐겁고 새로운 소식을 듣게도 되어 자기도 그렇게 살아
야겠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나기도 하였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더욱이나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초라하기도 하고 회의(懷疑)
가 느껴져 막연하나마 언젠가는 이 일을 고만두어야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형순은 그동안 돈을 모으기 위하여 열심히 일을 하였으니 그야말로 먹고 싶은 것 먹지 않고
입고 싶은 옷 한 벌 제대로 사 입지 않고 오로지 돈만 벌어서 예금을 하였으니 돈을 모아서
지금 살고 있는 전셋집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언니 언니 하는 동생이 급하게 사업자금으로 쓸 일이
있어서 그러니 1천만 원만 융통을 해주면 두 달 내로 이자를 톡톡히 쳐서 갚아주겠다고 하
여 그를 믿었기에 닁큼 그 돈을 통장에서 찾아주었다.
그런데 그렇게 찰떡같이 두 달이면 준다던 원금을 1년을 두고 찔끔찔끔 갚는 바람에 손해
를 보지는 않았지만 목돈이 푼돈이 되었다.
그는 그 다음부터는 아무에게도 무슨 일이 있더라도 돈을 빌려주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는데
어느 날 우 현자가 급전이 필요하다면서 돈이 있으면 2천만 원을 석 달만 빌려달라고 하였
다.
형순은 연 전에 돈을 빌려주었다가 1년 만에 받은 생각을 하면서 다시는 돈을 꾸어주지 않
는다고 하였는데 다정하게 지나는 친구가 모처럼 그런 말을 하니 마음이 약해진 그는 다시
그가 요구하는 2천만 원을 아무 담보도 잡지 않고 석 달 동안을 기한하고 빌려주었다.
현자는 그 후에도 출근을 했다가 뻔질나게 형순에게 들렸으며 첫 번째 이자는 약속대로 제
날짜에 통장에 입금을 시켰다.
그런데 우 현자를 만난 후에 사업을 접으려고 생각을 하다 보니 막상 일을 고만두게 되면
지금까지는 여기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걱정 없이 생활을 하였는데 그 수입원을 하루아침에
뚝 끊는다면 그 후유증이 간단치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다가 최근에 와서 물가는 오르고 수리비는 그전대로 받다 보니 수지타산이 맞지를 않
아서 인건비를 감당하기가 어려워 부득이 종업원의 수를 줄여야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지
만 몇 년 동안이나 함께 일을 한 종업원을 나가라고 하자니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할 말을 못하고 1년만 하다가 해를 넘기고 또다시 1년만 하다가 2년이 훌쩍 넘어가
다 보니 이제는 막다른 골목에 도달하게 되어 어떤 조치를 내려야할 급박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데다가 매달 만나던 친구 우 현자가 아무 연락도 없이 약속한 그날 늘 가던 장소에 나
타나지를 않았다.
지금까지 현자는 약속을 깬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웬일인가 싶어서 그의 집으로 연락을 해보
았으나 연락이 닿지를 않았다.
할 수없이 그의 집을 방문을 하니 이게 웬일인가. 그가 살던 집은 열쇠가 꽉 채워져 있어
주인을 찾아서 우 현자의 행방을 물어보니 주인은 그녀와 어떤 사이냐고 묻더니 그녀에게
1천만 원을 꾸어주었는데 돈을 꾸어 준지 한 달 만에 싹도 없이 살아졌다고 하였다.
이 소리를 들은 형순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으니 자신이 준 돈은 그보다도 더 많은 액수
인데 그 돈을 모두 떼었다는 생각을 하니 기가 막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돈이 어떤 돈인데 하루아침에 친구에게 먹히다니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형순은 그 소리를 듣고 나오다가 졸도를 하였고 그가 깨어난 것은 그 다음날 병원이었다.
어떻게 거기를 왔는지 알 수가 없어서 병원에 물어보니 아는 사람이라면서 남자가 데리고
왔다고 하였는데 도무지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
억지로 집으로 돌아와서 한 사흘가량을 쉬고 나니 그제야 정신이 들어서 가게엘 나가면서
생각을 하니 당초에 생각대로 친구에게 돈을 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자기 마음만 믿었다가
사기를 당했으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돈을 생각하면 당장 경찰에 고발조치라도 하고 싶긴 하지만 그리되면 날마다 몇 번이나 불
리켜 갈 수도 있으니 그로 인해서 생업에 지장이 있다면 그것 또한 간단히 생각할 일이 아
니어서 당분간은 그냥 기다려 보기로 하였다.
직원들은 형순이 없는 동안에 서로가 협력을 해서 일은 제대로 꾸려 나가고 있어서 무척 고
마웠다.
그러는 한편 직원 감축문제로 고민이 되던 그는 이제는 남편에게라도 얘기를 해야겠다는 생
각을 하였으니 도저히 혼자의 머리 가지고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형순은 그날 저녁에 퇴근을 하고는 사랑방에 누워있는 남편에게로 가서 문을 열자 남편이 놀라면서 누구냐고 하였다.
“ 누군 누구에요 당신의 마누라지요.”
“ 당신이 저녁도 먹기 전에 들어올 사람이 아닌데 들어왔으니 하는 말이요.”
“날이 훤해서 들어온 것이 그렇게 걸린다는 말이에요.”
“ 누가 보면 마누라가 일찍 들어오더니 남편 방부터 들어가는 게 이상한 일이라고 하겠어
서 하는 소리지. “
“ 아이고 망측스러워라. 누가 그런 생각을 한다고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 당신 뭘 모르는구먼. 요즘의 여자들은 단수가 높아서 그런지 남녀가 혹시 어디 손이라도
잡고 가면 저 사람들은 무슨 사이 길레 저렇게 행동을 하나 한다지 않아. “
“ 당신 누워서 그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이상하네요.”
“이상할 것은 없고 당신 여긴 어쩐 일이요. 혹시 안마라도 해주려고 일찍 온 거요”
“ 그래요. 당신이 그리워서 일찍 온 게 맞아요. 웃업지요.”
“ 살다 살다가 원 별 일을 다 보겠네. 무슨 딴 짓을 하려고 온 것 같은데… 아니야. 하하.”
" 솔직한 말로 나 지금 힘이 들어서 더 이상 못할 것 같아요. 물품대금은 오르고 수리비용
은 그대로인데다가 일감이 그전보다 훨씬 줄어서 과거에 다섯 명이 하던 것을 이제는 세
사람이 해도 되니 2명은 그냥 놀다가 가는 거예요. 그렇다고 놀았으니 월급 안준다고 할 수
는 없지 않아요. 그래서 2년 전부터 사람을 줄이려고 하였는데 누구를 줄이고 누구를 남게
할지 몰라서 당신의 의견을 들으려고 왔어요. “
“ 그러고 보니 좋은 일은 아니구먼. 뭐 그런 일을 가지고 고민할 것 없어요. 일은 간단해
요. 다섯 사람을 불러서 의견을 들어 보는 거예요. 아무래도 일감이 부족해서 문을 닫아야
하겠다는 말을 하란 말이에요. 그러면 그 사람들이 무슨 반응을 내놓겠지요. “
“ 만일 아무 대답이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요.”
“그러면 본격적으로 문을 닫을 준비를 해야지.”
남편의 의견은 그렇게 하게 되면 십중팔구는 다른 새 직장을 얻어서 갈 사람이 생기고 그
렇지 못한 사람은 당분간은 그대로 남으려고 할 거라는 말이었다.
형순은 남편의 말을 듣고는 바로 다음날 하루의 일을 마무리하고 퇴근할 무렵에 함께 저녁
을 먹으러 가자고 하였다.
단골집 식당으로 들어가니 마담이 오래간만에 왔다면서 안방으로 들어가라고 하였다.
사장은 모처럼만에 마련한 자리이기도 하지만 좋은 이야기를 할 수가 없는 자리여서 불고기
백반에 양주 한 병을 시켰다.
“ 우리 사장님 오늘 좋으신 날인가 봐요. 불고기를 다 시키시구요. 어마, 웬 양주까지 한
병이 나오는 것을 보니 저것은 주인께서 서비스를 하시는 모양이지요. “
“ 예예. 양주는 서비스가 아니구요. 한 병을 잡수신 다음에는 서비스를 할 수는 있지요,”
“ 대답하시는 것을 보니 서비스는 없는 것이네요. 하긴 장사라는 게 앞으로는 남는 것 같
아도 뒤로는 미찐다면서요.“
심 연자가 뜬금없이 줄레줄레 말을 하였다.
“ 어떻게 그런 것을 다 아시지요.”
“ 우리 작은 아버지도 젊으실 때부터 서울에서 잘 나가시는 한식식당을 하셨는데요. 만날
시간이 있을 때 가서 보면 작은 아버지는 도무지 행주치마를 벗어 놓으시지를 않더라구요.
그래서 한 번은 말씀을 드렸지요. 그랬더니 그러고는 싶지만 태산 같은 일이 쌓이다 보니
그것을 벗어놓을 사이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 말씀을 듣고 보니 작은아버지가 불쌍한 생
각이 나고 나이 드시면서도 쉬시지 못하니 얼마나 속이 상한지 혼자 부엌에 가서 울었어요.
그래서 이다음에 크게 되면 절대로 식당업은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는데 무슨 팔자인지
나도 식당업을 하였지 뭐예요. “
“ 그러셨군요. 식당일이야말로 일이 끝도 한도 없어요.”
마침내 음식이 들어오자 우선 술잔에 술을 한잔 씩 붓고 나서 사장님이 잔을 들자고 말을
하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예는 없었는데 사장님이 말을 하자 모두는 잔을 높이 들었다. 심 연
자가 잔을 들지 않자 주위에서 눈짓을 해서 그제야 연자도 슬그머니 잔을 들었다.
“ 여러분 오늘은 내가 여러분에게 하기 어려운 말을 하려고 이렇게 자리를 마련하였으니
이해를 해주기 바래요. 사실은 이미 여러분도 알다시피 지금 우리 앞에는 일감이 줄어서 인
원 감축을 해야 한다는 것은 나보다도 여러분이 먼저 알 고 있을 거예요. 그래서 이제는 어
떤 조치를 취해야 될 것 같아서 이렇게 소집을 하였으니 좋은 의견이 있으면 말을 해주면
좋겠어요. “
그렇지만 아무도 입을 벙긋하지도 않은 채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사장은 누가 무슨 말이라도 하였으면 하였는데 모두가 입을 굳게 닫고 있으니 속으로는
답답하면서도 이해가 되는 것은 갑자기 말을 꺼내서 그런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다시 입을 열었으니 아무래도 수익이 적어서 부득이 문을 닫을 위기에 있으니 능력
껏 다른 직업을 찾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하고 단 한 달치 월급은 내일 다 지불을 하겠다고
하였다.
그 말이 떨어지자 다른 사람은 가만히 있는데 심 연자가 평소와는 달리 다시는 사장을 안볼
것처럼 싸늘하게 말을 하였다.
“ 그런 실정이라면 연초에 말을 해주었다면 다른 좋은 직장으로 옮길 수도 있었는데 지금
나가라고 한다면 올해 1년 치 봉급을 다 주셔야 합니다. “
그러자 평소에 심 연자와 잘 어울려 다니던 한 영화가 그의 동조하는 발언을 하였다.
“ 저도 심 연자의 발언에 동갑입니다. 1년 치 봉급을 지불한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출근을
하지 않고 고만두겠습니다. “
두 사람으로 인해서 분위기는 무겁게 변하였는데 다른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입도 뻥
끗 하지를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심 연자가 나머지 세 사람에게 말을 하였다.
“ 기왕에 사장님이 우리를 그냥 내보려는 속셈으로 오늘 거지같이 저녁 한 끼 사고는 모두
를 내치려 하니 함께 행동을 하는 의미에서 찬성의 박수를 쳐주어요. “
그 말을 하고 나서 박수를 치자 한 영화만이 호응하고 나머지 세 사람은 동의를 하지 않
자 심 연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그들을 향하여 욕을 퍼 대었다.
“ 야. 이년들아. 내말이 말 같지 않아서 박수를 치지 않는 거냐.” 하더니 일어나자마자 앉
아 있는 세 아가씨의 귓쌰대를 차례로 내갈기었다.
그러자 제일 막내인 윤 자야가 일어서더니 심 연자의 귓쌰대를 옌장 없이 후려치면서 소리
를 질렀다.
“ 일감이 줄어서 일을 못하게 되어 미안하다고 사장님이 저녁까지 사시면서 이해를 구하는
데 뭐 1년 치 봉급을 달라고? 너 어디서 그 따위 도둑년 행세를 배웠냐. 그러고 우리가 무
얼 잘못했다고 손찌검을 해. 나 분해서 당장 경찰서 찾아가서 폭행으로 고발을 할 터이니까
그런 줄이나 알아 이 잡년아. “
이리 되자 심 연자는 가만히 있지 않고 윤 자야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늘어지자 윤 자야도
가만히 있지 않고 축구 선수처럼 연자의 배를 걷어 내차자 “아이구 배야” 하면서 저만치 나
곤드라지면서 손에 집히는 물건을 내던졌는데 그것이 정통으로 윤 자야의 머리에 맞으면서
그 자리에서 쓸어졌는데 머리에서 피가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다.
이를 본 형순은 얼른 그에게 달려가서 우선 피가 솟는 부위를 손으로 막았다.
“여기 어서 수건 좀 가져와요. 큰 일 났어요.”
형순이 덜덜 떨면서 소리를 지르자 주인이 수건을 가지고 왔을 때에는 이미 윤 자야는 정신
을 잃고 늘어지고 있었다.
“ 사람이 금방 죽어가네. 이 일을 어쩌면 좋아.”
형순이 울상을 하면서 넋을 놓는 동안 누가 연락을 하였는지 얼마 후에 119 싸이렌 소리가
앵 하고 울리면서 다가왔는데 세 사람의 응급대원이 피가 나는 자야를 빠른 동작으로 119
차로 옮겨 싣고는 뺑소니차가 달리듯이 내빼고 있었다.
일이 이리 되자 형순은 우선 택시를 잡아타고 119차의 뒤를 따라 나섰는데 차는 어느 결에
달아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한참만에야 병원을 찾아 도착을 하여 응급실로 들어가니 의사들이 분주하게 환자주위에 몰
려 있어서 들여다보니 피투성이의 자야가 누워있었고 의사들의 하는 소리를 들어보니 다행
이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여 안심이 되었다.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응급조치를 받은 후에 자야는 간호사들에 의해서 일반병실로 옮겨지
고 있었다.
형순이 다가가자 윤 자야는 그 고통 속에서도 미소를 지으면서 무얼 오셨느냐고 하였다.
형순은 현재 머리가 어떠냐고 묻자 병원에 올 때는 잠시 의식이 가물가물하는 것 같더니 응
급 처치를 한 후에는 머리가 맑아졌다면서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으니 걱정하시지 말라고 하
였다.
사장 형순과 윤 자야가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어느 결에 거기에 나타난 음식점주인이 자야
앞에서 손을 비비면서 어렵게 입을 열었다.
“ 이번 일에 대해서 제발 경찰에 고발을 하지 말아 주세요. 부탁합니다.”
그러자 몸이 아픈 중에도 윤 자야는 주인을 향하여 화를 내었다.
“아저씨. 우리가 귓쌰대를 맞는 것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요. 폭력을 쓰는 사람을 그냥
두라니 말이 되는 말을 하시라구요.“
그러자 주인은 얼굴을 붉히면서 우리 집에서 일어난 일이라서 그러니 양해를 해달라면서 어
물 어물 뒤로 물러섰다.
분위기가 전혀 딴 방향으로 흘러가자 형순은 난감한 생각이 들면서 앞으로 이 일을 어떻게
수습을 해야 할지 막막하였다.
다음날 심 연자와 한 영화는 출근을 하지 않았고 그 후도 내내 발씨 냥도 하지를 않자 형
순은 밀린 월급을 송금 처리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생각을 하니 심 연자라는 사람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한 것이 분하기
도 하였다
사실 심 연자를 알게 된 것은 가게를 처음 낼 때의 일로 그때 그는 같은 동네에서 칼국수집
을 하고 있었다.
나이는 형순 이보다 다섯 살이나 아래인데다가 부모는 일찍 돌아가시고 남동생 하나가 있는
데 변변한 직업이 없어서 누나의 집에서 식당 일을 거들어주고 있었다.
형순은 그런 사정을 알기에 자주 점심때에는 칼국수를 팔아주었는데 처음에는 국수집이 하
나라서 잘 되었는데 그 소문이 나서 그런지 1년 사이에 그런 집이 두 집이나 옆으로 생겨
매상이 뚝 떨어지고 있었다.
일이 이리 되자 국수집의 손님은 하나둘 씩 다 떨어져 나갔는데 모두가 새로 단장한 집으로
옮겨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상이 뚝 떨어지고 이 식당을 고수하자니 적자만 늘어나는 바람에 생각을 한 것이 문을 닫
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심 연자가 가게를 고만두자 이제는 어디 가서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에게는 어떤 기술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이 많아서 다시 다른 곳에다가 가게를 낼 형편도 되지
를 않자 고민을 하게 되었다.
심 연자는 사실 자존심은 강해서 자기가 어려운 처지가 되어도 좀처럼 남의 자문을 받으려
고 하지를 않았다.
어찌 보면 남을 믿지 못하는 성질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
그런데 그렇다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으니 자기 혼자 고민을 하게 되고 그런 고민이 쌓이다
보니 속이 갑갑하여 도저히 집에 있기가 싫어지고 자꾸만 밖으로 돌고만 싶어져서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하루는 형순을 찾아 왔다.
“ 언니. 안녕하셨어요.”
심 연자는 처음으로 언니라는 호칭을 쓰자 형순은 어리둥절해서 별 대답을 하지 않았다.
“ 왜 갑자기 언니라고 해요.”
형순이 말을 하자 심 연자는 자기 혼자 결정해서 부르고 싶어서 그런다면서 오늘 언니를 찾
은 것은 취직 좀 부탁하려고 왔다고 하였다.
“ 취직이라니 나는 그런 부탁을 들어줄만한 자격이 되지를 못해요.”
“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셔요. 언니는 그런 자격이 충분히 있는 분인 것을 알고 있는데
요.”
연자는 그러더니 언니에게 부탁을 하고자 하는데 들어달라고 하면서 자기가 하던 칼국수집
에 되지를 않아서 얼마 전에 문을 닫고 보니 당장 땟거리가 걱정이 되어 언니를 찾아왔다고
하면서 혹시 언니네 하는 일 중에 손이 모자란다면 언제라도 좋으니 일을 하게 해달라고 하
소연을 하였다.
“언니도 알다시피 우리가 하던 국수집의 문을 며칠 전에 닫은 것은 아시지요. 사실은 장사
가 아주 잘 되어서 한때는 이렇게만 된다면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뜬금없이 두 집
이나 국수집이 생기다 보니 그다음 날부터 수입이 확 줄어들어 더 이상 벋히다 가는 빚만
질 것 같아서 문을 닫고 보니 먹고 살기가 어렵게 되어 언니한테 이렇게 아쉬운 말을 하는
거예요. 솔직한 말로 언니 나 좀 살려주세요. “
이렇게 해서 형순은 순순히 받아드렸는데 형순이 딱한 처지를 당하여 직원들에게 양해를 구
했지만 심 연자는 안면을 싹 바꾸고 형순을 대하였으니 형순은 그것이 한없이 분하고 몸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인간사회라는 것이 이토록 매정할 수가 있는 것인가 하는 개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다음 날 윤 자야가 사장에게 오더니 말을 하였다.
“시장님 걱정 너무 하시지 마세요. 우리는 아직 젊으니까 여기서 일을 하지 못한다면 다른
곳에 가서 무슨 일을 찾아하던지 할 테니 그리 아세요. 그동안 뒷바라지 해주시느라 애쓰신
데 대해서 오래도록 잊지를 않을 것입니다. “
“ 그래 너만이라도 그렇게 생각을 해주니 참으로 고맙다. 그렇지만 나는 너를 놓지 않을
거야. 내가 아무리 어려워도 남은 사람에 대해서는 내가 끝까지 책임을 질 것이야. “
“ 사장님 정말이세요. 그렇다면 더 좋구요 .사장님 기왕에 일이 이렇게 되어 한동안 마음
쓰시느라 고생을 하셨으니 돌아오는 일요일에 우리 남은 사람들끼리 어디 관광이나 다녀오
시
어떨까요. “
“ 관광이라고 하였나. 듣기는 많이 하였지만 나는 한 번도 그런 데엘 가보질 않아서 글
쎄.”
“ 사장님. 그래서 한번 가시자는 것이지요. 그렇게 알고 주선은 제가 하겠습니다. 아셨지
요.”
직원들이 다 간 뒤에 형순은 잠시 자신을 돌아보았다.
형순이 자란 곳은 강원도의 산골로 아버지는 그녀가 다섯 살 때 돌아가시고 소아마비를 않
아 왼쪽 다리를 조금씩 절면서 남의 집에 식모살이를 하던 엄마는 형순이 하나를 잘 기르려
고 무진 애를 쓰셨으나 신체조건이 그래서 그런지 남에게 무시를 당하기가 일쑤여서 만날
울면서 세월을 살아야했다.
그러는 중에 세월은 가서 마침내 형순이 중학교를 졸업을 하게 되자 그는 더 이상 엄마를
고생시켜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지금 다니는 양복점의 점원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열심히 일을 하는 중에 주인이 서울로 이사를 가면서 형순에게 양복점을 인계해서 그가
맡아서 한지가 꽤 오래 되었다.
그러다가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였는데 상대는 상처를 한 분으로 공직에 다니시는 점잖은
분으로 소개를 받았는데 살다가 보니 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만날 술독에 빠져 산다고 할
만치 술 냄새가 집안에서 사라지지를 않았다.
그렇지만 마음은 착한 편이라서 말만이라도 항상 수고를 한다는 소리를 하였고 때로 일요일
이 되면 집에서 화초를 가꾸기도 하였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3년이 지나면서 신랑이 직장에서 돌아오면 피곤하다는 소리를 자주
하여 어느 날 병원엘 데리고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지금 당이 많이 올라가서 당요 약을 먹
지 않으면 위험이 따를 수 있다고 하여 그날부터 당요 약을 먹게 하였다.
의사의 말로는 술을 삼가고 식이요법을 꾸준히 하게 되면 당요라는 병은 병도 아니라면서
앞으로 기대를 해보겠다고 하였지만 남편은 워낙 술을 좋아하다 보니 그런 후에도 계속해서
술을 즐기고 있었으니 아내로서는 말리다 못해서 나중에는 자기가 알아서 하라고 당분간 방
치를 하였는데 어느 날부터는 눈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하여 다시 병원엘 가보았더니 당
요로 인해서 눈에 합병증이 생기는 것 같다고 하면서 자칫 방치하면 실명위기에 도달한다고
하였다.
형순은 그날부터 술을 끊도록 종용을 하고 당뇨에 좋다는 여러 가지를 해서 먹였는데 그러
고 나서 1년이 지났지만 눈이 낫기는커녕 오히려 물체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을 한다더니
2년이 지나자 완전히 실명이 되고 말았다.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은 알 수가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일찍 실명이 된다는 것은 상상도 하
지 못했던 일이다.
형순은 직장도 그렇지만 남편에 대해서도 신경을 많이 써주고 가급적이면 야외에 나가서 바
람이라도 쏘여 주고 싶지만 그것이 그렇게 되지를 않는 것이 마음을 괴롭게 하였다.
남편이야말로 놀기를 좋아하고 술과 친구를 좋아하여 만날 하루가 즐거웠는데 지금은 하루
종일 집안에서 개와 벗을 하고 지나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또 얼마나 바깥이 그립겠는
가.
그렇지만 아내는 직장에 가있어 하루 종일 볼 수가 없으니 외로움이란 그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어쨌거나 늦게 만나서 호강을 하고 살아보려 하였지만 세상사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일이지만 남편이 그리 되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를 못하였으니 그의
운명으로 받아드려야지 어찌 하겠는가.
마침내 관광을 떠나는 날 아침. 윤 자야가 전화를 하였는데 8시까지 중앙시장 앞에 있는 파
출소 앞으로 나오라고 하였다.
형순은 전날 남편에게 바람을 쏘이러 간다 해놓고는 아침 일찍 조반을 해서 차렸다.
“ 오늘 어디로 간다는 거요."
" 행선지는 아직 모르고 있어요. “
“ 아니 관광을 가는 사람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버스를 탄다는 말이요. 나도 그전에
관광을 가 본 적이 있지만 미리 어디로 갈 것이며 볼거리는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을 해주던
데 이상한 곳으로 가는 모양인가. 혹시 낯선 남녀들끼리 만나러 가는 것 아니야."
" 그게 무슨 말이래요. “
“이를테면 한쪽에서는 남자들만 모이고 또 한쪽에서는 여자들 만 모인 단체가 어느 일정한
장소에서 만나게 되면 거기서 쌍을 정해서 하루를 놀다가 헤어지는 그런 모임이 있다던데
당신은 그런 소리도 듣지도 못하였단 말이요. “
“ 나중에는 별 소릴 다 듣겠네요. 어떻게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만나서 쌍을 이루
고 하루를 논다니 망측스러운 일이네요."
“여북 사람들이 외로우면 그런 모임을 갖겠소. 듣자 하니 거기 오는 사람들이 거의가 다
홀몸이라지 아마. “
“그런 소리는 내게는 당치도 않은 말이고 아무튼 당신 혼자 집에 있게 하고 나 혼자 가게
되어 미안해요. “
“그나저나 직원들로 인해서 속을 많이 태웠으니 좋은 구경이나 많이 하고 돌아와요. “
집을 나서자 그쪽으로 가는 버스가 있어서 바로 탈 수가 있었고 시장에 도착을 하니 어느
결에 윤 자야가 손을 흔들었다.
버스는 대형버스로 좌석은 이미 만 차가 되어 있었는데 윤 자야는 앞자리 두 번째 좌석을
맡아 놓고 있었다.
차를 타고 보니 모든 사람들이 희희낙락하며 떠드는 것을 보게 되자 자기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헛살았다는 느낌이 들었으니 만날 자기는 재봉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생활을 하
였기 때문이다.
몇 사간을 달렸는지 모르는데 사람들이 모두가 “저것 좀 보아” 하더니 탄성을 지르면서 손
가락 질을 하였다.
왜 갑자기 탄성을 지르는지 몰라서 옆에 앉은 자야에게 물어보니 그도 “저기를 한번 보셔
요” 하는데 그것을 보다가 그의 입에서도 와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고 있었다.
그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때에 옆에서 들려오는 말을 들으니 거기가 전남담양의 죽록원이라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담양의 죽록원엘 갔다가 온 사람이 한 말이 생각났다.
죽록원은 2003년 5월 전남 담양군이 조성한 테마공원으로 대나무 숲이 10만평에 이르는
데 숲길 산책과 죽림욕장으로 인기가 높다고 하였다.
일행은 이 죽록원 앞에서 차를 내려 줄을 지어서 죽록원 입구 언덕 바지를 올라서니 넓은
곳에는 조선기와집 형태의 건물이 있어 그곳 층계를 올라서 확 트인 앞을 내다보니 담양읍
내 시가지가 훤하게 내다 보였다.
이곳에도 아파트 몇 채가 서있긴 하지만 도시처럼 요란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들어 단 며
칠만이라도 이곳에 머물러 있다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을 내려와서 대 숲길을 걸으니 대나무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한결 시원하고 거기에서
풍겨오는 묘한 향기는 댓잎의 향기라고 하였다.
대나무 숲은 다른 도시에서는 볼 수가 없고 이곳 남쪽으로 오면 집집마다 울타리 뒤에 대나
무를 심은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였다.
형순은 언제 시간을 내어서 남편에게도 이 아름다운 정경을 설명해주고 대나무의 그윽한 향
기를 실컷 맡게 해주고 싶었다.
담양 죽록원을 보고 나서는 시내의 음식점에서 이 고장의 특식이라고 하는 한우불고기를 먹
었는데 점심시간이 늦어서도 그랬겠지만 점심 요리로는 근간에 와서 최고의 식사를 하였다.
점심 후에는 가사문학관과 소쇄원을 들려서 옛날의 풍류가 서린 정자를 둘러보고는 바로 돌
아서 집으로 향하였는데 몇 시간 만에 다시 집에 도착을 하니 그제야 몸의 피로가 느껴지고
있었다.
남편의 선물은 죽록원의 댓잎차를 구해 왔는데 남편은 차보다도 그곳의 유명한 먹을거리를
하나 사오지 그랬느냐면서 서운해 하였다.
남편은 그런 다음에 무슨 통지서를 우편집배원이 주면서 도장을 받아갔다고 하여 무엇인가
하고 들여다보다가 소스라쳐 놀랐으니 그것은 경찰서장의 출두서 공문이었다.
“ 우 현자 사기사건으로 조사할 사안이 있으니 00날 10시까지 나오시기 바랍니다. 00경찰
서장. “
‘우 현자에게 돈 2천만 원을 영영 띠인 줄 알았는데 받을 수가 있을라나. ‘
2019.7.11 金 斗 洙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