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의 돈으로 세상 읽기 80
상식의 상실 시대
한국은 상식이 통하는 사회일까. 상식이 무시되거나 간과되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ChatGPT에 물었다. 인공지능은 순간에 지극히 상식적인 답을 내놓는다.
먼저는 사회적 갈등과 혼란이 온다. 상식은 사회 규범과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게 한다. 상식이 상실되면 사회는 무질서해지고 갈등비용이 발생한다. 다음은 안전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의 안전 수칙은 상식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를 무시하면 사고가 발생한다.
상식을 외면했을 때 의사결정에 오류가 생긴다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 상식은 판단력과 결정력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상식을 알지 못하거나 간과하면 경제적 손실이나 실패를 초래할 수 있다. 사회적 관계가 악화한다는 점도 이해가 필요하다. 상식을 갖추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면 상호 간 신뢰와 존중이 어렵다.
ChatGPT는 교육문제도 지적한다. 기본적인 상식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학습 능력과 사회적응력에 문제가 생긴다. 이 같은 응답은 인류가 지금까지 축적한 상식을 상식에 기초하여 정리한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상식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이다. 지식이 무엇인가 물으면 어떤 대상에 대하여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라고 답한다. 우리는 살면서 응당 그래야 하거나 그렇다고 믿는 믿음으로 행동한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에도 오류는 있다. 심지어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대주의에 이르면 지식은 한낱 주장에 불과하다. 자연과학조차 과학자들의 절충과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가설의 체계일 뿐이라는 것이다. 신앙처럼 믿고 있는 과학원리까지도 절대 진리가 될 수 없다면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의 상식은 기댈 곳이 없다.
둥근 지구가 포스트모더니즘의 보자기로 꽁꽁 싸여 구른다. 남녀의 성을 구분하고 이성 간에 결혼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말하면 덜떨어진 인간으로 취급된다. 문화만이 아니다. 기존 질서의 파괴가 창조로 등치 한 지 오래다. 이제 보편상식을 말하고 ‘나때’를 들먹이면 그는 시대정신을 모르는 꼰대 소릴 들어야 한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과학 상대주의에 반격을 가한 부류는 자연과학자들이었다. 미국 뉴욕대 수리물리학 교수인 앨런 소칼이 먼저 칼을 빼 들었다. 소칼이 포스트모던 계열의 학술지에 그들을 지지하는 논문을 발표하자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열광했다. 물론 그 논문은 소칼이 부러 거짓 논거로 꾸민 것이었다. 그가 『지적 사기』라는 책을 출판하자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땡감 씹은 얼굴이 되었다. 된통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다. 이 일은 자신들과 같은 편이라고 엉터리 논문을 받아들일 만큼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이 얼마나 과학에 몽매한지를 드러나게 한 사건으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석양의 바다는 아름답다. 뱃전에서 바라보는 노을의 수평선 만큼 여백의 미를 황홀하게 그려내는 풍광도 드물다. 한편 수평선에서 무언가를 찾는다. 지구는 정말 둥근 걸까.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면 곡면이 맞는 것 같고 아닌 것도 같아서 증명을 포기하곤 한다. 어릴 적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바다의 수평을 바라보면 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2,200년 전 고대 그리스 수학자가 서로 다른 그림자 길이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했다는데 금빛 바다를 두고 기울기를 재는 한심한 짓을.
필자보다 더 골 아픈 부류들이 있다. 지구평면론자들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따르면 미국 성인 10%는 지구가 평편하다고 믿으며 젊은이들은 66% 정도만 지구가 구형이라는 것을 확신한다고 한다. 지구평면론자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과학적 근거를 음모론으로 해석한다. 우주에서 찍은 지구의 푸르고 둥근 사진까지도 가짜라고 주장한다. 믿기지 않지만, 21세기 문명사회에 과학적 일반상식조차 부정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게 놀랍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지평설’은 직관적이다. 자신들을 플랫 어서(Flat Earther)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지구가 둥근데 비행기가 몇 시간을 날아도 왜 같은 고도인지 반문한다. 그들은 중력을 거부한다. 그렇기에 지구가 달까지 붙잡아둘 중력이 있다면 어떻게 나비가 날 수 있겠냐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들은 지구가 돈다는 사실도 부정한다. 적도의 자전 속도가 초속 460미터가 넘는다면 지구상의 물체는 원심력에 의해 우주로 날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플랫 어서 중에는 엔지니어들도 많고 다른 목적으로 활동하는 지구평면론자가 섞여 있다는 점이다.
조선으로 돌아가 보자.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설을 신봉하는 주자학자들에게 지구본을 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열에 아홉은 지구본 아래쪽에 있는 사람이 왜 떨어지지 않느냐며 부채를 흔들 것이다. 물론 뉴턴을 모르는 이들에게 중력을 설명하는 일은 난해하여 소귀에 경 읽기와 다름없다. 도리어 이단자나 실성한 사람 취급을 당하지 않으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과학적 상식도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상식은 스스로 오류를 교정하며 진리와 보편성을 찾아간다. 건전한 상식의 교류는 바람직한 문화를 만들고 가짜뉴스와 같은 사회오염을 정화한다. 상식은 주춧돌과 같아서 상식이 무너지면 사회의 기초가 허물어진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 상식 안에서 집단지성이 도출되는 사회이어야만 신뢰가 구축되고 바른 의사결정을 기대할 수 있다.
인공위성을 만드는 한국도 천원지방설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모든 사회현상을 음모론으로 해석하거나 합리적 추론과 토론을 거부한다. 심지어 사법부조차 지구평면론자가 뒤섞여 정의의 상식이 무너지고 있다. 그것이 무지의 신념이든 정치적 신념이든 거기에 기회주의를 더하면 파탄이다. 지금으로선 그들에게 지구는 둥글다고 설득할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상식의 상실 시대, 무덥고 긴 장마만큼이나 우울한 시간을 보내야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