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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죽음관
(3)붓다의 고행과 중도
『숫타니파타』에서 붓다 고행(苦行)의 출발지를 네란자라(Nerañjarā)강 기슭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정진의 경: Padhānasutta은, "네란자라강의 기슭에서 스스로 노력을 기울여 멍에로부터의 평안을 얻기 위해 힘써 정진하여 선정을 닦는 나에게 일어난 일이다"로 시작한다. 붓다는 네란자라강 언덕의 우루벨라 마을에 이르러 6년 동안 극심한 고행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당시 고행림(苦行林)에서 어떤 이는 풀로써 옷을 삼은 이도 있고 나무껍질과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기도 하고, 하루에 한 끼를 먹기도 하고, 이틀에 한 끼를 먹기도 하고, 사흘에 한 끼를 먹기도 하여 스스로 굶주리는 법을 행하였으며, 혹은 물과 불을 섬기기도 하고, 해와 달을 받들기도 하고, 한 다리를 발돋움하여 서 있기도 하고, 티끌 있는 땅에 누워 있기도 하고, 가시나무 위에 누워 있기도 하고, 물과 불의 곁에 누워 있기도 하였다.
이처럼 붓다는 이미 외도들이 삿되게 해탈을 구함을 보고 다음과 같은 고행을 하였다.
"어떤 때는 땅에 우뚝하게 서서 머무르며 혹은 한곳에 앉아 옮기지 않으며 혹은 사지를 땅에 짚고 입으로 음식을 받는다. 혹은 순전한 풀옷을 입으며 혹은 무덤 사이에 버린 옷을 입으며 혹은 갖가지 풀옷을 입으며 혹은 교사야 옷을 입으며 혹은 흰 복숭아나무 껍질로 옷을 만들며 혹은 용수(龍鬚)로 옷을 만들며 혹은 여러 가지 축생의 껍질로 옷을 만들며 혹은 또 낡은 축생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며 혹은 털로 옷을 만들며 혹은 찢어진 여러 축생의 가죽으로 조각을 이어 옷을 지으며 혹은 걸레로 옷을 지으며 혹은 벌거숭이로 지낸다. 혹은 가시 위에 누우며 혹은 판자 위에 누우며 혹은 또 마니(摩尼) 위에 누우며 혹은 서까래 위에 누우며 혹은 무덤 사이에 누우며 혹은 개미집에서 마치 뱀이 살 듯하며 혹은 한길에 누우며 혹은 또 물을 섬기고 혹은 또 불을 섬기며 혹은 해를 따라 움직인다. 혹은 두 팔을 들고 섰으며 혹은 쭈그리고 앉으며 혹은 모래와 흙과 먼지를 몸에 끼얹고 섰으며 혹은 머리를 빗거나 얼굴을 씻지 않고 소라상투 같이 구불구불하게 하였으며 혹은 머리털을 잡아 빼거나 수염을 잡아 뺀다."
이 밖에도 여러 경전에서 말하고 있는 붓다의 고행 당시의 상태는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였다. 먼저 『증일아함경』에서 전하는 붓다의 고행 당시의 모습이다.
"나는 하루에 깨 한 알과 쌀 한 알씩을 먹었다. 그리하여 몸은 점점 쇠약해져 뼈와 뼈가 서로 맞붙고 정수리에는 부스럼이 생겼으며 가죽과 살이 저절로 떨어져 나갔다. 비유하면 마치 깨진 조롱박은 그 머리도 다시 온전할 수 없는 것처럼, 그 당시 나는 정수리에 부스럼이 생겨 가죽과 살이 저절로 떨어져 나갔다. 그것은 다 음식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깊은 물 속에 별이 나타나는 것처럼 그 당시 내 눈도 그와 같았다. 그것도 다 음식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비유하면 오래된 수레가 낡아 부서지는 것처럼 내 몸도 또한 그와 같아서 모두 부서져서 뜻대로 되지 않았다. 또 낙타의 다리처럼 내 두 엉덩이도 그와 같았었다. 만약 내가 손으로 배를 어루만지면, 그 때 곧 등뼈가 손에 만져지고 또 등을 어루만지면 뱃가죽이 손에 만져졌었다. 몸이 이처럼 쇠약해진 것은 다 음식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때 깨 한 알과 쌀 한 알로 음식을 삼았으나 끝내 아무 이익이 없었고, 또 그 최상의 거룩한 법도 얻지 못하였느니라. 또 나는 대소변이 보고 싶어 변소에 가려고 일어나면 곧 땅에 넘어져서 혼자서는 일어나지도 못하였다."
다음은 『불본행집경』이 전하는 붓다의 고행상이다.
"보살은 이렇게 그 음식을 먹고 나서 몸이 수척하고 숨길이 약해져서 팔구십된 늙은이처럼 전혀 기력이 없고 손발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보살의 골절과 뼈도 그러했다. 보살은 이렇게 적게 먹고 정근 고행하므로 신체와 피부가 모두 주름살뿐이었다. 마치 익지도 않은 박을 꼭지를 끊어 햇빛에 두면 볕에 쪼여 누렇게 시들어, 살이 마르고 껍질이 쭈그러지며 조각조각이 따로 떨어져 마른 두골과 같듯, 보살의 촉루도 이와 다름이 없었다. 보살은 적게 먹었기 때문에 그 두 눈동자가 깊이 쑥 들어갔다. 마치 우물 밑의 물에서 별을 바라보는 것과 같이, 보살의 두 눈도 보려고 해야 겨우 나타났다. 또 보살이 적게 먹었기 때문에 양옆의 늑골이 서로 멀리 떨어져 오직 껍질이 싸고 있을 뿐 마치 마구간이나 양의 움막 위에 서까래가 붙어 있듯 했다."
그 밖에도 "몸뚱이 살이 소진되어 오직 살가죽과 뼈만 남아 배와 등골이 드러난 것이 마치 공후(箜篌)와 같았다"거나, "피골이 상접하고 핏줄이 통째로 드러나 마치 바라사(波羅奢, palāśa) 꽃과 같았다"는 등 인간으로서 숨만 붙어 있는 지경이었다. 이 고행 방식 중에는 숨을 멈추는 선(禪)을 행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이를 '무식선(無息禪, appāmakaṁ jhānaṁa)'이라고 하였는데 숨을 멈추니 귀로 공기가 빠져 나가며 극심한 고통을 동반하였는데 그 소리가 마치 천둥치는 소리 같았다고 한다.
붓다의 이와 같은 고행을 본 천자들이 정반왕에게 붓다가 이미 죽었다거나, 7일 내에 죽을 것이라는 등의 소식을 전하자, 석가족 국사(國師)의 아들 우타이가 정반왕에게 자신이 가서 붓다를 데리고 오겠다고 하였다. 우타이가 붓다를 직접 만나 환궁을 청하려 하였으나 이때 붓다의 모습은 땅 위에 누워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통 먼지를 뒤집어쓰고 거룩한 빛이 없이 흙빛과 같으며 몸이 야위어 살이 없고 오직 뼈와 껍질이 몸을 싸고 있을 뿐인데, 눈은 움푹 파여 우물 속의 별과 같고, 온몸이 굽고 꺾여 마디마디가 어그러진 채였다.
우타이는 이러한 붓다의 모습을 보고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때 붓다는 우타이에게 환궁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뜻을 분명히 밝히고 우타이 혼자 가비라성으로 돌아갈 것을 명하자 우타이는 더 붓다에게 바랄 마음이 없어 가비라성으로 돌아갔다. 가비라성으로 돌아온 우타이는 정반왕에게 붓다가 편안히 용맹정진하면서 죽지 않고 살아 있다고 말하자 정반왕은 이내 안심하며 기뻐하였다. 그때 마왕 파순(pāpīyas)이 거기에 와서 붓다에게 다음과 같은 은밀하고 부드러운 말로 유혹하였다. 『숫타니파타』에서는 이 악마 마왕의 이름을 나무치(namuci)라 전한다.
"부디 당신의 수명을 길게 누리소서. 수명이 길어야 법을 행할 수 있으리다. 수명이 길어야 자리(自利)를 얻고 자리를 얻은 뒤에야 후회도 없네. 당신은 지금 몸이 매우 수척해 목숨이 다할 날이 오래지 않으리. 진실로 당신은 이제 죽을 것이 천분(千分)인데 복덕을 닦으면 살 희망이 1분은 있으리. 다만 보시를 많이 하고 하늘을 받들고 모든 불귀신에게 제사드리라. 그러면 혹 큰 공덕을 얻으리니 선정을 닦아 무엇에 쓰려는가? 뛰어난 출가도를 구하기는 매우 어려워 자기 마음을 조복하기도 쉽지 않다네."
붓다는 이와 같은 악마 파순의 유혹에 다음과 같은 말로 악마를 물리쳤다.
"나는 죽음의 고통을 생과 같이 보아 참으로 한 생각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노라. 만약 모든 중생이 다 멸해 없어져도 내 마음은 잠시도 돌리지 않는다. (중략) 너희 군사 중 제일은 탐욕이요 기뻐하지 않음이 두 번째 이름이라. 셋째는 주리고 목마르고 춥고 더움이요 애착은 넷째 군사이며 다섯째는 졸음과 잠자는 것이요 여섯째는 놀라고 두려워함이라. 의혹이 일곱째 군사요 진에와 분노는 여덟째 군사요 이익을 다투고 명예를 시샘함은 아홉째요 어리석고 무지함은 열째 군사이다. 스스로 자랑해 높은 척함이 열한째 군사요 항상 남을 허는 것이 열두째다. 파순아, 너희들 권속이 그러하거니 군마가 모두 다 어두운 데로 다닌다."
붓다는 6년 동안 고행하고서도 얻은 바가 없어서, "고행을 하는 일은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는 것이다. 만일 실지가 있다면 내가 마땅히 얻었을 것인데, 허망하기 때문에 얻은 바가 없으니 그것은 삿된 술법이며 바른 도가 아니다"고 하였다. 또한 붓다는 "이 선인(仙人)들은 비록 고행을 닦기는 하나 모두가 해탈하는 참되고 바른 도가 아니다. 나는 이제 여기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겠구나"라고 생각하였다.
이처럼 붓다는 극진한 고행을 했지만 그가 얻고자 하는 지혜를 증득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고행은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괴롭힐 뿐, 도무지 이익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또 다른 방법을 찾고자 고행의 포기를 선언하였다.
붓다가 생각한 또 다른 방법은 다름 아닌 선정이었다. 붓다는 과거 초선(初禪)을 증득할 당시의 기쁨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내 생각하건대 지난날 부왕의 궁내에 있으며 밭가는 것을 보았을 때, 한 서늘한 염부수 그늘을 만나면서 그 그늘 밑에 앉아 모든 욕으로 물든 마음을 버리고 일체 착하지 않은 법을 싫어하고 분별하는 마음을 일으켜 적정을 즐겨 큰 기쁨을 내고 초선을 증득하였었다. 나는 이제 다시 그 선정을 생각하리라. 이 길이 바로 보리로 향하는 길이로다."
그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현재 자신의 수척한 몸으로는 불가능함을 느낀 붓다는 "나는 여위고 기력이 없으니, 어찌 몸이 수척해 힘이 없이 그 낙을 얻으랴. 나는 이제 몸의 힘을 차리기 위해 삶은 콩이나 보리떡이나 보리가루 같은 거친 음식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기름이나 수(酥: 연유)를 이 몸에 바른 뒤에 따뜻한 물에 목욕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나서 시자(侍者)인 제바에게 이러한 것을 준비해 줄 수 있는지를 묻자, 제바는 당장에는 어렵고 방편으로 구해 보겠다고 하여 군장(軍將) 사나야나 바라문에게 가서 음식을 청하였다.
사나야나 바라문은 붓다를 사위로 삼고자 하는 생각으로 난타(難陀)와 바라(婆羅)라고 하는 두 딸에게 붓다의 시중을 들게 하였다. 붓다는 두 딸의 시중을 받았으나 자신은 이미 오욕락을 받지 않으며 미래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여 위없는 법바퀴를 굴리기 원한다고하자 두 딸은 붓다의 말에 수긍하며 미래에 붓다의 제자가 될 것을 서원하였다.
그러나 붓다가 고행을 포기하고 음식을 먹을 때 그를 따르던 다섯 동료들은 서로 말하였다.
"실달태자는 이미 선정을 잃고 본성으로 돌아갔으니 계를 잃지 않았겠는가. 그는 이제 게으른 사람이 되었고 적정을 얻지 못하며 마음에 혼란을 내는구나."
그들은 이렇게 헤아리고서 붓다에게 싫은 마음과 비방하는 마음을 내어 그를 버리고 떠나 녹야원에 들어가 선정을 닦았다.
붓다는 과거 태자 시절 초선을 증득했던 까닭에 고행을 통한 수행이 더 자신이 구하는 깨달음에 이익이 되지 않음을 알았다. 6년 동안의 용맹정진의 고행은 육체를 더욱 고통스럽게만 만들고 결국 주위의 동료들까지 떠나보내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붓다는 다섯 가지 욕락을 여의는 것이 바른 길이고, 고행을 여의는 것이 또한 바른 길임을 설하여 양극단으로 치우치는 것을 제거하게끔 중도(中道, madhyamā pratipad)를 일러 주었다. 이를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법의 몸을 파괴하는 고뇌를 멀리 여의어야 하고 다섯 가지 욕락을 여의어서 깊이 빠지지 말아야 하니 만약 탐욕을 좋아하여 집착한다면 그것이 곧 금계를 훼손하는 일이며 다시 애욕을 자라나게 하고 어리석어 고행에 집착하게 되며 스스로가 단식하는 법을 좋아해서 혹 풀잎 따위를 먹기도 하고 재나 가시 위에 눕기도 하지만 이 같은 고행은 신명을 손상시킬 뿐 선정과 지혜는 얻을 수 없도다. 그러므로 중도에 처하여 이와 같은 법에 의지해서 탐욕의 진흙 속에 빠지지 않고 몸을 괴롭게 하지도 말아야 하니 이러한 두 가지 허물과 근심을 지혜 있는 자는 잘 분별하므로 마치 뭇 사람들이 달을 좋아하듯이 중도에 처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도다. 탐욕의 깊고 더러운 진흙을 좋아하여 사람들이 모두 다 빠져 버리거나 고행으로 몸과 마음을 불사르기에 이러한 근심을 면하지 못하나니 이 두 가지 치우침을 던져 버리고 중도에 처해야만 열반에 이를 수 있다네."
중도는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의미에서 논의되고 있다.
①쾌락과 고행의 두 극단을 떠난 바른 수행 즉, 팔정도.
②12연기를 바르게 주시하는 수행.
③여러 인연의 일시적인 화합으로 일어나므로 불변하는 실체가 없고 이름뿐인 현상.
④서로 대립·의존하고 있는 개념을 부정함으로써 드러나는 진리를 나타내는 말.
⑤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집착과 분별이 끊어진 마음 상태. 유와 무의 극단을 떠나 현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는 마음 상태.
이 중에서 중도를 팔정도라고 하는 것을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비구들아, 너희들은 이와 같은 두 가지 치우친 짓을 버려야 하리라. 나는 이제 그대들을 위하여 중도를 말할 터이니, 그대들은 자세히 듣고 항상 부지런히 닦고 익힐지니라. 무엇이 중도냐 하면, 바른 소견[正見]ㆍ바른 생각[正思惟]ㆍ바른 말[正語]ㆍ바른 행위[正業]ㆍ바른 생활[正命]ㆍ바른 노력[正精進] ㆍ바른 기억[正念]과 바른 선정[正定]이니, 이와 같은 여덟 가지 법을 중도라 하느니라."
출가수행자가 받들어서는 안 되는 두 개의 극단이 있다. 첫째는 관능이 이끄는 대로 애욕의 기쁨에 탐닉해 욕망과 쾌락에 빠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육체를 스스로 괴롭히는 것에 열중해 고행에만 빠지는 것이다. 붓다는 이미 이러한 것들이 자신의 심신을 고통스럽게만 할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 두 가지의 극단을 버리고 중도의 길을 찾았던 것이다.
<불교 죽음관과 상장례의 콘텐츠화 연구/ 한성열(탄탄) 원광대학교 대학원 한국문화학과 문학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