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월드컵이 열렸을 때
평소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나도 이 때만큼은 열심히 우리나라 경기를 챙겨 보았다.
우리 아이들도 신문에 난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들의 얼굴과 이름을 외우며
경기를 챙겨보았다.
‘이기고 지는 것이 대수냐, 이건 그냥 스포츠일 뿐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우리나라 팀이 꼬옥 이기기를,
기왕이면 기독교인 선수가 득점을 하기를 기도하며 경기를 봤다.
기도를 하면서도 약간 머슥했다.
하나님께서 이런 기도를 과연 들어주실지 스스로도 의심이 되었기에. ㅋㅋ
어쨌거나 이리 저리 차이는 공을 보면서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느슨한 아줌마의 삶속에서 색다른 긴장감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세계적인 실력을 갖춘 우리나라 선수 모두가 훌륭했지만
이번 대회에서 유난히 나의 눈길을 끈 선수는
북한대표팀의 정대세라는 선수였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재일교포3세다.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조선학교를 다닌 것이 인연이 되어 북한 대표팀의 선수가 된
일본, 북한과 얽힌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선수이다.
그의 부모님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그를 조선학교에 보냈다.
일본 사회에서 조선인임을 공개하는 것은 많은 차별과 불이익을 의미하고
일본 학교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열악한 교육환경과 경제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정대세 선수의 부모님은 조선학교를 고집했다.
일본학교를 다녔더라면
더 일찍 더 좋은 조건에서 더 훌륭한 선수로 자랄 수 있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대세 선수의 부모님은
조선학교를 고집했다.
자녀들에게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일본에 있는 ‘조선학교’는 전일제 학교로
일본어가 아닌 우리말로 수업을 한다. 일본어를 배우는 시간도 있다.
우리말로 된 책을 사용하고 우리나라 역사를 배우고 우리 노래를 배운다.
그런데 60~70년대 북한으로부터 많은 경제적 지원을 받은 탓으로
말도 북한말이고 노래도 북한 느낌이 나는 것들, 학교 분위기도 대한민국과는 다르다.
그런데 그 교육의 영향으로 정대세 선수는
자랑스런 대한민국 대신
세계 최빈국의 하나이며 세계적으로 많은 비난을 받는 북한을
조국으로 선택하고, 북한 대표선수가 되었다.
북한 대표선수로 경기장에 선 순간,
정대세 선수는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
관중석에 있던 그의 부모님도 같은 감동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나로서는 선뜻 공감이 안 되는 대목이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도 아니고
북한 국가 대표가 된 것이 그렇게 감동적일까?
일본 국적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그는 일찌감치 일본 국적을 포기했다.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지만 그는 이도 접었다.
그리고 법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북한의 국가대표 선수가 되기 위해
힘든 길을 선택했고 그 선택에 그는 감격했다.
이 대목은 교육의 영향으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조선학교를 다녔다는 것.
조선학교에서 받은 교육 때문에 정대세 선수의 꿈은 ‘북한 국가대표’였다.
교육의 영향!
부모인 나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맡겨주신 네 명의 자녀를 책임지고 있는 나는
정대세 선수의 부모님 같은 결연함이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조선인임을 가르치기 위해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조선학교를 고집했다는 그 결연함.
내 아이는 하나님 나라 시민임으로
그에 걸 맞는 교육을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결연함.
나는 내 아이가 하나님 나라 시민이 되는 교육을 시키고 있는가?
하나님 나라의 언어를 가르치고, 하나님 나라의 법을 가르치고 있는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키우기 위해 어떤 차별과 불이익을 감수하고 있는가?
교육을 통해, 아이가 보고, 경험하고, 습득한 내용에 따라
내 아이의 꿈이 결정될 텐데,
훗날 내 아이는 어떤 성취 앞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릴 것인가?
나는 지금 내 아이가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 나라 시민이 된 것을
가장 귀하게 여기도록, 감격해 하도록 가르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