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2013년 7월 19일부터 26일까지 인도(印度)를 방문하였다.
이번 인도 방문전만 해도 내게 인도는 아주 먼나라로만 느껴졌다. 이번에 갖는 인도방문은
나에게 여러모로 그 의의가 깊었다. 그동안 아련하고도 멀게만 느껴오든 신비의 나라를 방문
한다는 호기심과 함께, 단순한 관광이 아닌 음악을 통한 방문이라는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더욱 그러했다.
더욱이 방문을 위한 준비를 이미 몇달 전부터 시작하였고, 방문 일행이 무려 100명이 넘는
대규모 인원이면서 내가 인솔책임자로 간다는 중압감 등이 내 맘을 무겁게 하였다.
인도하면 나에게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불교의 발상지요, 마하트마 간디요, 힌두교 전통과 인습에
의해 고착된 계급제도와 경제적으로는 많이 낙후한 그래서 이제 잠을 깨고 막 일어나려는 큰
나라라는 인식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내가 신봉하는 기독교와 관련하여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
에 한분인 도마 사도가 순교한 나라요, 인도 기독교사에 손꼽히는 인물이며 내가 존경하는
선다싱이라는 분을 연상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역사와 관련하여서는 금관가야국의 김수로왕의 왕비가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라고 배웠
고, 통일신라시대 입당 구법승의 한분인 혜초 스님이 인도 당시의 천축국(天竺國)을 방문하고 저
유명한 기행문인 "왕오천축국전"을 저술했다는 내용 등이 내 기억속에 조각 조각 도사리고 있는
정도였다.
이처럼 다소는 모호하고 애매한 수준의 지식을 안고 나는 인도행에 오르게 되었다.
오전 11시까지 준비위원들이 미리 모이자는 약속대로 11시에 못 미쳐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는 데,
많은 일행들이 이미 모여서 여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사 관계자와 만나 인사를 나누고 구체적
인 출국 수속을 받게 되었다. 아쉬운 것은 일행이 많으면 출국 수속 시간을 앞당겨 주면 좋으련만,
우리가 예약한 항공기가 인도 국적기가 되다 보니 이 업무를 대행하는 한국 항공사의 모습이 매우
소극적으로 내 시야에 비쳐 온다.
겨우 항공권을 받고 화물을 부치고 나니 적잖은 시간이 흘러 점심때가 지났겄만 일행들에게 중식과
관련하여 충분한 메시지를 줄 수 없어서, 각자 알아서 해결하고 탑승에 지장이 없도록 해 줄 것을
당부하는 정도였다. 나는 K장로 내외가 베푸는 호의로 센드위치 한쪽과 약간의 김밥으로 요기하고
출국심사장에 들어 가려는 데, 구내 방송으로 우리가 보낸 짐과 관련하여 관계자를 찾는다는 방송을
듣고 해당 장소로 급히 가보았다. 주문받아 가지고 가는 식자재용 물건들을 확인해야 한다는 담당자의
의견을 듣고, 부랴부랴 박스 한개를 열어서 내용물을 확인시켰다.
그럭저럭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우리 몇사람이 가장 후미에 뒤쳐진 것을 알게 되어 맘이 급해졌다.
공항직원들의 협조하에 먼저 줄 선 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분주하게 출국심사를 받았다. 그런데
출국심사대에서 다시 문제가 발생하였다. 인도 현지 인사들에게 선물하려고 준비한 물품중에 장식용
나이프가 문제였다. 기내 휴대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아깝지만 나이프는 버리고 남은 물건들을
챙겨서 출국심사장을 나왔다.
서둘러 우리 일행들이 기다리는 게이트로 이동하였다. 우리 몇사람을 기다리는 진행팀장을 맡은 분에게
그간 정황을 이야기하고 서둘러 항공기에 탑승하였다. 출발부터 분주하고 맘을 졸이는 상황을 겪으며
많은 일행들을 인솔하는 나 자신의 역할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좀 더 차분하고 여유있는 일정
소화를 위해 더욱 분발해야 겠다는 다짐을 하며 이륙하는 기내에서 두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