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한 하급관리인 쁘레먄니꼬프의 딸 올렌까는 생각에 잠겨 자기집 현관 층계에 앉아 있었다. 날씨는 무더운데, 파리까지 짓궂게 덤벼들어서 기울어져 가는 해가 빨리 저물기만 기다려졌다. 검은 비구름이 이따금 생각난 듯이, 습기 찬 미풍을 일으키며 동쪽으로부터 몰려왔다.
뜰 안에는 이 집 건넌방을 빌어 쓰고 있는 찌볼리 야외극장 지배인 꾸우낀이 하늘을 쳐다보고 서 있었다. "제기랄!" 그는 울상이 되어 투덜거렸다. "또 비야!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허구한 날 비만 오니 이건 내 모가지를 졸라매자는 건가! 날마다 손해가 이만저만이어야지! 이러다간 파산이로군, 파산이야!"
그는 올렌까에게 두 손을 쳐들어 보이며 불평을 계속했다.
"우리들의 생활이란 요모양 요꼴입니다. 올리가 쎄묘노브나. 울어도 시원찮을 지경이죠! 별 고생을 다하고, 죽도록 기를 쓰며 일해봐야, 그리고 어떡하면 좀더 나아질까 하고 밤잠도 자지 않고 별 궁리를 다 해봐야,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첫째로, 관중이 야만이나 다름없이 무지막지하단 말이에요. 나는 그들에게 일류 가수들을 동원하여 가장 고상한 오페레타나 무언극을 공연해 주지만, 과연 관중은 그런 것을 필요로 하겠습니까? 설사 그걸 구경한다 해도, 도대체 아주 저속한 것을 상연해야 한단 말입니다. 거의 매일 저녁같이 비가 오지 않습니까? 오월 십일부터 시작해서 유월내 장마니, 이런 기막힌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구경꾼은 얼씬하지도 않는데, 그래도 자릿세를 물어야 하고, 배우들에게 보수를 줘야 합니까?"
이튿날도 저녁녘이 되면서 검은 구름이 몰려 왔다. 꾸우낀은 미친 듯이 웃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좋아, 퍼부을 테면 얼마든지 퍼부어라! 극장이 몽땅 물에 잠기고, 물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도록 실컷 퍼부으란 말이야!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저승에서까지 나를 못 살게 만들겠다는 게로군! 배우들이 나를 걸어 고소해도 좋다! 시베리아로 유형을 보내도 좋고 교수대에 올려 놔도 겁날 것 없다! 핫핫핫!"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올렌까는 꾸우낀의 넋두리를 아무 말없이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듣는 것이었고, 그러한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해지는 때도 있었다. 꾸우낀의 불행은 드디어 올렌까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말았다. 그를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안색이 누렇고 이마에 고수머리가 덮인 작달막한 키에 몸집이 여윈 사람이었다. 음성은 가느다란 테너였는데, 얘기할 적마다 입을 씰룩거렸고, 얼굴에는 언제나 절망의 빛이 떠돌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올렌까의 마음 속에 순결하고도 깊은 애정을 일으키게 한 것이다. 올렌까는 언제나 누군가를 사랑했고, 또 그러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여자였다. 어릴 적에는 아버지를 무척 따랐다. 그 아버지는 지금 괴로운 숨을 몰아 쉬며, 어두운 방안에서 안락의자에 앉아 앓고 있다. 그리고 2년에 한 번쯤이나 브란스끄에서 다녀가는 작은 어머니도 사랑했다. 여학교 시절에는 프랑스어 선생을 사랑했었다. 올렌까는 고운 마음씨를 가진 착하고 인자한 여자였다. 또한 그녀의 눈길은 잔잔하고 부드러웠으며 신체는 매우 건강한 편이었다. 그녀의 통통하고 발그레한 뺨이며, 보드랍고 흰 살결에 까만 점이 찍힌 목돌미며 무슨 재미있는 얘기를 들을 때 떠오르는 티 없이 상냥한 미소 같은 것을 보면, 사내들은 으레 "거 괜찮게 생겼는 걸......"하며 자기들도 미소를 짓는 것이었고, 여자 손님들은 얘기를 주고 받다가도 "아아 참 귀엽기도 하지!"하며 느닷없이 그녀의 손을 잡아 보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었다.
올렌까가 태어날 때부터 살아왔고 또 아버지의 유언장에도 그녀의 명의로 돼 있는 집은 도심지에서 떨어진 쯔이간스까야―슬로브드까에 있었다. 찌볼리 야외극장이 가까워서 저녁마다 늦도록 음악소리와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올렌까는 자기의 운명과 싸우며 자기의 가장 큰 적인 무관심한 관중을 향하여 공격을 가하고 있는 꾸우낀의 모습을 연상하는 것이엇고, 그러면 그녀의 심장은 달콤한 감격으로 벅차 오는 것이었다. 잠을 청할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새벽녘에 그가 돌아오면 침실 창문을 똑똑 두드리고 커튼 사이로 얼굴과 한쪽 어깨만을 내밀며 상냥한 미소를 지어 보이곤 했다.
꾸우낀은 올렌까에게 청혼하여 그들은 결혼하였다. 그녀의 목덜미며, 포동포동한 두 어깨를 보게 되었을 때 그는 두 손을 번쩍 쳐들고 이렇게 말했다.
"정말 당신은 귀엽구려!"
그는 행복하였다. 그러나 결혼식 날에도 하루종일 비가 왔기 때문에 그의 얼굴에서도 절망의 빛이 아주 사라지지는 못했다.
결혼 후에 그들은 다정스럽게 살았다. 올렌까는 입장권을 팔기도 하고, 극장 안의 여러 가지 일을 거들어 주기도 하며, 계산서를 꾸미고 월급을 치러 주기도 하였다. 그녀의 발그레한 두 뺨과, 티 없이 맑고 귀여운 미소가 매표구에서 보였는가 하면 무대 뒤나 구내 식당에 나타나곤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어느덧 자기 친지들에게, 연극이야말로 인간생활에서 가장 보람있고 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것이며, 연극을 통해서만 인간은 참다운 위안을 느낄 수 있고, 교양을 지닌 인도주의적 인간이 될 수 있는 거라고 곧잘 설명하게 되었다.
"하지만 관중이 과연 그걸 이해할 수 있겠어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요구하는 건 광대라니까요! 어제 파우스트의 개작(改作)을 공연했더니 관람석이 아주 텅 비어 있었어요. 그렇지만 우리 주인 바니치까와 내가 저속한 신파를 공연했더라면 틀림없이 대만원이었을 거예요. 내일 바니치까와 나는 「지옥에서 오르페우스」를 상연하기로 했어요. 꼭 보러 오세요."
그리고는 연극이나 배우들에 관해서 꾸우낀이 하던 말을 그대로 되풀이 하곤 했다. 남편이 하는 그대로 예술에 대한 관중의 냉담과 무지를 탓하기도 하고, 무대 연습에 끼어들어 배우들의 포즈를 고쳐주고 악사(樂士)들의 몸짓을 감독하기도 했다. 어쩌다 지방신문에 연극에 관한 악평이 실리는 일이 있으면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고, 그 악평을 해명하려고 직접 신문사에 찾아 다니기도 했다.
배우들도 올렌까를 좋아했다. 그들은 '바니치까와나'라고나 '귀여운 여인'이라고 그녀를 부르게 되었다. 그녀는 배우들을 동정해서 많지 않은 돈이면 빌려주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만일 배우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에도 남편에게 일러바치는 일은 없었고 그저 혼자서 눈물을 찔끔찔끔 짜고 마는 것이었다.
두 내외는 겨울에도 잘 지냈다. 그들 단원들은 겨울 시즌을 맞아 국립극장을 빌려 공연에 나섰고, 야외극장은 소러시아에서 흘러 온 소규모의 극단이라든가, 마술사들이라든가 그렇지 않으면 시골 아마추어 연극 동호회 같은 데 단기간씩 다시 빌려 주었다. 올렌까는 점점 몸이 좋아지기 시작했고, 흡족한 표정으로 얼굴이 환해져 갔다. 그러나 꾸우낀은 노랗게 말라만 가면서 겨우내 경기가 나쁘지 않은데도 손해가 막심하다고 투덜거리기만 했다. 그는 밤마다 쿨룩쿨룩 기침을 했다. 그래서 올렌까는 남편에게 딸기라든가 보리수 열매를 짜서 끓여 먹이기도 했고, 향수로 찜질도 해주었으며, 자기의 따뜻한 숄을 씌워 주기도 했다.
"난 당신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남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는 다정스럽게 말했다. "정말 당신은 좋은 분이셔!"
사순제(四旬祭)가 되어 꾸우낀은 극단원들과 합류하러 모스크바로 떠났다. 남편 없이 올렌까는 잠을 이룰 수 없었고, 그래서 밤이 새도록 별들만 바라보며 들창가에 앉아 있었다. 그런 때 그녀는, 닭장에 수탉이 없으면 괜히 겁을 집어먹고 밤새 잠을 못 자는 암탉과 자기를 비교해 보기도 했다. 꾸우낀은 모스크바에서 한동안 머물러 있었는데, 부활절까지는 돌아갈 테니 극장 일은 이러저렇게 하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그러나 부활절을 일주일 남긴 월요일 밤 늦게 불길한 예감이 주는 노크 소리가 들려 왔다. 문 밖에서 누군가가 커다란 나무통을 쿵쿵 두드리고 있는 것 같은 소리였다. 잠이 채 깨지 않은 식모가 맨발로 물이 질퍽하게 괸 뜰을 거쳐 대문으로 달려 나갔다.
"문 좀 열어 주시오!" 밖에서 거칠고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전보왔어요!"
올렌까는 이전에도 남편으로부터 전보를 받은 일이 있었지만 이번만은 어쩐지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 같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전보지를 펴 들었다. 전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반 빼뜨로비치 금일 돌연 사망. 화요일 장례식. ××× 지시를 바람.'
장례식 다음에 적힌 글자는 전혀 뜻모를 말이었다. 발신인은 소가극단 무대감독이었다.
"여보!" 올렌까는 흐느껴 울었다. "나의 소중한 바니치까!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이요! 왜 나는 당신과 만났을까요? 왜 나는 당신을 사랑했을까요! 불쌍한 당신이 올렌까를 두고, 이 가엾고 불행한 올렌까를 두고, 당신은 어디로 가버렸단 말예요......"
꾸우낀의 장례식은 화요일 모스크바에서 치렀다. 그리고 수요일에 올렌까는 집으로 돌아왔다. 방에 들어서자 침대에 몸을 던지고, 한길에서나 이웃집에서도 들릴 만큼 큰소리로 통곡하는 것이었다.
"가엾기도 해라!" 이웃집 사람들은 가슴에 성호를 그으며 말했다. "귀여운 올리가 쎄묘노브나가 저렇게 상심해 하다가는 몸을 상하겠네!"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난 어느 날, 수심에 찬 올렌까가 상복을 입고 미사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웃에 사는 바실리 안드레이치 뿌스또발로프도 역시 교회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우연히도 올렌까와 나란히 걷게 되었다. 그는 바바까예프라는 목재상의 주인이었다. 맥고모자를 쓰고 금시계줄을 드리운 흰 조끼를 입은 품이 상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시골 지주라는 편이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이었다.
"세상의 모든 일은 다 주의 처분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올리가 쎄묘노브나." 그는 동정어린 음성으로 침착하게 타이르듯 말했다. "우리가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 주의 누가 죽는다 해도 그것은 주의 뜻입니다. 우리는 슬픔을 참고 그 뜻에 순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문까지 올렌까를 바래다 준 다음 그는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이런 일이 있은 후, 그의 침착하고 위엄있는 음성은 그녀의 귓전에서 온종일 사라지지 않았고 눈을 감기만 하면 그의 검은 수염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올렌까는 그를 퍽 좋아하게 되었다. 남자 쪽에서도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것은 며칠 수 조금 안면있는 어떤 중년 부인이 커피를 마시로 집으로 찾아와서 식탁에 앉기가 무섭게 뿌스또발로프의 말을 꺼내며, 그가 아주 착실하고 믿음직스러운 신랑감이기 때문에, 그 사람한테 시집가라면 뉘 집 색시든지 혹하고 덤빌 것이라는 말을 장황히 늘어놓고 간 일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흘 후에는 뿌스또발로프가 찾아왔다. 그는 불과 10분이나 앉아 있었을까. 말도 몇 마디 하지 않고 돌아갔으나 올렌까는 벌써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에게 반해 버렸는지, 그날은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들떠 있었다. 그래서 아침이 되기가 바쁘게 그 중년 부인을 불러 오게 하였다. 곧 혼담이 성립되었고 결혼식도 부랴부랴 치뤄졌다.
결혼한 후, 뿌스또발로프와 올렌까는 의좋게 지냈다. 남편은 보통 점심 때까지 상점에 앉아 있다가 일을 보러 밖으로 나가곤 했다. 그러면 올렌까가 그를 대신하여 저녁 때까지 사무실에 앉아서 계산서를 작성하기로 하고 물건을 팔기도 하였다.
"목재는 해마다 이십 프로씩이나 값이 오르고 있답니다." 물건을 사러 오는 손님이나 아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에는 이 지방 목재만 가지고도 장사가 되었는데 지금은 우리 주인 바시치까가 목재를 구입하러 모길레프 현(縣)까지 해마다 다녀와야 합니다. 그리고 또 운임이......"
이렇게 말하며 그녀는 두 손으로 뺨을 감싸며 아주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것이었다. "엄청나게 먹힌다니까요!"
올렌까는 벌써 오래 전부터 자기가 목재상을 경영해 온 것처럼 느끼는 것이었고, 또 목재야말로 인간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고 필요불가결한 물건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들보·통나무·사끼레·판자·각재·창재(窓材)·기둥·톱밥 등등, 이런 말들이 어릴 적부터 귀에 익은 것처럼 다정스럽게 들리는 것이었다. 잠을 잘 때에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두껍고 얇은 판자의 산더미라든가, 어디론지 시외로 나무를 운반해 가는 우마차의 긴 행렬이라든가, 길이가 10미터가 넘는 20센티미터 두께의 들보 목재가 곤두서서, 마치 군대처럼 재목 저장고로 행군하는 꿈을 꾸었다. 통나무·들보·판자 같은 마른 나무가 요란한 소리를 내고 서로 부딪치며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가는, 다시 저절로 쌓아 올려지는 꿈도 꾸었다. 그럴 때면 올렌까는 소스라쳐 깨어나곤 하였다. 그러면 뿌스또발로프가 어린애 달래듯 말하였다.
"왜 그러지, 올렌까? 어서 성호를 그어요!"
남편의 생각은 바로 아내의 생각이기도 했다. 가령 남편이 방 안이 너무 넓다고 생각하든가, 장사가 시원치 않다고 생각하면, 그녀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남편은 어떤 종류의 오락도 즐길 줄 몰랐다. 공일에도 그는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고, 아내도 역시 매한가지였다.
"매일 집과 사무실에만 박혀 있지 말고 극장 같은 데 구경이라도 좀 다녀 보지."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은 그녀에게 이렇게 권했다.
"우리 바시치까와 나는, 극장엔 가지 않기로 하고 있지요." 그녀는 위엄있는 말투로 대답했다. "우리 근로자에게는 그런 우스꽝스러운 구경을 하고 다닌 여가가 없습니다. 극장에 다녀봐야 뭐 하나 이로울게 있어야죠."
토요일이면 뿌스또발로프 내외는 저녁 기도에 참석했고, 일요일엔 아침 미사에 참례했다. 교회에서 돌아올 때 그들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나란히 걸었다. 아내의 비단옷은 사각사각 기분 좋은 소리를 내었고, 남보기에도 두 사람은 행복해 보였다. 집에 돌아와서는 버터빵에 여러 가지 잼을 발라서 차를 마시고 그 다음 케이크를 먹었다. 매일 점심 때가 되면 이 집에서는 스프며, 양고기며, 오리고기를 볶는 냄새가 대문 밖 한길까지 풍겨 나왔고 육식을 금하는 단식날에는 생선으로 요리를 만들었다. 그래서 누구나 이 집 앞을 지날 때 군침을 삼키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사무실에는 언제나 사모바르가 끓고 있어서 손님들은 차와 도넛 대접을 받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이 부부는 목욕탕에 갔다가 불그레하게 상기된 얼굴로 나란히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지요." 올렌까는 아는 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말하였다. "남들도 모두 바시치까와 내가 사는 것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주께 기도한답니다."
뿌스또발로프가 목재를 구입하려 모길레프 현에 다녀오는 동안 그녀는 퍽 적적해 했고 밤잠도 못 자고 눈물만 짜고 있었다. 그녀의 집 건넌방을 빌어 쓰고 있는 젊은 군수의관인 스미르닌이 저녁이면 이따금 놀러 왔다. 그는 올렌까에게 이야기도 해 주고 트럼프를 함께 하기도 했는데 그것이 그녀에게는 여간 위로가 되는 게 아니었다. 스미르닌의 가정 얘기는 특히 그녀의 관심을 끌었다. 수의관에게는 아내와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아내의 행실이 좋지 못하여 헤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자기 아내를 몹시 원망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들의 양육비로 매달 40루블씩 보내주고 있다고 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며 올렌까는 한숨을 쉬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가 측은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주께서 당신을 구해 주시도록 기도하겠어요." 층계까지 촛불을 들고 나와서 그를 보내며 올렌까는 말했다.
"심심한데 와 주셔서 고마웠어요. 주께서 당신에게 건강을 주시고 또 성모 마리아께서도......"
그녀의 말투는 남편을 닮아 침착하고 위엄이 있었다. 아래층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수의관을 일부러 불러 세우고 그녀는 이렇게 충고하였다.
"블라지미르 쁠라또니치, 부인과 화해하셔야 합니다. 아드님을 봐서라두 부인을 용서해 줘야지요! 어린 자식 마음에 그늘이 지게 해서는 안되니까요."
뿌스또발로프가 돌아오자 그녀는 남편에게 수의관의 불행한 가정 얘기를 소근소근 들려 주었다. 그리고 그들 내외는 한숨을 쉬고 머리를 저으며 그 어린애는 얼마나 아버지가 보고 싶겠느냐고 남의 일같지 않게 동정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외는 이상하게도 생각이 일치해서 성상(聖像)앞에 무릎을 꿇고 자기들에게도 자식을 주십사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뿌스또발로프 내외는 깊은 사랑 속에서 말다툼 한 번 한 일이 없이 6년 동안 조용하고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바실리 안드레이치는 상점에서 뜨거운 차를 한 잔 들이키고 목재가 반출되는 것을 살피러 모자도 쓰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갔다가 그만 감기에 걸려서, 드디어는 앓아 눕게 되었다. 이름난 의사들을 불러 보았지만 그의 병세는 조금도 차도가 없더니 넉 달을 누워 앓다가 끝내 죽고 말았다. 올렌까는 다시금 과부가 된 것이다.
"나를 두고 당신은 혼자 어디로 가신단 말예요, 여보!" 남편의 장례식을 치르고 그녀는 이렇게 통곡하는 것이었다. "당신없이 나 혼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면 좋아요. 내가 가엾고 불쌍하지도 않으세요? 이웃 여러분들이 나를 보살펴 주어요. 나는 이제 사고무친의 신세가 돼 버렸어요......"
올렌까는 모자나 장갑은 끼지 않은 채 상장(喪章)이 달린 검은 옷을 입고 교회나 남편 묘지에 가는 이외에는 밖으로 나오는 일이 없었다. 마치 수도원의 수녀와 같은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뿌스또발로프가 죽은 후 6개월이 지나자, 올렌까는 상복을 벗었고 들창에 무겁게 닫혀졌던 덧문을 열어놓기 시작했다. 아침이면 이따금 식모를 데리고 시장에 나가는 그녀의 모습을 사람들은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집안에서 그녀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런 것은 그저 제멋대로 추측을 해 보는 수밖에 딴 도리가 없었다. 그녀가 뜰에 앉아 수의관과 함께 차를 마시고 있다느니, 수의관이 그녀에게 신문을 읽어 주고 있는 것을 누가 보았다느니, 또 우체국에서 어떤 친구를 만난 올렌까는 이런 말을 하더라느니 하는 소문이, 그러한 추측의 근거가 되었다.
"이 고장에서는 가축 관리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아요. 그것이 여러 가지 병이 생기는 원인이지요. 우유로부터 병을 얻게 되고 말아나 소로부터 무서운 병이 사람에게 옮는다는 것쯤은 알 만도 할 텐데. 사실 가축의 건강에 대해서도 사람의 건강에 못지 않게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거예요."
수의관의 견해를 그대로 남에게 되풀이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슨 일에 대해서나 그녀는 벌써 수의관과 똑같은 의견을 갖게 된 것이었다. 올렌까는 그 누구에 대한 애정 없이는 단 1년도 살아갈 수 없는 여자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 집 건넌방에서 새로운 행복을 찾은 것이다. 다른 여자였더라면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겠지만, 올렌까의 경우에는 누구도 악의로 해석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것이 그녀에게는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올렌까와 수의관은 누구에게도 자기들의 관계가 달라졌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고 될 수록 감추려 했지만, 그것은 안 될 일이었다. 올렌까는 비밀이란 것을 가질 수 없는 여자였다. 연대에 같이 근무하는 수의관의 친구들이 놀러 오면, 올렌까는 그들에게 차를 대접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밤참을 차리기도 했다. 그런 좌석에서 그녀는 페스트, 결핵 등 가축의 질병이나, 도회지의 도살장과 같은 문제에 대해 늘어놓기가 일쑤여서 수의관을 난처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손님들이 돌아간 후 수의관은 그녀의 손을 붙잡고 화를 내며 나무랐다.
"똑똑히 알지도 못하는 그런 얘긴 하지 말라고 그러지 않았소! 우리 수의끼리 얘기할 땐 제발 말참견 좀 그만 둬요. 내 꼴이 뭐가 되겠소!"
그러면 올렌까는 놀라움과 불안이 뒤섞인 얼굴로 그를 쳐다보며 묻는 것이었다.
"그럼 볼로치까, 난 무슨 말을 하면 좋아요?"
그리고 눈물이 글썽해서 그를 껴안으며 성내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행복하였다.
그러나 그 행복도 계속되지는 못했다. 연대가 딴 곳으로, 시베리아는 아니었지만 아주 먼 곳으로 이동하게 되어 수의관도 연대와 함께 영영 떠나가 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올렌까는 다시 혼자 남아있게 되었다.
이제 그녀는 그야말로 외톨이가 되고 말았다. 아버지도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그가 앉았던 의자는 다리가 하나 부러진 채 먼지를 가득 쓰고 지붕 밑 시렁 속에 들어가 있었다. 그녀의 복스러웠던 얼굴도 이제는 여위고 귀여움은 사라졌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이전처럼 그녀에게 미소를 던지는 일이 없었다. 분명히 젊고 아름다웠던 시절은 이미 지나가 버리고 다시는 그녀에게 되돌아올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 행복이란 꿈도 꿀 수 없는 그늘진 생활이 새로 시작된 것이다. 해가 기울어지면 올렌까는 현관 층계에 앉아 있었다. 해가 기울어지면 올렌까는 현관 층계에 앉아 있었다. 야외 극장으로부터는 음악 소리와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예나 다름없이, 들려 왔지만 그러나 지금은 아무런 감흥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리고 아무 욕망도 없이, 그저 멍하니 텅 빈 정원을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다가 밤이 오면 잠자리에 들어가서 폐허 같은 자기 집 정원을 다시 꿈 속에 보는 것이었다. 음식은 마지 못해 먹는 시늉만 냈다.
그러나 그녀에게 무엇보다도 가장 큰 불행은, 이미 아무 일에도 자기 의견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 주위의 사물이 눈에 띄었고 또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고 있기는 했지만, 그런 일에 대해 아무런 자기 의견도 세울 수 없었을뿐더러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자기 의견을 가질 수 없다는 그것이 그녀에게는 얼마나 무서운 일이었는지 모른다. 가령, 병(甁)이 놓여 있다든지, 비가 온다든지, 농부가 달구지에 올라 타고 간다든지 하는 것을 보았다 해도, 무엇 때문에 있는 병이며, 무엇 때문에 비는 오며, 또 농부는 뭣하러 가는지 제 생각으로는 얘기할 수 없었다. 아마 천 루블을 줄 테니 말해 보라 해도 무어라 입을 뗄 재주가 없었을 것이다. 꾸우낀이나, 뿌스또발로프나 그 다음 수의관과 함께 지낼 때는 모든 일에 대해 설명할 수 있었고 그럴듯한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머릿속과 가슴 속은 자기 집 뜰안처럼 공허하였다. 그것은 소름이 끼치도록 무섭고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시가지는 점점 사방으로 퍼져 나와서 쯔이간스까야 슬로보드까도 이제는 큰 거리가 되었다. 찌볼리 극장과 목재상이 있던 자리에는 집들이 즐비하게 들어서서, 이리저리 골목길이 생겼다. 참으로 세월은 빠른 것이다. 올렌까의 집은 연기로 그을리고, 지붕은 녹이 슬고, 헛간은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뜰 안에는 잡초와 가시나무가 무성하였다. 집주인인 올렌까의 얼굴에도 흉하게 주름이 늘어갔다. 여름이면 허전한 마음으로 시름없이 층계에 나와 앉아 있었고, 겨울에는 눈 내리는 것을 바라보며 들창가에 앉아 있었다. 훈훈한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그 바람을 타고 교회의 종소리가 들려 오면, 문득 지난 날의 추억이 한꺼번에 되살아나서 가슴이 메어질 것 같았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눈물도 오래 가는 것은 아니었다. 다시금 무엇 때문에 사는지 알 수 없는 공허감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브리스까라고 부르는 새까만 고양이가 야옹거리며 곁에 와서 재롱을 부렸으나, 그러한 고양이의 재롱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의 모든 존재, 자기의 이성과 영혼을 독점하고, 생각할 수 있는 힘과 생활의 방향을 제시해 주며, 식어가는 피를 다시 따뜻하게 해 줄 수 있는, 그러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옷깃에 매달리는 고양이를 떼내어 밀어 버리며 싫은 소리를 했다.
"저리 가거라! 귀찮다!"
날이면 날마다 아무런 기쁨도, 아무런 자기 의견도 없이 이렇게 세월을 보내며 해가 거듭되었다. 살림은 식모 마브라가 하는 대로 맡겨 두었다.
무더운 유월 어느 날 저녁녘이었다. 들판으로 나갔던 가축들이 집안에 온통 먼지를 날리며 들어올 무렵 해서 누군가 대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올렌까가 나가서 문을 열었다. 그리고 밖을 보았을 때, 하마터면 기절을 할 뻔했다. 문 밖에는 이미 머리가 희끗희끗한 수의관이 평복을 하고 서 있었다. 순간, 그녀에게 잊어버렸던 모든 과거가 되살아 왔다.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한 마디 말도 입 밖에 내지 못한 채 그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흐느끼는 것이었다. 걷잡을 수 없는 흥분 속에서 그 다음 두 사람이 어떻게 집으로 들어오고, 어떻게 차를 마시러 식탁에 와서 마주 앉았느지 알 수 없었다.
"당신이 오셨구료!" 기쁨에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는 속삭이듯 말했다. "블라지미르 쁠라또니치! 어디 계시다 이렇게 찾아 오셨어요?"
"아주 이 고장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수의관은 입을 열었다. "군대도 그만두고, 이젠 내 마음껏 일을 해서 자리잡힌 생활을 해 보려고 왔지요. 그리고 아들놈도 학교에 입학시킬 때가 되었습니다. 다 자랐어요. 나는...... 알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아내와 화해를 했습니다."
"그럼 부인은 어디 계신데요?" 올렌까가 물었다.
"어린애하구 여관에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셋방을 얻으러 다니는 길이지요."
"아니 셋방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집에 와 계시면 될텐데. 왜 여기가 마음에 안 드시나요? 방세는 한 푼도 안 받을 테니 우리집으로 오세요, 네!" 올렌까는 다시 흥분하여 눈물을 흘렸다.
"이 방을 쓰시도록 하세요. 나는 건넌방 하나면 되니까. 그렇게 하시면 난 얼마나 좋을지 몰라요!"
이튿날, 지붕에는 벌써 페인트칠을 하고 벽도 희게 칠하게 했다. 올렌까는 가슴을 펴고 두 손을 허리에 얹고서, 집안을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일을 감독하고 있었다. 얼굴에는 예전과 같은 미소가 떠올랐으며,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그녀의 온몸에서는 활기가 넘치는 것 같았다. 수의관의 아내가 아들과 함께 이사를 왔다. 밉게 생긴 얼굴에 머리를 짧게 자르고, 성미가 까다로울 것 같은, 여윈 몸집의 여자였다. 아들 쌰샤는 열 살 난 어린애치고는 키가 작고 통통한 편이었는데, 눈이 파랗고 볼때기엔 오목 팬 보조개가 있었다. 아이는 뜰 안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고양이를 쫓아서 달려가더니 곧이어 명랑하고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주머니, 이거 아주머니네 고양이지요?" 싸샤가 올렌까에게 물었다. "새끼 낳으면 우리 하나 주세요. 우리 어머닌 쥐새끼를 제일 싫어해요."
올렌까는 차를 따라 주며 쌰샤와 이야기를 하고 있노라면 가슴이 훈훈해 오고, 이 아이가 제 자식처럼 사랑스럽게 여겨지는 것이었다. 저녁에 쌰샤가 책상에 앉아 복습을 하고 있으면 그녀는 대견스럽게 그것을 바라보며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참 귀엽기두 하지...... 어쩌면 어린 것이 조렇게 똑똑하구 조렇게 깨끗하담!"
"섬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육지의 한 부분입니다." 쌰샤가 소리를 내어 읽었다.
"섬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올렌까도 받아 읽었다. 이것이 여러 해 동안 자기 의견이라는 것을 모그로 침묵 속에서만 살아온 그녀가, 자신을 가지고 입 밖에 낸 맨 처음 의견이었다. 이젱야 올렌까는 자기 자시느이 의견을 가지게 된 것이다. 밤참 때 그녀는 쌰샤의 부모와 이야기하면서, 중학교 과목은 어린애들에게 어렵긴 하지만, 실업교육을 받게 하는 것보다는, 역시 기초적인 고전들을 교육시키는 중학교가 장래를 위해서 더 좋다는 의견도 내었다. 즉 중학교를 마치면 의사라든가, 기사(技師)라든가, 자기 원하는 대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이 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쌰사는 중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하리꼬프에 있는 자기 언니네 집에 가서 돌아오지 않았고, 아버지는 매일같이 가축 검사를 하러 출장 가서 어떤 때는 2∼3일씩 묵었다가 오는 일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쌰사는 자기 가정에서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었고, 따라서 완전히 버림을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올렌까는, 쌰사가 그러다가 굶어죽지나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이를 데려다가 자기가 거처하는 건넌방에 붙은 조그만 방 하나를 마련해 주었다.
쌰샤가 올렌까에게 와서 살게 된 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다. 아침이 되면 그녀는 아이 방으로 들어갔다. 쌰사는 한쪽 뺨 밑에 손바닥을 괴고 죽은 듯이 잠자고 있었다. 아이를 깨우는 것이 가여워서 그녀는 늘 망설이는 것이었다.
"얘, 싸셴까야!" 올렌까는 애처로운 듯이 아이를 불렀다. "이젠 일어나거라, 학교에 갈 시간이 되었어!"
쌰사는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고 아침 기도를 드린 다음, 차 석 잔과, 커다란 도넛 두 개와, 버터 바른 빵을 조금 먹었다. 조반은 잠이 덜 깬 채로 뿌루퉁해서 먹기가 일쑤였다.
"그런데 싸셴까야, 너 학교에서 배운 그 우화 똑똑히 따라 외지 못하더구나." 마치 아이를 어디 먼 곳으로 떠나 보내기나 하는 것처럼 그녀는 이렇게 타일렀다. "나는 항상 네 일이 걱정이란다. 열심히 공부하구...... 선생님 말씀도 명심해 들어야 한다, 알겠니?"
"아이, 그런 말 제발 그만둬요!" 쌰샤는 이렇게 내쏘곤 하였다.
이윽고 소년이, 자기 머리보다 훨씬 큰 모자를 쓰고 책가방을 둘러메고 한길에 나와 학교 쪽으로 걸어가면, 올렌까도 그 뒤를 슬금슬금 따라나서는 것이었다.
"싸셴까야!" 뒤에서 불러 세워 가지고는 대추나 캐러멜을 손에 쥐어 주기도 했다. 학교가 있는 골목길로 접어들면, 쌰샤는 몸집이 큰 여자가 뒤에 따라오는 것이 부끄러워서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젠 돌아가요, 아주머니. 나 혼자라도 갈 수 있어."
올렌까는 멈추어 서서 소년이 학교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소년에 대한 그녀의 애정은 그 얼마나 깊은 것이었는지! 과거에 사랑한 일이 있는 어느 누구에게도 그처럼 깊은 애정을 바친 적은 없었다. 모성으로서의 사랑이 날이 갈수록 불타오르는 지금처럼, 그렇게 헌신적이고 순결하며, 자기에게 희열을 주는 애정이, 그녀의 영혼을 독차지해 버린 일은 결코 없었다. 자기와는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는 이 소년에게, 볼에 박힌 오목한 그 보조개에, 그 커다란 학생모에, 그녀는 자신의 한평생을 눈물과 기쁨을 가지고 바칠 수 있었다. 왜냐고? 누가 그에 대답할 수 있으랴?
쌰샤를 학교에 바래다 주고 올렌까는 흡족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천천히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요 반년 사이에 한결 젊어진 그녀의 얼굴에는 밝은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은 옛날처럼 그녀에게 친밀감을 느끼며 말을 걸어 오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귀여운 올리가 쎄묘노브나! 요새 어떻게 지내십니까?"
"중학교 학과가 아주 어려워졌더군요." 시장에서 올렌까는 이런 말을 하였다. "글쎄 어제는 일학년 애들에게 우화의 암송과, 라틴어 번역과, 또 수학문제까지 숙제를 내주었으니, 그게 말이 됩니까......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부담이 너무 과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올렌까는 교원들이며, 학과며, 교과서 등에 대해, 쌰샤에게서 들은 얘기를 그대로 늘어놓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오후 세 시에 점심을 먹고, 저녁에는 함께 예습을 하기 위해 땀을 빼곤 하였다. 쌰샤를 잠자리에 누이며 그년는 몇 번이나 성호를 긋고 입 속으로 기도를 드렸다. 그 다음에야 자기도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는 쌰샤가 대학을 마치고, 의사나 기사가 되어 마구간과 마차까지 있는 커다란 저택을 가지게 되고, 또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이와 같이 아득히 먼 미래에 대한 환상에 잠기는 것이었다. 눈을 감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뺨에는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겨드랑 밑에서 고양이가 가르릉가르릉 코를 골고 있었다.
밤중에 별안간 대문을 꽝꽝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올렌까는 겁을 먹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숨이 막혔다. 가슴은 두방망이질을 했다. 잠깐 사이를 두고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
"하라꼬프에서 전보가 왔구나!" 온몸을 후들후들 떨면서 올렌까는 이렇게 생각했다. "쌰샤의 어머니가 그 애를 하리꼬프로 보내라고 전보를 쳤나봐...... 아...... 이 일을 어쩌면 좋아!"
올렌까는 절망 속에 빠져 들어갔다. 머리와 사지가 얼음장처럼 얼어 붙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자기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다시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후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의가 클럽에서 돌아온 것이다.
"아이 고마워라!" 그녀는 한숨을 몰아 쉬었다.
가슴 속에 뭉쳤던 무거운 것이 차차 풀리며 다시 가벼워졌다. 올렌까는, 옆방에서 깊이 잠들어 있는 쌰샤를 생각하며 잠자리에 누웠다. 이따금 쌰샤의 잠꼬대가 들려 왔다.
"난 싫어! 저리 가! 때리지 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