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석령 지나거다 초하구는 어디메뇨
호풍도 차도 찰사 궂은 비는 무삼일고
뉘라서 내 행색 그려다가 님계신데 드릴고"
청석령(靑石嶺)을 지났다만 초하구(草河口)까지는 또 얼마나 남았을까
만주 땅에 불어오는 바람이 차가운 데 비까지 내리다니 이 어인 일인가
찬바람에 비까지 맞은 나의 초라한 모습을 누가 부왕(父王)께 전하겠나
(감 상)
참으로 안타까운 그리고 서글픈 내용의 시조 이다.
이 시조를 지은 분은 조선 제17대 임금인 효종 (孝宗, 1619~1659)이시다.
부왕 인조(仁祖)의 뒤를 이은 분으로, 이름은 호(淏), 字는 정연(靜淵)이고,
號를 죽오(竹梧)라고 하셨다.
1636년 병자호란에 강화도로 피난했다가 청에 사로잡혀, 형님인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인질로 가서 8년을 고생하였다. 먼저 귀국한 소현세자가 죽자
서둘러 귀국하여 세자가 되고, 부왕 인조의 뒤를 이어 즉위하시니 바로 효종
(孝宗)이다.
위 시조는 전쟁 패전국의 왕자로 적국에 끌려 가는 처지에서 지은 작품으로
자신이 왕자의 신분이면서도 처한 상황이 몹시 고달프고 힘든 처지임을 묘사
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후에 청나라에 대한 적개심으로 나타나, 재위 10년간에
청을 멸하여 나라의 원한을 갚겠다는 북벌(北伐)의 꿈이 되었지만, 결국은 이룰
수 없는 꿈으로 끝나고 말았다.
재위 10년 동안 북벌을 꿈꾸며 군사를 키우고, 경제를 발전시키며, 인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 등의 편찬과 문화적인 발전에도 많은 힘을 기울였으나, 재정적인
부담이 늘어나면서 임금의 꿈을 뒷받침해줄 신하들이 취약했고, 왕의 재위기간도
10년에 불과하다 보니 결국은 '북벌의 한(恨)'을 이루지 못한 비운(悲運)의 임금이
되었다. 이러한 효종께서는 또 아래와 같은 시조도 남기셨다.
청강(靑江)에 비듣는 소리 그 무엇이 우읍관대
만산(滿山) 홍엽(紅葉)이 흐드러지게 웃는구나
두어라 봄날이 몇날이나 되리 우을대로 우어라
*홍엽이 홍록(紅綠)으로 표기된 자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