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m 정도의 키, 27kg가량의 몸무게, 직립보행을 한 것을 보이는 뼈대, 소프트볼보다 크지 않은 머리에 턱이 크고 앞으로 툭 튀어 나온 얼굴. 1974년 11월 30일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하타르의 한 계곡에서 발견된 350만 년 전 최초의 인간 모습이다. 화석 발굴작업을 하던 미국의 고고인류학자 도널드 요한슨과 메이 틀랜드 에디가 함께 쓴 <최초의 인간 루시>는 당시의 발굴 과정과 고고인류학의 역사, 인류의 진화과정과 인류학사에 기억될 만한 주요 사건을 소개하는 책이다.
350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인류 최초의 화석을 발견한 발굴 팀은 기쁨에 들떠 비틀스의 노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를 틀어놓고 밤새 술을 마셨다고 한다. 여성으로 추정되는 이 화석에 ‘루시’란 이름을 붙인 연유다. 였다. 요한슨 팀은 사망 당시 25~30세 여성으로 추정된 이 화석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라는 종명種名을 부여했다. 요한슨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라는 종명의 루시가 모든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종의 조상”이라는 주장을 폈다. 그 주장 중 특이한 점은 직립 보행의 원인을 도구 사용에서 찾는 일반적 가설과 달리, 성적이고 사회적인 데서 찾는 것이다. 두발 보행은 아이를 더 많이 낳기 위해서였고 일부일처제와 가족제도의 원형도 이 때문에 생겨났다는 것이다. 요한슨은 루시가 왜 직립 보행을 시작하게 됐는가를 살피면서, 직립 보행은 성적 충동과 아이를 더 많이 낳기 위한 욕구 때문이었다고 보았다. 네 발로 기어다녀서는 암컷이 아기를 데리고 나무에 올라가거나 먹이를 구하러 다니기 어렵기 때문에 한번에 둘 이상의 아기를 키우기 어려웠고 출산을 줄이기 위해 성적 충동을 억제해야 했다. 그러나 직립 보행을 하게 되면서 수컷이 먹이를 운반할 수 있게 되자 한 곳에서 아기를 여럿 키울 수 있게 됐으며, 발정기를 놓치지 않고 성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 외에 이 책은 루시에 대한 분석 과정과 결과, 의문점 등을 다루고 네안데르탈인, 자바원인, 북경원인의 발굴에 얽힌 발자취를 재미있게 정리했다. 이 책에는 또 요한슨의 최대 경쟁자였던 고고인류학자 리처드 루키의 가설 등 고고인류학계에 일어난 여러 사건들도 서술돼 있다. 책은 1996년 국내에 번역돼 나왔다. (이충호 옮김/푸른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