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스트 오퍼’ - 사랑은 슬픈 것이다.
영화 ‘베스트 오퍼’(the Best Offer – 경매의 최고낙찰가)를 만났다.
시계 톱니바퀴로 실내를 장식한 ‘Night and Day’ 레스토랑에서
자신을 속이고 떠난 패거리의 한 여자를 기다리는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화두인
‘모든 위조품엔 진품의 미덕이 숨어 있다.’라는 말을 오래 동안 기억하게 한다.
진품의 미덕이란 작가정신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창의성의 표현을 하고자 하는 자기표현의 정신이다.
위조품을 만드는 사람도 어느 순간에는 자기표현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이것이 진품의 감성이고
위작 작가도 이 감성에 의해 일부분 자신을 드러내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경매 전문가인 ‘올드먼’은 위작을 가려내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올드먼’은 여성과 사람에 대한 기피증을 지니고 있다.
그의 방에는 직접적인 접촉을 피하기 위한 수많은 장갑이 비치된 벽장이 있고
그 벽장을 열고 들어가면
여성을 모델로 한 초상화가 빼곡하게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엄청난 액수의 이 그림들을 빼돌리기 위해 사기단이 접근을 한다.
진위를 가려내는 탁월한 눈을 지닌 사람을 속이기 위한 이들의 방법은 절묘하다.
부모의 유산인 예술품들을 팔고자 하는 미모의 젊은 여성 ‘클레어’를 상대자로 내세우는데,
광장공포증을 앓는 신비감을 무기로 올드먼의 호기심을 부추긴다.
올드먼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무기로 고안된 또 다른 계획은
올드먼이 젊은 시절 학위를 딴, 말하는 로봇 제작자의 로봇 부속인 톱니바퀴를
클레어의 저택 물품 창고 바닥에 배치해 두는 것이다.
올드먼의 예리한 눈에 띈 톱니바퀴는 유능한 기계 수리공에게 맡겨지고
한 패인 이 수리공은 로봇제작자의 그 로봇 부품임을 밝혀주면서
올드먼의 호기심을 줄곧 지배하게 된다.
올드먼은 유품 정리를 하는 동안 계속해서 부품을 수집하여 수리공에게 건네준다.
그러는 동안 사기단은 광장공포증 환자인 젊은 미모의 여성을 이용하여
올드먼의 마음에 사랑이 싹트도록 유도를 한다.
여자에 대해 무지한 그에게 수리공은 많은 지도를 하면서
여성 ‘클레어’의 마음을 차지하도록 이끈다.
마침내 클레어의 비밀의 방에서 올드먼은 로봇의 겉모습을 만든 쇠붙이를
발견하게 된다.
이 쇠붙이는 올드먼의 호기심의 정점을 차지한다.
철저히 계획된 장치로 인하여 올드먼과 클레어는 사랑을 하게 되고
클레어는 집앞에서 강도에게 폭행당한 올드먼을 구출한다는 각본에 의해
자연스레 광장공포증을 극복하여 저택에서 나와 올드먼과 사기단인 수리공 그리고
수리공의 여자친구와 함께 지내게 된다.
클레어 엄마의 소녀시절 초상화 한 점을 제외한 모든 물품이 경매에 넘어가지 직전에
클레어는 경매를 포기하는 선언을 하고 곧이어
올드먼은 외국 경매장의 초청을 받아 잠시 집을 떠나게 된다.
집에 돌아온 올드먼은 한 점의 초상화를 발견한다.
그 그림은 클레어 엄마의 소녀시절 바로 그 초상화이었다.
비록 수준이 낮은 그림이지만 클레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므로
올드먼은 여성 초상화로 가득한 방에 그 그림을 걸어두고자 방문을 연다.
여성 초상화로 가득해야 할 방은 텅 비어 있었다.
껍데기가 더해진 말하는 로봇 하나만 그 방을 지키고 있었다.
말하는 로봇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위조품엔 진품의 미덕이 숨어 있다.’
올드먼은 평생 여성의 인물화를 수집하기 위해 친구를 이용해서
자신이 관장하는 경매를 이용해왔다.
화가인 친구는 올드먼에게서 인정을 받고 싶었지만 늘 무시를 당한다.
올드먼은
‘그림 좋아하고, 그림 그린다고 예술가가 되는 게 아냐.
내면에 신비가 있어야지.’라고 그를 인정하지 않는다.
클레어 엄마의 초상화는 이 친구의 작품이다.
친구는 광장공포증 환자를 통해 신비감을 불어 넣은 예술로서의 사기극을 행한 셈이다.
친구는 출장 경매가 끝난 자리에서 올드먼에게 자신의 작품을 한 점 보낸다고 하고
올드먼은 불태워버리지는 않겠다고 농담을 던진다.
친구는 그 전에도 클레어의 사랑을 얻기 위해 힘들어하는 하는 올드먼에게
‘인간의 감정은 예술과 같다. 위조할 수 있지. ... 전부 속일 수 있어. ... 심지어 사랑도.’
이렇게 암시적인 말을 던졌다.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이 평생 모은 그림이 사라진 상황을 맞이하고서
충격에 빠져 병원신세를 지던 올드먼은
재활의 과정을 거쳐 퇴원을 하고 클레어가 살던 저택 건너편 찻집을 찾는다.
그 찻집은 올드먼이 비를 피하거나 클레어를 만나기 전에 가끔 들렀던 곳이다.
그 찻집에는 비상한 기억력을 지닌 장애인이 늘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그 장애인을 통해 클레어가 광장공포증 환자가 아니고
그들이 한 패인 것을 알게 된다.
클레어의 저택은 원래 이 장애인의 집이고 그들이 빌린 것도 알게 된다.
이 장애인의 이름이 클레어이었다.
그들을 잡기 위해 경찰서 앞까지 간 올드먼은 클레어와의 짧지만
아름다웠던 시절을 회상하며 발길을 돌린다.
그리고는 클레어를 처음 대면한 후 클레어가 들려준 얘기에 나오는
식당을 찾아간다.
‘나잇 앤 데이(Night and Day)’라는 식당에 들어선 올드먼은
시계 톱니바퀴로 실내가 장식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로봇 톱니바퀴 부속품을 조립하면서
기계수리공은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공존을 가능케 한다.’
함께 한 시간이 많으면 톱니바퀴도 제 짝을 찾아 잘 돌아간다는 말이었다.
이 시간의 마법을 믿고 올드먼은 클레어와 비록 대면은 못하지만
많은 시간을 함께 하기로 마음을 다잡았었다.
시계 톱니바퀴 장식 식당에 들어와 자리에 앉은 올드먼은
혼자이냐고 묻는 점원의 질문에
‘아뇨,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요.’
이렇게 대답을 한다.
그리고는 기다리는 올드먼을 가리키는 카메라는 점점 멀어지면서
영화는 끝난다.
올드먼은 비록 사기를 당했지만
즉 자신의 사랑이 위조품이었지만
위조품에도 진품의 미덕이 숨어 있듯이
클레어의 사랑도 진심이었을 거라고 믿고 있다.
순전히 속임수가 아니라 자기표현의 정신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자신을 속이는 것은 남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감정이야말로 진실인지도 모른다.
이때 사실은 끼어들 틈이 없어진다.
‘시네마천국’을 만든 감독과 음악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와 엔니오 모리꼬네는 이 영화에서 다시
사랑 그 순수함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삶은 슬프고, 남는 것은 이루지 못한 사랑의 슬픈 기억뿐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삶에 있어서
비록 허무한 것이 삶일 지라도
의미 있는 것은 자신의 순수한 사랑의 감정이다.
이것은 누구도 속일 수 없으며 빼앗아 갈 수도 없다.
방에서 사라진 클레어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가는 올드먼의
사랑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발걸음 뒤로 울리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쥬세페 토르나토레의 영상 전체와 어우러져
가히 명작을 만들어 내고 있다.
어쩌면 삶 자체가 거짓일지도 모른다.
거짓인 삶에서 우리는 오직 사랑에 기대어 살아가야 하리라.
비록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 사랑이라는
슬픈 사실 앞에서
순수한 사랑의 감정으로 사랑의 슬픔을 안고 넘어서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