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시 원전유치 반대 수요미사 강론 2011,2,23
김 한기 신부(원주 태장동 주임)
찬미 예수님!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 교회는 초대교회의 교부인 성 폴리카르포 주교의 순교자 기념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요한 묵시록(2,8-11)에 의하면 폴리카르포는 사도 요한에 의하여 스미르나 지역(오늘날의 터키 이즈미르)의 주교로 임명되었는데 당시에 성행하던 이단에 대항하여 그리스도교 교리를 옹호하였습니다. 그는 당시의 교황 아니체토를 로마에서 만나고 돌아온 즉시 이교축제 기간 동안에 체포되어 원형경기장으로 끌려가 배교를 강요당했지만 끝까지 신앙을 지켜 86세의 나이로 순교의 영예를 받았습니다.
오늘 이 축일이 의미하는 바는 옳은 일을 위하여 즉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순교한 성 폴리카르포 주교님처럼 우리도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창조주 하느님의 뜻을 지키기 위하여 마음을 모아 하느님과 교회의 가르침을 펼칠 때 박해를 받고 심지어 순교까지 할 수 있다는 각오를 지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청정해안인 삼척지역에 핵발전소를 유치하려는 삼척시의 뜻이 대다수 삼척시민의 뜻에 반할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과 환경을 보존코자 하는 교회의 뜻과도 어긋나는 것임을 새삼 밝히고자 이 자리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1일부터 삼척시 근덕면 덕산리 원전유치 백지화 기념공원에서 시작된 삼척 핵발전소유치 백지화 투쟁위원회가 관 주도의 방해공작으로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그러나 확신컨대 경제논리에 입각, 자연과 환경을 훼손하고 파괴할 뿐만 아니라 엄청난 재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 유치운동이 결코 성공하거나 결실을 맺을 수 없음은 불을 보듯 뻔 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불도자식으로 굳이 이 지역에 원자력 발전소를 유치하여 시민들을 현혹하고 있는 것은 역사에 큰 오점을 찍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지난해 11월 30일에 발행된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의 “창조 질서 회복을 위한 우리의 책임과 실천”이라는 지침서에 보면 한국 가톨릭교회가 환경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작고하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창조주 하느님과 함께 하는 평화, 모든 피조물과 함께 하는 평화”라는 1990년의 세계 평화의 날 메시지에서 근거하고 있지만 1970년대 초반에 교황 바오로 6세께서 이미 인류가 환경 파괴로 그 희생물이 될 수 있을 뿐더러 환경 파괴가 시대적 불의임을 밝힌 데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임 교황들의 예언자적인 지적 내지 경고와 더불어 현 교황 베네딕도 16세께서도 “평화를 이루려면 피조물을 보호하십시오.”라고 하시며 환경 파괴 문제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표명하신 바 있습니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는 위의 지침서에서 1960년대의 수출중심의 경제성장의 추진으로 난개발이 이루어졌다고 지적하고 난개발로 인해 전국토가 공사판으로 바뀌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4대강 개발이라고 지적, 강바닥의 준설과 수중 보의 건설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런 난개발로 인한 지구적 재앙은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 급속한 산업화에 있다고 밝히고 생태계의 파괴는 근본적으로 물질문명이 낳은 필연적 결과로서 기계적 이원론적 자연관에 기인한다고 그 근거를 밝히고 있습니다. 인간과 자연을 주관과 객관으로 구분, 자연을 철저히 대상화하는 이원론적 세계관으로 정신 문명사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서양세계를 철저히 지배해 온 주류 세계관이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인간의 이익을 위해서는 자연을 마음껏 착취하여 부를 축적해도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한국 주교님들의 가르침을 이 원자력 핵발전소 유치에 적용해 본다면 핵발전소 유치가 자연 환경과 생태계의 파괴로 인해 초래될 대재앙을 무시한 채 잿밥에만 눈이 어두워 초가산간을 태워 버리는 어리석음을 자행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제 1독서는 집회서(4,11-19)는 지혜를 찬미하며 인생의 가치가 무엇인지 밝혀주는데 특히 12절과 15절에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을 사랑하고 지혜에 순종하고 경청하는 이는 민족들을 다스리고 안전하게 살리라.”고 합니다. 하느님의 지혜를 무시하고 따르지 않는 자는 멸망하리라고 합니다. “그가 탈선하면 지혜는 그를 버리고, 그를 파멸의 손아귀에 넘기리라.”(4,19)
그러나 이 지혜는 시험을 받아야 한다고 언급합니다. “지혜는 처음에 그와 더불어 가시밭길을 걷고, 그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몰고 오리라. 지혜는 그를 신뢰할 때까지 자신의 규율로 그를 단련시키고, 자신의 바른 규범으로 그를 시험하리라.”(4,17)
저는 핵발전소 유치와 그 반대 선상에 있는 사람들을 이 지혜와 연관하여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과연 무엇이 참된 지혜입니까? 하느님 보시기에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구체적인 과학적 근거를 들이대지 않아도 뻔히 아는 일이 아닙니까?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소 역사도 그러하고 과거 다른 나라의 경우도 그러하지 않습니까? 사탕발림으로 사람들을 현혹한다면 그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과거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자로 폭발사건(1986,4,26)은 원자력의 피해가 얼마나 큰지를 잘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우크라이나의 키예프 북쪽 104㎞에 있는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제4호 원자로에서 방사능이 누출되어 일어난 역사상 최악의 원자력발전 사고입니다. 사고는 수차례에 걸쳐 수증기·수소·화학 폭발을 수반했는데, 이때 누출된 방사능은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보다 400배나 많은 양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심각한 방사선 피해를 입었으며, 원자로 주변 30㎞ 이내에 사는 주민 9만2000명은 모두 강제 이주되었습니다. 그 뒤에도 발전소 해체 작업에 동원한 노동자와 이 지역에서 소개한 민간인 수천 명이 사망했고, 수십만 명이 암, 기형아 출산 등 각종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는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 폭발 사고로 인한 암 발병 사망자 수가 9000명을 넘을 수 있다고 밝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시켰습니다.
사고가 난 지 25년이 넘었지만 사랑하는 아들을 떠나보낸 어머니의 가슴속에 남은 비통함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기후 변화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을 일깨워준 사건이었습니다.
오늘 복음(마르 9,38-40)에서 예수께서는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들을 막지 말라고 하십니다. 즉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의로운 일을 하고 생명을 수호하는 일에 앞장 서는 사람들은 예수님 편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 따르면 우리의 생명과 환경을 보존하는데 앞장 서는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의 일을 하는 것이며 예수님의 제자인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뿐이지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의로운 일을 함으로써 주님의 복음을 전한다는 사명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큰 자부심을 갖고 긍지를 갖고 보다 적극적으로 이 일에 임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느라고 헌신하셨지만 그 결과로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외견상 실패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부활하여 승리의 하느님, 영광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우리 모두 용기를 잃지 말고 승리의 그 날까지 최선을 다해 원전 유치 반대 투쟁에 함께 힘을 모읍시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감사 드립니다
바쁘신가운데도 먼길 고향까지오셔서 좋은 말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