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7일,
왜 하필 오늘이...
긴 추석연휴중 하루를 할애하여 빗점골 물소리를 따라 절골로 향한다.
지리산,빨치산,그리고 좌,우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되어야만 했던 민초들의 아픔...
그 아픔의 한구석을 품고 지리를 찿는다.
이현상은 1953년 9월 '빗점골회의'를 마치고 남부군총사령관에서 평당원으로 강등된다..
9월 17에는 몇몇의 호위병들과 함께 빗점골을 통해 지리산을 나선다..
이미 유격투쟁으로서의 승리를 할 수 없음을 알고 지하투쟁을 위해 진주로 스며들기 위한 길이었다..
하지만 그는 9월 17일 오전 11시경 현 빗점골 흐른바위 근처에서 토벌대와 마주치고 이내 사살되고 만다..
(이상은 토벌대측의 기록임)
산행코스: 삼정마을- 빗점골합수점- 절골- 명선봉- 연하천대피소- 명선남릉- 빗점골합수점- 삼정마을 ( 약12km, 9시간 )
삼정마을 작전로를 따라 20여분,
길림길에서 좌로는 빗점골,우로는 작전도로가 이어진다.
빗점골 합수점으로 이어지는 샛길...
비탐임에도 누군가 고맙게도 등로 제초작업을 깔끔히 해 놓았다.
빗점골 세 지류가 만나는 합수부,
이곳에서 단차를 두고 우로 절골,좌로 산태골,왼골로 갈림한다.
절골에서의 사연들을 아는지 제법 싸나운 울부짓음으로 먼길 내달렸을 절골을 맞이한다.
너른바위(일명 이현상바위),
흐른바위 너덜에서 사살된 이현상의 유해가 임시 안장되었던 곳...
남부군사령관 "이현상"의 이력은 대략 이러하다.
1905년 충남 금산에서 태어나 고창고보 중퇴..
서울로 유학하여 종로에서 하숙하면서 공산주의에 투신하여 지하활동 도중 일제에 의해 검거, 투옥..
출감 후 지하조직 그리고 박헌영을 도와 조선공산당 창건과 일제의 압박에 피해 다시 지하로 잠입..
해방과 함께 다시 공산당 활동에 박차를 가하다가 다시 잠행..
그리고 여순사건 이후 다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줄곧 지리산과 산맥을 오르내리며 유격대 투쟁..
그리고 지리산에서 사살, 섬진강변에서 화장..
흐른바위(이현상 최후격전지)...
이곳은 지리산 빨치산의 전설 남부군사령관 이현상이 사살된곳이라 한다.
일제 강점기때부터 지리산등에 숨어서 일본에 항거하면서 공산주의 사상운동을했던 이현상도
방준표(빨치산 전북도당위원장 대구여중 교사출신) 박영발(빨치산 전남도당위원장 의성출신 철도노동자출신) 등
젊은 빨치산들에 의해서 남부군 사령관에서 평당원으로 강등된후에 당번겸 경호원 한명과 산위에서 내려오다가
매복중이던 국군에의해서 사살 되었다고 합니다.
1953.9.17. 그의나이는 48세 였습니다.
본처외에 지리산에서 산중처 역할을한 간호병인 하수복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유복자인 아들은 인물 인품 실력이 뛰어나서
울산 근교에서 40대에 중학교 교장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빨치산 고위급 간부인 방준표나 박영발등은 20대의 어린 간호병인 산충처를 끝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토벌대에 저항하다가
자폭하고 사살 되었지만 이현상은 임신 8개월의 하수복에게 비행기에서 뿌려주는 자수권유증 유인물을 챙겨주면서 젊은
너는 살아야 한다고 하산 시켰다고 했습니다.
하수복은 임신한덕에 구속도 안되고 조사만받고 귀향했다고 했습니다.
여느 지리계곡의 깊고,우렁찬 물줄기와는 비교가 되지않는 가녀린 물줄기로 흘러내리는 절골...
그 옛날 이 골짝을 피눈물로 올랐을 빨치산의 슬픈 모습들을 조금이나마 상상하며, 물길을 거슬러 거슬로 위로 걷는다.
누군가에 의해 빨치산 원혼을 달래기위해 만들엇을 절골 케룬...
계곡을 벗어나 좌측 너덜을 조금 오르다 보면...
"이현상 아지트"가 나온다.
이곳에서 이현상이 죽기전까지 은신했던 지리산 빗점골 아지트라 한다.
그런데 세월의 흐름에서인지,아님 시루의 변화에 기인한건지 오래전 안내판은 간데 없고,
썩다만 판자조각만이 그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10여년전 그자리...
이현상 최후까지 버티던 은거지 빗점골에서 사살된 이현상의 주머니에속 수첩에는 이러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智異風雲當鴻動 지리산에 풍운일어 기러기떼 흩어지니
伏劍千里南走越 남쪽으로 천리길 검을 품고 달려왔네
一念何時非祖國 오직 한뜻 한시도 조국을 잊은적 없고
胞有萬甲心有血 가슴에는 철의 각오 마음속엔 끓는 피 있네
-火山 이현상 -
이현상 아지트에서 곧장 오르면 명선남릉이 나오는데...
일행은 우측 계곡으로 내려선다.
잘박한 계곡을 따라 이리저리 계곡을 지친다.
전날 백신접종으로 힘들어 하는 백섬님...
지리산 여느 계곡의 커다란 물줄기와는 비교가 되지않는 가녀린 물줄기로 흘러내리는 절골...
그 옛날 이 골짝을 피눈물로 올랐을 빨치산의 슬픈 모습들을 조금이나마 상상하며 물길을 거슬러 위로 오른다.
계곡의 경사때문인지 오르는 내내 즐비한 무명폭들이 무료함을 달래준다.
다소 뒤처진 일행을 기다려 이른 점심을 먹는다.
계곡을 따라 스치는 계곡바람이 땀젓은 등줄기를 오싹하게 한다.
휴식도 잠시...
오늘 하루의 일정을 감안하여 바쁜 걸음을 제촉한다.
물소리를 들의며 얼마를 올랐을까?
계곡의 물은 마르고 너덜 한켠으로 노오란 표식지 하나가 갈길을 안내한다.
표식의 흔적을 따라 이리저리 휘젓다 보면...
해발1583m 삼각점이 꽂혀있는 명선봉 정상에 다다른다.
우측으로 빗점골로 이어지는 산태골이 넓게 보이고,
좌측 능선 넘어로 오리가 올랐던 절골이 나즈막히 골을 이루고 있다.
명선봉 정상을 오르니 지척에 있는 연하천이 욕심난다.
일행을 잠시 거기에 남겨 두고 빠른걸음으로 선을 넘는다.
시절 탓인지,아님 늦은시각 탓인지 주능길은 적막감마져 든다.
화계재 4키로,연하천대피소 400미터...
한달음에 내달린다.
초가을 늦은시각 연하천대피소 풍경...
아니나 다를까 비워진 대피소엔 적막함에 을씨년 스럽기까지 하다.
머물길 잠시,
개수대에 머리를 박고 시원한 연하샘물에 목을 축이고 오던길을 달려 명선봉으로 향한다.
명선봉에서 바라본 지리주능선과 지능선군...
멀리 중심을 잡고 촛대봉, 제석봉, 천왕봉, 중봉, 하봉이 줄지어 서있다.
눈 아래로 하산길인 명선남릉과 절골,천내골, 벽소령능선, 덕평골, 오리정골,
그리고 마루금을 타고 남부능선이 흐르고,우측멀리 백운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토끼봉에서 갈림한 토끼봉능선과 넘어로 황장산, 왕시루봉이 우로 겹겹이 층을 이룬다.
영신봉 정상에서 먹다 남은 막걸리 한잔으로 간단히 목을 축이고 하산을 서두른다.
묵혀져 흔적만이 희미한 족적을 따라 명선남릉을 내림한다.
간간히 색바랜 표식지만 나불거릴뿐 잡목과 산죽이 길을 채우고 있다.
하산길 길언저리에 하얀 엉덩이를 내밀고 노루궁뎅이가 반긴다.
해를 넘긴 어스름에 잠시 망설이다 이내 소싯적 기술바리를 해본다.
아~~ 힘들다!!
산죽과 잡목은 산객의 발목을 부여잡고,
산골의 어둠은 빨리도 걸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