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줌싸개 白書
공덕룡
오줌도 어른이 싸면 '실금失禁'이라 한다. 병원에선 요실금이라 하고….
비뇨기과에 가보면 웬 어른 오줌싸개가 그렇게 많은지…. 요도의 구조로 보아, 남성에만 실금이 있는 줄 알았는데, 여성도 적지 않다니 세상은 역시 공평한가 싶다. 저런 미인도 남몰래 실금을 하나니 안쓰럽다. 무슨 통계를 낸 바 없지만 실금은 격세유전이 적지 않다는 설이 있다. 즉 당대가 오줌싸개면 그 할아버지 대를 살펴보라는 것이다. 또 술버릇도 그렇다는 사람이 있다. 아버지의 술버릇을 보고 질려서 아예 술을 입에 대지 않은 신통한 아들을 보았다. 그런데 손자 대에 내려와서는 아버지의 맹숭맹숭한 인생이 역겨워서 일찍부터 마시기 시작하였던가.
나의 어린 시절, 오줌 싼 기억이 몇 가닥 되살아난다. 한번은 비몽사몽간에 요강을 찾다가 옆에 누워 있는 동생의 머리통을 더듬은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던가 한번은 크게 오줌을 쌋다. 그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웃 나라 중국과 전쟁이 벌어졌는데(만주사변), 학교에서는 방첩교육 같은 것을 하였던가 싶다. 시내에는 화교가 꽤 많이 살고 있었으나 혹시 수상한 행동을 하는 자가 있으면 곧 신고하라는 지시가 내렸다.
그날 밤, 곤히 잠들었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나무 위에 기어올라가 있었다. 아마 첩자를 감시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상한 차림의 첩자 같은 사람이 나무 밑둥에 폭탄을 설치하더니 불을 당기려 하지 않는가. 나는 얼떨결에 바지 앞 단추를 풀고 호스를 꺼내 급한 대로 오줌을 뿌렸다. 피어오르던 연기는 내 오줌 세례를 받고 씨익 하고 꺼져버렸다. 나는 꿈 속에서도 쾌재를 불렀던 것이다.
잠자리가 따뜻하게 더워 오를 때, 그것을 지복至福의 한 때라 부른 사람이 있다 하나, 지복이란 오래 가지 않는 법, 점점 식어가고, 식어가면서 자리가 축축해진다. 나는 꿈 속에서도 짚이는 데가 있어 번쩍 눈을 떴다. 아니나 다를까. 요 위에는 아프리카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나는 기가 막히고 억울했다. 눈물을 찔끔찔끔 "뙤놈, 뙤놈이 나빠!" 하였다. 꿈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가가대소呵呵大笑할 뿐 나무라거나 벌주지 않으셨다. 나라 사랑하는 충정에서 저지른 실수였기 때문일 것이다.
만취 끝에 한줄기 뽑는 방뇨의 쾌감은 술꾼이라면 모두 경험했을 것이다. 마지막 몇 방울을 진저리 치듯 털어 낼 때의 쾌감이라니 바로 지복의 경지이다.
내가 읽은 오줌싸개 문학이 있다. 영국의 제임스 죠이스의 "젊은 날의 예술가의 초상"이다. 이 자전적 소설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처음에는 따뜻한데 차차 식어가며 차가워진다.'-오줌이 식어가면 어쩐지 슬퍼진다고 하였다. 인생의 서글픔을 일찍이 오줌싸개 자리에서 예감하다니 죠이스는 역시 조숙한 예술가라고 할까.
일본의 요시유끼(吉行淳之介)라는 작가는 여자를 떼어놓고 싶을 때는 잠 자리에서 시침 뚝 떼고 잠꼬대라도 하면서 실금해보라고 권한다. 웬만한 여자라면 정떨어져 보따리 쌀 터이니….하지만 눈치 빠른 여자라면 맞대결을 할지 모른다. 오줌 싸움판이 벌어지는 것이다.
내 유년 시절, 동네 오줌싸개를 보았다. 키를 씌워 소금 동냥하러 내보내곤 하였다. 키 위로 회초리 맞고 눈물 철철 흘리고 소금 한 됫박 받아온다. 나는 오줌 싼 일이 심심찮게 있었지만 키는 써보지 않았다. 키를 쓰면 아이들 놀림이 될 터이니 기 죽이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본다. 어머니는 속옷을 슬쩍 갈아 입히고 오줌 지린 요는 사람 눈에 띄지 않는 데에 널었다. 고마운 처사였다. 한 시인은 시의 한 줄이 떠올랐을 때의 순발력을 참았다가 누는 오줌줄기에 비유하였다. 만일 시상이 꿈 속에서 떠오르면 놓치지 말고 간직해야 하고 깨어나면 그 자리에서 적어 둘 일이다. 그리고 한 줄기 뽑으면 지복한 아침이 될 것이다.
공덕룡|(1928―2008) 평남 덕천 출생, 수필가, 영문학자
수필집 《웃음의 묘약》《수필이 뭐길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