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예수를 위해 삽시다
Text Php 1,20-24 & 27-29
(20)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22)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27)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29)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 지난 주간에 부산서지방 반석교회 목사님의 장모상에 다녀왔습니다. 고인은 평생 대한수도원 계열인 ‘구국 기도 제단’의 회원으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기도하시다 돌아가신 분입니다. 기도의 맛을 알고 기도를 사명으로 받아 사시던 분들이 이제 모두 떠나는 듯하여 제 마음은 매우 무거웠습니다. 어쩌면 고인은 오늘의 대한민국 기독교가 있게 했던 기도의 용사 중 마지막 분일지도 모릅니다. 그분들의 뒤를 이어 기도하는 분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오늘의 한국 교회 모습인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감리교회가 2006년에 결의하여 제정하고 2007년부터 지키고 있는 제18회 ‘순교자 기념 주일’입니다. 순교자 기념 주일은 순교자들이 그들의 신앙과 원칙을 위해 삶과 생명을 바쳤음을 회고하고 감사하며, 또한 그분들의 충성과 희생을 기리면서 믿음의 후예인 우리도 그렇게 살 수 있는 은혜와 힘을 달라고 기도하는 날입니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그 무엇보다도 순교자적 신앙과 오로지 기도만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 믿고 평생을 기도하며 사셨던 분들의 믿음이 절실히 요청됩니다. 이 거룩한 주일이 우리 모두에게 순교자적 믿음으로 기도하며 살겠다는 다짐과 각오가 생기게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 본문 Php 1,20-24 & 27-29을 통해 이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2. 먼저, 성경 본문 20-23 말씀에서 우리는 순교자적 믿음이 어떤 믿음에서 비롯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는 20절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께서는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혔습니다. 그랬더니 사도 바울을 시기하고 못마땅하게 여기던 사람들이 바울 사도께서 옥에 갇힌 틈을 타 바울 사도께서 하시던 사역을 가로채려 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감옥에서 이런 소식을 들은 바울 사도께서는 예수 복음만 전파된다면 자신은 어떤 처지에 있던 환영하고 지지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받은 성경 본문의 앞에 있는 롬1,15-18이 그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더 널리 알려지는 것을 최고 중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믿음,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구원 사역의 가치는 귀한 보물을 수집하는 사람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보물을 팔아서라도 살 수만 있다면 사야 하는 가치가 있는 보물(마13,46)과 같고, 값진 보화가 묻힌 밭을 발견한 사람이 자신의 전 재산을 처분해서라도 그 밭을 사야 하는(마13,44) 정도의 가치로 여기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은혜와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음을 깨달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순교자의 믿음으로 가는 출발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 사역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자체를 최고의 보물로 믿고 있음을 이어지는 말씀에서 보여줍니다. 주님과 함께 있을 수 있기에 죽어 세상을 떠나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당신에게 훨씬 더 유익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하지만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유익보다 중요한 것이 주님의 뜻이기에 주님의 명하심에 따라 세상에 살면서 성도들을 유익하게 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21-23절 말씀입니다. “(21)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22)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성도가 순교자의 충성과 헌신을 본받기 위해서는 그 전에 자신의 믿음이 순교자가 가졌던 믿음과 같은지를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는 바울 사도의 고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주님의 구원 사역에 대하여 확고하면서도 뜨거운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구원 사역이 그에 대하여 핍박자요 폭행자로서 죄인 중의 괴수와 같았던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사역이었음을 깨달은 감동입니다. 만삭되어 나지 못한 자 같은 자신을 위해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이 바로 십자가에 죽으신 것임을 깨달은 감동입니다. 둘째는, 그렇게 늘 울어도 눈물로서 갚을 수 없는 은혜가 주님의 은혜요, 벌레와 같은 인생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께서 죽으셨다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은혜가 주님의 은혜이기에, 그 은혜를 세상 모든 사람에게 알리는 일은 세상의 어떤 것도 뛰어넘는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일을 위해 부름을 받은 자신의 소명은 무한대의 가치를 지닌 은혜라 믿는 믿음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적을 두고 있다고 모두 그런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인간의 욕망을 실현해 주는 초능력자 정도로 믿고 일이 자신의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하나님도 아무 필요 없다고 믿는 믿음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나의 아픔을 해결해 주지 않으면 하나님의 유무가 아무 의미 없다는 식의 믿음은 기독교 믿음이 아닙니다. 자신의 행복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그 행복에 대하여는 무조건적으로 협조하고 도와주는 존재로서의 하나님을 믿는 것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믿음에 대한 이 이야기는 과거의 성도에게나 현재의 성도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한국 교회 모든 성도의 믿음이 이 믿음이기를 축복합니다.
3. 오늘 주신 성경 본문은 순교자는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사람이었음을 보여줍니다. 27-28절입니다. “(27)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사람이라는 말은 주님의 구원 사역에 대한 믿음에 합당하게 사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구원하심은 견줄 수 있는 것이 없는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믿고 그 구원의 은혜를 알리는 것은 자신의 일생을 다 바쳐서라도 해야 하는 소중한 사명임을 믿는다면 그 믿음에 어울리게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이 그렇게 당연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또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께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이들이 많다고 빌3,18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으로 가버린 사람도 있다고 딤후4,10에서 말합니다. 사도 바울께서는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한 고별설교에서 “(30)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31)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20,30-31)고 권하기도 했습니다. 히10,26에는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하여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순교자들은 복음에 합당하게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순교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더라도 하나님의 충성과 인도를 확신하며 살았고, 하나님의 인도와 도움을 믿으며 굳게 서 있었습니다. 순교자들은 자신의 신앙에 어울리게 살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습니다. 순교자들은 자신의 믿는 바를 따라 살기 위해 무엇이든 감수했습니다. 그들은 이 믿음을 지키고 강화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경주했습니다. 자신이 가진 몸과 마음과 재물과 재능을 다 쏟아부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믿음과 사역 때문에 살해 위협을 받을 때는 기꺼이 목숨까지도 원수들 앞에 내놓았습니다. 강요하는 모든 요구에 당당하게 맞섰습니다. 그들은 시련과 고통을 즐거이 감내하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자신을 핍박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들에게도 사랑과 용서를 베풀었습니다. 그들에게도 구원의 복음이 전달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또한 순교자들은 이 세상의 것들을 모두 잃게 되었을 때 영원한 삶을 향한 희망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영원한 삶에서의 보상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으며, 이는 그들이 삶과 죽음을 통해 목표로 삼았던 것입니다. 순교자들은 세상을 초월한 영원한 희망을 품었습니다. 죽음은 그들에게 영원한 보상을 가져다주는 기회였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늘 영적으로 더 성장하고 강해지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교리를 더 깊이 배우고 연구했으며 기도 생활도 더욱 강화하였습니다.
여러분, 순교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복음에 합당하게 산 사람입니다. 거꾸로 말해서 극한 상황에 이를 때에도 복음에 합당하게 산 사람이 순교자입니다. 오늘의 교회에서 이렇게 사는 성도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 안타깝습니다. 순교 신앙은 특별한 성도에게만 요청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가 갖춰야 하는 신앙이고 신앙 생활 환경이 평안할 때는 방만해지지 않도록 스스로 자기 관리에 엄격해야 하고 신앙 생활 환경이 어려울 때, 순교가 요청되는 극한 상황에 이를 때에는 하나님을 믿고 희생과 감사와 사랑의 삶을 지속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께서 고전15,30-31에서 고백하셨던 것처럼 위험을 무릅쓰기를 마다하지 않으며 날마다 죽는 충성과 희생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순교자 터툴리아누스의 말처럼 기독교가 순교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면 교회가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에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 순교자의 피흘림입니다. 성경적 믿음을 갖기 위해 영의 양식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연구하며 깨달은 성경적 믿음을 지켜내는 힘과 능력을 얻기 위해 주의 제단 불위에 몸과 마음을 바쳐 거룩한 성령의 불이 임할 때까지 몸부림치는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날마다 죽는 순교의 피를 뿌릴 순교자들이 되십시다.
4. 순교자적 믿음을 가지고 교회 부흥의 제단에 순교의 피를 뿌리는 이에게 고난은 피할 수 없음을 본문 29절은 가르쳐줍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주를 위하여 고난도 받는 것이 은혜를 받은 사람의 숙명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은 영적 전투이기 때문입니다.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싸움을 싸우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그리고 악한 날에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는 사람이 순교자적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엡6,10-13) 그런 싸움을 싸우는 이들에게 고난은 피할 수 없는 속성입니다.
순교자 신석구 목사님은 1946년 초대 서부연회 연회장이 되셨습니다. 이듬해에는 송정근 목사님이 연회장이 되셨는데 연회를 열어야 할 송 목사님이 기독교민주당 부위원장이었던 관계로 구금되어 있는 형편이어서 누군가 대신 구속당하고 연회장 송 목사님을 풀어달라고 청원하기로 하였는데 신석구 목사님께서 자신은 나이가 많아 이미 다 산 몸이요 주님의 사업을 위해서는 언제나 몸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몸이니 대신 구속을 당하겠노라 자천하셨습니다. 이미 일흔 셋이나 되셨었지만 감옥 생활도 경험이 있는 사람이 지혜롭게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노구의 몸으로 교회를 대표하여 돌아오는 길이 없는 고난의 길을 나서셨습니다. 얼마든지 피하려면 피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한국 교회를 위하여 가셔서 순교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이 시대의 순교자가 되어야 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감옥에 가고 총살을 당하는 순교 시대는 아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에 처한 한국 교회가 날마다 죽는 순교자로 나설 신실한 사역자, 신실한 성도를 부르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나서야 하겠습니다. 위기를 맞은 한국 교회를 위하여 고난이라는 피를 뿌리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성도님은 어디 계십니까? 수고라는 땀을 뿌리기를 마다하지 않을 성도님은 손을 들어주십시요. 밤낮 기도 제단에 엎드려 간구의 눈물을 뿌리기를 주저하지 않을 분은 누가 계십니까? 우리 모두 순교자의 길로 나아가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