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고난이 자랑스럽도록 Date 2012. 6. 24
Text Acts 5,40-42
(40)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41)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2)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1. 내일이 한국역사상 최대 비극인 6.25한국전쟁이 발발한 날입니다. 호국인사들을 추념하는 유월의 마지막 주일은 민족 비극의 날에 신앙을 지키기 위해 기꺼히 자신들의 생명을 내놓았던 순교자기념주일로 지킵니다. 일제 식민지배 시절 독립운동과 신사참배 반대 등으로 수많은 순교자들이 있었고, 6.25전란 중에는 무신론자들인 공산당에 의해 또 많은 순교자들이 생겨났습니다. 그야말로 한국교회는 순교자들의 신앙 위에 세워진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초기 기독교가 어마어마한 박해 속에서 전파된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본문도 초대교회가 처해있던 박해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제 6회 순교자기념주일에 순교신앙을 살펴보고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그 신앙을 마땅히 계승하여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결단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2. 순교란 무엇입니까? 신앙을 억압하는 이들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도 희생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주의 일을 열심히 하다가 과로나 사고로 죽는 것은 순교라고 하지 않고 순직이라 하고, 나라를 위해 일하다가 적국에 의해 죽는 것도 순교라 하지 않고 순국이라 합니다. 그리고 순교는 박해를 통해 일어납니다. 온갖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꿋꿋이 고백하다 끝내 목숨을 잃게 되니 이를 순교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사흘만의 부활, 부활 40일 후의 승천과 오순절 성령강림 등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예수를 그리스도(구원자)로 믿는 신도들 수가 120명에서 3천명으로, 3천명에서 5천명으로 급등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는 예수를 잡아 죽이는 데 앞장섰던 권력자들을 바싹 긴장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민심을 그냥 두었다가는 자기들이 꼼짝 없이 당하게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핍박하기 시작합니다. 우선 사도들을 현장에서 체포해 갔습니다. 그리고 1차 경고를 내립니다.(행4,18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그러자 사도들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행4,19)고 되레 큰소리를 칩니다. 경고 받고 풀려난 후에는 사도들만 아니라 모든 신도들이 다 성령이 충만하여 전도하였습니다.(4,31)
저들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교회는 5천명에서 더욱 부흥하여 ‘큰 무리’가 되자, 사도들을 다시 또 체포해 갔습니다. 이번에는 구두 경고가 아니라 옥에 가두었습니다.(행5,18) 그런데 밤중에 천사가 옥문을 열고 갇혀 있던 사도들을 끄집어내고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고 합니다. 당황한 핍박자들은 세 번째로 사도들을 체포해 갔습니다.(5.26) 박해가 점점 강도를 더해갑니다. 세 번째 체포되었을 때에는 채찍질을 당하며 절대로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 말하는 협박을 받습니다. 이 채찍질은 예수님께서 심문을 받으시면서 맞았던 것과 같은 채찍으로 채찍 끝에 쇠갈고리가 달려 있어서 한 대씩 때릴 때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그런 채찍질을 39번이나 당해야 하는 채찍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무시무시한 채찍을 받은 사도들은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비굴해지지 않고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을 받는다는 것을 도리어 자랑스럽게 여기어 크게 기뻐합니다. 그리고 더욱 열심히 강력하게 당신들이 못박아 죽였던 예수는 그리스도, 곧 구원자라고 날마다 어디서든지 기회를 만들어 전하였습니다. 이 세 번째 체포와 그 이후의 이야기가 바로 오늘 읽은 성경구절들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들에서 그들이 아직 순교한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이들로 하여금 순교에 이르게 한 믿음, 그 믿음을 어떻게 지키어 가는지 등에 대하여 알 수 있습니다. 이 분들의 믿음은 어떤 믿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3. 첫 번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거나 빼앗긴다 하더라도 주님을 믿는 믿음은 버릴 수 없다는 신앙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건강을 최고로 소중한 보물이라 하지요. 또 하나님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이 돈이라고도 합니다. 사랑, 명예 등도 무시하지 못할 보물들입니다. 하지만 사람에게 있어서 생명보다 귀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 말씀처럼 천하를 얻었다 한들 제 목숨을 잃어버리면 그 모든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건강과 돈과 명예와 사랑을 다 잃어버린다고 해도 생명만은 구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마 사람들의 마지막 소원일 것입니다.
그런데 순교하는 사람들은 건강, 돈, 명예에다 목숨까지도 주님을 믿는 믿음과 바꾸지 않겠다는 마음의 각오와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세상과 육신에 속한 것들보다 천국과 영에 속한 것들을 더 중히 여기고, 세상과 육신에 속한 것들을 다 잃더라도 천국과 영에 속한 것들을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주님과 믿음을 위하여 고통을 당하는 것까지 자랑스럽게 여기고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믿음입니다. 세상에서 천 날 동안 왕 노릇하며 살 때의 즐거움보다, 하나님의 집 문지기로 단 하루를 살며 느끼는 행복감이 더 크다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밖에 없는 목숨까지도 내던지면서 주님 믿는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
여러분, 솔까말,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요즘 그렇게 믿는 사람 있을까요? 요즘 시대에도 순교자 신앙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요? 세계복음주의연맹의 자료에 의하면 2008년 중반부터 2009년 중반까지 1년간 지구촌 곳곳에서 기독교 신앙 때문에 순교한 사람이 17만 6천명입니다. 하루 평균 482명, 3분당 1명꼴로 순교했습니다. 최악의 박해국은 1위 북한, 2위 이란, 3위가 사우디아라비아, 그 다음이 예멘,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등입니다. 여러분, 요즘도 그렇게 믿는 분들 있습니다. 아니 많습니다. 전설속 얘기가 아니라 오늘날 이야기입니다. ‘오! 순교자의 믿음을 주옵소서.’
순교자의 믿음 두 번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놓은 믿음입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채찍질도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중단시킬 수 없었다고 하였지요?(42절) 방금 전까지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 천사들이 끄집어내주자마자 곧바로 성전에 가서, 그것도 새벽같이 성전에 가서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겁박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 따르는 것과 사람 말 따르는 것 중 어느 것이 옳은지 판단하라며 도리어 협박하는 자들에게 전도하였고, 이들의 전도에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들도 복음을 받아들였다고 행6,7에 쓰여 있습니다.
국제 종교단체 '순교자의 목소리'의 미국 지부장인 토머스 화이트씨는 “중국에 있는 탈북 기독교인이 북한으로 강제 송환됐다가 수용소에서 처형되는 사례가 많다”며 “일부 기독교인들은 탈북했다가 북한 내에서 전도하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스스로 되돌아가기도 한다”고 전했습니다. 탈북자가 되돌아갔을 때 어떻게 되는지 뻔히 알면서도 동족들에게 비밀리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간답니다. 믿어지나요? 근데 진짜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며 간답니다. 북한에 있는 우리 성도들을 위해, 탄로날지도 모를 위험속에서 사역하고 있는 북한 전도자들 파이팅입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순교자의 믿음입니다.
여러분, 순교는 하나님의 은사입니다.(고전13,3) 불타는 사명자의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다 순교제물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럼 순교자가 되지 않는다면 그런 믿음은 필요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순교자가 되고 안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여 주시는 것이고 우리는 단지 복음전도사명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놓으려는 각오와 결단을 가져야 합니다.
4. 마지막으로 6.25 시절 순교한 성승군 집사를 소개합니다. 성집사는 일제 강점기인 1919년 6월 12일 단양군 영춘면 용진리 가재골에서 자녀들에게 한문과 성경을 가르쳐주시는 신앙의 아버지에게서 출생하였습니다. 15살에 아버지를 여읜 그분은 19세 되던 해에 영춘감리교회 한승태 목사의 지도로 신앙생활을 하였고 그 후 한 목사와 같이 원주에 가서 집사직분을 받았으며 고향에 돌아와 동생도 교회로 인도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성 집사의 신앙생활은 더욱더 깊어지고 있을 때 6.25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성승군 집사는 전쟁 중에도 꼭 주일 예배를 드렸는데 어느날은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지나가던 인민군이 옷을 좀 달라고 하자 성경대로 산다며 자기 옷을 몽당 벗어주고 속옷 차림으로 집으로 돌아올 정도였습니다. 공산당의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점점 심해져 가고 있었지만 그런 때에도 성경읽기와 기도생활에 소홀함이 없었습니다.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쫓기는 상태에서 인민군은 다급하여 주요 요인이나 악질반동은 처벌하고 도망가는 상황이 되었는데, 여전히 주일을 지키고 돌아가고 있던 어느 날 북한군 병사의 검색도중 성경책이 발견되었고, 또 예수를 믿는다고 담대히 말하며 “한 형제로서 전쟁하지 말고 예수를 믿고 화목하게 지내고 천국가자”는 전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인민군은 성 집사를 “악질 중에 악질로 천국에 보내 주자”라고 하며 돌골을 피로 물들게 하였습니다.
터기에 갑바도기아라는 곳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1000여개 되는 인공 굴이 있는데 그리스도인들이 마을에서 쫓겨나 살던 곳입니다. 또 이태리에도 로마제국 당시에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아 땅속에다 굴을 파고 들어가 살면서 믿음을 지킨 카타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두고 세상부귀영화를 다 포기하고 오직 주님을 사랑하며 믿음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여러분, 교회부흥의 역사는 순교의 역사였습니다. 원래 기독교는 순교와 불가분리의 종교입니다. 바로 믿으면 순교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죽어야 산다고 했고,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어야만 결실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그런 신앙의 삶은 오늘 이 시대에도 정말 가능한 것입니까? 어떻게 가능합니까? 각오와 결단만으로도 된다면 좋겠습니다만 안 되죠. 그 은혜와 능력을 구하여야 합니다.(대상16,11) 한 알의 밀알로 죽어서 많은 열매를 얻을 수 있는 힘과 마음과 지혜를 달라고 매달리셔야 합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주님을 위해서라면 고난까지도 자랑스럽게 여겨질 정도로 주님과 주님의 일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게 해 달라고, 강력하게 힘주시라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청결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여 주시라고 간구하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