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5일 백남기 어르신이
세상을 떠났다. 일주일이 흘렀다. 사인에 대한 어처구니 없는
논쟁이 생기고, 검경은 사인을 확인한답시고 부검을 하겠다며 영장을 법원으로부터 받아냈다. 사람들은 언제 집행될지 모르는 경찰의 침탈(?)에 대비해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고, 영안실을 지키는 사람들을 위해 지원물품이 답지한다는 소식을 인터넷을 통해 접했다. 가서 보고 싶어졌다. 대한민국 현대사 한 페이지에 기록되어야 할
사건의 현장을 눈으로 보고 싶었다.
10월 1일, 눈을 뜨자마자 간단히 아침을 챙기고는 버스를 타고 서울대 병원으로 갔다. 토요일
아침, 길거리와 버스는 한산했다. 버스에 내리자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녹색당의 현수막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인도를 따라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길과
맞은 편 인도에도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여러 단체들의 현수막들이 걸려 있다.
입구에 들어서니 오른쪽은 주차장 건물, 왼쪽으로는 장례식장 건물이다. 건물 앞 공터에는 전날 인터넷 기사와 페이스북에 올라온 포스팅처럼 많은 물건들이 천막 아래 쌓여 있고, 그 장소를 지키시는 분들이 보인다. 1층과 텅 빈 2층 장례식장을 거쳐 빈소가 차려져 있는 3층으로 올랐다. 커다란 공간에 마련되어 있는 빈소에, 하얀 국화 한 송이를 올렸다. 환하게 웃고 계시는 어르신의 영정을 보니 울컥한다. 소시민, 농민으로 사시던 분이 뜻하지 않게 봉변을 당하시고, 삼백여 일을
누워 계시다 세상을 뜨셨는데, 얼마나 억울할까, 당신도, 당신 가족들도. 생활이 망가지고,
삶이 망가지는데, 그렇게 망가뜨린 쪽은 부끄러운 것을 모르고 당당하니, 이 얼마나 억울한가. 게다가 부검까지 하겠다고 하니, 망자에 대한 예의, 사람에 대한 예의는 전혀 없어 보인다. 그래, 그런 예의가 있었다면, 이
지경까지 왔겠는가? 백남기 어른을 부검할 게 아니라, 양심이
죽어 좀비가 되어버린 공권력을 사회적으로 부검해 양심이 죽은 이유를 밝혀야 하지 않을까?
조문을 하고, 이번 사건에 대한 특검법을 위한 서명을 하고 돌아 나오는데, 빈소의 입구가 어지럽다. 거기에서 밤을 보낸 사람들이 아직 잠에서
깨지 못한 상황이다. 이렇게 빈소 앞에 머무르는 사람들, 1층에서
영안실 입구를 지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몇 년 전, 회사의 어른 한 분이 상을 당한 적이 있어 조문을 갔었더랬다. 고위 임원이었던 까닭에 그룹 회장님에서부터, 회사의 CEO, 본부장급의 조화, 계열사에서 보내온 조화, 협력업체에서 보내온 조화가 서열에 따라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줄지어 서 있었고, 조문객들과 조문객을 맞이하는 이들의 입성도 깔끔하고 절도가 있었다. 망자를
잃은 슬픔이 지극했음에도 조문객을 대하는 어른의 태도에는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초상기간에 임직원들이 돌아가며 장례식장을 정리하고, 질서를 잡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게 조직을 이끄는 이들의 모습이고, 조직이 움직이는 장례의 모습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이에 반해, 헝클어진 빈소 입구와 영안실로 가는 길목을 지키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1층 주차장은 언뜻 보기에 무질서해 보였다. 무질서해
보였던 이유는 무엇일까? 몰려온 물자들은 각을 잡을 만큼 정돈되어 있었고, 아침이었지만 들락거리는 택배차들도 일사 분란하게 움직였기에 그것은 아닌 듯했다. 그렇다면, 그 자리를 지키던 분들의 입성 때문이었을까? 조문객들이 입은 옷이 검은 상복이 아니라, 그냥 생활하면서 입는
평상복들이라서 어수선하게 보였던 거 같다. 나는 어르신의 장례식장에서,
이전에 내가 회사에서 경험했던 장례식과 같이 뭔가 정리된 모습을 기대했던 거다.
거기에서 빈소를 지키는 이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생활을 꾸려나갈까? 그들이
그렇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그들의 가정은 어떤 모습일까? ‘아빠, 언제와?’란 아이의 물음에 활동가들은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하며 현장을
지키고 있을까? ‘아빠는 해야 할 일이 아직 있어서, 지금은
못 가. 엄마 말 잘 듣구, 이따 봐.’라고 할 테다. 그리고는, 경찰이
언제 치고 들어올지 몰라서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사람들과 같이 빈소를 지킬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란때 의병으로 고향과 나라를 지키던
분들, 일제시대에 고향에서 쫓겨나서 만주로 떠돌면서 독립군으로 무장 투쟁을 하셨던 분들이, 지금 이 시대에 살아 계시다면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 영안실을 지키고 계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런 분들의 이름을 기억하려는 사람도 없고, 기억하라는 사람도 없지만, 그분들은 그래도 그래야 하니까, 그러는 게 당연한 거니까, 그렇게 사는 게 바른 거니까 그렇게 하셨을 거고, 지금도 그렇게
하시는 거다. 자신의 테두리인 가족보다 쓰러져 있는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 곁에서 위로와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돌이켜 본다. 그 자리에 구경꾼처럼 다녀만 가는 사람일 뿐이다. 일면식도 없는
분의 장례식장에서 밤샘을 하고,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경찰의 침탈에 대비해 영안실을 지키는 대오에는
설 용기가 없다. 그런 용기를 내기에는 내가 내려 놓아야 할 것이 많다. 어쩌면, 내 것이 아니면서도 내 것 인양 착각하며 내려 놓지 못하는
것도 있을 게다. 그런 내가, 그런 분들에게 말끔한 입성을
기대했고,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어수선함만을 보고 말았다. 그런
내가 부끄럽고, 그 분들이 너무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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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안 쓰지 않던 글을 쓰다보니, 쉽지가 않네요.
은유샘의 와우 북페스티벌 강좌를 듣고 나서, 다시금 시작해보려는 마음이 들어 쓰고 올립니다.
첫댓글 노숙하는 어수선한 장례식 조문객-사수대들. 낯선 경험이 잘 표현됐네요. (다큐멘터리 사진가들, 인권시민단체활동가들, 당원들, 시민들, 집회장에 꼭 있는 송경동 시인;; 등이 그 자리를 지키는 걸로 알아요.)
제가 좀 더 솔직해야 하는데 어렵네요.
저도 무언가 도움이 될까하고 갔는데 제 소심함때문에 그냥 3층 장례식장에서 멀찍이 지켜보다가 왔어요.
행동한다는게 안 쉽네요.
철수님 안녕하세요. 와우북 페스티벌에서 잠시 뵈었는데요, 저도 너무 공감이 되어 인사드립니다.
저도 반가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