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시 낭송회
정현수
겨울, 강원도 추곡 여행 때였다. 그리 매서운 날씨는 아니지만 차가운 바람이 좁은 협곡에 회오리처럼 맴도는 듯한 꽤 으쓱한 곳이다. 뻥 뚫린 창공엔 환한 달빛과 총총한 별빛이 선명한 자국을 남기고 떠나버린 누군가의 깊은 여운같이 허무하기도, 또 고요했다. 불현듯 그리움 하나쯤은 생각나게 하는 부드러운 속삭임 같았다. 곁들여 은하수의 차분하고 은근함이 지금 이 분위기를 따뜻하게 한다. 음침한 건너 숲 사이로 고적은 가만히 잠들어 있고 어둠에 찌든 것들이 어슬렁거리는 것 같아 조금은 섬뜩하기도 하다. 졸졸거리며 흐르는 계곡물소리는 어릴 적 잘못을 저지르고 대충 재잘거리며 얼버무리는 막냇동생 변명같이 귀엽고 앙증맞게 들려온다.
나는 여행 중 가끔 정이 물씬 내 맘에 움트는 횡재를 하거나 생각지도 못한 참한 인연을 만나곤 한다. 평소에는 무던하고 나른한 일상들이지만 여행할 때만은 운 좋게도 변화무쌍한 라이브 한 일이 생기는 걸 자주 느낀다. 모닥불과 시, 그리고 가벼운 음악과 함께 시 낭송회가 열린다는 포스터를 버스 정류장에서 보았다. 도리 없이 예정에 없는 하룻밤을 묵어야 한다. 음악과 시를 좋아하는 내가 기대도 안 했던 이 경험이 어떻게 내게 다가올까 하는 설레는 맘에 흥분이 충만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은 멍해지기도 했고 뭔지 몰라도 살며시 묘하고도 희한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유도 모르고 오랫동안 기다려 온,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우연찮게 찾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곳은 구멍이 송송 뚫린 철물 판에 통나무로 엮어져 만든 다리를 건너야 만 했다. 두세 사람이 지날 폭에 길이가 2 미터 반 정도 되고 덜컹거리는 소리가 나는 철판 다리를 지나는 꽤 넓은 공터였다. 빙 둘러 심어진 밑동이 굵은 머루 나무 넝쿨들이 "잭과 콩나무"의 나무처럼 지주를 칭칭 감싸고 있다. 가로지른 들보를 제멋대로 감아 하늘을 산만하고 어설프게 가리고 어두움이 깃든 그곳을 가느다란 하늘빛들을 지상으로 내려보내고 있었다. 넝쿨 잎은 마지막 잎새처럼 딱 세 닢이 겨울 찬 바람에 흔들리고, 주위 이곳저곳엔 을씨년스러운 앙상한 나무들과 야외 식탁이 어우러져 있고 행사장 한쪽엔 풍성한 모닥불이 운치를 더해 그곳을 돋보이게 한다. 빛바랜 기억을 돼 돌릴 것 같은 차분하고 고적한 분위기가 시 낭송회를 하기에는 딱 떨어지는 장소였다. 추위 때문인지 아니면 한적한 오지였는지는 몰라도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았다. 드문드문 자리를 깔고 앉아 있거나 서성이며 끼리끼리 모여 뭔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일행인 듯 보이는 세 사람이 앉아 있는 6 인용 식탁 한 귀퉁이에 앉아 커피를 마저 마시고 시 낭송회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시 낭송은 상처를 보듬어 주는 것 같이 바이올린과 기타 연주로 낭랑하고 처연하게 조목조목 들려온다. 마치 '차이콥스키'의 "안단테 칸타빌레"의 애절하고 절규하는 듯한 노래들은 시나브로 밝아오는 오래된 등잔불과 같은 어둠 속에서 하나씩 윤곽을 드러내 그곳 전체가 따뜻함이 감싸는 희열을 느끼게 한다. 시크했으며 감성을 돋보이려 애쓰는 것 같았다. 지난날의 아픔을 남기는 듯도 했고 깊은 여운도 함께 했다. 차츰 환상에 빠지는 삶의 고통을 호소하는 조금은 난해한 시도 있었지만 대부분 처음의 원인으로 되돌아가는 무난한 서정시였다. 그곳 모닥불에 어울리는 삶의 애환도, 달갑지 않은 사랑의 이별도 노래했다. 어느 대학 동아리의 정기적 자작시 낭송회였다. 그들의 의도는 꼭 필요한 매뉴얼에 얽매이지 않고 대학생들답게 엉뚱 발랄하고 살짝 어긋난 유머와 위트도 섞었다. 또 나이브했으며 때론 깊은 고통과 환영 속으로 우리를 끌고 가는 '요술 피리'의 "밤의 아리아"를 듣는 듯도 했다. 음악은 역동적이었고 분위기는 감동적이었다. 초승달 곡선의 끝의 날카로움으로 내 몸에서 영혼을 이탈시켜 밤하늘 별빛 속에 투영돼 듯 가슴이 메기도 했고 속살이 돋는 오싹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머릿속이 하나씩 비어 가는 공명 속으로 이끌어 뭔가를 하나둘 빼 내오듯 전체 행사의 줄거리는 그들답게 신선하게 이어져 갔다. 가끔 진행자는 그의 연애담을 아주 농밀하게 이야기하기도 했고 젊은이들의 특이한 독창성을 어필하려 애쓰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아닌 내 정체를 알려고도 했다. 이런 경험은 두 번 다시 나에겐 오지 않을 듯, 그들은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나에게 보여 주었다. 정말 한결 로맨틱했고 한 페이지의 추억을 쌓게 한 모닥불의 꿈같았다.
개서어나무 그늘에서 졸고 있는 삼류 시인은 시원한 바람이 부는 줄 모른다. 아무 의미도 없이 졸고 있으면 편안은 하겠지만 그 바람의 의미는 절대 알 수가 없다. 죽기 전에 해야 할 것들을 해내려면 부지런하고 더 많은 것을 써야 한다. 지금 내 모습은 한여름밤에 한가로이 연주하는 베짱이 같고 옴팍 비를 맞고 있는 꾀죄죄한 전깃줄 참새와 같은 처량한 모습이다. 이젠 이런 모습에서 떠나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계속, 자주 하고 싶다. 혼자만의 여행으로 그때의 나를 기억하거나 아니면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 나만의 이야기, 경험과 상상 속에서 내 삶을 끄집어내어 한 많은 내 인생에 덧살을 살살 볶고 양념을 적당히 섞어 그리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삶을 이야기하고 싶다. 다른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새로운 모습 혹은 경치나 풍물을 경험하는 것은 또 다른 새로운 도약이다. 초봄엔 꼭 여행을 가고 싶다. 정이 물씬 나는 누군가를 또 만나고 싶다.
2015. 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