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무너진 성터를 주말마다 찾아다녔다.
벌써 스물몇 해 전의 옛일이다.
마지막 임지로 그곳에 부임한 후 주재국 대통령에게 우리 국가원수의 신임장을 제정하기 전, 건축에 백 년 걸렸다는 성당이나
천주교 세계 3대 성지의 하나로 유명한 파티마 성지(성모 마리아 발현지)등 명소를 방문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신임장 제정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새로 부임하는 해외 공관장은 파견국 국가원수가 주는 그것을 반드시 가져가야 하는 것이다.
신임장이란,
' 지금 부임하는 대사는 대통령이나 기타 국가영수가 개인적으로도 두터운 신뢰를 두는 자이니 그와 양국 간 외교관계를 긴밀히 협의하는데 전권을 가진 국가대표로 인정해 달라 ' 는 公的 편지 같은 것이다.
중세 歐美, 아니 유럽의 여러 나라가 대사를 해외에 파견한 후 公館에 대한 운영경비, 문서, 일용품, 훈령 등등 배편으로 보내는 데에는 몇 달이나 몇 주 일등 만만치 않은 시일이 소요되는 경우가 다수이었을 것임으로 지금 같이 전신, 전화, 컴퓨터,
심지어는 秘話 카톡? 까지 들고 즉시적으로 본국(본부)과 쌍방 소통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았으니 외교전권을 행사하도록 허락하지 않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신임장 제정 전에 주재국, 특히 유럽의 국가들에서는 국토의 몇 군데를 다녀보는 것이 예비작업의 하나임으로 그렇게 하는데, 포르투갈에 그리 많은 성터가 있는 줄 알게 된 것은 부임 초부터였으며, 근무기간 중 여러 주말에 처와 함께 시골 마을까지 두루 다녀 보았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창밖으로 스치는 웬만한 언덕에도 작은 성터가 많았는데, 폐허가 되기 전 성곽의 모습도 볼만했을지 모르나 나는 그 무너진 성터와 거기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 풍경을 무척 좋아했던 것이다.
작은 성터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찾아다니지 않았으므로 고적하고 한가한 돌더미 위에 앉아 평화로운 시골 마을을 내려다보는 재미와 평온은 각별한 것이었다.
그때에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난 뒤였고 연로한 아버지는 휠체어에 모시고 리스본까지 동행하였을 때이며,
샌디에이고에서 대학을 다니던 작은 딸이 엄마를 보려고 급히 왔는데 내일 떠나야 하는 우리에게, " 엄마, 하루만 더 있다가 가면 안돼? " 간절히 말하는데 차마 여러 일정을 다 포기할 형편이 못되어 그대로 떠났던 기억은 지금도 애처롭기 그지없다.
내게는 왜 앞으로 할 일과 신나고 활기찬 지금 이야기는 없고 언제나 서글프거나 그리운 옛 추억 밖에 없는가.
하기는 할미들 손주 이야기 꺼내려면 천 원이나 만원은 내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우리는 모두가 지난 세월을 되새김하며 매일을 보내는 주름진 검정소? 가 아닐까.
여기 오기 전에 살던 분당 대우 아파트 시절만 해도 경동교회 앞 평양면옥 소주와 냉면, 동네 목욕탕 이발소 아저씨등 時局 얘기나 우스개 소리로 다양한 얘기가 얼마든지 많았는데. 끝!.
妄言多謝.
세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