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처가 되어 일체 중생을 제도하리라’
위와 같은 대발심을 한 자가 바로 보리살타, 즉 보살입니다.
아무나 보살이 아닌거죠.
달라이라마께서 종종 하시는 말씀 중에 하나가,
<보살이 부처가 되려는 그 목적은, 일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함이다> 입니다.
성불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일체 그 모든 중생들을 단 하나도 빼놓지 않고 완벽히 제도하는게 목적입니다.
중생을 오류없이 완벽히 제도하려면 부처님의 일체지가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그 모든 것을 다 아는 일체지...아뇩다라삼먁삼보리...무상정등정각이 필요합니다.
‘나는 부처가 되어 일체 중생을 제도하리라’
이와 같은 큰 마음을 내는 것이 바로 발보리심입니다.
이런 보리심을 내고, 불도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육바라밀을 닦는 자가 보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리살타, 즉 보살을 여자 신도쯤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 아주 잘못된 관행 중의 하나입니다.
물론 대승의 의미에서 보살의 길을 가라는 의미라면야 문제가 없지만,
구지 여신도에게만 보살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사실 맞지 않지요.
또 이렇다 보니, 보살보다 위가 바로 스님이다...라는 오해가 빚어집니다.
보살은 재가 보살과 출가 보살 두 종류가 있습니다.
또 비발치 보살과 아비발치 보살 두 종류가 있습니다.
아비발치(아유월치) 보살이란, 불퇴전의 보살을 말합니다.
기필코 반드시 성불하는 물러서지 않는 보살을 말합니다. 수기를 받은 보살입니다.
비발치(유월치)보살이란, 성불이 확실하지 않은 보살을 의미합니다.
부처님되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는 뜻이지요.
이런 아주 중요한 내용이 대지도론에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대지도론을 누구나 다 보셔야 합니다.
[문] 어느 경지라야 보리살타라 하는가?
[답] 큰 서원을 세우고, 마음이 요동치 않고, 정진하여 물러나지 않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일에 의해 보리살타라 한다.
또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처음으로 발심할 때에 서원을 세워
‘나는 부처가 되어 일체 중생을 제도하리라’고 한다면 이를 보리살타라 한다.”
게송으로 말하리라.
처음으로 발심할 때 부처되기를 서원한다면
이미 모든 세간을 초월해 세간의 공양을 받을 수 있으리.
처음으로 발심하여 제9의 무애(無碍)에 이르러
금강삼매(金剛三昧)에 들기까지 이 중간을 보리살타라 한다.
이 보리살타에는 두 종류가 있나니,
비발치(?跋致)와 아비발치(阿?跋致)이다.
이는 마치 물러나는 아라한과 물러나지 않는 아라한과 같은 것으로,
아비발치의 보리살타라야 참된 보살이라 한다.
이 참된 보살이라는 이유에서 나머지 물러나는 보살 역시 보살이라 부른다.
비유하건대 네 가지 과위의 도를 얻은 사람과 같으니,
그를 참된 승려[僧]라 한다.
또한 그가 참된 승려이기에
나머지 도를 얻지 못한 사람들 역시 모두 승려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