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소득 82달러서 3만3000달러로 400배… 수출은 3900배 키워
경제개발계획 60년의 성과
김성모 기자
강우량 기자
입력 2023.05.26. 03:15
업데이트 2023.05.26. 10:04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1962년 1월 5일 발표됐다. 경제개발계획이 발표된 지 60주년이 되는 해는 작년이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작년 11월 경제개발계획 60주년을 기념하는 간담회를 개최했고, 25일에는 ‘경제개발계획 60주년 기념 국제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존경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 ‘61′ ‘82′ ‘33000′ ‘400′이 무슨 숫자인지 아시겠습니까.”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호텔에서 열린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 60주년 기념 국제컨퍼런스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2023.5.25/뉴스1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호텔에서 열린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 60주년 기념 국제컨퍼런스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2023.5.25/뉴스1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5일 ‘경제개발계획 60주년 기념 국제 콘퍼런스’에서 개회사를 하다가 돌연 퀴즈를 냈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1961년 82달러에서 지난해 3만3000달러까지 약 400배 성장했다는 뜻이다.
한국은 60년 전만 해도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동생을 업고 있는 소녀 사진이 국제 구호기구 포스터에 단골로 등장하던 나라였다. 맥아더 장군이 전쟁 직후 “이 나라가 복구되려면 최소 100년은 걸릴 것이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세계 최빈국에 속했던 한국은 이제 주요 선진국 모임인 G7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 정부가 주도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성공의 비결로 꼽힌다.
◇60년간 국민소득 400배 증가
박정희 정부가 시작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년)은 우리 경제의 체질을 수출 중심으로 탈바꿈하려는 과감한 시도였다. 1960년대 들어 국가재정의 절반을 차지하던 미국 원조가 급감하면서 풍부한 노동력을 활용한 노동집약적 경공업 제품 생산과 수출이라는 목표를 내걸었다. 이어진 2차 계획(1967~1971년) 기간에는 베트남 파병과 차관 도입 등으로 끌어모은 돈을 산업구조 근대화에 쏟아부었다.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이 포항 백사장 위에 제철소를 지어 첫 쇳물을 생산했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국토 ‘대동맥’으로 통하는 경부고속도로를 2년 5개월 만에 완공해냈다.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9.6%일 정도로 고속 성장하면서 남한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1969년 처음으로 북한을 추월했다.
3차 계획(1972~1976년)의 핵심은 노동집약적인 경공업 중심이던 산업구조를 중화학공업으로 재편한 것이다. 철강·전자·조선 등 6대 전략 업종을 선정해 집중 육성했다. 4차 계획(1977~1981년)을 막 시작하던 1977년엔 100억달러 수출을 달성했고, 1인당 국민소득도 1000달러 수준으로 올라왔다. 5차 계획(1982~1986년) 때는 중공업 육성 정책이 결실을 맺으면서 만년 적자였던 경상수지가 1986년 흑자로 전환했다. 1980년 28.7%에 달했던 물가상승률은 1983년 3.4%까지 안정됐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국제 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도 달라졌다. 6차 계획(1987~1991년) 때인 1987년 성장률은 12.5%에 달했다. 1987년 취임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반도체 투자를 늘렸고, 1992년 세계 최초 64메가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한다. 7차 계획 기간인 1994년에는 1인당 GDP가 처음으로 1만달러를 돌파했고,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수출 3900배, 자동차 510배
7차례에 걸친 경제개발계획의 성과는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한국 경제의 수직 상승이다. 제1차 5개년 계획이 진행되던 1965년 수출액은 1억7500만달러에 불과했지만 작년 수출액은 6839억4500만달러로, 3900배 넘게 뛰었다.
1976년 5월 31일 포항제철 2고로 화입식에서 박정희(맨 앞) 전 대통령과 박태준 포항제철 사장(당시)이 불을 넣고 있다. /연합뉴스
그 결과 지난 1962년 미국과 UN에서 2억3231만달러의 무상 원조를 받던 우리나라는 명실공히 ‘원조 공여국’이 됐다. 외교부에 따르면 작년 우리나라의 공적개발원조(ODA) 지원 규모는 27억9000만달러를 기록했다. 경제 개발을 시작할 때 지원받았던 돈의 12배를 다른 나라를 돕는 데 쓰고 있는 것이다.
경제가 커지는 만큼 국민들의 구매력과 생활수준도 크게 향상됐다. 예컨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966년 5만대뿐이던 자동차 등록 대수는 작년 2550만대로 510배 급증했다.
추경호 부총리는 “60여 년 전 보릿고개라 불렸던 절대빈곤 상황에서 7차례에 걸친 경제개발 계획을 통해 국가 발전의 청사진을 마련했다”면서 “그 결과,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최초로 원조를 주는 나라로, 세계 8강 진입을 얘기하는 시대가 됐다”고 했다.
김성모 기자
김성모 기자 편집국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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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바닥
2023.05.26 07:06:04
이기반 누가 만들었을까 김대중 일까 노무현 일까 문재인 일까, 개 ㅆ레기들아 말좀 해봐라. 누구 덕에 호강 누리며 누굴 욕하는지 거울한번 처다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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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곰
2023.05.26 09:41:41
박정희가 만든 훌륭한 업적을 문재인, 윤석열이 망치고 있군요
JMS
2023.05.26 07:00:51
민노충 더불비리당만 잘 정리하면 더 좋아진다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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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리
2023.05.26 06:32:50
문제는 금년이다. 이리 수출이 줄고 경제 규모가 줄어들면 꺼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예전의 성과에 기고만장 할 때 아니다. 조심해야 한다.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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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방미인
2023.05.26 07:46:08
이게 다 가발 등 수출품을 만드느라 고픈배를 움켜잡고 야근을 마다하지 안 했던 공돌이와 공순이가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이 모든 건 박정희가 없으면 생각할 수 조차 없었던 일이다. 국민소득이 82달러가 3만2천달라로 400배로 차이가 난다니 박정희가 국민들을 한마음으로 이끌었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던 것으로 비록 독재자로 비난을 듣기는 했지만 이런 고통이 없이 어찌 세계10위권 경제 대국이 될 수 있었을까. 최종적으로는 엄청난 일들을 묵묵히 따라와 실천해 준 국민들의 공적이라 안 할 수 없다.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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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o
2023.05.26 07:07:08
어디를찾아봐도 좌파 대통령은 경제에 이바지인간이없내..ㅎ그냥올라타 내가잘했냥..그게 문재인이다..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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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노기스
2023.05.26 07:42:10
지금 대한민국 곳곳에 박정희 동상이라도 세우자! 있었던 것도 파괴시키고 허물었던 좌파인간들과 개스런 XX당 인간들!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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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다
2023.05.26 07:32:50
한국인들이 기적을 만들었다.일제시대 한국인의 1인당 소득은 일본인의 1/3에 불과했다.이제 1인당 소득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은 비슷해졌다.차별과 억압에서 벗어난 한국인이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 거다.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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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2023.05.26 08:00:57
도표에 보니 전두환 댜통령이 국민연금, 의료보험 확대 했군요..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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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즈먼
2023.05.26 08:58:43
이 성과의 기초는 단연코 박정희 대통령이십니다.빨대 꽂고 단물 빠는 야비한 사람들 때문에 골치지만 자유민주주의는 이승만 대통령,산업 기반은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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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안보 번영
2023.05.26 08:54:57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신념이 국가번영의 기적을 만들었다.!! 세계최빈곤의 한국, 1961년 한국은 국민소득 67불일때 필리핀은 900불, 박정희 대통령은 필리핀 정도만 산다면 원이 없겠다고 했다.~!! 한국은 전쟁후에 폐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후진국인 나라에서 18년간 집권 플랜으로 국가의 중요한 터전인 조국 근대화와 야당의 반대속에 한일국교, 최초 고속도로, 경제개발 5년씩 개혁 1차, 2차, 3차, 4차, 5차 성공, 박정희 대통령은 수출회의 16년간 180번 열고…한달에 한번꼴 열었다. 가난한 농업국가에서 새마을사업, 자립경제, 경공업, 중공업, 대기업, 수출10억불,100억불, 1000억불 달성과 수출대국, 철통같은 국가안보, 핵개발, 부국강병으로 필리핀보다 10배나 못사는 가난한 나라에서 10대경제 대국의 기틀을 번영을 완성시킨 위대한 영웅이다. ~!! 박정희 대통령이 없었다면 현재의 번영된 세계10대 경제대국도 없었을 것이다.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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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안보 번영
2023.05.26 09:11:14
박정희 대통령의 위대함과 한국의 경제개발 번영을 찬양하고 부러워했던 중국의 등소평, 짱쩌민, 대한민국의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번영과 기적을 보고 벤치마킹해서.....가난에 찌들었던 중국은 경제를 부흥시키는데 결정적 역활을 하고 한국의 5년씩 5차까지 경제개발 개혁까지 따라했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총리도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모델을 벤치마킹해서 경제대국에 올랐다. 아세안 국가, 독일, 미국, 유럽, 몽고, 아프리카 국가의 최고의 정상들과 지도자들 박정희 대통령의 위대함을 찬양하고, 지금도 아시아, 아프리카 저개발 국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바라는 모델은 한국이 전쟁 폐허와 최빈국에서 세계10대 경제대국의 기적, 한국을 배우고 따라 하겠다고 혈안이다.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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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나라
2023.05.26 09:24:32
내용중 첨부하면 박정희 대통령 시절 온 국토의 산림을 그짧은 시간에 푸르게 만들었고, 우리가 지금 마음껏 물을쓰는 소양댐을 위주한 댐공사, 자연보호운동, 그린벨트,카이스트를 비롯한 각종 국책연구소,지금의 자랑하는 자주 국방과학시작,국제 에너지위기극복(석유파동),원자력발전소및 각종 수많은 발전소, 복지로는 최초로 의료보험도입, 연금제도, 88올림픽 추진(이미 76년 잠실운동장 준비)등 정말 이루 말할수없다. 당시 정말 없는 돈으로 .... 지금은 돈이 넘쳐도 ... 역활을 하는지?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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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서
2023.05.26 09:14:23
문재인때는 문재인이 직접 가서 지자랑 실컷했겠지..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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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난
2023.05.26 09:02:19
국민의성과를 독재자들은자기성과라한다.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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