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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증(證)을 논(論)하다
열격(噎膈)의 일증(一證)은 반드시 우수(憂愁) 사려(思慮)에 적노(積勞) 적울(積鬱)하거나 주색(酒色)의 과도(過度)로 인하여 손상(損傷)되어 생기느니라.
우사(憂思)가 과도(過度)하면 기(氣)가 결(結)하고 기(氣)가 결(結)하면 시화(施化)가 행(行)하지 못한다. 주색(酒色)이 과도(過度)하면 음(陰)이 상(傷)하고 음(陰)이 상(傷)하면 정혈(精血)이 고후(枯涸)하게 된다.
기(氣)가 행(行)하지 못하면 상(上)에서 열격(噎膈)의 병(病)을 하고, 정혈(精血)이 고후(枯涸)하면 하(下)에서 조결(燥結)의 병(病)을 하게 된다.
또 사람의 장기(臟氣)는 위(胃)가 수납(受納)을 사(司)하고 비(脾)가 운화(運化)를 주(主)하며 신(腎)은 수화(水火)의 댁(宅)이고 화생(化生)의 근본(本)이다.
지금 식음(食飮)이 격(膈)에 정(停)하여 행(行)하지 못하거나 대변(大便)이 조결(燥結)하여 통(通)하지 못하면 어찌 운화(運化)의 실직(失職)과 혈맥(血脈)의 불통(不通)으로 병(病)이 된 것이 아니겠는가? 혈맥(血脈)의 운행(運行)의 권(權)은 위에서는 비(脾)가 아니면 무엇이 하겠으며, 아래에서는 신(腎)이 아니면 무엇이 하겠는가?
하물며 젊은이(:少年)에게는 이 증(證)이 적게 보이지만 오직 중년(:中)의 쇠(衰)하고 모상(耗傷)한 자들에게 많이 있으니, 이로 인하여 이것이 허(虛)인지 실(實)인지 개괄적(:槪)으로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를 치료(治)할 때, 근본(根本)을 버리고(:舍) 첩경(捷徑)만 말하려고 한다면 어찌 또한 공(功)을 이루기를 바라겠는가?
一. 열격(噎膈) 반위(反胃)의 두 가지 증(證)에 대해 단계(丹溪)가 말하기를 '그 명(名)은 비록 부동(不同)하지만, 병(病)은 일체(一體)에서 나온다.' 하였으나, 비슷한 것 같지만 실은 부동(不同)한다.
반위(反胃)는 식(食)이 들어갈 수 있지만 들어갔다가 도리어 나오므로 반위(反胃)라고 한다.
열격(噎膈)은 격색(隔塞)하여 통(通)하지 않으니 식(食)이 하(下)할 수 없으므로 열격(噎膈)이라 한다.
식(食)이 들어가 도로 나오는 것은 양(陽)이 허(虛)하여 화(化)하지 못하기 때문이니, 보(補)할 수 있고 온(溫)하여야 하고, 그 치료(治)는 쉬우니라.
식(食)을 하(下)하지 못하는 것은 기(氣)가 결(結)하여 행(行)하지 못하기 때문이니, 개(開)하거나 조(助)하여야 하고, 그 치료(治)는 두 가지 어려움(:難)이 있다.
이처럼 경중(輕重)에 있어서 서로 부동(不同)한다.
또 병(病)으로 반위(反胃)하면 대부분 능식(能食)하고, 병(病)으로 열격(噎膈)하면 불능식(不能食)한다.
따라서 열격(噎膈)의 병(病)은 흉억(胸臆) 상초(上焦)에 병(病)하는 것이고, 반위(反胃)의 병(病)은 중하(中下) 이초(二焦)에 병(病)하는 것이다.
이처럼 나타나는 증(證)이 서로 부동(不同)한다.
따라서 반위(反胃)의 치료(治)는 대부분 마땅히 화(火)의 근원(源)을 보익(益)하여 화(化)하는 공(功)을 도와야(:助) 하고, 열격(噎膈)의 치료(治)는 대부분 마땅히 심비(心脾)를 조양(調養)하여 결기(結氣)를 서(舒)하여야 한다. 이처럼 그 증후(證候)가 부동(不同)하므로 진치(診治)하는 것도 또한 당연히 서로 나누어서(:分類) 하여야 한다.
一. 열격(噎膈)의 증(證)에는 대부분 변(便)이 결(結)하여 불통(不通)함이 있다.
내경([內經])에 이르기를 "삼양(三陽)의 결(結)을 격(膈)이라 말한다." 하였다.
장자화(張子和)는 이르기를 "삼양(三陽)은 대장(大腸) 소장(小腸) 방광(膀胱)이다. 결(結)이란 열(熱)의 결(結)을 말한다. 소장(小腸)에 열(熱)이 결(結)하면 혈맥(血脈)이 조(燥)하고, 대장(大腸)에 열(熱)이 결(結)하면 불청(不圊: 부대변)하며, 방광(膀胱)에 열(熱)이 결(結)하면 진액(津液)이 후(涸)한다. 삼양(三陽)에 결(結)하면 전후(前後)가 폐삽(閉澁)하니, 아래가 불통(不通)하면 반드시 반(反)하여 상행(上行)한다. 따라서 식(食)이 열(噎)하여 하(下)하지 못하고 하(下)하는 대로 다시 출(出)한다. 이는 양화(陽火)가 하(下)하지 못하므로 추(推)하여 상행(上行)하는 것이다." 하였다.
나는 생각하건대 이 설(說)은 절대 그러하지 않다.
내경([內經])에서 결(結)의 의미(:義)는 원래 열(熱)을 말한 것이 아니다. 본편(本篇: 음양별론)에서 이르기를 "음양(陰陽)에 사기(邪)가 결(結)하여 음(陰)이 많고 양(陽)이 적으면 석수(石水)라 한다." 하였다. 또 거통론(<擧痛論>)에서 이르기를 "사(思)하면 기(氣)가 결(結)한다." 하였다. 이와 같이 결(結)이 어째서 열(熱)이겠는가? 또 열(熱)하면 유통(流通)하고 한(寒)하면 응결(凝結)하는데, 이는 음양(陰陽)의 지극한 이치(理)이다. 따라서 상(霜)이 응(凝)하고 빙(氷)이 결(結)하는 것은 오직 한렬(寒冽)에만 있으니, 열(熱)하게 하면 없어지느니라. 이처럼 천도(天道)에서도 현연(顯然)하게 알 수 있는데, 인신(人身)의 음양(陰陽)의 이치(理)도 그러하지 않음이 없다. 오직 사람만이 이를 알지 못하므로, 그 잘못이 많게 된다.
하물며 내경([內經])에서 말한 삼양(三陽)의 결(結)은 곧 단지 소장(小腸) 방광(膀胱)을 말한 것이지, 전적(:全)으로 대장(大腸)과는 관련이 없다. 삼양(三陽)이란 태양(太陽)이니, 수태양(手太陽) 소장(小腸)과 족태양(足太陽) 방광(膀胱)이다. 소장(小腸)은 화(火)에 속하고 방광(膀胱)은 수(水)에 속한다. 화(火)가 불화(不化)하면 양기(陽氣)가 불행(不行)하여 전도(傳導)가 실직(失職)하게 되고, 수(水)가 불화(不化)하면 음기(陰氣)가 불행(不行)하여 청탁(淸濁)이 불분(不分)하니 이는 모두 결(結)에 이르는 이유(由)가 된다. 자화(子和)는 잘 살피지도 않고 삼양(三陽)의 결(結)을 모두 열(熱)이라고 말함으로써 후세(後世)가 모두 전(傳)하기를 '화(火)'라고 하였으니, 그것이 어찌 이치(理)에 맞겠는가?
그런데 사람이 병(病)으로 결(結)하는 것은 본래 일단(一端)만이 아니다. 기(氣)가 결(結)할 수도 있고 혈(血)도 결(結)할 수 있다. 양(陽)도 결(結)할 수 있고 음(陰)도 결(結)할 수 있다. 내가 '결(結)은 반드시 모두 한(寒)이고 전적(全)으로 열(熱)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음결(陰結) 양결(陽結)의 증(證)은 부동(不同)하므로 변(辨)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양결(陽結)이란 열결(熱結)이니, 화성(火盛) 삭음(爍陰)으로 인하여 건결(乾結)하니, 이는 오직 표사(表邪)가 리(裏)로 전(傳)하여 양명(陽明)의 실열(實熱)에 이른 경우에만 있다. 열결(熱結)은 반드시 번갈(煩渴) 발열(發熱) 등의 증(證)과 홍대(洪大) 활실(滑實) 등의 맥(脈)이 있으니 가장 쉽게 변(辨)할 수 있다.
만약 하(下)에 결폐(結閉)가 있고 상(上)에는 열증(熱證)이 없다면 이는 음결(陰結)일 뿐이니, 어찌 열(熱)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음결(陰結)이란 바로 명문(命門)의 화(火)가 없어서 기(氣)가 정(精)을 화(化)하지 못하니, 따라서 하(下)에 응결(凝結)하여 치절(治節)이 불행(不行)하는 것이다. 이는 오직 내(內)로 혈기(血氣)가 상(傷)하고 그 패(敗)가 진음(眞陰)에 이른 경우에만 있다. 곧 열격(噎膈)의 속(屬)이 그것이다.
열격(噎膈)의 증(證)을 사람들은 모두 내상(內傷)으로 알고 있으니, 내상(內傷)이 여기에 이르면 그 장기(臟氣)의 건(健)은 어떠하겠는가? 그래도 열(熱)이라고 말한다면, 원양(元陽)이 모두 거(去)하고도 따로 생생(生生)의 도(道)가 어찌 있다는 것인가? 아! 내가 이를 이해(:解)하지 못할 바이니, 변(辨)하지 않을 수 없다.
一. 열격(噎膈)의 증(證)을 고인(古人)들은 대부분 한(寒)으로 인식(認)하였다.
유하간(劉河間)에서부터 격기(膈氣) 열식(噎食)을 치료(治)할 때 세 가지 승기탕(承氣湯)을 사용하였다.
장자화(張子和)도 삼양(三陽)의 결(結)을 모두 열(熱)로 논(論)하였다. 또 그가 이르기를 "사람의 일식(溢食)은 처음부터 갑자기(:遽) 그런 것이 아니라, 주식(酒食)에 상(傷)하거나 위열(胃熱)로 토(吐)하려고 하거나 모풍(冒風)으로 토(吐)하려고 하는 것이다. 의사(醫)들이 그 본원(本原)을 살피지 않고 목향(木香) 육계(肉桂) 호초(胡椒) 정향(丁香)의 속(屬)으로 투하(投下)한다. 만약 상주(傷酒) 상식(傷食)이라면 바로 공축(攻逐)할 수 있으니, 어찌 허(虛)라고 말하겠는가? 바로 열(熱)로 보(補)하면 평소 열(熱)한 사람은 삼양(三陽)이 반드시 결(結)하고 식(食)이 반드시 위로 조(潮)하게 된다. 의사(醫)들은 '위(胃)가 한(寒)하면 납(納)하지 못한다.' 하면서 번침(燔針)과 작애(灼艾)로 치료하는데, 삼양(三陽)이 결(結)로 전(轉)하여 세월(歲月)이 깊어지면 결국 열격(噎膈)이 된다." 하였다.
내가 이 말들을 음미(:味)하건대, 의혹(惑)하지 않을 수 없다. 열격(噎膈)은 고고(枯槁)에서 말미암고 본래 실열(實熱)의 증(證)이 아닌데, 세 가지 승기탕(承氣湯)을 사용할 수 있겠는가? 하간(河間)의 견해(見)는 정확(:確)하지 않다. 하물며 주육(酒肉)이 과다(過多)하여도 반드시 열격(噎膈)이 되지 않는데, 열격(噎膈)의 병(病)이 또 어찌 모두 평소 열(熱)한 사람들이겠는가? 이처럼 자화(子和)의 견해(見)도 옳지 않다.
그 후의 단계(丹溪)는 결국 두 사람의 설(說)을 계승(:承)하였으니, 국방([局方])의 틀렸음을 크게 지적(:辟)하면서 이르기를 "기(氣)의 처음 병(病)은 음식(飮食)을 삼가지(:謹) 않거나 풍우(風雨)를 겉으로 외모(外冒)하거나 칠정(七情)에 내감(內感)하거나 식미(食味)가 과(過)하게 후(厚)하므로 양기(陽氣)를 치우쳐 도우므로 이것이 적(積)하여 격(膈)이 열(熱)하게 된다. 혹은 자품(資稟: 체질)이 충실(充實)하여 표(表)가 밀(密)하므로 무한(無汗)하거나 성(性)이 급(急)하여 쉽게 노(怒)하여 간화(肝火)가 상염(上炎)하므로 진액(津液)이 불행(不行)하여 기병(氣病)이 되니, 비(痞)하거나 통(痛)하거나 부기(腐氣)를 희(噫)하거나 탄산(呑酸)하거나 조잡(嘈雜)하거나 팽만(膨滿)한다. 원본(原本)을 구하지 않고 곧 한(寒)이라고 인식(認)하여 ①급히 신향(辛香) 조열(燥熱)한 방제(劑)를 수 첩 투여(投)하면 잠시(暫時) 쾌(快)를 얻으니, 신방(神方)이 된다. ②후미(厚味)를 여전히 부절(不節)하고 칠정(七情)을 반복(反復)하기를 거듭하면 구병(舊病)이 겁(劫)을 입어 잠시 개(開)하였다가 탁액(濁液)이 쉽게 찬취(攢聚: 모이다)하니 반(半) 달이나 1달 만에 앞의 병(病)이 다시 된다. 의사(醫)가 이를 살피지 않고 오히려 냉(冷)으로 고집(:執)하니, 앞의 약(藥)을 쓰는(:手) 대로 쾌(快)하였다는 것만 생각하고 오래 복용하여 온비(溫脾) 장위(壯胃)하고 소적(消積) 행기(行氣)하기를 기다리면서, 일단(一旦) 잘 통하기(:豁然)만을 바란다. ③위(胃)는 수곡(水穀)의 해(海)이니 청화(淸和)하면 받을 수 있고 비(脾)는 소화(消化)의 기(器)이니 청화(淸和)하면 운(運)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지 않고, 지금 도리어 향열(香熱)의 치우친 도움을 받아 겁(劫)하므로 낫게만 한다. 다시 되면 다시 겁(劫)하기를 계속(:延綿 끌어 잇다)하고 오래되면 열격(噎膈)이 되어 심고(深痼)로 전전(展轉)하게 되니, 참으로 애민(哀憫: 슬프고 불쌍하다)하다." 하였다.
이것이 단계(丹溪)의 설(說)인데, 후인(後人)들이 이를 보고는 모두 지론(至論)이라 하지 않음이 없다. 나도 초년(初年)에는 일찍이 흠복(欽服: 공경하고 수긍하다)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지금은 날이 갈수록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 그러한가?
잠시(:試) 병원(病原)을 서술(:敍)한 것을 보건대,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으니, 돌이켜 일일이 지적(:指)하여 변(辨)하기는 어려우니라. 다만 이 증(證)에서 열(熱)이라고 힘주어 지칭하였는데, 그 잘못(:謬)이 없을 수 있겠는가?
또 '①조열(燥熱)한 방제(劑)를 쓰는 대로 쾌(快)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는 진실로 효(效)가 없는 것은 아니다. 조열(燥熱)이 주효(奏效)할 수 있으니, 만약 진짜 화증(火證)이라면 어찌 조열(燥熱)이 효(效)하겠는가? 비토(脾土)는 습(濕)을 싫어하므로(:惡) 이를 조(燥)하게 하는 것이 가능하고, 화(火)는 토(土)를 생(生)하므로 이를 열(熱)하게 하는 것도 가능한다. 온조(溫燥)로 부양(扶陽)하니, 이는 비가(脾家)의 정치(正治)이다. 반드시 틀렸다고 말하고 싶었고 이로 인하여 후인(後人)들의 의혹(:疑)에 이르렀으니, 거짓(:矯)에 속(屬)하는 것들이다.
'②후미(厚味) 칠정(七情)을 여전히 부절(不節)하여 나았다가 다시 된다.'고 말하였는데, 이는 누구의 허물(:咎)인가? 이도 또한 약(藥)의 잘못으로 돌릴(:歸) 수 있겠는가?
또 '③비위(脾胃)가 청화(淸和)하면 능히 수(受)하고 능히 운(運)한다.'는 설(說)은 사실 지극(至)한 이치(理)이니, 누가 그렇지 않다고 말하겠는가?
다만 내가 말하는 청화(淸和)는 단계(丹溪)와는 부동(不同)하니, 도대체 그것은 또 무엇인가?
단계(丹溪)가 말한 것은 오직 화(火)의 성(盛)을 우려한 것이지만, 내가 말한 것은 오직 양(陽)의 쇠(衰)를 우려한 것이다. 이와 같이 다르고도 같으니, 사람들이 어찌 이를 믿겠는가?
청(請)하건대 천인(天人)의 이치(理)로 이를 증명(:證)하는 것이 어떠할까?
천인(天人)이 같이 의지(:賴)하는 것은 오직 이 양기(陽氣)일 뿐이므로 경(經)에서 이르기를 "천기(天氣)는 청정(淸靜) 광명(光明)한 것이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양기(陽氣)는 천(天)의 일(日)과 같아서 그 장소(:所)를 실(失)하면 수(壽)가 꺾여 창(彰)하지 못하므로 천운(天運)은 당연히 일(日)로써 광명(光明)한다." 하였다. 이로 말하자면, 육합(六合)의 청화(淸和)는 단지 이러한 태양(太陽)의 용(用)일 뿐이다.
따라서 양기(陽氣)가 승(勝)하면 온난(溫暖) 광명(光明)하고 만물(:萬類)이 두루 형통(:亨)하니, 이것이 청화(淸和)가 아니겠는가? 음기(陰氣)가 승(勝)하면 풍매(風霾: 바람이 불고 비가 오다) 회명(晦暝: 어둡다)하여 부침승강(:升沈)이 폐색(閉塞)하니, 이것이 청화(淸和)하지 못함이 아니겠는가? 또 춘하(春夏)에 만물(萬物)이 성(盛)하니 양성(陽盛)의 화(化)가 아니겠는가? 추동(秋冬)에 만물(萬物)이 쇠(衰)하니 양(陽)이 쇠(衰)한 징조(兆)가 아니겠는가?
사람이 의지(:賴)하여 생(生)하는 것도 또한 오직 이것일 뿐이다. 따라서 사람에게 음식(飮食)이 아침(:朝)에 입으로 들어가면 정오(:午)에 모두 화(化)하고 오(午)에 위(胃)로 들어가면 저녁(:暮)에 모두 화(化)하니, 이러한 중초(中焦)의 열(熱)은 또한 크게 삶는(:烹) 솥(:鼎)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반드시 이와 같아야 청화(淸和)라 하니, 이는 곧 평인(平人)의 상(常)이고, 바로 위기(胃氣)가 하는 바이다. 아침(:朝)에 먹어도 정오(:午)에 기(饑)하지 않고 정오(:午)에 먹어도 저녁(:晩)에 기(饑)하지 않아 음식(飮食)의 화(化)가 지(遲)하면 곧 양(陽)이 휴(虧)한 후(候)이다. 하물며 전적(全)으로 불행(不行)하고 전적(全)으로 불화(不化)하는데 의사(醫)들이 또한 화(火)가 있다고 말하니, 어찌 반드시 화원(化源)이 다 행(行)하고 박멸(撲滅)된 후에라야 '되었다.'고 하겠는가? 이 또한 탄식(:嗟)할만 하도다!
천하(天下)의 이치(理)는 본래 2번째, 3번째가 없다. 혹자(或者)는 맞다고 하고 혹자는 틀렸다고 하니, 어찌 시비(:朱紫)가 많을 수 있겠는가? 내가 매번 말하려 할 때마다, 일찍이 스스로 돌이켜 보아야 한다(:自反)는 것을 모르지 않았으나, 다만 매우 의아(疑)한 것(:處)이었으므로 그 잘못(:醜)을 드러내지(:呈) 않을 수 없었다. 어찌 헌기(軒岐)가 다시 태어나서(:起) 나를 위해 이를 바로잡아(:正) 주겠는가?
일찍이 듣자니, 소강절(康節) 선생(先生)이 이르기를 "천하(天下)의 도룡수(屠龍手: 용을 도살하는 자. 뛰어난 자)가 되려면 경전(:聖書)이 아니라 인간(人間)을 읽어야 한다." 하였으니, 그 감개(感慨)함이 깊으니라(:深). 이를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를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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